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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12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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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12화

은천검제

제212화

 

홍화루를 나선 진무린은 소능산의 오래된 사당을 향해 걸으며 암연을 부르는 기운을 뿜어냈다.

그런 뒤에 사당 앞에 오른 세 사람은 각자 복잡한 심정을 안고 끝없이 펼쳐진 기와지붕과 홍화루를 바라보았다.

흑사련의 마등을 잡은 곳이며, 하후도와 엄소동을 만난 장소이고, 홍화루와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했다.

잠시 후였다.

“문주를 뵙습니다.”

사당의 뒤에서 서른 중반의 남자가 나와 양손을 마주 잡았다.

“백초를 풀어 그 뒤를 따를 생각인데 경험이 없어 실수할지 모르니 암연 또한 백초를 주시해달라고 전해주겠나?”

“문주께서는 말린 소고기를 지니셨습니까?”

“사제가 가지고 있지.”

“그렇다면 안심하고 따르셔도 됩니다. 만약 소고기의 냄새를 맡지 못할 정도로 떨어지면 백초가 오히려 종 소협을 찾을 것입니다.”

신기한 대답이어서 진무린은 흥미로운 눈으로 코를 내밀고 냄새를 맡는 백초를 내다보았다.

“강호에는 말린 소고기가 많아요. 그렇다면 그쪽으로 현혹될 수도 있지 않나요?”

암연의 남자는 오히려 의아한 눈으로 모려원을 보았다.

“우리에서 풀어주시기 전에 종 소협께서 조금 떼어 먹이시면 됩니다. 그러면 다른 누가 고기를 건네준다고 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철저하기 그지없는 원예가 알려주지 않은 것들이었다.

진무린은 원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냉정한 모습을 지키기는 했으나 속마음은 평소의 냉철함을 놓칠 정도로 어수선했던 모양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을까?

잠시 홍화루를 돌아보았던 진무린은 다시 상황에 집중했다.

“고생했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암연의 남자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진무린은 종무헌에게 시선을 주었다.

종무헌이 종이를 열자 백초는 대뜸 몸을 돌려 애처롭게 우리에 매달려 발을 내밀었다.

추적은 어떨지 몰라도 하얀 담비가 발을 뻗어 버둥대는 모습이 가벼운 웃음을 자아냈다.

엄지손톱 크기로 고기를 떼어낸 종무헌이 팔을 내밀자 백초는 앞발로 잡아가 곧바로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고기를 씹은 백초의 몸짓이 단박에 달라졌다. 

좁은 우리를 빙빙 돌며 달리고 싶은 욕심을 드러냈다.

“시작하자.”

“예, 대사형.”

종무헌이 문을 열어준 뒤였다.

단숨에 우리를 나온 백초는 말린 고기를 더 달라는 투로 종무헌의 다리를 앞발로 붙들고 매달렸다.

“향을 따라가야지.”

종무헌이 명령을 내렸는데 백초는 아직 종무헌의 다리를 붙들고 냄새를 맡았다.

암연의 남자가 말한 대로 종무헌을 기억하는 것인가 싶은 순간이었다.

고개를 산으로 돌린 백초가 느닷없이 물결 모양으로 뛰기 시작했다.

담비가 빠른 것이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초는 그 예상을 월등히 넘어 그야말로 땅 위를 나는 수준이었다.

진무린이 급히 몸을 날렸고, 모려원과 종무헌이 뒤따랐다.

 

**

 

정도맹이 보낸 공고를 화산 역시 받았다.

구관에 들 아홉 명을 선발하기 위해 강호 전역에서 모인 무인들이 비무를 치르겠다는 통보였다.

뭐라 해도 구대문파의 한 축을 담당한 화산이었다.

이름을 떨칠 기회라는 생각에 장로들과 제자들이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화산은 이번 비무에 참석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장로들을 불러놓고 은혼은 전혀 다른 뜻을 내놓았다.

당연하게 장로들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눈치였다.

“장문인의 뜻이 그렇다 해도 수련에 매달린 제자들은 다르지 않겠소? 화산의 이름을 강호에 떨칠 절호의 기회요.”

또한, 그들의 불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호에 스무 명이 넘는 벽계의 인물이 잠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본산은 그들을 넘어섰다고 장담할 때까지 외부에 나서는 일을 자제하고자 합니다.”

“장문인. 표충량 때문이라면 매화검수에서 세 명을 선발해 내보내는 것이 어떻소? 무당과 소림은 이미 세 명의 제자를 파견한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화산만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는 도리가 아니오.”

