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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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5화
15화
염전상과 잡담을 주고받던 마홍은 강무진이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실려 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대공자님!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단 침상에 눕히고 나서 이야기하지.”
왕이후의 말에 마홍이 재빨리 침상의 이불을 걷어냈다.
“이쪽으로 눕히십시오.”
“끙.”
왕이후가 그쪽에 강무진을 내려놓자 마홍이 강무진의 상세를 살폈다.
“걱정 마라. 기력이 다해 잠시 기절했을 뿐이다.”
“아! 그렇군요.”
그제야 마홍은 왕이후를 비롯한 주소예와 화운영이 눈에 들어왔다.
“헛! 아이고, 몰라 뵈었습니다. 저는 패왕마전대 12조의 조장 마홍이라고 합니다.”
“흠, 이야기는 들었다. 대사형을 잘 보살펴라. 가자.”
왕이후가 마홍의 인사를 받으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자신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도를 등 뒤에 비스듬히 메고 있는 염전상이 보였다. 이에 왕이후의 눈빛이 잠시 이채를 띠었다.
“그대가 대사형에게 도법을 가르친 사람이군.”
“응? 아! 그렇습니다. 그리 뛰어난 도법은 아닙니다, 클클.”
“뛰어난 도법이 아니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왕이후가 그런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자 화운영이 뒤를 따랐다. 주소예는 뭔가 아쉬운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휘유, 젊은 놈이 서릿발 같은 기세를 풍기며 다니는군. 누구지?”
염전상이 묻자 마홍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염전상을 바라봤다.
“이런, 니미… 너는 어떻게 대공자의 사형제들도 못 알아보냐? 방금 그 공자가 성주님의 셋째 제자야. 뇌전폭풍대의 왕철심 대주의 아들이기도 하지.”
“클클, 그랬냐? 생각보다 덜 건방진 것 같은데. 더군다나 우리 대공자에게도 다정한 것 같고…….”
“응? 그러고 보니 그런걸.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나중에 물어보면 되지. 클클.”
“준비는 잘 되어 가는가?”
굵고 맑은 목소리였다. 얼굴의 반을 하얀 면사로 가리고 있는 사내가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고수였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이 정도의 기세를 느끼게 만든다면 패왕성의 성주인 적상군과 비슷한, 아니 어쩌면 더 대단한 고수일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차곡차곡 진행 중입니다. 이미 3분의 1 정도의 중요 인사들을 포섭해 두었습니다.”
뒤쪽에 부복하고 있던 사내 역시 얼굴의 반을 하얀 면사로 가리고 있었다.
“유운무는?”
“어렵습니다.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성주의 측근이라 그건가?”
유운무는 패왕성 최강의 전투 집단인 패왕마전대의 대주였다.
불과 20세의 나이에 대주의 자리에 올라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던 사내로 환영검(幻影劍)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복잡한 검법을 사용하는 고수였다.
그러나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유운무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말이 없고 어디에 나서지도 않는 성격이어서 대인관계도 극히 좁았다. 그러다 보니 그가 쓰는 검법의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자!
뭔가 알 수 없는 신비에 감추어져 있는 인물이 바로 유운무라는 사내였다.
“방법은?”
“최근 절강성 쪽이 시끄러우니 그쪽으로 보내주시면 나머지는 속하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흠, 만만치 않을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고수들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부족해.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패왕성 최강이라는 패왕마전대의 대주 자리에 앉은 사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도 함께 보내겠습니다.”
“그가 움직이려 할까?”
“이미 우리와 손을 잡았으니 그 정도는 들어줄 겁니다. 게다가 유운무가 제거된다면 그에게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등을 보이고 있던 사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결정을 한 듯 말했다.
“진행시켜.”
“존명!”
“휘는 방에 있느냐?”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적운휘가 보던 책을 덮었다.
“네, 어머니.”
적운휘가 대답을 하자 문이 열리면서 부용화와 한 소녀가 같이 들어왔다.
“오라버니.”
“그래. 영령이도 같이 왔구나.”
부용화와 같이 온 적영령이 적운휘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적영령에게는 오라비인 적운휘조차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단아함과 기품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조금은 차가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적영령이 자신의 친누이동생이 아니었다면 적운휘는 적영령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것이다.
“제가 틈틈이 만든 거예요.”
적영령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비단에 쌓인 옷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적운휘가 풀어보자 정성스레 만든 옷이 한 벌 나왔다.
“좋구나. 어머니, 어때요?”
적운휘가 적영령이 만든 옷을 살짝 걸치면서 묻자 부용화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후후, 누가 보면 남매 사이가 아니라 애인 사이라고 오해하겠구나.”
“네? 어머니도 참…….”
순간 적운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적영령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 늦은 밤에 어쩐 일이세요?”
“듣자하니 낮에 대련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다던데 몸은 괜찮으냐?”
“네? 네… 괜찮습니다.”
“흠, 도대체 누가 너한테 상처를 입힌 것이냐? 네 사형제들은 너에게 부상을 줄 정도의 실력이 아니거늘.”
