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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84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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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84화

은천검제

제184화

 

강풍에 휘말린 수수처럼 무당의 제자들은 중년 남자의 손길에 이리저리 흔들렸고, 그 끝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처박혔다.

검진을 형성한 장로들이 중년 남자의 손짓 한 번에 피를 토하는 형국이니, 뒤에서 달려든 일대 제자들이야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어디를 어떻게 맞는지조차 모른 채 쓰러지는 형국이었다.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는 데 걸리는 시간, 일각이었다.

장로들과 원로들이 앞에 서고, 일대 제자들이 휘감은 무당의 검진은 일각이 지난 후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히 사제 진호자가 서운을 데리고 몸을 감춘 뒤여서 무당은 그나마 내일의 희망을 이어갈 기틀을 마련한 참이었다.

불진을 던지고 검을 든 진섭자는 최후를 짐작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자들은 물러나라.”

그는 일대일의 결전으로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벽계의 위력이 대단하다더니 본파는 오늘 새로운 하늘이 있음을 분명히 보았소. 본인이 직접 나설 테니 이 대결로 일을 마무리하십시다.”

검을 잡은 손목을 뒤틀어 손바닥을 위로 한 진섭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덤덤한 음성으로 나선 다음이었다.

중년 남자는 진섭자를 보며 재미있다는 웃음을 그려냈다.

“장문인은 새로운 하늘을 보았다고 하면서도 능력을 믿지 않으니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아닌가.”

진섭자는 중년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깟 검진이 버거워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했다니 실망스럽네.”

말을 마친 중년 남자는 정확하게 천주봉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설마, 이곳에서 사제 진호자와 제자 서운의 기척을 알아챘단 말인가?

그것도 검진에 둘러싸여서?

진섭자의 눈에 놀라움이 스친 직후였다.

“어디 멀리 가는가 했더니 고작 저곳이군.”

진섭자의 눈빛에 답한 것처럼 말을 뱉은 중년 남자가 훌쩍 발을 굴렀다.

단숨에 전각 위로 솟구친 중년 남자는 지붕에 발을 걸치는가 싶더니 방향을 틀어 천주봉을 향해 날았다.

“장문의 령이다! 제자들은 서운을 지키고, 침입자를 멸하라!”

급하게 명을 내린 진섭자가 몸을 날렸으나 이미 중년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뼈에 담긴 진이 빠질 정도로 죽을 힘을 다해 달린 진섭자가 천주봉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일이 끝난 뒤였다.

부러진 검의 옆에 사제 진호자가 쓰러져 있는데 그 너머에서 벽에 기댄 채 늘어진 서운은 이미 절명한 모양으로 살아 있는 이의 낯빛이 아니었다.

땡강.

검을 버린 진섭자는 먼저 진호자의 상태를 급히 살폈고, 이어 두려운 마음으로 서운의 앞으로 다가섰다.

결과는 짐작과 다르지 않았다.

이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진섭자는 희망이 사라진 세상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

 

수신호위의 뒤를 지키던 진무린은 한순간 높게 치솟아 몸을 뒤틀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달의 윤곽 안에 떠오른 진무린은 떨어지기 직전에 수신호위를 돌아보았다.

진무린의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교주를 지켜라!’

수신호위에게 주는 명령이었으며, 혹여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벽계의 인물들에게 주는 도발적인 경고였다.

방향을 바꾼 진무린은 상등을 향해 날았다.

태상이 직접 진무린을 상대하러 나섰다면, 강호 역시 무탈하지 않으리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강호의 그 어떤 소식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곳, 은천문과 홍화루.

진무린은 먼저 강호의 일을 알고자 했다.

다음으로 넘어야 할 문제도 있었다.

태상의 속도는 감당한다.

그러나 정동추가 잡아주지 않으면 상대하기 어려운 그의 기운을 넘어서야 했다.

얼마나 더 강해져야 태상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하후도조차 버겁던 상태에서 무서운 발전이었으나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사위가 완전히 어둠에 잠겼을 때, 진무린은 상등의 소능산에 도착했다.

먼저 암연을 부르는 기운을 뿜어낸 진무린은 무거운 심정으로 상등을 내려다보았다.

‘사매. 현명하게 판단할 때다.’

모려원 일행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뒤편에서 기다리던 기운이 느껴졌다.

“암연이 문주를 뵙습니다.”

