패왕전설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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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9화
19화
그 앞에 멈춰 선 유운무는 목을 이리저리 꺾고 손을 깍지 끼어 기지개를 폈다. 마치 뭔가를 하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저기… 대주님.”
그것을 의아한 표정으로 보던 강무진이 유운무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유운무가 강무진을 보면서 씨익 웃는 것이 아닌가?
“헉!”
패왕성을 떠나 지금까지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유운무였다. 그런 유운무가 지금 저렇게 미소를 짓자 강무진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나 웃지를 않는지 아예 웃음이 없는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유운무가 짧게 한마디 내뱉고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팔자걸음으로 월담루로 가더니 그 앞에 서 있던 사내에게 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주며 말고삐를 넘겼다.
유운무가 그렇게 월담루로 들어가자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강무진도 얼떨결에 그 뒤를 따라 사내에게 말을 부탁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기루 안으로 들어가자 길 맞은편 건물의 지붕 위에 두 개의 인영이 스르륵 내려앉았다.
“똑똑한 놈이군. 우리가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객잔이 아니라 기루로 갔다.”
“어떻게 하죠?”
“흠, 네가 들어가서 분위기를 살펴라. 금(琴)은 탈 줄 알지?”
“네.”
“좋아. 아무리 틈이 생겨도 절대로 손을 쓰지 말거라. 너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다. 분위기만 살피고 안에 다른 동조자가 없는지만 확인해라.”
“네.”
대답과 함께 한 개의 인영이 스르륵 사라졌다.
기루 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기루는 중앙에는 월아교가 십자로 교차되어 놓여 있었고, 그 위는 지붕까지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를 중심으로 방들이 4층까지 빙 둘러져 있었다.
유운무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서자 웬 여인이 유운무를 알아보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어머! 유 오라버니!”
“응? 오오, 그래. 하하하, 잘 있었느냐?”
족히 50세는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이제 40대 초반인 유운무를 오라버니라 부르며 가슴에 안기는 것이 아닌가?
“아잉,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용?”
“하하하, 그동안 좀 바빴지. 애들은 다 잘 있지?”
자연스럽게 여인의 허리를 감싸며 말하는 유운무는 이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요. 잠시만요. 얘들아! 유 오라버니 오셨다!”
여인의 외침에 1층부터 4층까지 곳곳의 방문이 열렸고, 거기서 유운무를 확인한 기녀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꺄아! 오라버니!”
“꺄아아아아!”
“크하하하, 그래, 그래. 아이고! 귀여운 것들! 그간 잘 있었느냐?”
유운무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안기는 기녀들을 덥석덥석 안으며 양쪽에 수십 명의 기녀들을 끼고 기루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기루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유운무에게 모였고, 그 옆에 있던 강무진도 덩달아 그들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강무진은 이런 곳에 와본 것이 처음인데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유운무에게 달려들던 여인들이 강무진에게도 네다섯 명이나 달려들어 팔을 잡아끌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여기는……. 그나저나 인간이 어떻게 한순간에 저렇게 변하냐?’
그랬다. 유운무는 여태까지 강무진이 알고 있던 그 소심하고 말 없던 유운무가 아니었다. 기루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람이 갑자기 확 변해버렸다.
달려드는 여인들의 몸을 순식간에 더듬으면서 말을 청산유수처럼 쏟아내었다. 그동안 한 달여가 다 되도록 한 말보다 방금 기루에 들어서면서 한 말이 더 많을 정도였다.
게다가 평소에 한 번도 웃지를 않던 사람이 지금은 끊임없이 껄껄대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운무는 오늘 제대로 한번 놀아보려고 완전히 날을 잡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크하하하! 어느 방이냐? 오늘은 딱 다섯 명만 상대할 것이다. 푸하하하! 마음에 들면 그 다음에 또다시 다섯이다!”
처음 와보는 기루의 분위기, 갑자기 변해버린 유운무, 여인들의 육탄 공세와 재잘거림,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정신을 놓고 있던 강무진은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분위기에 이끌려 어딘가로 가서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방 안에서 유운무와 술상을 놓고 마주하고 있었다.
물론 강무진의 옆에는 양쪽에 한 명씩 두 명의 기녀들이 착 달라붙어 있었고 유운무는 무려 다섯 명이나 끼고 있었다.
한쪽에 두 명을 한 팔에 다 안고 다른 쪽에는 세 명의 기녀들을 놓고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여인들을 주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크헤헤헤, 술 안 떨어지게 알아서 잘 챙겨! 안주도 좀더 내오고! 그리고 넌 이리 와라. 그렇지, 감촉이 좋구나. 푸헐!”
“호호호호, 역시 통이 크셔. 유 오라버니는…….”
그렇게 흥얼흥얼 하며 유운무가 옆에 있던 기녀의 품에 손을 쑥 넣더니 주무르기 시작했다. 유운무가 그렇게 막 주무르는데도 여인은 싫지 않은 듯 오히려 유운무에게 몸을 더 맡기고 있었다.
“어머, 공자님은 우리가 마음에 안 드세요?”
이런 곳에 와본 경험이 없는 강무진이 어찌할지를 모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하고 있자 옆에 있던 여인이 강무진의 팔에 가슴을 착 밀착시키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러자 강무진이 여인을 살짝 밀어내면서 말했다.
“아니, 저기… 이것 좀 놓고…….”
“어머! 우리 공자님은 이런 곳이 처음인가 보다. 깔깔깔.”
“그럼 오늘 밤은 소녀가 책임지고 모시겠사와요.”
“하나보다는 둘이 좋지요. 그런 의미에서 소녀가 한 잔 따르겠사와요.”
강무진의 옆에 있던 여인들이 말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강무진의 잔에 술을 따랐다.
