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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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6화
16화
그러고 보니 자신의 머리 위는 물론이고 어깨 위에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눈이 오는 줄도 모르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던데다 잠시 감상에 젖느라 눈을 털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강무진이 머리와 어깨의 눈을 털어내려다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주소예의 시선을 느끼고는 주소예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 뭐가 이상해?”
강무진의 말에 주소예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정색을 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요즘 좀 마른 것 같아서요. 걱정이 되어서…….”
“훗! 걱정하지 마.”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주소예에게 다가가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원래대로 돌아오던 주소예의 얼굴이 다시 홍시처럼 붉어졌다.
주소예는 이렇게 강무진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알면 경을 칠 일이었지만 자꾸 강무진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해지며 커져 가고 있었다.
그때 강무진이 눈을 뭉쳐서 힘껏 던지자 멀리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에 정확히 맞았다.
“어때?”
“많이 늘었네요.”
“그렇지?”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뭉쳐서 다시 힘껏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이없게 빗나가 버렸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주소예가 웃음을 터트렸다.
“풋! 그게 뭐예요?”
“헤헤, 사매가 옆에 있으니까 잘 안 되네.”
“피이, 거짓말.”
“사부님이랑 사제들은 다 와 있어?”
“네.”
“좋아. 그럼 가볼까.”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앞장서서 걷자 그런 강무진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주소예가 곧 뒤따르며 말했다.
“같이 가요, 대사형!”
그렇게 두 사람이 가고 나자 나무 뒤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내는 두 사람이 가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매는 나에게 결코 저런 눈빛을 하지 않겠지. 훗!’
강무진과 주소예가 적상군과 사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원에 도착하자 그들이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자 주소예가 먼저 적상군에게 인사를 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강무진이 적상군을 보고 인사를 하자 적상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그래.”
“입고 있는 옷이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사모님 솜씨 같지는 않고.
누가 만들어서 주었는지 궁금하군요. 혹시 여자가 생긴 겁니까?”
강무진의 말에 적상군의 얼굴이 꿈틀했고, 이에 옆에 있던 왕이후와 화운영은 물론이고 주소예까지 얼굴이 창백해지며 적상군의 눈치를 살폈다. 누가 감히 적상군에게 저런 농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강무진이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사부님. 농담.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그러시면 정말인 것 같잖아요.”
그렇게 이야기하던 강무진은 여전히 분위기가 얼어 있는 것을 느끼고는 재빨리 왕이후와 화운영의 옆에 가서 섰다.
그걸 보고 왕이후와 화운영은 황당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자신들은 사부인 적상군을 절대로 저렇게 대하지 못했다.
적상군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를 압도하는 기세를 뿜어내는 사내였다. 게다가 그들의 사부라는 것을 떠나서 패왕성의 성주라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런 것이 없었다. 적상군이 아무리 엄하게 대해도 그때뿐이었다.
도대체 강무진에게서는 긴장감이라는 것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실실 웃으며 친근감 있게 대하니 적상군도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였다.
사실 강무진은 적상군에게만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패왕성 내의 누구에게나 그렇게 대했던 것이다.
그때 적운휘가 오며 강무진과 주소예를 슬쩍 본 후 적상군에게 인사를 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래. 다 모였으니 시작하자.”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사형제들 간의 실력을 겨루는 대련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에 적상군은 제자들을 모두 따로 가르쳤다. 배운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쳤던 것이다.
“하앗!”
“크윽!”
화운영의 검초는 변화가 심하면서도 빨랐다. 패왕성의 사대비기 중 하나인 수라십삼검을 화운영은 벌써 반 이상이나 자신의 것으로 만든 상태였다.
이에 자신의 색깔이 어느새 조금씩 검초에 묻어나고 있었다.
강무진은 화운영의 그런 변초들을 피하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며 막아내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결국 20초식을 넘기지 못하고 가슴에 화운영의 검을 허용하고 말았다.
깡!
강무진은 몸에 아직도 그 무거운 쇳덩어리로 만든 묵갑을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화운영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검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검이 강무진의 묵갑에 닿는 순간 힘을 뺐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무리 묵갑을 몸에 걸치고 있다 해도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쳇! 아직도 그 무거운 것들을 차고 다닙니까? 그러지 마시고 내공을 좀더 수련하라니까요.”
화운영이 싱겁게 끝나 버린 대련이 조금은 아쉬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자 강무진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안 돼. 이거 이번에 새로 만든 거란 말이야. 그리고 내공이 빨리 안 느는 걸 어떡해.”
사실이 그랬다. 내공이라는 것이 원래 더디게 느는 것이 정석이기는 했지만 강무진 같은 경우는 더했다.
원인은 아수라패왕권 때문에 고르지 못한 기의 통로와 혈 때문이었다.
더구나 강무진이 알고 있는 제대로 된 내공심법이라고는 아수라패왕진결뿐이었는데 아수라패왕진결은 내공의 양을 늘리기보다는 폭발시키는 데 더 중점을 둔 내공심법이었던 것이다.
