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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05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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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05화

은천검제

제205화

 

벽계의 중년 남자와 황종관은 동시에 바위 아래로 몸을 날렸다.

누가 지른 비명이었을까.

몸을 회전하며 내려선 황종관은 입가를 짧게 늘였고, 중년 남자는 눈 끝을 번들거리며 앞을 노려보았다.

가신 한 명의 도가 윤고상의 등에서 가슴 앞으로 삐죽 나와 있었고, 백호단 단원의 검이 또 어깨를 깊게 파고들었다.

“이 괘씸한!”

쉬이익! 카앙!

가신과 백호단원을 향해 날아간 중년 남자의 손을 황종관은 악착같이 막아냈다.

“비수를 뽑아! 형상을 치우고!”

비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윤고상이 왜 이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벽계의 인물이 집착하는 일이라면 막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명령이었다.

쉬익! 카아앙! 쉭! 카앙!

가신 둘이 비수를 붙들었고, 백호단원들이 급한 마음에 형상을 걷어찼다.

쉬익! 캉! 

그 직후에 도를 휘둘러 중년 남자를 막았던 황종관은,

쉬이익! 퍼어억!

두 번째로 날아든 손에 가슴을 제대로 얻어맞았다.

털써-억!

비수와 형상이 있던 자리에 처박힌 황종관은 엎어진 상태에서 피를 울컥 뱉어냈다.

“가주!”

황종관을 막아선 가신들 앞으로 중년 남자가 달려들었다.

쉬익! 카각! 쉭! 칵!

무공의 차이가 워낙 컸다.

중년 남자의 손을 막았던 가신들의 도가 대번에 부러져 날이 튀었다.

“비켜!”

황종관이 고함을 질렀으나 늦었다.

쉬익! 퍽! 쉬이익! 퍼억!

도가 부러진 가신 두 사람은 심장 부위를 얻어맞아 뒤로 날았고, 뾰족한 바위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쉑! 쉐에엑! 쉐엑!

남은 가신들과 백호단원이 득달같이 중년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주! 몸을 피하십시오!”

쉬익! 퍽! 쉭! 퍼어억!

대결은 일방적이었다.

중년 남자가 손을 뻗을 때마다 가신들과 백호단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서 숫자가 단박에 반으로 줄었다.

“푸!”

바닥에 꽂은 도에 의지해 몸을 일으킨 황종관은 붉은 피를 거칠게 뱉어냈다.

그 모습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코웃음을 뱉어낸 중년 남자가 흐릿해 보일 정도로 빠르게 황종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쉐엑! 카앙! 쉭! 퍼어억!

또다시 얻어맞은 황종관이 길게 날아서 세 그루의 나무 아래 돌에 처박혔다.

“맹주!”

세 명밖에 남지 않은 가신들이 황종관을 둘러쌌고, 그 앞을 백호단원이 막았다.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었다.

황종관이 공력을 뿜어내지 못하면서 가신들과 백호단원은 중년 남자의 손짓 한 번에 한 명씩 숨이 끊어지는 지경이었다.

“맹주라고 허세를 피우더니 고작 그 정도란 말이냐. 네놈 스스로 목을 자른다면 앞을 막은 놈들은 살려주마.”

휘릭! 휙

황종관은 손목을 뒤틀어 도를 앞으로 세웠다.

“내가 가신이나 백호단원이라도 굴욕스럽게 사느니 죽는 길을 택할 것 같소만?”

“그렇다면 함께 죽여주마.”

중년 남자는 거침이 없었다.

이제 저자가 달려들면 더는 살아남을 이가 있기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고마웠다.”

“가주를 지키지 못해 송구할 뿐입니다.”

“미친놈.”

말은 거칠었는데 세 명의 가신을 돌아보는 황종관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백호단은 살길을 찾아.”

“맹주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강호의 모든 이가 백호단을 비웃을 것입니다.”

“흐하하.”

짧은 웃음을 뱉어낸 황종관이 도를 앞으로 내는 순간이었다.

그의 뒤가 흐릿하게 변하더니 거대한 갓을 쓴 이안공자와 상하일체, 섭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아악!

상하일체는 먼저 황종관의 앞쪽으로 물을 뿌렸다. 그리고는 잽싸게 몸을 기울여 옆에 두었던 새로운 물통을 집어 들었다.

중년 남자는 말할 것 없고, 황종관과 가신 셋, 백호단원들이 놀라 시선을 주었다.

“맹주께서는 어서 이 안으로 들어오시오!”

상등의 민가에서 본 적이 있었나?

