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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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2화
2화
냉혈광도 공선무는 평소에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지만 싸울 때는 미친 사람처럼 변하기 때문에 냉혈광도라는 별호가 붙은 사내였다.
“뭐야?”
“어째서 아드님인 운휘 공자를 대제자로 받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러면 차후 패왕성의 후계자를 정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주군께서 지목한 저 아이에 대해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공선무의 말에 적상군이 거만한 자세로 다시 턱을 괴면서 대청에 있는 모두에게 시선을 던졌다.
“흠, 그러니까 그대의 말은 왜 근본도 모르는 아이를 대제자로 앉히려고 하냐? 이 말이로군.”
사실 이것은 공선무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궁금해하며 납득하지 못하고 있던 일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가 누구이기에 패왕성의 대제자 자리에 앉힌단 말인가?
“난 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를 물려줄 생각은 없다.”
웅성웅성!
적상군의 폭탄과 같은 선언에 좌중이 시끄러워졌다. 적상군의 부인인 부용화는 그 고운 아미가 살짝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나는 저 다섯 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줄 것이다. 저 아이들 중 누구라도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노력하는 자! 그렇게 해서 최고가 된 자에게 이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안 보이는 곳에서 등을 찌르는 일 없이 보이는 곳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게 할 것이다.”
적상군의 말에 대청이 순간 조용해졌다.
“공 태상!”
적상군의 부름에 공선무가 예를 취하면서 대답했다.
“예, 주군.”
“왜 내 아들을 대제자로 삼지 않고 저 아이를 대제자로 삼았냐고 물었나?”
“예, 주군.”
“저 아이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
“여기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는 세력들이 있지. 그러나 저 아이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에게 대사형의 자리를 준 것이다.”
웅성웅성!
“그리고 저 아이가 누구인지도 궁금하겠지?”
“그, 그렇습니다.”
“저 아이는 내 목숨 값으로 데리고 온 아이다.”
“무, 무슨…….”
“그렇게만 알고 있도록. 모두 들어라! 너희들 중 나를 누르고 이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갑작스러운 적상군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흥분을 하면서 외쳤다.
“당치도 않습니다.”
“그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품으면 내 검에 목이 떨어질 것이오!”
“맞습니다. 주군!”
“조용!”
적상군의 말 한마디에 대청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여기 다섯 명의 아이들 중 하나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최고로 만들어서 이 자리에 한번 앉혀보도록.”
웅성웅성!
‘크크큭! 이걸로 나한테 기어오르려던 놈들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적상군이 강무진을 보고 말했다.
“어서 절을 하여라.”
적상군의 말에 강무진이 그 자리에서 절을 아홉 번 했다. 그리고 차를 따라서 적상군에게 올리자 적상군이 단번에 차를 마셨다.
이어서 적상군의 아들인 적운휘가 똑같이 절을 하고 차를 올렸다.
그 뒤를 이어 패왕폭풍대(覇王暴風隊)의 대주(隊主)인 폭풍도(暴風刀) 왕철심의 아들 왕이후가 예를 올렸다.
그리고 좌호법(右護法) 파천일권(破天一拳) 주양악의 딸인 주소예가 예를 올렸고, 마지막으로 우호법(左護法) 수라신검(修羅神劍) 화묵정의 손자인 화운영이 예를 올렸다.
그렇게 사승(師承)의 관계를 맺는 예식이 다 끝나자 대청에 있던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축 드리옵니다! 주군!”
“경하 드리옵니다! 주군!”
“이들 다섯 명은 지금부터 나의 제자들이다. 앞으로 10년! 10년 안에 이 아이들을 최고로 만들어라. 누가 나서서 가르치든, 뭘 배우든 일절 상관하지 않겠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부터 2년 동안 패왕무고(覇王武庫)의 개방을 허락한다. 패왕무고를 갔다 오면 그때부터는 내가 직접 가르칠 것이다. 힘이 닿는 대로 이 아이들을 아끼고 위하도록. 이상!”
적상군이 말을 마치고 태사의에서 일어나자, 대청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적상군을 향해 예를 취했다. 적상군은 아주 잠시, 강무진을 한 번 슥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대청을 나갔다.
그러자 대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뭔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주소예를 만나다>
1년 후. 강무진의 나이 열세 살.
“휴…….”
“마홍,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예? 아, 네. 맞습니다. 검을 이렇게 해서 쥐고 힘껏 던지시면 됩니다.”
마홍의 말대로 강무진이 작은 단검을 쥐고 멀리 있는 나무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자 단검이 나무에 비껴 맞고 튕겨 나가버렸다.
“쳇! 잘 안 되네.”
강무진이 투덜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보고 있는 마홍은 그저 한숨밖에 안 나왔다.
강무진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철혈마제 적상군의 대제자가 된 지 벌써 1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다른 네 명의 제자들은 수많은 절정의 고수들에게 비기(秘技)를 전수받아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강무진에게는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도 무공을 전수하러 오지 않았다.
아니, 처음에 몇 명이 오기는 했지만 강무진을 한 번 살펴보고는 모두 그냥 돌아가 버렸다.