뒤를 돌아본 진무린은 반갑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자주 보던 서른 중반의 남자였다.

“본문과 강호의 소식을 알고 싶소.”

“문주께서는 말씀을 편히 주십시오.”

남자는 먼저 진무린에게 작은 청을 넣은 뒤에 말을 이었다.

“본문은 은천수호검을 익히고, 내부를 단속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문도 전체가 사력을 다하고 있어 매일 성과가 있습니다.”

은천문의 근황을 알린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만 곤륜, 무당, 아미의 세 개 문파와 남궁세가, 하북팽가가 가장 기대하던 제자를 잃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맹주 황종관을 통해 구관에 들어가리라 기대했던 인재들이리라.

진무린은 이를 지그시 물며 숨을 조절했다.

“무당이나 아미라면 쉽게 물러서지 않았을 텐데 침입자가 많았나?”

“침입자는 한 명이었습니다. 창졸간에 당한 일인 데다 워낙 격차가 벌어져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진무린은 잠시 고개를 돌려 상등의 하늘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전중방의 주변이 먼저 당했다.

“장 노대께서는?”

“문주의 말씀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장 은천문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은 감사할 일이나 피바람이 강호에 불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고생했소.”

진무린의 말을 들은 남자가 포권을 보이고는 소능산의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화산이 위험하다.’

맞은편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홍화루를 바라보며 진무린은 천천히 몸의 기운을 살폈다.

상등까지 달려온 것이야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버텼다고 하지만, 아직 내상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화산까지 전력으로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었던 진무린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옅은 웃음을 지었다.

‘량아가 염려되어 그러십니까?’

별 무리 사이에서 애처로운 눈으로 당부하는 청강을 본 것만 같아서였다.

‘진 대협. 노도가 이리 청하오. 염치없지만, 한 번 더 살펴주실 수 없겠소?’

미안한 마음에 처진 청강의 눈꼬리처럼 은하수의 꼬리가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청강이 신선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몰랐다면 모를까, 화산과 표충량의 위험을 빤히 알며 어떻게 모른 척 외면할 수 있겠나.

숨을 크게 들이마신 진무린은 기운을 끌어올린 뒤에 발을 굴렀다.

 

**

 

새벽녘에 도착한 정도맹은 대낮처럼 사방에 등불과 횃불을 놓았다.

소란을 피우기 싫었던 모려원은 정문에서 황가의 가신을 찾았고, 바로 ‘거빈각’이라 쓰인 전각의 별관으로 향했다.

정도맹의 규모와 화려함에 놀란 운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였다.

맹주 황종관이 황가의 가신, 맹의 수하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었다.

“맹주를 뵙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예의를 차리나. 어서 자리하게.”

황종관은 모려원과 종무헌을 다독였고, 운진에게 예를 보였으며, 섬도곤을 무시하지 않았다.

“내가 머무는 공간으로 청하지 않은 것을 이해해주게.”

“맹주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황종관이 구한 양해를 모려원이 능숙하게 받았다.

별관에 청한 것이 어찌 보면 특별 대우이나 다르게 보면 남들의 눈을 피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혈사가 몰아닥친다 해도 마교 교주의 첫 번째 제자 섬도곤이 정도맹에 드는 일은 말이 나올 소지가 다분한 것이어서 모려원 일행은 이를 충분히 이해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맹주.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황종관 역시 모려원의 청을 바로 알아들었다.

“자네들은 잠시 나가 있게.”

가뜩이나 가려온 인물들인데도 황종관은 데려온 이들을 모두 별관 밖으로 나가게 했다.

“이제 편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하게.”

“맹주. 우선 받으실 것이 있어요.”

모려원은 먼저 삼보를 황종관의 앞에 내놓았다.

“이것이 정녕 그토록 피를 불렀던 강호의 세 가지 보물이란 말인가?”

“보양진서는 문주와 제가 직접 가져왔고.”

“문주라니? 모산의 문주를 말하나, 아니면 은천문의 문주를 말하는 건가?”

“대사형께서 문주의 직에 오르셨어요.”

이어 모려원은 지금껏 있었던 일을 간략하고 명확하게 황종관에게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벽계가 작정하고 나선 모양이로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오늘 참극이 여러 곳에서 있었지. 급히 다른 문파에 경고를 보내기는 했으나 분명 당하는 곳이 있을 것일세.”

