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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85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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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85화

은천검제

제185화

 

마선이절의 방문 이후에 이런 날을 철저히 대비했던 화산은 장문인 은혼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머리에 쓴 도관을 내린 은혼이 검을 들고 앞섰고, 원로들이 뒤를 받쳤으며, 급하게 달려온 매화검수들이 침입자를 둘러싸며 서늘한 살기가 돌풍처럼 치솟았다.

“흥.”

화산의 날카로운 검 앞에서도 노인은 태연했다.

“본디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몸이나 화산의 괘씸한 행태에 마음이 바뀌었다. 분명하게 가르쳐줄 테니 이후로 본계를 앞에 두고는 건방을 떠는 일이 없도록 해라.”

말을 마친 노인은 해보라는 투로 왼손을 내밀었다.

화산의 이름이 거론된 마당이고, 침입자의 목적이 표충량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함이었다.

쉐엑! 쉐에엑!

은혼은 더할 수 없이 날카롭게 검을 내었다.

장로들과 원로들이 같은 심정으로 달려들었고, 매화검수가 빈틈을 메우니 삽시간에 수십 개의 검이 노인을 조각낼 것처럼 날았다.

쉬익! 카가강! 쉭! 카앙!

그러나 노인은 양팔을 커다랗게 젓는 것으로 은혼을 비롯해 달려드는 검을 모조리 때려냈다.

그의 손에 담긴 기운이 어찌나 강한지 검을 움켜쥐었던 제자 서넛은 엄지와 검지 사이가 찢어져 손을 떨 정도였다.

쉑! 쉐엑! 쉑! 퍼억!

자욱한 살기와 화산의 비장한 각오에 비해 대결은 일방적으로 흘렀다.

화려함과 변화를 자랑하는 화산의 검 사이를 노인은 형체가 없는 사람처럼 헤집으며 여유롭게 손을 뻗어냈다.

쉐에엑! 카앙! 퍽!

날카롭게 파고드는 검을 가볍게 때려낸 노인은 손바닥을 뒤트는 동작과 함께 장로의 가슴을 밀쳐냈고,

쉑! 쉑! 퍼억! 퍽!

검과 검 사이를 헤엄치듯 빠져나와 매화검수 둘의 가슴을 때렸다.

어둠을 밀쳐낸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가슴을 얻어맞은 매화검수 둘이 피를 머금은 채 다시 달려드는 처절한 광경은 찬란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쉬익! 퍼버벅! 쉭! 퍼벅!

노인은 먼저 매화검수들을 쓰러트렸고, 이어 장로들을 하나둘 주저앉혔다.

가슴을 움켜쥔 매화검수, 피를 머금은 장로들, 그리고 달려와 화산의 굴욕을 지켜보는 이대, 삼대 제자들 앞에서 남은 것은 은혼 한 사람뿐이었다.

홀로 남은 은혼을 향해 노인은 뒷짐을 지고서 비웃음을 가뜩 그려냈다.

“지금이라도 장문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이쯤에서 그만두겠다. 그렇지 않고 계속 버틴다면 내게 달려들었던 놈들의 목숨을 끊겠다.”

답을 내놓으란 투로 노인이 은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런 일에 망설일 것이 있을까.

은혼은 먼저 낙안봉의 정상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힘겨우냐?’

‘아닙니다, 사부님. 제자는 그저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았고, 본파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인자하게 늘어진 구름을 향해 은혼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각오를 올렸다.

그런 뒤에 그는 내공을 담아 주변에 둘러선 제자들에게 입을 열었다.

“들어라. 누군가 내게 목숨을 위해 굴욕 할 것이냐, 명예롭게 죽을 것이냐를 묻는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장로들과 제자들의 목숨이 달렸다 해도 내 답은 한 가지다.”

휘리릭. 쉐엑.

당당하게 말을 한 은혼은 검을 휘날려 노인을 향해 세웠다.

“문도 전체와 속가 제자들의 목숨을 모두 끊어도 본파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오.”

“굳이 죽음을 원한다면 그리 해주마.”

다부진 각오를 꺾겠다는 투로 노인의 형상이 흐릿하게 변했다.

휘릭! 퍽!

검을 두어 번 휘두르기도 전에 은혼은 가슴을 얻어맞고 뒤로 밀려났다.

쉐엑! 쉑! 퍼억!

그 직후에 은혼이 바삐 검을 휘둘렀으나 이번에도 노인의 손바닥은 정확하게 오른쪽 어깨를 때렸다.