부용화의 말에 적운휘가 부용화의 표정을 가만히 살펴봤다.
‘정말 모르시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시는 것인가?’
“그리 큰일은 아니니 심려치 마십시오.”
“그래. 네가 그리 이야기하니 그렇게 알고 있으마. 항상 방심하지 말고 몸조심해야 해. 네 몸은 너만의 것이 아니다. 너는 장차 이 패왕성의 주인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이다. 그러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적운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야기하는 부용화의 말에 적운휘는 속으로 뭔가 답답한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여겼다. 그리고 기대를 한다.
적운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부담스러워졌다. 특히 어머니의 저 기대감은 어떻게 보면 병적일 정도로 어깨를 눌러왔다.
답답했다. 하나 둘 모든 것들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적운휘를 조금이나마 자유스럽게 해주는 것은 오직 동생인 적영령의 미소뿐이었다.
“네, 어머니.”
적운휘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적영령을 슬쩍 바라봤다.
적운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적영령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운휘의 방을 나와 적영령을 방으로 돌려보낸 부용화가 옆에 연못이 보이는 난간이 있는 복도를 걸으면서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분명 사대비기를 얻지 못했다고 했죠? 그런데도 아무리 운휘가 방심을 했다지만 부상까지 입을 정도면 좋지 않아요. 그동안 우리가 너무 그를 등한시했어요. 일단 그를 성 밖으로 내보낼 방법을 찾아보세요. 성 안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성 밖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부용화는 늘 자신을 따라다니던 세 개의 기척 중 하나가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때 앞쪽에서 한 노인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가는 수염을 가슴까지 내려오게 기르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나이 든 학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노인이었다.
그 노인이 부용화를 보더니 가볍게 예를 취하며 인사를 했다.
“허허,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군요. 최근에는 왜 이렇게 발길이 뜸하셨나요? 좌호법님이 자주 안 오시니 그 좋은 청차(淸茶)가 줄지를 않습니다.”
노인은 패왕성의 좌호법으로 수라신검이라 불리며 적상군의 막내 제자인 화운영의 할아버지기도 한 화묵정이었다.
“허허허, 그리 이야기하시니 지금부터라도 자주 들러야겠습니다.”
“호호호,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조만간 한 번 성주님을 뵈야 할 것 같으니 그때 그 청차를 음미할 기회를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아! 손자인 화 공자는 요즘 나날이 무공이 높아진다고 들었습니다.”
“아니오.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겨우 제 몸 하나 건사할 정도입니다. 아드님인 적 공자의 무공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어머? 아니에요. 요즘 운휘는 별다른 진보가 없답니다. 오늘도 글쎄 대사형이라는 아이와 대련을 하다가 내상을 입었다지 뭡니까? 그래서 지금 운휘를 보고 오는 길이에요.”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대사형이라면 성주님이 데려왔다던 그 아이 아닌가? 그 아이가 운휘에게 부상을 입혔다? 음, 운영이에게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부용화는 자신의 말에 잠시 표정이 바뀌면서 생각에 잠기는 화묵정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1년 후, 강무진의 나이 열아홉 살.
“후욱.”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던 강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무리인가.”
강무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근 1년 동안 강무진의 무공은 무섭도록 진보해 있었다. 천변결은 이제 기본이 완전히 잡혀 단검 말고 다른 암기들을 던지는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붕마도법은 몸에 달고 있는 쇳덩어리의 무게를 더 이상 늘려도 소용이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도(刀)도 이제는 강무진의 키만큼이나 길어졌고 넓이는 두 뼘 가까이 될 정도로 커다란 것을 쓰고 있었다.
궁술은 달리면서 화살 세 대를 연속으로 속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진보를 보인 것이 금강불괴신공과 아수라패왕권이었는데 금강불괴신공의 경우, 이제는 약하게 발하는 아수라패왕권 정도는 능히 버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수라패왕권은 며칠 전에 그 끝을 본 상태였다.
원래 아수라패왕권은 위력은 좋아도 한 방짜리여서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익히는 시간이 극히 짧았다.
이에 패왕무고 안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던 강무진은 지금 아수라패왕권을 완전히 익힌 상태였다.
다만 그 위력 때문에 마음대로 써보지를 못해서 아직까지도 전력을 다한 것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만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겨우 1년의 시간 동안 빠르게 무공의 진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강무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무진은 하루에 절대로 두 시진 이상을 자지 않았다. 항상 그 커다란 도를 옆에 끼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무공을 연마했다.
얼마나 지독하게 연습을 하는지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마홍과 염전상이 제발 쉬라고 말릴 정도였다.
사실 강무진은 처음에 사제들을 이긴 이후로는 한 번도 그들을 이겨보지 못했다. 그들과 제대로 대련를 하면 항상 10초를 받아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 그들을 조금이나마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연습밖에 없었다.
이에 강무진은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무공을 닦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강무진은 예전에 비해 많이 마른 모습이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고 있는데 누군가 강무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사형!”
“응? 아! 사매.”
“그 모습이 뭐예요?”
“내 모습이 왜?”
“푸훗! 꼭 눈사람 같아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