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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99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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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99화

은천검제

제199화

 

어둠 속에 서 있던 진무린은 허공을 향해 눈을 치켜들었다.

밤하늘 저 앞쪽에서 느닷없이 장 노대의 기운이 느껴진 탓이었다.

“대사형? 무슨 일이세요?”

“우리가 사당 앞에 섰을 때 태상의 음성이 들렸던 것을 기억하지?”

“당황할 정도여서 소매는 분명 기억해요.”

“저 위쪽에서 장 노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위험한 게 분명하고 방향마저 짐작하겠는데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

모려원은 진무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진무린이 말한 장 노대의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시선을 내린 모려원 앞에서 진무린은 낯설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먼 하늘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하늘을 노려보던 진무린은 사당을 통해 말을 건네던 태상을 떠올렸다.

그가 했다면 진무린도 가능하지 않을까.

더구나 태상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사당의 공간을 열었던 것도 진무린이었다.

진무린은 밤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운을 점점 더 강하게 끌어올렸다.

후아아악. 우우우웅.

어둠 속에서도 확연하게 흙먼지가 피어나 진무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졌고, 왼손에 든 검이 분노한 것처럼 거칠게 울어댔다.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모려원과 운기에 든 종무헌의 안위였다.

“사매. 내 뒤로 움직여.”

급하게 모려원이 진무린의 뒤로 옮긴 다음이었다.

“장 노대!”

진무린은 허공을 향해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제발 이 말을 들어주시오, 장 노대.

기운을 있는 대로 실은 고함이었다.

방향을 정해 터트려서 그렇지, 조절하지 않았다면 민가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운기하던 종무헌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정도로 엄청난 기운을 담았다.

“견디시오, 노대! 견디기만 하시오!”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고함을 지른 진무린은 소매를 떨쳐 뿜어내던 기운을 갈무리했다.

“장 노대가 위험한가요?”

“우리가 알던 평소 암연의 기운이 아니었다. 다급한 가운데 흔들렸지. 암연의 수장이라 할 노대의 기운이 그 정도라면 분명 기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일이 있었다는 의미다.”

하늘을 노려본 상태에서 진무린은 짐작하는 바를 들려주었다.

“진법을 완벽하게 막았다고 하더니 태상이 열어놓은 틈은 닫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사형?”

진무린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어렵다. 진법을 개방하는 장치가 이 넓은 벽계의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고, 구한다고 하더라도 작동법을 모르니 섣불리 만졌다간 남은 길마저 막힐 거다.”

진무린은 아직 어두운 하늘에서 시선을 내리지 못했다.

분명 벽계에 들어설 때까지 사당 주변에는 장 노대를 제외하고 누구의 기운도 없었다.

그런데도 장 노대가 위험하다면 이는 나중에 누군가 사당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였다.

‘결과를 살피러 온 자가 노대의 기운을 알아챈 것이겠지.’

생각을 정리한 진무린은 은천문의 진법을 세세하게 떠올렸다. 벽계와 은천문의 진법이 비슷한 터라 혹여 태상이 열어둔 공간을 활용할 방법은 없는지를 찾고자 함이었다.

 

**

 

장 노대는 하마터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을 뻔했다.

‘살아계셨구려, 문주! 이 늙은이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아 비록 그 안에 계시지만 무탈하셨소!’

사당의 뒤편에 몸을 붙이고 은신한 참이었다.

어딘가에서 숨을 죽인 벽계의 인물이 장 노대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위급한 상황이기도 했다.

침 한 번 삼키기도 거북한 그 순간에,

“장 노대!”

사당 안에서 분명한 진무린의 음성이 울려 나왔다.

“견디시오, 노대! 견디기만 하시오!”

저토록 간절한 진무린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서둘러 은천문으로 향하라는 지시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 있으라는 당부를 은천문의 문주 진무린이 어렵게 전해주었다.

‘되었소, 문주. 이리 소중하게 대해주신 것만으로도 이 늙은이는 더 바라는 것이 없소. 문주가 그 안에 계신 것을 알았으니 여명에 이 늙은이는 목숨을 걸겠소.’

진법을 뚫으려면 얼마나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지 짐작조차 못 한다. 그런 진법을 뚫어가면서 진무린이 장 노대의 안위를 걱정해주었으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반드시 본문을 열고 기물을 어른들께 전하리다.’

여명이 밝아올 때 움직인다.

장 노대는 주름진 눈에 다부진 각오를 잔뜩 담았다.

 

**

 

화산의 장문인 은혼은 사제 문혼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사형?”

“잠시 앉아.”

