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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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4화
14화
강무진의 말에 왕이후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랬었나? 내가…….’
“알겠냐? 왕이후 너는 상대와 겨루어보지도 않고 상대의 무공이 자신보다 낮다는 생각에 방심을 하고 있었다. 무인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바로 그 자만심이다. 그것이 네가 진 결정적인 원인이다.”
왕이후는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듣던 말을 사부인 적상군에게 또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말없이 고개를 숙인 왕이후에게 강무진이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뭘 그렇게 기가 죽어 있어? 이랬든 저랬든 네가 나보다 무공이 강한 것은 변함이 없잖아. 다음에 겨룰 때 최선을 다하면 되지 뭐. 물론 내가 그때 또 상대를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강무진이 몹시 얄미웠지만 왠지 싫지 않은 왕이후였다.
“수고했다. 이제 운휘만 남았구나. 어떠냐? 너도 대사형과 한번 겨루어봐야지.”
적상군의 말에 적운휘가 잠시 강무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대사형은 지금 연달아 사제들과 겨루느라 내공이 많이 소모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싸우면 정당하지 않으니 나중에 겨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무진이 네 생각은 어떠냐?”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끝을 봐야죠.”
강무진이 씨익 웃으면서 말하자 적상군이 적운휘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하니 운휘도 한번 겨루어보도록 하여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적상군의 말에 적운휘가 무표정하게 대답을 하며 강무진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강무진에게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한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해.”
강무진은 대답하며 자세히 적운휘를 살폈다. 적운휘는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서 있는 상태였지만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휘우! 사형의 마력진패강기를 보겠군.”
왕이후의 말에 옆에 있던 화운영이 물었다.
“대사형이 괜찮을까요?”
“글쎄다. 정면으로 받지만 않으면 죽지는 않겠지.”
잠시 적운휘를 살피던 강무진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흐음, 사제, 우리 이렇게 하기로 하지. 사실 나는 지금 지쳐서 일권(一拳)을 지를 힘밖에 없어. 그러니 이 일권을 막아내면 사제가 이긴 걸로 하고, 그렇지 않고 막아내지 못하면 내가 이긴 것으로 하지. 어때?”
강무진의 말에 멀리서 보고 있던 화운영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엇! 적 사형을 상대로 저런 말을…….”
“그러게 말이다. 저 말은 마력진패강기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잖아?”
왕이후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여태까지 태연하게 있던 주소예의 얼굴에도 약간 걱정의 빛이 떠올랐다.
‘흐음, 운휘가 마력진패강기를 익혔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마력진패강기가 뭔지 모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
적상군은 이런 생각을 하며 과연 적운휘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마력진패강기는 그 위력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었다. 강맹함만으로 따지자면 무림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 마력진패강기를 익힌 적운휘에게 정면대결을 하자고 하니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좋습니다.”
적운휘가 그렇게 말하면서 옷자락을 잡아 허리춤에 꽂은 후 한 손을 앞으로 내밀어 폈다. 언제든 오라는 뜻이었다.
“잘못하면 사제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힘을 최대한 조절해서 할게.”
강무진의 말에 적운휘가 눈썹을 잠시 꿈틀했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전력으로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무튼 조심해. 알았지?”
강무진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왕이후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쳇!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자아, 그럼 간다앗!”
강무진이 외치면서 빠르게 적운휘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여전히 눈에 안 보일 정도의 속도이기는 했지만 적운휘는 왕이후와 달랐다.
강무진의 그런 빠른 동작을 충분히 잡아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강무진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서 마력진패강기를 끌어올렸다. 강무진이 말한 대로 주먹을 질러올 때 맞받아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적운휘의 눈에 강무진이 주먹을 지르기 위해 오른쪽 어깨를 뒤로 확 젖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손을 내밀어 마력진패강기를 뿜어내려는 찰나에 뭔가 이미 적운휘의 손에 닿아 있었다.
그것은 강무진의 왼쪽 주먹이었다. 적운휘가 내민 손에 강무진의 왼쪽 주먹이 살짝 닿는 순간 강무진이 속삭이듯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수라패왕권.”
그 순간 강무진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아니 흔들렸다기보다는 진동을 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뭐……? 헉!”
파아아앙!
갑자기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나면서 적운휘의 몸이 마치 뭔가에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뒤로 쭉 날아갔다.
‘저, 저건…….’
순간 적상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일 뻔했다. 그러나 뒤로 튕겨나간 적운휘가 곧 자세를 바로잡고 멈추어 서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힐책했다.
‘쯧! 아직도 한 아이의 편을 들고 있음인가?’
“헉! 헉!”
강무진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뒤로 튕겨 나가기는 했지만 멀쩡히 서 있는 적운휘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다치지 않아서…….”
“뭐……?”
순간 강무진의 말을 듣고 있던 적운휘는 뭔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우엑!”
적운휘가 갑자기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내면서 무릎을 꿇었다.
강무진이 아무리 아수라패왕권을 약하게 한다고 했지만 그 위력이 어디 가겠는가?
