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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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62화
은천검제
제162화
중년으로 보이는 이남이녀가 내려서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 진무린과 모려원을 덮쳤다.
기운은 살의를 담았고, 이남이녀의 눈에는 어떤 경우에도 타협이나 자비가 없으리라는 냉정함이 올라와 있었다.
“진무린이란 이름이 자주 들리더니 과연 그럴 만하구나.”
두 번째 서 있던 여인이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진무린을 살핀 뒤에 시선을 뒤로 넘겼다.
모려원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은천문을 반드시 멸문시켜야 할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우리는 사방신이라 한다. 긴말 할 것 없으니 너희 둘은 검을 꺼내라.”
하후도가 80살이라 했으니 이들 또한 말도 안 되는 나이일 게 분명했다.
무기는 들지 않았는데 그들이 늘어트린 손에서는 아지랑이처럼 이미 기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불처럼 뜨겁고, 소름이 돋을 만큼 냉정하며, 태풍처럼 강렬하고, 범람하는 황하처럼 거칠 것 없는 기운이 네 사람의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스응.
진무린은 호흡을 고르며 진중하게 검을 꺼냈다.
돌이켜보면 언제는 쉬운 적이 있었던가.
그 고비마다 깨달음을 얻어 여기에 이르렀는데 이제와 목숨을 구걸할 것도 아니요, 구걸한다고 저들이 자비롭게 돌아갈 리도 없었다.
감사한 것은 모려원과 함께 저들을 맞은 것이었다.
모려원을 감싸고 지킬 것이다.
혹여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함께 은천문으로 향할 것이고, 진다 해도 양소소처럼 홀로 남아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일은 없게 하리라.
진무린은 속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스으응.
뜻을 알아챈 것처럼 모려원이 검을 꺼냈고, 두려움 담기지 않은 눈으로 진무린을 보았다.
당당하련다.
비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련다.
그것이 은천문의 제자이자 모려원의 대사형으로 지닐 자세이리라.
진무린은 고른 호흡의 끝에서 묵룡심법의 내공을 끌어올렸고, 이어 오행신위를 통해 얻은 불과 금의 기운을 펼쳤으며, 마지막으로 등룡창천의 힘을 상단전을 통해 뿜어냈다.
후아아아악-.
내내 밀리던 기운이 한순간에 팽팽하게 맞서며 메마른 황야의 흙과 잡풀이 휘몰아치는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이런 발칙한 놈.”
가장 왼편에 선 중년인이 진무린을 못마땅하게 노려보았다.
그는 지옥의 화염처럼 느껴지는 불의 기운을 지닌 인물이었다.
‘네놈이 감히 불의 기운을 내 앞에서 뿜어낸단 말이냐?’
진무린의 기운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진무린에게 검을 꺼내라 했던 여인은 빙정처럼 차가운 기운을 지녔고, 세 번째 있는 여인은 태풍 같이 강렬한 기운을, 마지막에 선 남자는 황하처럼 거칠 것 없는 기운을 뿜어냈다.
후아아아악-.
네 사람이 동시에 기운을 더하자 하늘로 솟구치던 흙먼지와 잡풀이 삽시간에 진무린과 모려원을 향해 밀려들었다.
진무린은 은천수호검의 초식을 펼치기 위해 검을 중단에 들고 네 사람을 노려보았다.
머리칼과 옷자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는데 기운에 눌려 고개를 숙일 마음 따위 애초에 없었다.
기다리던 참이다.
등룡창천을 깨달았고, 저들의 무공을 파훼할 검법을 엄소동에게 배웠으며, 은천문 비장의 검법 은천수호검마저 준비했다.
강호의 삶에서 누가 승리를 감히 장담할 수 있으랴.
후아아아악-
불과 금의 기운을 있는 대로 뻗쳐낸 진무린은 곧바로 검에 등룡창천의 기운을 모두 담았다.
