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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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96화
은천검제
제196화
진무린과 태상의 대결은 눈길 한 번 돌리지 못할 정도로 치열했다.
쉑! 쉐에엑! 쉑!
검기를 뿜어내는 진무린의 검이 막을 그려내는 것처럼 태상을 뒤덮었고,
쉭! 카앙! 쉬쉭! 카강!
검의 틈을 파고든 태상의 팔은 잔상을 자욱하게 펼치며 진무린을 노렸다.
검날이 번쩍이고, 사납게 손날이 허공을 가르는 대결에서 태상은 거칠 것이 없었고, 진무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쯤에서 모려원과 종무헌에게 잠시 태상을 맡길 계획이었다.
등룡창천으로 빛줄기를 뿌릴 그 잠깐의 틈만 만들면 남은 벽계의 인물을 단숨에 쓰러트리련만, 종무헌이 폭주하고 말았다.
상황이 뒤집히자 태상이 오히려 모려원과 종무헌을 노리는 눈치였다.
‘어딜!’
쉐엑! 쉐엑!
진무린은 최선을 다해 태상을 검의 그림자 안에 묶었다.
‘사매! 사제를 당부한다!’
믿을 것은 모려원이었다.
쉐엑! 크으응!
진무린과 태상이 충돌하며 터진 거대한 충돌음이 주변을 흔들었다.
거대한 충돌음 이후에 몸을 휘청인 모려원은 먹물을 담은 것처럼 온통 검은색인 종무헌의 눈을 보았다.
들었었다.
저런 뒤에 모려원이 진무린의 어깨를 찔렀었다는 말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모양인지 벽계의 인물들이 시선을 마주한 다음이었다.
눈빛을 번득인 벽계의 인물 하나가 종무헌의 등을 향해 손을 뻗쳤다.
휘이익!
모려원은 종무헌을 잡아채며 몸을 돌렸다.
퍼억!
“푸훗!”
내공이 바닥나다시피 한 모려원은 등을 얻어맞은 직후에 피를 뿜어냈다.
휘청이는 몸을 억지로 가누면서도 종무헌을 끝까지 잡아당겼다.
쉬이이익!
등 뒤에서 또다시 섬뜩한 소리가 울리는 순간, 모려원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종무헌을 밀쳐냈다.
퍽!
“푸후-웃!”
또다시 등을 얻어맞은 모려원은 휘청이며 한 덩어리의 피를 뿜어냈다.
방향이 비틀려 종무헌이 앞에 서자 달려들던 벽계의 인물들이 주춤했다.
이성을 잃어가면서도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는 종무헌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기회를 놓칠까.
급하게 걸음을 옮겨 둥글게 감싼 적들은 대놓고 모려원과 종무헌의 뒤를 노렸다.
“푸! 대사형께서 홀로 분투하고 계셔!”
모려원은 종무헌을 꾸짖는 것처럼 말을 뱉었다.
쉬익! 카아앙!
기회를 노려 달려드는 손을 때려낸 모려원은 하마터면 놓칠 뻔한 검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대사형을 떠올려, 사제!”
쉭! 캉! 쉬이익! 카아앙!
“대사형은 기다리시는 거야! 사제가 이 고비를 이겨내리라 믿으시는 거라고!”
“크으으.”
눈이 완벽하게 물든 종무헌의 입이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일그러졌다.
쉬익! 카아앙!
다시 날아든 손을 막아낸 모려원은 종무헌의 등을 노린 손날을 향해 몸을 던졌다.
쉭! 퍼억!
“대…사……형.”
“그래, 사제. 본문의 문주이신 우리 대사형…….”
모려원이 말을 뱉어낼 때마다 붉은 피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한 번 더 당한다면 모려원은 견뎌내지 못한다.
모려원은 종무헌의 왼손을 잡고 남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미 바닥이 날 정도로 내공을 소모한 터라 진무린이 전해주었던 공력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사제 종무헌이라면 공력에 담긴 염원과 바람을 알아주지 않을까?
사제.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야.
한 번 더 지킬 수 있을 거야.
나의 이 간절한 공력이 사제를 일깨울 수 있기를 바라.
대사형을, 대사형을 도와드려, 사제.
시선을 마주쳤던 벽계의 인물 한 명이 잔인한 눈빛과 함께 모려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뒤트는 어깨, 동작을 따라 흔들리는 소매가 또렷하게 모려원의 눈에 들어왔다.
