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207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207화
은천검제
제207화
운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둘러 양묘를 살펴야겠소. 공자께서 안내해줄 사람을 불러주시겠소?”
“밖에 성이 있느냐?”
“예, 공자.”
“상하일체를 불러다오.”
“예.”
운진의 요청에 이안공자는 지체없이 상하일체를 불렀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모 소저와 종 소협을 구하고자 하는 진 문주의 심정을 익히 아는데 어찌 시간을 허비하겠소. 가십시다.”
운진의 재촉이 진무린은 오히려 반가운 참이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나도 가겠네. 이것이 혹시 강호를 노리는 계략의 일종이라면 알아두는 것이 좋지 않겠나.”
황종관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진무린이 그를 부축했고, 밖으로 나오자 그나마 부상이 적은 백호단원 둘이 다가와 손을 거들었다.
상하일체를 따라 계곡을 올라간 일행은 곧바로 양묘를 가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겉모습은 운진보다 더 도사처럼 보이던 양묘였다.
그러나 지금은 뼈와 거죽만 남은 몰골에 독한 눈빛과 엉망이 된 이 때문에 안면이 기괴하게 틀어졌고, 하얗던 수염은 땟물이 흘러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양묘의 손을 관통한 쇠침, 팔을 연결해 동굴 벽에 박힌 사슬을 본 황종관이 무겁게 숨을 내쉴 때였다.
“네놈이 결국 매개체였던 게지.”
운진이 냉정한 음성으로 양묘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와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구나. 엉뚱한 누명을 내게 씌워 곤경을 벗어나고 싶은 모양인데 마음대로 해라.”
“양묘야. 이 불쌍한 사람아.”
탄식처럼 말을 뱉은 운진은 팔뚝에 감추었던 비수를 들어 양묘의 눈앞에 들었다.
“세 자루의 비수, 세 개의 형상, 짐작 가는 것이 없느냐?”
비수를 보인 직후였다.
아직 저런 기운을 감추었나 싶을 정도로 양묘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네놈이 순순히 형벌을 받은 이유가 이것이었겠지. 술법과 진법을 아우르는 삼환이관술을 펼치면 네놈이 다시 힘을 얻을 테니까.”
“그것을 어떻게 네놈이 가졌단 말이냐!”
철컹! 철컹!
분을 이기지 못한 양묘가 운진을 움켜쥘 것처럼 팔을 휘둘렀고, 그와 동시에 벽에 연결된 사슬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네놈의 그 헛된 욕심은 이미 진 문주께서 모두 부수셨다.”
“으아악! 으악! 으아악!”
철커엉! 철컹! 철컹!
처음 묶였을 때 비릿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양묘가 유일한 희망을 잃고서 지르는 고함은 처절했다.
“귀혼곡을 벽계의 근거지로 삼으려는 술법이었던 게지? 노도는 이 힘을 이용해 오히려 벽계의 진을 열고자 한다.”
“마음대로 해라! 한 가지만 명심해!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비수를 사용하는 순간, 네놈도 죽을 테니 그나마 억울함이 덜어지는구나! 흐하하! 흐하하하!”
오가는 대화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순간이었다.
비수를 든 운진이 왼손 검지와 중지를 세워 나직하게 주문을 외운 뒤에 양묘의 심장을 곧장 찔렀다.
“문주!”
진무린이 몸을 날렸을 때 비수는 이미 손잡이만 남기고 모두 양묘의 심장에 박힌 뒤였다.
“왜 이러셨습니까?”
진무린이 따지듯 외칠 때도 운진은 왼손 검지와 중지를 앞에 두고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꺄아악! 꺄악! 꺄악! 꺄아아악!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의 비명이 동굴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물안개처럼 하얀 기운들이 비수를 통해 쏟아져 나와 동굴 밖을 향해 날았다.
‘혼령인가?’
황종관이 진무린을 바라보며 눈으로 물었으나 답은 진무린 역시 알지 못했다.
시선을 든 운진은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문주?”
“염려마시오, 노도는 무탈하다오.”
“그런데 왜 눈시울을 붉히십니까?”
“진 문주 덕분에 지금껏 갇혀 있던 어린아이들의 혼령이 풀려났다오. 그 아이들의 아픔과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그렇소. 고맙소, 진 문주. 저 어린 것들을 이리 풀어주신 덕분에 노도는 또 하나 마음의 짐을 덜었소.”
황종관이 ‘비수를 우리가 구하지 않았어?’ 하는 표정으로 백호단원을 돌아보았다가 얼른 시선을 가져왔다.
심장을 찔린 양묘는 고개를 떨군 채 움직임이 없었다.
“양묘가 죽어도 문주께서는 무탈하십니까?”
“그렇지는 않다오.”
“그럼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양묘는 죽은 것이 아니오. 이 비수가 술법의 기운을 간직했기 때문이오. 그리고 아직 술법이 하나 더 남았다오.”
진무린에게 답을 한 운진은 비수를 들고는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이번에도 심장을 찌를까, 다들 긴장한 채 운진을 바라볼 때였다.