쉐에에에에엑!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은천수호검의 초식을 펼쳤고,
휘리리리리릭!
이어 등룡창천을 빙정의 여인을 향해 뿌렸다.
환한 대낮에 피어난 용의 형상이 빙정의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기는 넘어섰고, 검강은 아닌데 그렇다고 가벼이 볼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빙정의 여인이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양손을 세차게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이 역력했다.
이는 진무린이 뿜어내는 묵빛 기운과 같은 것이니 사방신 네 사람의 무위가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콰으으응!
충돌음이 커다랗게 터지고, 흙먼지와 잡풀이 폭발하듯 치솟는 순간이었다.
쉐에에에에에엑!
진무린의 등을 타고 솟아오른 모려원이 빙정의 여인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검기라 하기에는 부족했으나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모려원의 검을 타고 단숨에 날았다.
“감히 이 따위 검으로 나를 노린단 말이냐!”
눈꼬리를 휘감은 빙정의 여인이 모려원의 검을 향해 왼손을 내밀 때,
쉐에에에에에엑!
진무린은 은천수호검의 초식을 이용해 득달같이 빙정의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이익!
더는 두고 볼 수 없는지 불의 남자가 손을 뻗었고,
쿠으응.
또다시 충돌음이 터졌으며,
쉐에에에에엑!
불의 남자를 향해 모려원의 검이 날았다.
쉬익! 쉭!
그 순간, 태풍의 여인과 황하의 남자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쉐에엑! 쉐엑!
진무린은 두 사람을 향해 연달아 초식을 펼쳤는데,
콰으응! 콰응!
단순한 손짓에 담긴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 두 번의 충돌에 손목이 저릿할 정도였다.
“건방진 놈!”
쉬익!
분통이 터진 불의 남자가 진무린의 목을 노리고 손을 뻗었고,
쉬익! 쉭!
빙정의 여인과 태풍의 여인은 모려원의 목과 허리를 향해 손끝을 찔러 넣었다.
삽시간에 벌어진 혼전이었다.
두 명의 여인이 목숨을 노리고 있음에도 모려원은 무모해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우직하게 불의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사형!’
진무린은 팽이처럼 몸을 돌려 모려원의 뒤로 돌았고, 이어 등을 타고 넘듯이 솟구쳤다.
쉐에엑! 휘리리릭!
휘릭! 휘리리리릭!
진무린이 두 번이나 검을 휘몰아치면서 또다시 용이 피어나 두 명의 여인을 막아섰고,
쉐에에에에엑!
모려원은 검을 뿌렸다.
두 명의 여인이 등룡창천을 막을 때 모려원의 검은 불의 남자 목덜미에 있었다.
‘이까짓 검으로!’
불의 남자가 모려원을 죽이겠다는 투로 손을 뻗어내는 순간이었다.
퍼러러럭!
화려하게 몸을 돌린 모려원이 빠져나갔고, 그 자리를 진무린이 차지했다.
쉐에에엑! 휘리리리릭!
진무린의 검에서 피어난 검기가 불의 남자를 향해 연달아 날았고, 불쑥 솟아오른 용은 그의 머리를 삼킬 것처럼 달려들었다.
콰응! 콰응! 콰으응!
위기에 몰린 불의 남자를 돕기 위해 세 명의 동료들이 달려들어서 그는 진무린의 검에서 빠져나갔다.
네 사람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진무린과 모려원을 둘러쌌는데 이번의 공방에 놀라고 당황하는 눈치였다.
놀란 것과 별개로 숨 막히는 공방은 계속 이어졌다.
네 사람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진무린과 모려원의 절묘한 조화를 보며 둘을 갈라놓으려 애썼는데 은천수호검의 신묘한 초식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뺄 때가 많았다.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중간마다 충돌음과 함께 흙과 잡풀이 치솟았으며, 위기 때마다 용이 피어나 사방신을 향해 날았다.