더구나 적운휘는 강무진이 오른쪽 어깨를 뒤로 젖히는 것을 보고 오른쪽 주먹으로 공격을 할 줄 알았지 설마 왼쪽 주먹으로 공격을 해올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력진패강기로 맞받아치는 시기가 조금 늦어져 버렸다. 이에 내상을 심하게 입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적상군이 순식간에 적운휘의 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적운휘의 맥을 잡고 상태를 살폈다.
“내상을 입긴 했지만 그리 깊지는 않다. 어서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여라.”
적상군의 말에 적운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적상군이 적운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내기(內氣)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 놀라운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조심스럽게 강무진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괜찮나요?”
주소예가 걱정스러운 듯 다가와서 강무진의 어깨를 잡는 순간 강무진이 그대로 주소예의 품으로 쓰러졌다.
<패왕성을 나서다>
“어머!”
“헛!”
이에 주소예는 물론이고 왕이후와 화운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이후와 화운영은 자신들도 모르게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강무진의 모습에 주먹에 준 힘을 풀어야만 했다.
“잠시만 이대로 있을게. 잠시만…….”
강무진이 그렇게 말한 후 그대로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적상군의 도움으로 운기조식을 끝낸 적운휘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돌아와 있었다.
“응? 지금 뭐 하는 거냐?”
강무진을 안고 있는 주소예를 보며 적상군이 놀란 눈으로 묻자 주소예가 화들짝 놀라며 품에 안고 있던 강무진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이에 바닥에 머리가 떨어지면서 쿵 하는 소리가 났는데도 강무진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이래저래 말썽이군.”
적상군이 혼잣말을 하며 강무진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그러면서 강무진의 맥을 짚어본 적상군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진기가 고르지가 않다. 뭔가 이상한 무공을 익힌 것인가? 내공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그런 위력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적상군은 자신의 내기를 강무진의 몸 안으로 밀어 넣어보았다. 그러자 밀어 보낸 내기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것 봐라? 도대체 패왕무고에서 무슨 무공을 익힌 거지?’
아수라패왕권은 언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권법이었다.
오죽했으면 패왕무고에서도 먼지가 뿌옇게 앉아 있을 정도였겠는가?
게다가 패왕무고에 들어갈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런 해괴한 무공에는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패왕무고에 들락거렸어도 아수라패왕권을 익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금강불괴신공 역시 이름은 유명했지만 그 긴 역사를 가지고도 대성한 사람이 겨우 세 사람뿐이었다. 더구나 그 근원인 소림사에서조차 등한시하고 있었고, 익히는 방법은 또 얼마나 괴이하던가?
그런 두 개의 무공을 설마 강무진이 익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 적상군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적상군은 한때 패왕무고에서 살다시피 하며 무공비급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명한 무공이라면 어느 정도 다 알고 있었지만 방금 강무진이 보여준 권법도 그렇고,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내공심법이 무슨 무공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뭐, 나중에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괜찮다. 기력이 다해서 기절했을 뿐이야. 푹 쉬고 나면 괜찮을 거다.”
적상군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강무진을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모두가 가지각색의 표정이었다.
‘끌끌, 녀석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다가 깨졌으니 충격이 좀 심할 거다. 그것도 제대로 겨루면 십초지적(十招指摘)도 안 되는 놈한테 깨졌으니…….’
“긴 말 하지 않겠다. 오늘 느낀 것이 많았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정진해라. 그리고 오늘 일은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말도록. 오늘은 여기까지다. 무진이는 알아서 숙소까지 데려다주도록 해라.”
적상군이 그렇게 말하고 가버리자 네 명 사이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왕이후였다.
“쳇! 지기는 했지만 왠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군. 대사형을 업혀줘.”
왕이후의 말에 화운영과 주소예가 강무진을 왕이후의 등에 올렸다. 그러자 왕이후가 강무진을 업은 채로 벌떡 일어나서 적운휘를 보며 말했다.
“적 사형, 대사형을 데려다주러 가렵니다. 같이 가실랍니까?”
“아니다. 난 됐다. 너희들끼리 갔다 오거라.”
“알겠습니다. 가자.”
그렇게 멀어져 가는 세 사람을 보면서 적운휘는 아까 강무진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후우, 다행이다. 다치지 않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스럽게 말하는 강무진의 말은 진심이었다. 결국 그 전에 그가 말한 대로 주먹을 휘두를 때 힘을 조절했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자신의 마력진패강기가 밀린단 말인가?
적운휘 역시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의 위력이라면 서로 전력을 다했을 경우에도 깨지는 것은 자신일 것 같았다.
‘아직 멀었다. 무공도 마음도 모든 면에서 그가 앞선다.’
왜 여태까지 그렇게 그를 무시했던가?
만약 좀더 일찍 그와 가까이 지냈다면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운휘는 여태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강무진에 대한 정보가 모두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대사형으로 앉혔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너무 어머니의 말만 믿고 간과를 해버렸어.’
적운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비록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커다란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기는 했지만 왠지 그것이 싫지 않은 적운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