“제 사형이라는 사람이 제 수하들보다 무공이 약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니지 않습니까?”
확실히 강무진을 무시하는 말투였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런 화운영의 말에도 그저 뒷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그것을 보고 옆에 있던 주소예가 화운영을 보고 말했다.
“화 사제, 말이 너무 심하잖아. 대사형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어. 대사형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치이, 사저는 항상 대사형만 편드는군요.”
“뭐야?”
주소예가 순간 발끈해서 소리치는데 적상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이번엔 주소예, 네가 겨루어 보거라.”
“네.”
주소예가 대답을 하면서 강무진에게 예를 취한 후 검을 뽑아 들었다.
“한수 부탁드려요, 대사형.”
“좋았어! 와라!”
강무진이 호기롭게 외치며 자신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도를 두 손으로 잡아 겨누었다.
10초!
딱 10초였다. 10초 만에 주소예의 검은 강무진의 목에 대어져 있었다.
“아니, 그것도 못 막아요? 방금 화 사제가 펼친 초식이잖아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련을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허리에 손을 척 하니 걸친 주소예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쳇! 나보다 더하면서 만날 나한테만 뭐라 그래. 내가 하는 것은 사저에 비하면 완전히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는 것을 알아야지.’
화운영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주소예는 강무진에게 난리를 친 이후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대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대련이 있는 날이면 늘 저런 식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들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다음은 이후가 해보도록.”
“네.”
왕이후가 대답을 하며 강무진의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모두들 흥미 있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대련이 가장 볼만했기 때문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사형.”
“응, 나도 잘 부탁해.”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예를 취한 후 대련이 시작되었다.
까까깡!
왕이후가 펼치는 것은 분명 패왕성의 사대비기 중 하나인 뇌전폭풍도였다.
그러나 내력을 전혀 싣지 않은 상태에서 순전히 근육의 힘만으로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처음에 강무진이 왕이후를 이겼을 때처럼 왕이후도 강무진에게 바짝 붙어서 초근접전을 펼치고 있으니 더욱이 그렇게 보였다.
이에 강무진 역시 내공을 쓰지 않고 순전히 근육의 힘만으로 맞서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련을 하다 보니 처음에 한 번 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 이후로는 더 이상 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도와 도가 서로 긁으면서 미끄러지는 소리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가가가각!
“타하앗!”
순간 왕이후가 기합을 지르며 강무진의 도를 위로 긁어 올렸다. 그러자 강무진의 그 커다란 도가 번쩍 위로 떠버렸다.
강무진의 팔뚝에 감겨 있는 묵갑과 도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렇게 강무진의 도를 위로 들어 올린 왕이후가 앞으로 한 걸음 디디며 어깨로 강무진의 가슴을 박아버렸다.
“큭!”
“윽!”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신음을 내며 뒤로 물러났다. 왕이후는 쇳덩어리로 된 강무진의 묵갑에 어깨를 부딪쳤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물러난 것이었고, 강무진은 비록 묵갑을 두르고는 있었지만 묵갑을 뚫고 들어오는 충격 때문에 물러난 것이었다.
“그거 풀고 다시 한 번 합시다.”
조금은 건방져 보이는 말투였다. 그러나 강무진은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눈이 오니까 뼈마디가 쑤셔서 안 되겠다. 에고.”
강무진이 마홍이나 염전상이 자주 하는 말을 흉내 내며 말하자 왕이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사실 왕이후는 1년 전에 강무진에게 패한 이후로 이를 악물면서 수련을 했다. 이에 실력이 못 알아볼 정도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해 있었다.
그런 왕이후가 강무진과 이런 식으로 대련을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강무진을 위한 것이 더 컸다. 강무진의 수준에 맞추어서 대련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강무진이 그만두자고 하자 순순히 물러났던 것이다.
그 다음은 적운휘와의 대련만이 남아 있었다.
“오늘도 그때 보여주었던 무공을 펼치지 않을 겁니까?”
적운휘가 무표정하게 묻는 말에 강무진이 난처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하하, 대련인데 굳이 그렇게 위험한 것은 쓰지 않아도…….”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십시오.”
적운휘는 1년 전에 강무진에게 패한 이후로 다시 한 번 자신의 마력진패강기와 아수라패왕권을 부딪쳐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아수라패왕권을 쓴 적이 없었다. 항상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쓰기를 꺼렸던 것이다.
이에 적운휘가 어떤 때는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밀어붙여 보기도 했지만 강무진은 끝까지 아수라패왕권을 쓰지 않았다.
강무진이 늘 그런 식이니 적운휘에게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적운휘가 서서히 마력진패강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들이 적운휘의 몸에 닿기도 전에 흩어져 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적상군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마력진패강기가 벌써 오성을 넘어섰군. 대단히 빠른 성취인걸.’
“좋아! 이번에는 나도 제대로 된 걸 하나 보여주지!”
강무진이 외치면서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그 자리에서 공중으로 쭉 솟아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몸을 앞으로 회전시키며 그 힘을 이용해 그 커다란 도를 밑으로 내려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