장문인을 보는 예를 올린 문혼이 도포를 단정하게 하고는 협탁 옆의 의자에 자리했다.

“은천문의 진무린 대협께서 문주가 되셨다.”

뜻밖의 전갈이었는데 소식을 들은 문혼은 제 일처럼 반가운 얼굴이었다.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사형.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분이니 앞으로 은천문의 이름이 강호에 크게 울리지 않겠습니까?”

감탄을 쏟아내던 문혼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은혼을 살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새로 문주가 된 진무린이 연회에 화산을 제외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은혼의 표정은 무거웠다.

“맹주에게서 기별이 있었다. 급보라 친필도 아니고, 직인도 없으나 맹에서 보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귀를 쫑긋 세운 사제 문혼을 향해 은혼은 계속 말을 이었다.

“궁지에 몰린 벽계가 암살에 나선 것으로 보이니 당분간 경계를 높이라는 당부가 있었고, 이어 진 문주와 모 소저, 종 소협이 전중방을 통해 벽계로 들어간 지 사흘이 지났으나 아직 연락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제야 문혼은 장문인이자 사형인 은혼의 뜻을 알아차렸다.

“혹시 전중방에 제자를 파견하십니까? 그렇더라도 사형께서 직접 나서는 것만은 고려해주십시오.”

문혼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본산은 이미 진 문주 덕분에 수차례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장문인인 나 역시 두 차례나 목숨을 구하는 은혜를 얻었다. 그런데도 진 문주의 어려움 앞에서 몸을 감추란 말이냐?”

“소제가 가겠습니다.”

만류하고 나서는 문혼을 향해 은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매화검수와 함께 출발하겠다. 너는 장문인을 대행하다가 혹여 불행한 일이 생기면 장로, 원로들과 의논해 본파를 이끌어.”

“사형?”

“사제는 이 결정에 다른 말을 하지 마라.”

말을 마친 은혼은 이미 준비했던 모양으로 옆에 두었던 검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사형! 량아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미 나를 능가하는 무공을 익힌 제자가 아니냐. 불의를 보고 참지 않으며, 은혜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부인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가르침이다.”

단호하게 답을 건넨 은혼은 문을 나서기 전에야 고개를 돌렸다.

“십 년이다. 네가 본파를 이끌게 된다면 십 년 뒤에 본산은 그 어떤 문파보다 이름을 떨칠 것이다. 그때까지 량아를 바르게 이끌어다오.”

벽계의 인물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 힘겨웠던 화산이었다.

은혼이 매화검수를 이끈다고 하나 벽계의 인물과 마주친다면 다시는 화산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 상황을 빤히 아는데도 진무린을 외면하지 않겠다며 나서는 은혼의 각오를 문혼은 더 말리지 못했다.

“사형.”

혹시 모를 마지막을 떠올린 문혼이 아쉽게 사형인 은혼을 부른 다음이었다.

“사제는 약한 마음을 감춰. 도사가 어찌 그리 쉽게 눈물을 보여?”

부드러운 음성과 표정으로 문혼을 다독인 은혼은 그 길로 집무실을 나섰다.

급히 문혼이 따라나섰을 때 은혼은 이미 매화검수가 거처하는 전각의 앞에 있었다.

조용하게 나서는 길이었다.

장로들에게 알리면 의견이 분분할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상황을 알게 된 표충량이 매달릴 것을 염려한 은혼의 선택이었다.

 

**

 

백면호리는 경공을 펼치는 도중에 슬쩍 시선을 돌렸다.

능력은 어떤지 몰라도 강호의 경험만큼은 운진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풍부했다.

검날 위에서 살아가는 무인들은 특유의 눈빛이 있었다.

특히 죽음을 각오하는 순간에 뿜어지는 독기를 백면호리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도대체 왜?’

종횡주에 의지해 바람처럼 달리는 운진의 눈에서 죽음을 각오한 사람 특유의 독기가 풍기고 있어서 백면호리는 입맛을 다셨다.

만약 진무린이 죽었다면 이렇게 달려가 봐야 전혀 도움 되는 것 없고, 공연히 헛된 죽음만 자초하는 꼴이었다.

몇 번이나 목까지 올라왔던 말을 백면호리는 꿀꺽 삼켰다.

독기와 다르게 운진의 표정이 울기 직전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발 무탈하게 있어, 진 문주!”

백면호리는 간절한 바람을 쏟아냈다.

어차피 달려가는 길이었다.

진무린이 살아 있어야 벽계의 근거지에서 살아 돌아올 확률이 높기에 외친 소망이었다.

“역시 나와 같은 소망을 지니셨구려!”

