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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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95화
은천검제
제195화
전중방에는 병든 방주와 노복, 시비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문을 들어선 진무린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은천문 역시 진법에 몸을 숨기지 않았던가.
전중방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유는 이미 진법이 진무린 일행을 감쌌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사매. 진법이 발동되었다.”
진무린은 지금껏 내놓지 않았던 기운을 단숨에 풀어내 뒷마당으로 향하는 공간을 살폈다.
“우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문에 들어선 순간 진법을 발동했지. 사당의 향로를 움직일 때 급습이 있을지 모르니 주의해.”
“예, 대사형.”
모려원은 검의 자루를 앞쪽으로 좀 더 기울였고, 종무헌은 양쪽 눈썹이 머리칼에 닿을 정도로 날카롭게 주변을 경계했다.
길지 않은 담을 돌아간 진무린 일행은 바로 사당에 도착했다.
얇은 나무를 일정하게 세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당에는 전면에 전중방의 조사를 그려놓은 듯한 그림을 걸었고, 그 앞의 단에 촛대 두 개와 향로를 놓은 것이 전부였다.
사당의 좌우를 살핀 진무린은 조사의 그림을 향해 옅게 웃었다. 거짓말처럼 조사의 그림에서 태상의 기운이 또렷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태상. 오늘로 벽계는 강호에서 그 이름을 지우게 됩니다.”
진무린이 도전적인 말을 건넨 직후였다.
“흠흐흐흐.”
개파조사의 그림이 웃는 것처럼 또렷한 웃음이 사당에서 흘러나왔다.
후아아악.
진무린이 기운을 한껏 뿜어낸 직후였다.
사당 안쪽의 정면 벽에 흐릿한 공간이 피어났다.
‘저자가 태상이구나.’
놀라기는 했으나 모려원은 호흡을 통해 감정을 조절했다.
차원을 연결한 것처럼 피어난 공간에서 도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하얀 머리칼과 수염을 지닌 노인이 서 있었고, 그 뒤로 서른 명의 중년 남녀가 세모꼴의 형태로 늘어서 있었다.
“진의 기운을 흩트릴 정도라니. 과연 너는 괴물이구나.”
뒷짐을 진 태상은 적대감 가득한 눈으로 진무린을 노려보았다.
“이곳을 너의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자신 있다면 들어오너라.”
말을 마친 태상은 좌우를 돌아보았다.
고작 셋이서 이 많은 숫자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표현이었다.
왜 진법의 일부를 풀었을까?
당당해 보이려고?
진무린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부심을 버린 태상과 벽계였다.
당당한 척하는 것은 오히려 악랄하거나 치졸한 수를 감추었다고 자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갑자기 겁이 나느냐?”
태상이 완벽한 비웃음을 그리며 진무린을 자극했다.
“향로를 당겨. 그리하면 내 앞에 도착할 게다.”
당당하게 상대할 생각이라면 태상은 뛰쳐나와 손을 쓸 사람이지 안으로 꼬드길 인물은 아니었다.
“들어가 드리지요.”
진무린은 입구를 연다는 향로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장 노대는 향로를 당기는 것으로 출입할 수 있다고 했었다.
백면호리는 이안공자가 보내준 기물을 통해 벽계에 들어설 수 있다고 했었고.
“힘을 잃은 방파라 해도 사당을 지나치며 예를 표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오.”
진무린은 백면호리게에게서 건네받은 기물을 꺼내 보자기를 풀지 않은 채 사당의 제단에 올렸다.
태상이 눈가를 좁히며 진무린을 노려볼 때였다.
“들어가겠다.”
모려원과 종무헌을 돌아본 진무린은 향로를 잡아 앞으로 당겼다.
후아아아악.
은천문의 진법을 통과할 때와 비슷한 감각과 현상이 벌어지더니 세 사람은 어느새 군데군데 가옥이 몰려 있는 삭막한 들판 위에 서 있었다.
벽계의 인물들이 일제히 기운을 뿜어냈고, 그 직후에 모려원과 종무헌은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르고 숨을 틀어막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우우우웅.
등룡창천의 기운을 뿜어낸 모려원의 검이 나직하게 울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삼보의 도움을 받은 종무헌 역시 이전보다 강한 공력을 일으켰다.
“너희는 절대 살려두면 안 되는 것들이구나.”
모려원과 종무헌의 반응을 살핀 태상이 통보처럼 말을 뱉었다.
스응.
“벽계 역시 강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곳이오.”
스응. 스응.
진무린을 따라 모려원과 종무헌 역시 검을 꺼내 들었다.
후아아악! 후우우욱!