“량아는 애초에 영웅대회에 보낼 마음조차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더욱 매화검수에서 선발하자는 말씀이오.”

장로들이 물러서지 않는 만큼 은혼 또한 꿋꿋했다.

“장문인께서는 혹 벽계의 인물이 영웅대회에 나타날 것을 염려하시는 게요?”

은혼은 대답 전에 가라앉은 얼굴로 장로들을 돌아보았다.

“영웅대회에서 벽계의 인물이 도발할 것이라 보십니까?”

그리고는 거꾸로 질문을 내놓았다.

“진중탈구검이 구대문파에 쭉 퍼졌는데 그들이 함부로 도발하겠소?”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장문인 역시 그리 생각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더더욱 꺼릴 것이 없지 않소?”

“강호에 스무 명이 넘는 벽계의 인물이 몸을 감췄습니다. 영웅대회를 노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얌전히 숨을 죽이고 살아갈 것이라 여기십니까?”

은혼의 두 번째 질문이 떨어지자 장로 중 몇몇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분명 재기를 노릴 것입니다. 진중탈구검을 능가할 힘을 갖추면 반드시 화산을 비롯한 구대문파를 다시 찾겠지요.”

“구관에 들면 강호를 호령할 무공을 얻는다 하였소. 벽계가 다시 일어설 것을 짐작한다면 더욱 구관에 들어야 하지 않겠소?”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장로들께서는 화산의 검법이 약하다고 여기십니까? 장문인인 제가 보기에 본산의 검법과 검진을 제대로 깨우친 제자가 나온다면 구관을 통해 얻는 기연 따위 바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계속 달려들면 화산의 검법이 부족하다고 우기는 꼴이요, 포기하자니 구관에 드는 기회를 놓치는 모양새라, 장로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선만 급히 나누었다.

“아직 시일이 있으니 지금 당장 결정하기보다는 며칠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고민하면 어떻겠소?”

“그리하십시오.”

그나마 말미를 얻고서야 장로들이 몸을 일으켰다.

장로들이 모두 나간 뒤였다.

“저리 원하시는데 정당하게 선발해서 보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제 문혼이 조심스럽게 뜻을 밝혔다.

“구관이 어쩌면 강호 혼란의 시초가 될지 모를 일이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장로들 앞에서 내놓지 않은 이유여서 사제 문혼은 귀를 쫑긋하며 은혼에게 집중했다.

“느닷없이 강호에 고수 아홉 명이 탄생한다. 그들이 얌전히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 얌전히 수련에만 매달릴까?”

질문을 던진 은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노력이 바탕 되지 않은 결실은 반드시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부른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사제 문혼은 대답을 내지 못했다.

아홉이라는 강호의 절세 고수가 휘젓는 앞날이 섬뜩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벽계의 스물이 언제 기회를 노릴지 모른다. 본산은 과거의 치욕을 교훈 삼아 내실을 다질 것이다.”

문혼의 마음을 익히 짐작한 것처럼 은혼이 나직하게 다짐을 내놓았다.

 

**

 

백초는 무려 두 시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때론 호랑이처럼 길게 뛰었고, 어떤 때는 수리처럼 절벽을 넘어 건너편으로 넘어서기도 했다.

진무린과 모려원, 종무헌이 뒤처지지는 않았으나 실로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도와 집중력이었다.

찌이익!

무려 두 시진을 쉬지 않고 달렸던 백초가 걸음을 멈춘 뒤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변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한 세 사람이 내려선 다음이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는 투로 백초는 종무헌의 정강이를 앞발로 붙들고 애교를 떨었다.

백초가 원하는 것은 말린 소고기일 게 분명했다.

‘어쩔까요?’

사흘이 지나기 전에 고기를 주면 게을러진다고 했다.

잔인하지만 진무린이 고개를 젓자 종무헌은 고기 대신 백초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사흘이 되기 전에는 줄 수 없어. 그러니 어서 향을 추적하자. 추적하고 난 뒤에는 남은 것을 모두 주마.”

종무헌의 손에 코를 연신 비비던 백초는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꿈틀대더니 다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모습이었다.

가벼운 웃음을 터트린 진무린 일행은 다시 백초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워낙 속도가 빨라서 잠시도 방심하기 어려웠다.

 

**

 

진무린이 다녀가고 이틀 뒤에 백면호리와 요정이 홍화루를 찾았다.

“민가에 가 계시랍니다.”

“알았네.”

홍화루에 들렀던 백면호리는 총관 백섭광의 말에 얌전하게 민가로 향했다.

민가에 도착하고 일각쯤 지나자 원예가 은향과 설란, 시비 두 명과 함께 들어섰다.