황종관이 움직이려는 순간,

“구주의 후예더냐?”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처럼 중년 남자의 질문이 있었다.

“잘 알고 계시는구려. 맹주는 귀혼곡이 모실 테니 이만 돌아가시오.”

“네깟 놈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유를 보여드리겠소. 성아.”

“예, 공자.”

이안공자의 지시를 받은 섭성이 양손을 내밀자 상하일체가 다시금 물을 시원하게 뿌렸다.

지지지직! 지지지지지직!

물을 타고 섬뜩한 소리가 울렸고, 어두운 밤하늘에 불꽃이 요란하게 튀었다.

“맹주! 서두르시오!”

가신 둘이 황종관을 부축해 이안공자의 곁을 지났고, 백호단원들이 뒷걸음질로 그 뒤를 따랐다.

눈빛을 독하게 바꾼 중년 남자가 번개처럼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앞쪽이 흐릿해지면서 황종관 일행이 사라졌다.

쉬이익! 콰작!

그리고 지금껏 귀혼곡의 입구를 상징하던 세 그루의 나무 중 두 그루가 중년 남자의 손에 부러지고 말았다.

 

**

 

은천문의 앞에 도착한 정동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지가 얽힌 아래 두라고 했던가?”

품에 두었던 기물을 꺼내 보자기를 벗긴 정동추는 앞쪽 나무 아래로 던졌다.

잘못하면 깨질 수도 있을 텐데 정동추의 손을 벗어난 기물은 가져다 놓는 것처럼 얌전히 날아 세 개 나무의 왼편에 내려앉았다.

“기운이 바뀌는군.”

세 그루 나무가 있는 곳을 지켜본 정동추는 갑갑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마라혼왕 정동추다! 진 문주의 지시를 전한다! 은천문의 제자는 속히 나서 전중방을 지켜!”

말을 마친 정동추는 볼일이 끝났다는 것처럼 훌쩍 몸을 날렸다.

 

**

 

뿌우-. 뿌우우-.

뿔피리 소리가 어둠을 덮은 은천문을 흔들었다.

검을 든 제자들이 전각에서 튀어나왔고, 그 앞을 임운령, 전도위, 양소소, 파천신군이 내달렸다.

경계를 섰던 제자들 앞에 내려선 임운령은 밖을 살폈고, 이어 바로 질문을 건넸다.

“무슨 일이냐?”

“마라혼왕 정동추라 자칭한 인물이 알지 못하는 물건을 던진 직후에 진이 흔들렸습니다.”

“마라혼황 정동추? 마교의 교주가 왔었단 말이냐?”

“몹시 사납게 생겼는데 제자는 처음 보아 진위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문주의 지시를 전한다. 은천문의 제자는 속히 나서 전중방을 지켜.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린 것이 전부입니다.”

말만 들어서는 당최 누군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진이 흔들렸다고 했었지?”

“예.”

그 뒤에서 질문을 건넨 양소소가 안쪽의 돌을 향해 움직였다.

“진을 개방해 볼 참이에요. 속임수일 수 있으니 대비하세요.”

“문을 여는 것이 속이는 것이라면 나쁠 것이 없지 않으냐?”

남굉모의 질문에 양소소는 답을 하지 않았다.

벽계의 인물이 장 노대를 생포해 몸에 담긴 진을 빼냈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만약 섣불리 진법을 개방했을 때, 벽계의 인물이 달려든다면 은천문은 오늘로 명맥이 끊긴다.

“뭐해?”

남굉모의 독촉에도 양소소는 망설였다.

“진중탈구검을 익혔으니 과거처럼 당하지만은 않을 것 아니냐.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누군가 기물을 치워버리면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할 텐데 무얼 망설여?”

“알았어요. 준비하세요.”

모여든 이들이 밖을 노려본 상태에서 양소소가 안쪽의 돌을 힘껏 당겼다.

“오오.”

눈앞이 흐릿하게 변한 다음이었다.

마침내 바깥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열렸다.

임운령과 전도위가 앞섰고, 파천신군과 양소소가 뒤따랐다.

“이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 기물의 종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쪽 면에 시커멓게 묻어있는 것은 분명 피가 말라붙은 것이었다.

“노대.”

양소소가 나직하게 장 노대를 불렀을 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최후를 짐작하는 까닭이었다.

“본문의 제자들이 속히 나서 전중방을 지키라 했었지?”

“제자는 분명 그렇게 들었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제자가 답을 내놓자,

“사제와 전 사부는 제자들을 데리고 서둘러 전중방으로 출발해.”

양소소가 다부지게 의견을 내놓았다.