은혼은 검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만족한 듯 눈으로 웃은 노인은 칭칭 감아놓은 먹이를 향해 다가서는 거미처럼 느긋하게 은혼을 향해 걸었다.

어떻게 장문인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겠나.

제자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기운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사질들은 잠시 물러나세요.”

낭랑한 음성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화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놀란 은혼이 고개를 돌렸고, 이대와 삼대 제자들이 설마 하는 얼굴로 목을 뽑았으며, 원로와 장로들이 아픈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노인은 허름한 전각에서 나와 똑바로 걸어오는 표충량을 향해 미간을 좁혔다.

앳된 아이였다.

그런데 기품을 지녔고, 화산의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독특한 기운마저 품었다.

“사부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감히 나선단 말이냐?”

“사부님께서 위태로운데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화산의 정신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기특하게도 표충량은 은혼을 향해 양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사죄를 청했다.

은혼과 매화검수가 모두 쓰러지면 어차피 표충량은 노인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됐다. 몸을 세워라.”

은혼의 지시가 떨어지자 표충량은 그제야 몸을 세우고 노인을 향해 돌아섰다.

“저를 찾으십니까?”

“네가 표충량이란 아이냐?”

“그렇습니다.”

표충량을 향해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탐나는구나. 그렇더라도 너의 운명을 바꿀 방법이 없다.”

말을 마친 노인이 성큼성큼 표충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쉐엑! 카앙!

급하게 은혼이 낸 검을 때려낸 노인이 표충량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쉬익! 쉭!

화산의 복호권과 벽석권법의 초식을 연달아 펼쳐낸 표충량이 가라앉듯 자세를 낮추고는 발을 둥그렇게 돌려 노인의 발목을 노렸다.

쉐에에엑!

그 기회를 타고 은혼이 검을 휘둘렀다.

쉭! 카앙.

검을 때려낸 노인이 자세를 바꾸려는 순간이었다.

몸을 빙글 돌린 표충량이 매화검수의 검을 잡아채 은혼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휘릭. 휘리릭. 휘리릭.

삽시간에 노인의 앞에 검이 번쩍였고, 그 빛들이 모여 매화꽃을 그려냈다.

쉑! 쉑! 쉐에에엑!

그때부터였다.

사부 은혼과 제자 표충량의 검이 어우러지며 노인을 뒤덮듯 매화꽃을 그려냈다.

쉭! 카앙!

표충량의 검을 때려내면 은혼의 검이 목을 노리고,

쉭! 카가강!

은혼의 검을 때려낸 직후에는 표충량의 검이 매섭게 노인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청강이 목숨을 바치다시피 구해낸 아이요, 은혼이 업어서 지켜낸 제자 표충량 아니던가.

표충량은 그 은혜를 증명하듯 검을 휘둘렀는데 작은 동작 하나에도 타고난 재능과 그동안의 노력이 담겨서 지켜보는 이대와 삼대 제자들은 눈조차 깜빡이지 못했다.

또한, 표충량은 은혼의 주변을 맴도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움직였는데 그러다가 노인의 머리로 치솟을 때면 수면 위로 튀어 오른 잉어를 보는 듯 동작마저 화려했다.

쉬이익! 카앙!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

더는 참기 어렵다는 투로 기운을 뿌려낸 노인의 손짓에 은혼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쉐에에엑!

표충량이 죽음을 각오하고 뻗어낸 검을 피한 노인은 어느새 은혼의 뒤에 있었다.

“이놈!”

은혼의 뒷덜미를 움켜쥔 그는 비열한 표정으로 표충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네놈의 목숨을 가져갈 참이다! 그 검으로 자결한다면 장문인은 이대로 두고 돌아가마. 어찌할 테냐. 사부의 죽음을 목도한 뒤에 내 손에 죽을 테냐,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테냐.”

참으로 잔인한 요구였다.

“량아는 들어라.”

목덜미를 잡혀 기혈이 막힌 터라 꽤 힘겨울 텐데도 은혼의 음성은 덤덤했다.

“너를 지키지 못한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나 이미 너는 본파에 몸담은 제자가 아니더냐. 어찌 정에 묶여 굴욕을 자처하겠느냐.”

은혼은 표충량을 향해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용맹하게 검을 휘두르던 제자가 어느새 또래의 아이처럼 맑은 눈을 하고 슬프게 은혼을 바라보고 있어서였다.

“사부님을 뵈러 갈 수 있으니 이 사부는 기쁘다. 너는 기필코 오늘의 화를 피해 이 복수를 해다오.”