태상과 진무린이 동시에 기운을 뿜어내자 흙먼지가 먼저 달려나가 맞부딪쳤고, 사방에서 거친 회오리가 치솟아 주변을 온통 뿌옇게 만들었다.
이를 악문 태상이 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의 앞가슴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진무린을 기다렸다가 맞섰다.
흉계를 꾸민다고 물러설 줄 알았소?
그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상대해드리지.
쉐에에에엑!
진무린은 먼저 태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검이라 평가받는 진무린이 펼치는 은천수호검이었다.
줄기줄기 뿜어진 초식이 단박에 태상을 가두었고, 그와는 별개로 강렬한 기운이 검과 손을 통해 맞부딪쳤다.
카아앙! 쉬익! 카앙!
“이이익!”
은천수호검을 상대로 태상은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그가 휘두르는 손이 어찌나 빠른지 천수관음상을 보는 것처럼 잔영이 상체를 온통 뒤덮었다.
쉭! 쉬이익! 쉭! 쉭!
또한, 손의 잔영은 진무린의 얼굴과 상체를 뒤덮는 것처럼 뻗어 나왔다.
진무린은 얼굴과 상체를 뒤덮은 듯 번득이는 태상의 팔을 절묘하게 피했고,
쉐에엑! 쉑! 카아앙! 캉!
그의 팔 만큼이나 빠르고 날카롭게 검을 휘둘렀다.
수없는 손과 검의 잔영이 겹치거나 혹은 상대를 파고들었다.
쉐엑! 쉑! 카앙! 캉! 카아앙!
모려원과 종무헌은 등을 마주한 상태로 서른 명에 달하는 벽계의 인물들을 상대했다.
휘릭! 휘리리릭!
모려원이 등룡창천의 초식에 춘설난무를 뿌려 사방을 빛줄기로 뒤덮을 때면,
쉑! 쉐에엑! 쉐에엑!
그 틈을 타고 종무헌의 검이 세상을 가를 것처럼 휘몰아쳤고,
휘리리릭! 휘리릭!
또다시 등룡창천을 펼쳤다.
카가강! 카아앙! 카강!
검과 손이 마주칠 때마다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때론 검이 튕겨 나왔으며, 혹은 벽계의 인물이 손을 감싸며 뒤로 물러나곤 했다.
긴 세월을 함께한 벽계의 인물들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모려원과 종무헌을 향해 달려들었다.
쉐에엑! 휘릭! 쉐에에엑!
그러나 모려원과 종무헌 또한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호흡이 있고, 진무린을 따르겠다는 사명감을 지녔다.
종무헌이 검을 내면 모려원이 뒤를 지켰고, 검을 회수한 종무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려원의 뒤로 움직였다.
쉐에엑! 카가강! 쉭! 쉭! 쉐에엑!
서른이라고 해도 한꺼번에 달려들지는 못한다.
넷이나 다섯이 교대로 달려들었다가 뒤로 빠지곤 했는데 모려원과 종무헌은 그렇게 달려드는 서른을 굳건하게 상대했다.
쉐에엑! 쉑! 카아앙!
문제는 종무헌이었다.
세 가지 보물을 얻었다고 하나 뛰어난 효과를 얻지 못해 언제 기혈이 엉킬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대사형께 방법이 있을 거야!’
휘릭! 휘리릭! 휘리릭!
모려원은 진무린을 믿었다.
태상을 맡으라고 하고서 먼저 달려들었을 때는 계산이 있으리라. 종무헌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에 대한 대비를 지니고 있을 사람이었다.
쉐에에에엑!
한순간, 진무린의 검에서 나오는 소리가 달라졌다.
이미 공동파를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일로, 초식을 하나로 연결하며 나오는 특유의 소리였다.
카가가강! 카앙! 카가강!
상체를 뒤로 젖힌 태상이 꼬리를 문 것처럼 펼쳐지는 은천수호검의 초식을 향해 끔찍할 정도로 빠르게 손을 휘젓자 귀를 찢을 것처럼 강렬한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벽계의 서른 명이든, 모려원과 종무헌이든, 진무린과 태상의 대결에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의 대결은 상식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카가강! 콰으응!
강렬하게 부딪친 검과 손이 어느 순간에 커다랗게 충돌할 때면 서른 명과 모려원, 종무헌의 몸이 흔들릴 정도로 놀라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쉐에에에엑! 콰으응!
진무린의 검이 만든 잔상이 태상을 뒤덮을수록 기가 충돌하는 폭발음은 자주 터졌다.
“이익!”
태상이 지르는 두 번째 고함이었다.
그는 이미 가슴이 피로 붉게 물들었고,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쉐에에에엑! 콰응! 콰으응!
폭발음이 터질 때마다 진무린 역시 낯빛이 눈에 띄게 변했다.