“어서 드시와요.”
“아, 네.”
여인들의 권유에 강무진이 술을 단숨에 비우자 속에서 불이 확 하고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양쪽의 여인들이 입을 살짝 가리고 웃으면서 교태를 부렸다.
“호호호호! 어머, 멋져라.”
“보기보다 화끈하시네요.”
“푸하하하! 그 독하다는 빼갈을 단숨에 비우다니 역시 대단하군, 대단해.”
“호호호, 취하셨나 봐요. 우리 오라버니, 빼갈이 아니라 백알이라고요. 백알주(魄軋酒)!”
“그러냐? 푸헤헤, 빼갈이면 어떻고 백알이면 어떠냐? 이리 오거라. 내가 네 그곳을 한번 빼 가보자.”
유운무가 그렇게 말하면서 기녀의 치맛자락을 들치며 손을 쑥 넣자 기녀가 갑자기 탄성을 내는 것이 아닌가?
“아아, 오라버니… 나중에에…….”
“응? 그렇지. 나중에. 하하하하.”
그런 모습을 보고 강무진은 얼굴이 빨개져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씨이, 나도 춘화집이라면 패왕무고에서 질리게 봤는데……. 확실히 책하고 실전은 다르구나.’
강무진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까 유운무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살기를 띠던 모습이 떠올랐다.
“저기, 대주님.”
“응? 뭐야?”
“아까 이곳으로 올 때 왜 그렇게 살기를 띤 겁니까?”
강무진의 물음에 순간 유운무가 강무진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네? 아, 네…….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요.”
“쯧! 한심하군. 그래서 어떻게 나중에 패왕성을 이끌어 가겠나?”
“네? 아니… 전 굳이 그럴 생각은…….”
유운무의 갑작스러운 말에 강무진이 당황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여태까지 자신이 패왕성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헐! 바보 같다고 해야 할지, 야망이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크크크. 너희들 저기 앉아 있는 저 녀석이 누군지 아느냐?”
“호호호, 글쎄요. 누구실까? 어느 돈 많은 집 공자님이실까?”
“돈이 많아? 크크큭! 그것도 맞는 말이지. 돈이 넘쳐나지, 아주 많이!”
“어머! 그렇게나 돈이 많은 집이에요?”
옆에 있던 기녀 하나가 깜짝 놀라는 척하며 묻자 유운무가 대답은 안 하고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유운무의 옆에 있던 기녀가 우아하게 술잔을 채웠다.
“크크큭! 저 녀석이 말이야, 저 녀석이 바로… 패왕성의 대공자이니라. 패왕성 말이다. 호남성을 비롯해서 근방의 네 개의 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 패왕성 말이다. 푸하하하! 나중에 패왕성의 주인이 될지도 모를 놈이지.”
“헉!”
유운무의 말에 강무진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이런 곳에서 굳이 저런 것들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어지는 유운무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그러니 저놈에게 잘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혹시 또 아느냐? 너희들 중에 하나가 패왕성의 안주인이 될지 말이다. 푸하하하.”
“호호호호, 그럼 제가 오늘 밤 확실히 보내드려야겠네요.”
“하하하하! 그렇지. 그래야지.”
“깔깔깔깔.”
유운무의 말에 잠시 멍해 있던 강무진은 뒤늦게 그들이 서로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을 얘기해도 농담이요, 농담을 해도 농담으로 여기고 서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렇구나. 여기 있는 여인들은 믿지를 않는구나.’
강무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운무가 마시던 술잔을 탁자에 소리 나게 탁 하고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아까 왜 이곳으로 오면서 살기를 띠었냐고 물었지?”
“네? 아… 네, 그랬습니다.”
“그건 말이지…….”
잠시 그렇게 말을 끌던 유운무의 입에서 강무진이 상상도 못 했던 말이 나왔다.
“기녀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였다.”
“예?”
“크헤헤, 너도 아까 봤지? 이곳으로 오는 길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더냐? 그런 곳을 지나오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아차! 하는 순간에 그녀들의 손에 이끌려 엉뚱한 기루로 가버리거든. 그러다 죽는 수도 있지. 크큭, 그럼 내가 이곳에서 이 예쁜 것들을 품을 수가 없잖아. 안 그러냐?”
“깔깔깔! 그럼요.”
“오늘도 안 오셨으면 저희는 유 오라버니를 완전히 잊으려고 했답니다.”
“예끼! 이것들아.”
“호호호.”
‘니미, 난 그것도 모르고…….’
유운무의 말은 한마디로 기녀들이 호객 행위를 한다고 달려들면 귀찮으니까 살기를 띠워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적이 있는 줄 알고 긴장을 했던 강무진은 순간 스스로가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순간 뭔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응? 가만! 죽는 수가 있다고? 그렇구나. 살수들! 만약 기녀들 틈에 살수가 있었다면? 그렇군. 호객 행위를 한다고 기녀들이 덤비면 그들 중 누가 살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애초에 접근을 못 하게 막은 것이었어. 그럼 혹시 객잔이 아니라 기루로 온 것도 살수를 피하기 위해서였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강무진은 유운무가 또다시 뭔가가 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조용히 문이 열렸다. 그러자 청아하면서도 단아하게 생긴 여인 한 명이 금을 안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오, 그렇지. 이런 자리에 음(音)이 빠질 수는 없지. 좋다. 어디 좋은 곡으로 한번 뽑아보거라.”
유운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술잔에 들어 있던 술을 한 번에 마셔버렸다.
“끄억, 푸헤헤헤.”
방의 한쪽에 자리를 잡은 여인은 잠시 유운무와 강무진을 살폈다. 그러나 워낙에 빠르게 훑어봤는지라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