강무진은 다른 네 명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두세 살 정도 많았다. 그런데도 무공의 기초가 아예 없었고, 뛰어난 무골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남다른 총명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 모두들 강무진이 어렸을 때부터 온갖 영약을 먹고 추궁과혈(椎躬過穴)을 받은데다 총기(聰氣)까지 가득해 누구보다도 빠른 성취를 보이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네 명의 아이들 뒤에 있는 세력들이 은근히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누구도 강무진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마홍은 이 사실을 알고 분개했지만 자신의 신분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동안 강무진을 보살펴온 마홍이 직접 자신의 무공을 강무진에게 가르쳐야 했다.
마홍은 패왕성 최강의 전투 집단이라는 패왕마전대 소속이기는 했지만 그중에서 버림받은 조라고 불리는 12조에 속해 있었다.
패왕마전대는 1조부터 12조까지 각각 20명의 조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최대한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20명까지라는 그간의 경험에 의해 짜인 체계였다.
그중 12조는 퇴물들의 조로 겨우 여덟 명밖에 안 되었다. 혈기왕성한 젊은 조원들에게 뒷전으로 밀려난 노인들이 모인 곳이 바로 12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조장이 바로 마홍이었다.
마홍은 암기가 주특기였다.
젊었을 때는 암기로 유명한 사천당문(四川唐門)의 가주와 겨루어도 지지 않을 자신감이 가득했건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투지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물론 실력도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마홍이었지만 1년 동안 정성을 들여 강무진을 가르쳤다.
이에 강무진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다른 네 명의 아이들에 비하면 발가락의 떼만큼도 못한 실력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대공자는 이름만 대공자일 뿐, 나중에는 모두가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은 안 봐도 자명한 일이다. 이 일을 어쩐다. 도대체 그분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단 말인가?’
사실 적상군은 강무진을 대제자에 앉힌 이후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러니 적상군이 무슨 생각으로 강무진을 데려와 대제자로 삼았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마홍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비실비실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키가 작은데다 삐쩍 말라서 상당히 왜소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클클, 여기서 또 저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나? 호오, 비도술(飛刀術)이 조금 늘었는걸.”
“야, 이놈아. 조장한테는 존대를 해야지 왜 만날 말을 잘라먹는 거야?”
“클클,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존대는 무슨…….”
“지랄! 그럼 대주님이 너보다 나이가 어리니 아예 하대를 하지 그러냐?”
“헐! 난 이미 살 만큼 살았지만 그렇다고 명을 재촉해서 일찍 뒈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놈이 정말! 네 말은 내가 만만하니까 맞먹는다는 거냐? 오늘 제대로 함 붙어볼까? 앙?”
마홍이 화가 나서 소리치자 노인이 두 손을 들어 살래살래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다, 아니야. 아이고, 우리 조장님께 내가 실례를 했소이다. 클클.”
“쯧! 온 김에 대공자에게 네놈의 붕마도법(崩魔刀法)이나 좀 가르쳐 주고 가.”
마홍의 말에 노인은 그냥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 노인의 이름은 염전상으로 마홍이 조장으로 있는 12조의 부조장이었다.
작고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도를 위력적으로 쓰는 노인이었다.
“대공자님, 염가 놈이 왔습니다.”
마홍의 외침에 단검을 날리는 데 열중하고 있던 강무진이 뒤를 돌아봤다.
“어! 염 할아버지네.”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며 염전상에게 다가오자 마홍이 인상을 찌푸렸다.
“염 할아버지는 무슨……. 그냥 염가라고 부르면 됩니다. 아니면 그냥 염전상이라고 부르시든가요.”
“안 돼. 그때 겨루어서 내가 졌단 말이야. 내가 이길 때까지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했는걸.”
“염가 네놈, 대공자님에게 그런 수작을…….”
마홍이 흥분해서 염전상에게 고함을 치자 염전상이 재빨리 강무진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시죠, 대공자님. 오늘은 세 번째 초식을 배울 차례였습죠.”
“응, 초식 이름이 비붕낙천(飛鵬落天)이랬지?”
“맞습니다. 어서 도(刀)를 가지고 이쪽으로 오십시오.”
염전상이 그렇게 강무진을 데리고 한쪽으로 가자 마홍이 아무 말도 못 하고 화를 누그러트렸다.
‘썩을……. 꼭 저렇게 속을 긁으니…….’
마홍은 최근에 강무진의 기초가 조금씩 탄탄해지자 염전상을 불러와 붕마도법을 가르치게 하고 있었다.
붕마도법은 패왕마전대라면 누구나 기본으로 익히는 도법이었다.
총 열두 가지의 초식으로 되어 있는데 빠르기나 변화보다는 위력에 중점을 둔 도법이었다.
염전상은 이 붕마도법의 대가(大家)였다.
패왕마전대에서 익힐 수 있는 수많은 상승무공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이 붕마도법만 평생을 판 사람이 바로 염전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승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에 비해 실력이 현저하게 처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그 상태에서 나이가 들어 12조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염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나 가볍게 여기는 붕마도법에 그렇게까지 매달릴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러나 마홍만은 알고 있었다.
염전상이 붕마도법에서 뭔가를 얻었으며, 그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강무진에게 그것을 전수해 주기를 원했다.
마홍이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염전상은 극구 반대를 했었다.
그러나 마홍이 끈질기게 괴롭히면서 설득을 하자 결국 자신이 가르치는 방식에 왈가왈부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승낙을 한 것이었다.
마홍이 보기에 처음에 그렇게 안 하려고 하던 염전상이 요즘은 강무진을 가르치는 데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강무진은 뛰어난 무골도 아니고 남다르게 총명하지는 않았지만 노력을 많이 했다.
뭔가를 배우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