“사부님.”

은혼은 기혈을 뒤집어 목숨을 끊을 각오를 마친 것으로 보였다.

이제 그가 내공을 거꾸로 돌리면 피를 토할 것이고 그대로 쓰러지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한다.

분이 올랐을까.

우우우웅.

표충량이 들고 있던 검이 울었다.

“흥.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구나.”

노인이 독한 눈매로 표충량을 노려볼 때였다.

피이이이-윳!

허공을 갈라버리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화산을 일깨웠다.

노인이 급히 몸을 뒤틀어 은혼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그림자가 내려와 은혼을 붙들었다.

“진 대협!”

놀라 부르던 은혼은 진무린의 손을 통해 들어오는 진중한 공력을 느끼고는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숨 한 번 쉴 틈이 지난 다음이었다.

은혼에게서 손을 놓은 진무린은 그제야 표충량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카 표충량이 진무린 숙부를 뵙습니다.”

“훌륭하게 컸구나. 모든 것이 장문인과 숙부의 덕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넉넉하게 대꾸해준 진무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등등하던 기세는 어디로 날려 먹었는지 노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은천문의 문주 진무린이다.”

은혼과 화산은 지금의 한 마디로 진무린이 은천문의 문주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태상이란 자는 도주했으나 곧 만나게 될 거다.”

“태상께서 네놈을 피하셨다는 말이냐?”

진무린은 대답 대신 중지를 세차게 튕겼다.

피이이잇!

움찔했던 노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머리를 뒤틀었으나 그의 왼편 옆머리가 잘려서 하늘하늘 아래로 떨어졌다.

“본문을 대표하는 내게 함부로 하대하지 마라.”

모두 달려들어도 어찌하지 못한 노인을 진무린은 하수 대하듯 내공을 튕겼고, 이어 꾸짖었다.

은혼과 화산은 진무린의 무공이 이전과 비교조차 어려운 발전을 이루었음을 또다시 깨달았다.

“화산에서 신선이 되신 청강 진인은 내게 조부와 같은 분이다. 또한, 저 앞의 아이는 내 조카로 화산은 내게 있어 특별한 곳이다.”

진무린은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너의 무례한 행동을 모두 보지는 못하였으나 장문인을 핍박하고, 문도를 상한 죄를 익히 짐작하겠다.”

노인을 꾸짖은 진무린은 은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나서 상대할까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진 문주께서 나서주신다면 량아를 비롯한 본파의 제자들에게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은혼은 얼른 답을 하고는 몸을 돌려 표충량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스응.

진무린은 느긋하게 검을 꺼냈다.

낙안봉 위로 올라선 태양이 진무린의 어깨에 걸쳐 앉아 검면 안에서 번쩍였다.

쉐에엑! 쉑! 쉐엑!

진무린은 곧바로 진중탈구검을 뿌렸다.

다급한 노인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팔을 휘저었으나 진무린의 손에서 피어나는 진중탈구검의 초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쉑! 카앙!

검을 겨우 막았던 노인은 손목을 세게 얻어맞은 아이처럼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감히 그따위 실력으로 화산을 얕보았더냐!”

쉑! 쉐엑! 쉑쉑!

이전에는 없던 모습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중간에 진무린은 분명하게 노인을 꾸짖었다.

“청강 진인께서 계셨다면!”

쉑! 쉐에엑! 쉑쉑! 쉑!

목덜미와 가슴, 팔과 허리에 검을 맞은 노인은 피범벅이 된 몸으로 진무린이 검을 피하기 위해 버둥거렸다.

“너는 그분의 검을 단 십 초도 상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쉐에에에에에엑!

“크흑!”

목 아래를 움켜쥔 노인이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그의 손가락 사이를 뚫고 튀어 오른 피가 화산의 청석 위로 요란하게 뿌려진 다음, 노인은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대 제자와 삼대 제자들은 진무린의 모습을 보며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었다.

이것을 위해 진무린은 청강 진인을 입에 올리며 화산의 이름을 드높였으리라. 이로써 제자들은 장문인이 수모를 당했던 모습을 잊고 화산의 이름에 자부심을 얻었으리라.

검을 넣고 돌아서는 진무린이 고마워서, 은혼은 감정을 감정을 억지로 누른 표정으로 포권을 올렸다.

“장문인께서 어찌 그런 예를 보이십니까.”

진무린이 또한 같은 자세로 상체를 숙이자,

“와아-!”

피가 끓은 화산의 제자들이 커다랗게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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