진무린이 피워낸 불과 금의 기운 안에서 모려원은 아예 죽음을 각오한 듯 검을 휘둘렀고, 그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눈부신 용이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결은 팽팽했고, 누구도 득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진무린과 모려원이 열세인 것만은 분명했다.
연신 등룡창천을 뿌리는 진무린은 팔이 얼얼한 지경이고, 아스라이 피어나던 모려원의 아지랑이는 점차 그 힘을 잃고 있었다.
쉬익! 쉭! 쉬이익!
시간이 지날수록 사방신의 협공은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진무린과 모려원을 조여들었다.
‘견뎌라, 사매.’
힘겨운 사투 속에서 진무린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렸다.
진중탈구검이었다.
저들이 완벽하게 기회를 잡았다고 여길 때가 진무린이 기다리는 단 한 번의 순간이었다.
그 기회를 잡을 때까지 모려원은 목숨을 던진 듯 검을 휘둘러야 했고, 진무린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녀를 지켜내야 했다.
쉐에에엑!
검을 휘둘러 모려원을 지키면서 짧은 순간, 진무린은 엄소동을 떠올렸다.
그가 비록 진중탈구검을 지녔다 하나 그것은 벽계의 무공을 파훼하는 데 득이 될지 몰라도 진무린이 지닌 묵룡검법과 등룡창천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런 이유로 진무린과 엄소동이 대결한다면 그 역시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엄 대협은 죽음을 각오했구나!’
벽계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홀로 양소소를 지키고 은천문으로 향한다고 할 때, 엄소동은 이미 마지막을 예견했음이 분명했다.
쉐에에엑! 콰으으응! 휘리리릭!
진무린은 이를 악물며 독하게 검을 휘둘렀다.
‘왜! 왜 좋은 이들은 이리 어려워야만 하는가!’
쉬익! 쉐엑! 쉐에에에엑!
청강 진인이 그렇더니, 벽계의 야욕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몸을 숨겼던 엄소동마저 목숨을 내놓았다.
두 사람이 부귀를 원했던가.
권력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진무린이 엄소동을 떠올리며 이를 악문 직후였다.
쉐에엑! 쿠으으응!
빙정의 여인과 충돌했던 모려원이 휘청하며 뒤로 밀렸다.
쉬익! 쉭! 쉭!
세 사람, 모두 다섯 개의 손이 모려원의 숨을 끊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녀의 뒤에서 솟구친 진무린은 그들을 향해 매섭게 검을 날렸다.
쉐에에에엑! 쉬익!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불의 남자가 진무린을 노린 채 손을 뻗었다.
모려원이 막아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기혈이 뒤엉켰는지 모려원은 제대로 검을 뻗어내지 못했고, 급하게 상체를 비튼 진무린의 옆구리를 불의 남자가 뻗은 손이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불의 남자를 막으면 모려원은 다섯 개의 손에 곧바로 죽음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퍼어어억!
결국, 불의 남자가 뻗은 손이 진무린의 옆구리를 강하게 때렸다.
허공에 뜬 진무린의 몸이 휘청할 때,
쉬익! 쉭! 쉬이이익!
재차 모려원을 노리고 다섯 개의 손이 날았다.
몸이 터지는 고통 속에서도,
퍼럭! 퍼러러럭!
몸을 뒤튼 진무린은 모려원을 지키기 위해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모려원을 지키기 위해 눈부신 용이 피어나는 순간에, 불의 남자가 뻗은 손이 진무린의 옆을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진무린은 옆구리를 아예 비운 채 이를 악물었다.
쉐에에에엑!
진중탈구검으로 셋을 단숨에 벤다.
후아아아아악-.
몸에 있는 모든 기운을 단숨에 쏟아낸 진무린이 세차게 검을 뿌릴 때였다.
느닷없이 세상 만물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뇌리에서 피어났다.