종무헌의 등을 막아선 모려원은 코앞에서 죽음이 뱉어내는 비릿한 숨결을 느꼈다.
몸을 빼내기 위해 솟구친 진무린을 태상이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쉐에엑! 콰으응! 쉑! 콰응!
태상을 뿌리친 진무린이 몸을 돌리고 있었다.
‘대사형! 태상을! 태상을 보세요!’
세상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몸을 이쪽으로 비튼 진무린을 향해 태상이 솟구치며 손을 뻗었다.
그 직후에 모려원은 진무린의 옅은 미소를 본 것 같았다.
진무린은 또다시 달려든 태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쉐에엑! 콰으응!
달려오지 못하는 대신 마지막으로 가져갈 미소를 선물한 것일까.
‘대사형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진무린이 바닥에 내려선 너머의 하늘이 눈에 담기는 순간,
터어-억!
벽계 인물이 뻗은 손이 모려원의 등에 닿았다.
순순히 죽을 줄 알아?
모려원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쉐에에에에엑!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고, 사납게 울렸다.
마지막이라고 알지 못하는 힘이 솟구쳤나?
멍한 모려원의 손을 누군가 낚아채며 세상이 빠르게 돌아왔다.
“커흑!”
모려원을 노렸던 벽계의 인물이 목 아래를 붙든 채 피를 쏟아내는 것이 먼저 보였고, 어느새 옆으로 달려간 종무헌이 검을 늘어트린 채 적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사제?”
“소제가 모자라 잠시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저께서는 소제 뒤에 계십시오.”
후아아아아악!
말을 마친 종무헌은 무서우리만치 강렬한 기운을 단박에 쏟아냈다.
기대했던 것이 무산 되었다고 해서 벽계의 인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쉬익! 쉭! 쉬이익!
그보다는 오히려 아예 죽기를 각오한 태도로 힘을 잃은 모려원을 노렸다.
쉐엑! 쉐에에에엑! 쉐에엑!
적들을 맞은 종무헌의 검에서 더할 수 없이 완벽한 은천수호검의 초식이 연달아 피어났다.
“나는!”
쉐엑! 쉐에에에엑! 쉑!
모려원의 뒤를 노리던 벽계 인물의 목 아래가 갈라져 비척거렸고,
“은천문의 제자이며!”
쉐엑! 쉑! 쉐에에엑!
그를 돕기 위해 달려든 두 사람은 오히려 팔이 잘리고 목이 갈라져 흩어졌다.
“문주의 문도요! 대사형의 사제이며!”
쉐에엑! 쉐엑! 쉐에엑!
모려원은 기가 막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금 종무헌이 펼친 것은 완벽한 묵룡검법이었다.
엉뚱한 사제!
이 중요한 순간에 묵룡검법을 깨닫다니!
“사저를 지켜야 할 사제이기도 하다!”
말끝에 허공으로 몸을 띄운 종무헌의 검이 햇살을 담아 번득였다.
쉐에에에엑! 쉐엑!
등룡창천으로 춘설난무를 펼치지는 못했으나 검기를 발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펼쳐내는 초식은 매서웠다.
무섭게 검을 풀어낸 종무헌은 모려원의 한 걸음 앞에 내려섰다.
쉐엑!
그리고는 누구도 모려원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처럼 허공을 세차게 갈랐다. 세 가지 보물의 효능이 발현된 것인지 종무헌의 몸에서 피어나는 기운은 대단했다.
남은 적은 아홉이었다.
모려원은 둘러싼 아홉의 벽계 인물을 빠르게 살폈다.
무언가 눈짓으로 의견을 나누는 아홉 명은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최후로 남겨둔 계략을 믿는 눈치였다.
“사제! 저들을 쓰러트려! 서둘러!”
“예, 사저!”
모려원이 급하게 지시하자 종무헌이 무섭게 검을 휘둘렀다.
상체를 좌로 틀며 은천수호검을 풀어냈고, 우측으로 도는 순간에는 묵룡검법을 뿜어냈는데 방어 따위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결정적인 기회를 붙잡았으나 차마 모려원을 홀로 두지 못하는 종무헌은 얻는 것이 부족했다.
“사제! 내가 뒤에 있을 테니 마음 놓고 상대해!”
모려원은 혼신의 힘을 다해 종무헌의 뒤에 바싹 붙었다.
세 가지 보물의 기운을 고스란히 얻은 종무헌은 무서울 정도였다.