운진은 백면호리의 외침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

 

섬도곤에게 교의 일을 맡긴 정동추는 곧장 마교의 본산을 빠져나왔다.

원체 빚을 지고는 못사는 사람이 또 정동추가 아니던가.

태상에게 죽기 직전까지 당했으니 적어도 벽계 인물 하나쯤 숨통을 끊어줘야 분이 풀리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아이가 죽는다고?’

전중방의 일은 들었다.

사흘이나 소식이 없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런데도 새처럼 경공을 펼치며 정동추는 고개를 저었다.

진무린은 절대 그런 자리에서 죽어나갈 인물이 아니라 여긴 까닭이었다.

도대체 언제 저토록 성장했을까 싶을 정도로 진무린은 크게 표시 나지 않은 상태에서 명실상부한 강호 제일인이 되었다.

정동추도 감히 승리를 꿈꾸지 못할 정도의 절대고수 말이다.

묵직한 얼굴로 사람을 끄는 매력은 또 어떤지 마교 교주인 정동추가 지금 이렇게 사력을 다해 경공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쉽고 안타깝기도 했다.

뒤편에 숨어 엉뚱한 짓거리를 꾸미는 놈들을 모조리 제거했고, 비록 겁에 질린 면이 없잖아 있으나, 지금처럼 교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십 년만 노력한다면 강호일통이 헛된 꿈만은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으니 진무린이 없어야 한다.

그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강호일통을 하겠다고 나섰다간, 마교는 언제 백 년 봉문을 당할지도 모른다.

‘이십 년이다. 그 안에 마천강기를 극성까지 깨닫지 못한다면 본교는 늘 은천문의 눈치를 살피며 살게 될 것이다.’

정동추는 절대 진무린을 노리지 못한다.

이제와 천하일통이 어쩌고 하며 달려들어 봐야 진무린이 내저은 손에 얻어맞아 쓰러질 것이 뻔한데 굳이 멍청한 짓을 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의 끝에서 정동추는 픽 웃었다.

진무린과 싸우지 않을 핑계 하나는 제대로 만들었다는 판단에서였다.

‘설마 그깟 늙은이에게 죽지는 않았겠지? 그리됐다면 십 년 안에 강호를 내가 움켜쥘 것이다.’

정동추는 엉뚱한 바람을 전하며 달리는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

 

고함을 질렀던 진무린은 마음을 굳혔다.

“이곳에서 운기를 할 참이다. 고생스럽겠지만, 사매가 나와 사제를 지켜다오.”

“대사형. 잠시만요.”

민가로 달려갔던 모려원은 침상에 있던 이불을 가져와 바닥에 깔았다.

“고맙다, 사매.”

“문주를 모시는 문도의 정성이에요.”

기분 좋게 웃은 진무린은 모려원이 깔아준 이불 위에 자리하고 자세를 잡았다.

“운기를 해볼 참이다. 태상을 드러나게 했던 기운을 뿜어 진법의 빈 곳을 찾아볼 테니 혹여 시간이 오래 걸리면 사제와 함께 식사하며 기다려다오.”

말을 마친 진무린은 눈을 감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고함을 외칠 때와 같이 강한 기운이 아니라 가느다란 가닥을 길게 펼쳐 장 노대를 느꼈던 방향을 살폈다.

‘노대. 무리하지 마십시오.’

고함을 장 노대가 들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위기를 맞았던 것은 분명한데 그 이후로 전해지는 것이 없으니 혹여 불행한 일을 당했든가, 아니면 은신술로 몸을 감추고 있는 것, 둘 중 하나였다.

진무린은 가느다랗게 뻗친 기운에 암연의 기운을 얹었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 테니 제발 무탈하십시오.’

바람을 전한 진무린이 기운을 운용하자 묵빛 기운이 안개처럼 몸 전체에서 피어났다.

 

**

 

고즈넉한 달빛이 사당과 주변을 비추었고,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만이 맴도는 시간이었다.

옆구리의 통증을 이겨가며 장 노대는 여명을 기다렸다.

어슴푸레 밝아지는 세상에서 장 노대의 은신술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에 그때 움직이며 순간마다 몸을 감출 계획이었다.

잘못되면 은천문은 영원히 강호와 단절된다.

이곳에서 버틴다고 해도 사흘을 넘기기 어려운데 옆구리의 부상이 예사롭지 않아서 장 노대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잠시 앉을 수만 있어도 고통이 훨씬 덜하겠지만, 장 노대는 사당의 뒤편에 붙어 선 자세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숨마저 줄인 장 노대가 훅 달려드는 통증에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문주? 문주시오?’

암연을 부르는 진무린 특유의 기운이 장 노대에게 또렷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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