쉑! 쉐엑! 휘릭! 휘리릭!
검과 손이 숨 가쁘게 오가며 부딪친 것이 일각을 넘어섰다.
오백 초는 벌써 넘겼고, 천초를 향해 달리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벽계의 인물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진을 형성했구나!’
벽계의 인물이 펼치는 진은 대단해서 모려원은 종무헌의 검이 무뎌지는 것을 알았다.
휘리리릭! 휘리리리릭!
그럴수록 등룡창천을 무리해서 쏟아내는 바람에 모려원의 내공이 밑바닥 깨진 항아리에 든 물처럼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쉐에엑! 쉑! 휘리리릿!
검을 들고 강호에 살며 어찌 편안하기만을 바랄까.
언젠가 죽음이란 벽을 만날 때도 있겠지.
휘리리릭! 휘릭! 휘리리릭!
모려원은 이를 악물며 재차 등룡창천을 쏟아냈다.
눈부신 빛줄기가 달려가면 벽계의 인물들이 주춤했고, 그 틈에 종무헌이 검을 세차게 갈랐다.
휘릭! 휘리리릭!
대사형이 태상을 마음 놓고 상대할 수 있도록 버틴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진 아니라 세상 없는 것이 달려들더라도 사제를 지켜낸다.
휘리리리릭!
모려원이 악착같이 검을 휘두른 직후였다.
쉬익! 카아-앙!
거친 소리와 함께 종무헌의 검이 요란하게 튀어나왔다.
생각 따위 없었다.
쉐엑! 쉐에엑!
몸이 먼저 달려가 종무헌의 앞을 막아냈고,
쉬익! 퍽!
그런 모려원의 어깨에 처음으로 손이 떨어졌다.
어딜!
휘릭! 휘리릭! 카가가가강!
모려원이 부족한 내공을 끌어올려 등룡창천을 펼쳐냈는데, 이번만큼은 효과를 얻지 못했다.
제대로 내공을 싣지 못해서일까.
쉬익! 쉭! 쉬이익!
빛줄기를 뚫고 수많은 손길이 모려원의 앞에 피어났다.
등룡창천을 뚫고 손이 날아드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있는 대로 내공을 뿜어낸 터라 검을 들었으나 힘을 담지 못했다.
이제 끝인가?
대사형을 다시는 못 보나?
모려원이 허망한 심정으로 검을 내는 순간이었다.
쉐에에에에에엑!
세상을 두 동강이로 가를 것처럼 섬뜩한 소리가 들렸고, 이어 눈이 아릴 정도로 강렬한 빛줄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하얗게 빛나는 빛줄기가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세상은 다시 황량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직후에 모려원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어깨를 보았다.
앞을 막아선 진무린은 검을 늘어트리고 움직임이 없는데 그 너머로 십여 명의 벽계 인물들이 피범벅이 되어 바닥에 주저앉거나 널브러져 있었다.
“사매. 잘 견뎠다. 조금만 더 부탁한다.”
비록 가슴이 피로 물들었으나 태상이 아직 건재한 터라 진무린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맡겨주세요.”
어디에서 힘이 났을까.
모려원의 답은 단단했다.
“이노-옴!”
분노해서 달려드는 태상을 향해 진무린은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쉐에에엑! 쉐엑! 쉐에엑!
진무린이 쏟아내는 검 소리가 요란할 때 모려원은 오만한 얼굴로 앞에 선 열일곱 명을 돌아보았다.
“다시 시작해 볼까요?”
“흥!”
남은 자들이 코웃음을 칠 때였다.
후아아아악.
알지 못하는 기운이 뒤편에서 거세게 일어났고,
“사저.”
지옥에서 울리는 듯한 음산한 음성이 모려원을 불렀다.
놀라서 고개를 돌린 모려원의 시선 앞에서 종무헌은 눈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물러나십시오.”
후아아아악!
재차 기운을 뿜어내는 종무헌은 이성을 반쯤 잃은 것처럼 보였다.
“감히 내 앞에서 대사형과 사저를 노린단 말이냐.”
눈썹이 치솟아 머리칼에 닿은 종무헌이 잔인한 미소를 그리자 입술 끝이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섰다.
“사제!”
“비켜서십시오.”
모려원을 향해 돌아온 종무헌의 눈이 끔찍한 형태로 꿈틀거렸다.
“비키라고 했소.”
이성을 좀 더 잃은 모양이나 아직 모려원은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흠흐흐.”
벽계의 인물들이 만족한 얼굴로 웃었다.
종무헌이 광기에 사로잡혔는데 저들이 왜 웃을까?
모려원은 의아한 눈으로 벽계의 인물들을 돌아보았다.
설마?
모려원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종무헌의 눈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