 

**

 

진무린은 달이 하늘의 한가운데 오를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쉬지 않고 달린 참이었다.

그런데도 운진은 진무린의 등에 탄 것처럼 편안해서 이전에 달리느라 소모했던 도력마저 모두 회복한 듯 몸이 개운했다.

중천에 뜬 달이 휘영청 아래를 비출 때, 진무린은 경공을 멈추고 산의 중턱에 내려앉았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바닥에 내려선 진무린은 장포를 여민 뒤에 혹 피곤하지 않은가 하는 표정으로 운진을 살폈다.

“노도가 무공에는 문외한이라 하나 어찌 진 문주가 베풀어준 것을 모르겠소? 느끼기에 아직 공력을 전해주시는 듯하니 지금이라도 잠시 멈추고 쉬셔야 하지 않소?”

염려 가득한 운진을 보며 진무린은 옅게 웃었다.

“근처에 벽계의 인물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알아채지 못하게 기운을 풀어낸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진무린의 답을 들은 운진이 놀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태상은 분명 벽계의 인물들을 외부로 내보냈습니다. 그들을 완전히 소탕하지 못한다면 후환이 남을 일이라 문주께 어려운 청을 드렸던 것입니다.”

“노도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주저치 말고 알려주시오.”

단단하게 대꾸를 냈던 운진이 재차 주변을 살핀 뒤에 궁금한 눈으로 진무린을 보았다.

“진 문주. 사매와 사제분은 어찌하시려오? 방법이 있으시오?”

모려원의 술법을 풀어주었고, 종무헌과는 유광을 다녀오면 쌓인 정이 있었다.

다른 그 어떤 사람보다도 모려원과 종무헌의 안위를 염려하는 진심 가득한 질문이었다.

“벽계의 인물들을 정리하면 귀혼곡으로 향할 생각입니다. 이안공자가 마침 진법에 능숙하고, 본문에 또한 사고가 계시니 두 분과 의논하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뒷짐을 진 진무린은 휘영청 뜬 달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온통 차가운 은색으로 물든 산의 중턱에서 머리와 수염이 하얀 운진이 진무린을 흉내 내듯 곁에 서서 고개를 높게 들었다.

“저 달을 모 소저와 종 소협도 보겠지요?”

“진법 안에 있더라도 해와 달은 분명 함께 볼 것입니다.”

진무린의 대꾸에 운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숨 막히게 달리던 벽계의 인물이 걸음을 멈추고는 움직임이 없었다.

휴식을 취하는 것인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당장 달려들어 그에게 부적을 붙이기보다는 한 명이라도 접촉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그들이 강호에 나선 이유도 알아야 했고, 도대체 몇 명이나 나선 것인지도 파악해야 했다.

‘첫 번째 달이다. 오늘 하루는 어찌 보냈느냐.’

마음 같으면 정동추와 전 사부에게 일을 맡기고 귀혼곡으로 달리고 싶은데 아직 벽계의 인물을 편안하게 상대할 고수는 강호에 진무린이 유일했다.

벽계가 일찍 나서지 못한 점, 그 사이 진무린이 힘을 얻은 것, 양소소와 남굉모, 정동추를 통해 기연에 기연이 거듭되어 태상을 물리친 것까지 이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늘의 뜻이라…….’

높게 떠 있는 달을 보며 진무린은 오랜만에 청강을 떠올렸다.

그가 은천문을 방문해 인연을 쌓았고, 흑사련을 상대해 달라 요청하며 시작된 일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생각을 정리하던 진무린은 고개를 내려 멀리 있는 산을 보았다.

“문주. 다시 움직여야 할까 봅니다.”

“나야 무슨 준비가 필요하겠소. 나서시오, 진 문주.”

소매를 떨친 운진이 종횡주를 살핀 뒤였다.

진무린이 훌쩍 몸을 날렸고, 그 뒤를 운진이 따랐다.

반 시진쯤 달린 뒤였다.

아직 세상이 어둠에 잠겨 있을 때, 진무린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그리고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운진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

‘저들이 근처에 있소?’

운진의 눈을 들여다본 진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입니다.’

진무린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인 뒤에 검지와 중지로 부적을 잡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알았소, 진 문주.’

말귀를 알아들은 운진이 단박에 세 장의 부적을 꺼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고, 이어 숨결처럼 조그맣게 주문을 외웠다.

준비가 끝난 운진이 시선을 들었을 때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눈짓을 한 진무린이 운진의 팔을 잡고는 천천히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걷는 것처럼 일각쯤 나무를 타고 걸은 뒤였다.

나무 위에서 멈춘 진무린이 아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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