가슴 앞에 세웠던 왼손을 내린 운진이 그대로 검날을 움켜쥐었다. 그런 뒤에 운진은 오른손을 느긋하게 잡아 뽑아 왼손에서 나온 피를 비수의 날에 흠뻑 먹였다.
그 직후였다.
화륵! 화르륵!
피를 머금은 비수의 날에서 불길이 올라와 어두운 동굴을 이리저리 밝혔다.
“비수는 진법을 연결하는 힘이고, 형상은 기운을 전하는 신물이라 보시면 되오. 벽계는 이전에 양묘에게 분명 진법을 심어놓았을 게요.”
불타는 비수를 든 운진이 놀라 바라보는 일행을 향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만약 맹주께서 술법을 막지 못하셨다면 양묘를 통해 벽계의 인물이 이 동굴에 모였을 테고.”
“이곳을 새로운 근거지로 삼으려 했구나!”
황종관이 감탄을 내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세 가지 형상을 통해 양묘에게 기운을 불어넣었을 테니 누구도 귀혼곡에 들어서지 못했을 게요.”
말을 마친 운진은 아직 불이 타오르는 비수를 진무린에게 건넸다.
“담이 수상하다고 하셨으니 이 비수를 가져가 담에 꽂으시오. 그리하면 사매분과 사제분을 구하실 수 있을 게요.”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 왼손을 꼭 쥐어도 계속 피가 흘러나오는 운진의 치료가 급했다.
진무린은 먼저 운진의 왼팔과 어깨의 혈도 다섯 곳을 급하게 눌렀다. 그런 뒤에 비수를 받아들고 운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노도는 이렇게 무탈하지 않소? 게다가 아직 찾아내야 할 벽계의 인물이 셋이나 있으니 그들을 진 문주께 드리기 전에는 다른 일은 없을 게요.”
“함께 가시겠습니까?”
진무린의 질문에 운진은 고개를 저었다.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나 도력을 너무 사용해서 사흘은 움직이기 어렵소. 그러니 서둘러 가셔서 사매와 사제분을 구하시구려.”
“문주. 마지막으로 여쭙습니다. 진정 문주께 해가 없습니까?”
“물론이오. 일단 밖으로 나가십시다.”
진무린의 염려에 운진은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무탈함을 증명해 보였다.
“얼른 출발하시구려, 진 문주. 오실 때는 사매, 사제분과 함께 해서 노도가 두 분을 뵙는 기쁨을 나누게 해주시오.”
이 정도라면 망설일 것이 없었다.
“문주께 진무린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진 문주. 보잘것없는 재주에 어찌 이런 예를 보이시오?”
진무린의 팔을 붙잡아 읍을 만류한 운진이 다시 출발을 권유했다.
“맹주. 일이 급해 전중방으로 향할까 합니다.”
“그리하게. 나는 이곳에서 몸을 추스른 후에 맹으로 가 있겠네.”
인사를 전한 진무린은 곧장 발을 굴러 귀혼곡의 입구로 향했다.
이안공자에게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 얽매일 틈이 없었다.
비수에서 올라오는 불길은 멈추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바람에 꺼지지 않았고, 손이나 몸에 닿아도 뜨겁지 않았다.
소매에 비수를 넣은 진무린이 귀혼곡을 빠져나오는 참이었다.
멀리서 정동추의 기운이 바람처럼 진무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교주! 전중방으로 가는 길입니다!”
새처럼 나는 진무린의 곁으로 방향을 벗어났던 활이 돌아오는 것처럼 정동추가 따라붙었다.
“무슨 일이냐!”
“사매와 사제를 구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귀혼곡을 나선 두 사람은 일직선으로 아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백면호리인가 하는 놈을 본 뒤로는 온 강호를 달리기만 하는구나! 내 그놈을 다시 보게 된다면 발목을 잘라버려야겠다!”
악을 쓰는 정동추를 돌아본 진무린은 좀 더 기운을 끌어올렸다.
후아아악!
뒤처지는 정동추를 위해 공력을 뿜어주자 그가 곧장 진무린의 곁으로 다가왔다.
**
은혼은 매화검수를 수시로 돌아보았다.
담장 안에 선 제자들은 말할 것 없고, 그는 밖에서 외곽을 경계하는 제자들마저 반 시진에 한 번씩 꼭 찾았다.
장문인이 이리 나서는 것이 제자들은 불편하지 않을까.
“진 문주께서 이 몸을 구해주신 것은 내 목숨으로 갚겠다. 그러나 본산의 이름을 지켜주신 세 번은 화산 모두가 갚아야 할 은혜다.”
제자들을 살필 때마다 은혼은 부드러운 얼굴로 당부를 전했다.
“너희의 이런 노고가 드러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화산의 이름이 빛나는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리 수고한 어른들의 노고가 겹쳤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어깨를 다독이며 미안해하는 장문인을 보며 불만을 터트릴 제자는 없었다.
새벽이 밝아 아침이 되었고, 돌아가며 요기하고, 잠시의 운기를 마쳤을 때였다.