황종관은 무당과 아미, 곤륜 등 벽계의 인물에게 당한 문파와 세가의 일을 짧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불을 그리 환하게 밝히고 있었던 거군요.”

“그렇지. 이렇게 하세. 우선 운기라도 하고, 필요하다면 잠시 눈을 붙이게. 나는 오전에 들어오는 소식을 알아본 뒤에 다시 돌아오지.”

황종관은 모려원이 내민 세 가지 보물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그런 뒤에 그는 놀랍게도 보물을 다시 모려원에게 내밀었다.

“이곳에는 눈과 귀가 곳곳에 있어서 내가 보물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가는 자칫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어.”

모려원을 향해 황종관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은천문의 문주가 나서 준비한 보물 아닌가. 소유는 은천문이, 구관을 열고, 인재를 배정하는 업무를 정도맹이 맡았다고 하는 것이 좋아.”

빠르고 공정한 판단이어서 모려원도 다른 말을 하지는 못했다.

“우선 쉬고 있게.”

그렇게 급하게 황종관이 떠나자 일행은 그제야 잠시나마 여유를 지닐 수 있었다.

“문주. 좀 주무세요.”

“다들 고생했는데 어찌 나만 그럴 수 있겠소?”

“저와 사제 역시 잠시 운기한 뒤에 반 시진이라도 눈을 붙일 생각이에요. 아침이 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기회가 될 때 조금이라도 주무시는 것이 좋아요.”

모려원은 같은 말을 전하는 눈으로 섬도곤을 돌아보았다.

“어느 방을 쓰면 되겠소?”

“방이 많으니 편한 곳을 사용하세요. 필요하면 언제고 사제를 찾으시고요.”

“그리하겠소.”

섬도곤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자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운진이 미안한 표정으로 그 옆을 선택해 움직였다.

“내가 이곳에 있을 테니 사제는 들어가 운기하고, 나와 교대해.”

“알겠습니다, 사저.”

위기가 계속되는 순간이었다.

종무헌은 모려원의 지시에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몸을 움직였다.

 

**

 

화산의 하루 역시 해가 채 뜨기 전에 시작한다.

여명이 밝아올 때, 도관을 정제한 은혼을 시작으로 도가의 예를 차리는 일을 빠트리는 법이 없으니 이 이후에 새벽 수련과 식사 등이 일상이 이루어졌다.

원로, 장로들과 함께 예를 올린 은혼이 문주의 집무실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허공을 걷는 것처럼 발을 놀린 노인이 저 앞에서 아래로 내려섰다.

이미 화산은 마교의 불쾌한 방문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은혼은 노인 역시 좋은 뜻으로 찾은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 냉정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표충량이라는 아이가 이곳에 있지 않나?”

노인은 거침이 없었다.

원로들과 장로들이 어찌할 생각이냐는 투로 돌아보는데 은혼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디에서 오셨소?”

“화산을 피로 물들여 찾아낼까, 아니면 직접 데려오겠나? 길게 말해봐야 결론은 하나일 테니 선택하게.”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뱉은 노인은 주변을 천천히 돌아본 뒤에 낡은 전각을 향해 옅게 웃었다.

“저곳에 있나 보군. 화산이 키웠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기운이군.”

어떻게 고개 한 번 돌린 것으로 표충량의 기운을 잡아낸단 말인가.

노인을 지켜보던 은혼은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이미 마선이절의 방문을 경험했던 은혼은 기운을 읽기조차 어려운 적을 앞에 두고 먼저 호흡을 조절했다.

“본파를 피로 물들인다 하셨소?”

이거 봐, 하는 투로 노인이 은혼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문인인 내 능력이 부족해 어려운 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굴욕을 받아들일 마음은 없소.”

말을 마친 은혼은 고개를 돌렸다.

“장로들께서는 저와 함께 침입자를 막아주시고, 사제는 일대 제자를 불러 검진을 지휘해라.”

“장문인의 명을 받습니다.”

문혼이 바쁘게 걸음을 옮겼고, 장로들이 일제히 검을 꺼내 들고서 은혼의 뒤를 지켰다.

“참으로 어리석은 장문인이 아닌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분은 세상천지에 사부님 한 분뿐이오! 나는 오늘 등선하신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니 방문객은 입을 주의하시오.”

쨍, 하는 은혼의 경고가 날아간 뒤였다.

노인의 눈에 독한 기운이 맴돌았다.

얼핏 보기에도 은혼의 대응에 감정이 상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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