“제자 요정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오.”

“앉으세요.”

원예는 민가의 대청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한 뒤에 맞은편에 앉았다.

“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걸 또 모 소저가 도와줬지 뭔가.”

원예의 냉정한 시선을 받은 백면호리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원예의 시선이 요정을 향한 다음이었다.

“제가 욕심을 부렸어요.”

“귀혼곡을 지키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라니 더는 마음 쓰지 마라. 다만, 앞으로 다시는 과한 욕심을 부리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

“예, 사부님.”

“겨우 바로잡은 수련을 멈추고 이곳에 온 이유가 영웅대회에 나서려는 생각 때문이냐?”

“그것이…….”

또다시 나섰던 백면호리는 이번에도 냉정한 시선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했다. 너의 노력이 아닌 것을 얻으면 반드시 지난번과 같은 탈이 있을 테니 너는 귀혼곡에 돌아가 소수음공을 대성할 때까지 함부로 나오지 마라.”

딸자식의 스승이라 내내 입을 다물었지만, 백면호리는 더 참지 못했다.

“아니 영웅대회에 참가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는 일은 노력이 아닌가? 방법의 차이 아닐까?”

“정아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어요. 진 문주께서 공력을 깨우칠 기틀을 주셨고, 마교 교주가 공력을 전했으며, 종 소협이 가르침을 내렸고, 모 소저가 기혈을 잡아주었고요.”

“그랬지!”

원예가 한 가지씩 말을 할 때마다 백면호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기연을 얻은 사람이 이 강호에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그런데도 어떤 것일지도 모를 기연을 얻겠다고 설익은 솜씨로 강호 모든 이의 앞에 나서겠다는 말씀이세요?”

“설익은 정도는 아니고 대충 익기는 했지.”

“정아 보다 뛰어난 무인을 헤아려 볼까요? 구관에는 들지도 못하고, 헛된 욕심을 품었다가 실망만 하는 데다 마지막으로 강호인들의 시샘만 받을 텐데 그래도 좋다면 참가하세요.”

“크흠.”

말문이 막힌 백면호리는 헛기침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그래도 나서고 싶으냐?”

“아닙니다.”

요정의 답을 들은 원예는 스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

 

달리고 난 지 사흘 만에 종무헌은 종이를 펼쳐 백초에게 말린 소고기 덩이를 주었다.

앞발로 붙들고 바쁘게 뜯어먹는 백초를 보며 진무린 일행 역시 급하게 건량을 먹었는데 언제 달릴지 몰라서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미 경지를 넘어선 세 사람에게 경공을 펼치는 것쯤 어려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사흘을 통틀어 두 시진 이상을 쉬지 못해 당장 운기가 아쉬웠다.

건량을 먹는 것도 백초가 쉴 때를 이용해야 했고, 물을 마시는 것 역시 개울가에 들를 때가 전부였다.

쇠고기를 맛있게 먹고 난 백초는 앞발을 몇 차례 핥고는 몸을 둥그렇게 만 채 바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자고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일 뿐, 당장은 세 사람에게 휴식을 알리는 백초의 잠이었다.

“간단하게나마 운기해라. 내가 지켜보마.”

“예, 대사형.”

진무린이 공력을 전달해주는 일이 없도록 모려원과 종무헌은 바로 운기에 들었다.

예상을 깨고 두 사람이 짧은 운기에서 깨어났는데도 백초는 둥그렇게 만 몸을 펴지 않았다.

어쩔까.

운기를 좀 더 할까, 아니면 계속 지켜봐야 할까.

세 사람이 속절없이 하얀 담비를 내려다볼 때였다.

번쩍 눈을 뜬 백초가 고개를 불쑥 들더니 좌우를 바삐 둘러보았다.

사흘을 지켜보았던 참이었다.

이전과 전혀 다른 행동이었고,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몸을 일으킨 백초가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따라오라는 것 같았다.

“기운을 최대한 감춰.”

“예, 대사형.”

세 사람이 그렇게 따랐으나 금방 무언가를 발견할 것처럼 출발한 백초는 아침이 환하게 밝아질 때까지 꼬박 네 시진을 그렇게 느긋하게 달렸다.

작은 동산을 넘어선 백초가 달리는 것을 멈추고는 몸을 높다랗게 세웠다.

이 또한 지난 사흘 동안 보지 못했던 동작이었다.

“감숙이 분명한데 고을 이름은 알지 못하겠다.”

몸을 세운 백초의 앞으로 상등과 비슷한 규모의 고을이 펼쳐져 세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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