“흥!”
느끼지도 못한 참에 앞쪽 담장 위에 나타난 중년 남자가 매서운 눈으로 코웃음을 터트렸다.
은혼은 놀라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벽계에서 오신 분이오?”
“죽을 목숨이니 그 정도는 알아도 되겠지.”
살벌한 대꾸에 은혼은 두말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주변에 둘러선 매화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빼 들었는데 누구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진중탈구검을 익힌 게로구나?”
“직접 겪어보면 아실 일이오.”
기수식을 확인한 중년 남자가 입술을 비튼 뒤에 훌쩍 몸을 날렸다.
쉬익! 카앙! 쉭! 캉!
무공의 고하는 단박에 드러났다.
중년 남자의 손길을 두 번 막아낸 은혼이 몸을 팽이처럼 돌려 충격을 털어내는 모습이 그랬다.
쉐엑! 쉑! 쉐엑!
매화검수들이 목숨을 던지다시피 앞을 막았고, 뒤편에서 진중탈구검의 초식을 뿌려대지 않았다면 은혼은 고작 그 두 수에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중년 남자의 기운은 대단했다.
쉐에엑! 카앙!
초식의 이점을 얻는다고 해도 내공의 차이를 단번에 좁히는 방법은 없었다.
파리를 쫓듯이 중년 남자가 손을 휘저을 때마다 검이 튀었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제자들은 손을 떨거나 엄지와 검지 사이를 붙들고 물러났다.
“하! 하!”
팽이처럼 몸을 돌리는 동료들 틈으로 자세를 낮춘 매화검수가 검을 찔러넣었고, 손을 움켜쥐면 밀려 나가는 동료의 빈자리를 곧바로 다른 검수들이 메웠다.
다행인 것은 중년 남자의 목적이 은혼과 매화검수의 살상이 아니라 담을 부수는 데 있어 그나마 목숨을 잃는 이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담을 부수려는 중년 남자와 막아서려는 화산, 대결은 점점 더 치열하게 변했다.
쉭! 카각!
제자 한 명의 검이 부러지자 두 명의 매화검수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앞을 지켰으나,
쉐에엑! 카앙! 쉑! 캉!
그들의 검마저 바로 튀어나왔고,
쉭! 퍼억!
마침내 가슴을 제대로 얻어맞은 매화검수 한 명이 피를 토하며 멀찍이 나가떨어졌다.
쉐에에엑!
은혼이 진중탈구검을 쏟아내며 막아선 덕분에 위기를 넘기는가 싶었는데 이후 세 명의 매화검수가 연달아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세 명이 쓰러진 틈은 컸다.
쉬이이익! 카아앙!
그 사이로 벽을 부수려는 중년 남자가 손을 뻗었는데 은혼이 세차게 밀어냈다.
“끝내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은혼의 검에 자색 기운이 서린 것을 본 중년 남자가 더욱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쉬익! 카아앙! 쉭! 카앙!
그러나 그는 벽에 다가서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색 기운을 담아 막아서는 은혼의 검을 넘어서기 어려웠고, 다섯 명의 매화검수가 대결과 상관없이 벽을 막고 서 있는 것이 컸다.
쉬익! 카앙!
앞에서는 은혼이 자색 기운을 검에 담아 중년 남자를 막아섰고,
쉭! 카앙! 쉬이익! 캉!
그가 몸을 빼 담을 노릴 때면 촘촘히 서 있는 매화검수들이 목숨을 내걸고 막았다.
“오냐! 원한다면 뜻대로 해주마!”
담을 부수기 위해 애쓰던 중년 남자가 생각을 바꾼 것처럼 매화검수를 향해 매섭게 손을 휘둘렀다.
빛처럼 뻗은 매화검수의 검을 왼손으로 밀쳐내고, 이어 오른손으로 가슴을 때렸는데 얻어맞은 제자들은 속절없이 피를 토하며 처박혔다.
내공의 차이가 워낙 대단해서 더는 어쩌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피를 머금은 매화검수들이 검에 의지해 악착같이 몸을 일으킬 때 은혼은 담 앞에 있었다.
뒤편을 지키는 매화검수는 이제 둘만이 온전히 검을 들었을 뿐, 셋은 이미 피를 머금은 채 억지로 상체를 세우는 상황이었다.
쉐엑! 쉑!
의지를 드러내는 것처럼 은혼은 검을 세차게 그었다.
“내 숨이 끊기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은혼이 다부진 각오를 뱉어내는 순간이었다.
중년 남자가 퍼뜩 은혼의 머리 위로 고개를 들었고,
퍼럭! 퍼러럭! 퍼러럭!
임운령, 전도위, 그리고 은천문의 제자들이 속속들이 뒤편에서 담을 건너 마당에 내려섰다.
“은천문의 임운령이라 하오! 본문 문주의 명을 받아 화산의 장문인을 돕고자 왔소!”
내려선 임운령과 전도위가 지켜보는 앞에서 은천문의 제자들이 중년 남자를 둥글게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