휘두르는 검에는 기운이 넘쳤고, 펼쳐내는 초식은 보기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날카롭고 촘촘했다.
쉑! 쉐에엑! 쉐엑!
묵룡검법을 피한 벽계의 인물이 은천수호검에 휘말려 하나둘 쓰러지더니,
쉐에에에에엑!
마침내 마지막 남은 한 명이 목에서 피를 뿜으며 널브러졌다.
그 직후였다.
쉐에에엑! 콰으으응!
진무린과 태상이 맞붙은 곳에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느껴지는 충돌음이 거세게 일어났다.
진무린은 이를 굳게 물었다.
수하들이 모두 쓰러진 직후에 태상은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움직였다.
가슴이 갈라진 부상을 당하고도 그런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진무린을 더욱 독하게 만들었다.
태상의 눈이 꿈틀한 뒤였다.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며 진무린에게 달려들었다.
최후를 각오한 태상의 표정은 독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다고 겁먹을 줄 아시오?
진무린은 굳은 의지를 검에 담아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태상을 향해 뛰어들었다.
크으응! 크응! 크으응!
검과 손이 움직이는 소리 따위 나오지 않았고, 세상을 뒤흔드는 충돌음만 연속해서 터졌다.
진무린과 태상 모두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알았다.
이대로 계속 맞붙다 보면 두 사람 모두 지쳐 쓰러질 테고, 그리되면 종무헌과 모려원이 달려와 태상의 목을 자를 것이 분명했다.
‘이익!’
느닷없이 태상의 모습이 진무린의 눈에서 사라졌다.
진무린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이 한 번의 기회를 악착스럽게 노렸던 태상의 마지막 한 수였다.
후아아아악!
이런 수법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진무린은 멍청한 사람이 된다.
쉐에엑! 쉐엑!
있는 대로 기운을 끌어올린 진무린은 진중탈구검과 은천수호검의 초식을 이어 마지막으로 보았던 태상의 손 앞에 펼쳤다.
크으응! 크응! 크으으응!
지금까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충돌음이 터졌다.
“푸후!”
거짓말처럼 충돌음 뒤에 가슴 아래쪽에 커다란 충격을 느낀 진무린이 피를 토해냈다.
그 앞에서 가슴을 움켜쥔 태상은 연신 피를 게워냈다.
모려원과 종무헌이 급하게 달려와 진무린의 곁을 지켰다.
“흠흐흐흐. 이겨서 기쁘냐?”
입술과 턱, 수염을 붉게 물들인 태상은 힘겹게 눈을 끔벅였다.
“진이 발동되었으니 이곳은 영원히 출구가 없는 공간이 되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함께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다.”
“벽계가 강호에서 사라지는 대가로 생각하겠소.”
“어리석은 놈. 네놈의 뜻대로 본계가 이곳에서 끝을 볼 줄 알았더냐? 열 명의 수하들이 강호에 넓게 퍼져 훗날을 도모하고 있다! 네 말대로 강호는 열셋을 잡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진무린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태상을 지켜보았다.
이것이었구나.
진무린 일행이 전중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진을 발동하고 안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내가 향로 옆에 놓아둔 것을 기억하시오?”
진무린의 질문을 들은 태상이 고개를 갸웃한 다음이었다.
“구주의 후예가 준 것이오. 벽계의 문을 열 수 있는 기물이라고 하던데 혹시 아시는 바가 있소?”
진무린의 말을 들은 태상이 모려원과 종무헌을 빠르게 살폈다.
“그럴 수는 없다! 그 기물이 어찌 아직 남았으며, 어떻게 네 손에…….”
“이제 그만 끝냅시다.”
통보처럼 말을 건넨 진무린이 태상을 향해 움직였다.
후아아아아악!
모려원이 고개를 비틀고, 종무헌이 눈매를 독하게 뜰 정도로 기운을 뿜어낸 진무린이 태상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쉐에엑! 카앙! 쉑! 카앙!
팔을 휘둘러 진무린의 검을 막아낸 태상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와아-악!”
쉐엑! 카앙! 쉐에엑! 카앙!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면서도 태상은 두 번이나 더 진무린의 검을 막아냈다.
쉐에에에에에엑!
그러나 세상 전체를 가를 것처럼 섬뜩한 소리가 울려 나오고, 팔을 허공에 치켜든 태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푸.”
그를 노려보던 진무린이 올라오는 피를 가볍게 뱉어낼 때였다.
옆으로 비틀리던 태상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이어 몸뚱이가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