놀란 세 사람이 다급하게 검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고, 불의 남자는 이 한 수로 진무린을 끝장내겠다는 투로 독한 눈빛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진무린의 수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모려원은 불의 남자가 뻗은 손앞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사매! 안 돼!’
‘대사형의 마음을 알았으니 소매는 만족해요.’
언젠가 피음향을 흐르는 하천의 노을을 바라보며 양소소가 짓던 처연한 미소가 모려원의 눈에 가득했다.
‘사매!’
검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다섯 개의 손이 모려원의 몸에 박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둘 수도 없었다.
불의 남자가 뻗은 손과 진무린 사이로 이미 모려원이 달려들었다.
‘나쁘지 않다!’
모려원을 확인한 불의 남자가 이를 악무는 것도 잔인할 정도로 또렷하게 보였다.
‘사매! 제발!’
‘대사형! 부디 대업을 이루세요! 본문을 지켜주세요!’
‘사매!’
‘소매를…….’
이렇게 끝인가.
공력을 전한 아침에 잠시 보인 감정으로.
바보처럼 지난 세월 내내 가슴에 품었던 그 마음을 하나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는데.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이 진무린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눈에 담고 싶은 모습이 진무린인 모양이었다.
불의 남자가 뻗은 손이 모려원의 옆구리에 닿기 직전이었다.
이대로 끝이라고!
아무리 하늘의 뜻이라 해도 너무 잔인한 거야!
진무린의 가슴이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고, 열기는 곧장 머리로 치솟았다.
“등룡은 거처를 가리지 않으나 하늘로 향한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며, 운무를 휘감되, 천둥과 벼락을 부를 때면 막힘이 없으리라.”
그 직후였다.
운진이 읽어준 구절이 금박을 입힌 글자처럼 또렷하게 진무린의 뇌리에 떠올랐다.
“태양은 강요하고, 달은 순응하는 법, 기운을 다스린 등룡은 하늘을 열리라.”
문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뜨거운 기운이 진무린의 단전에서 솟구치며 검에 새겼던 용의 그림이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용의 형상이었다.
“이이익!”
진무린은 왼팔을 뻗어 모려원의 어깨를 잡아챘다.
이 느릿하게 흐르는 세상에서 진무린만이 제 속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퍼러럭!
진무린이 당긴 모려원의 아래로 불의 남자가 뻗은 손이 스쳤고,
쉐에엑! 쉐에에에에엑!
진중탈구검을 펼치기 무섭게 세 명의 사방신의 목과 가슴, 그리고 불의 남자가 뻗은 팔 위로 검기가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게 그려졌다.
모려원을 품에 안은 진무린이 바닥에 내려선 다음이었다.
불의 남자가 왼팔을 감싼 채 뒤로 물러났으며, 남은 세 명의 가슴과 목에서 피가 뿜어졌다.
“대사형……?”
진무린의 품 안에 서 있는 모려원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고, 그녀를 품은 왼팔에 체온이 온전히 느껴졌다.
“아직 한 명이 남았으니 그를 먼저 정리하겠다.”
어리둥절한 모양이었으나 모려원은 현명했다.
눈으로 답한 모려원이 품에서 빠져나가자 진무린은 불의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셋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아직 뜨거운 피를 쏟아내는데 불의 남자는 이 모든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오로지 태상만이 검의 형상을 피워내고, 오로지 태상만이 세상의 속도를 이긴다. 어찌 너 같은 것이…….”
진무린이 다가가자 지금까지와 다르게 불의 남자는 뒷걸음을 치며 물러났다.
“네놈은 누구냐?”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불의 남자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의아한 투로 고개를 돌리는 그를 향해 진무린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본문으로 향하기 위해 이곳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이제 가라.”
“태상의 무공은…….”
쉐에엑! 카아앙!
불의 남자는 오른팔을 들어 진무린의 검을 막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쉐에에에엑!
이어진 것처럼 날아간 진무린의 검이 그의 목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