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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58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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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58화

은천검제

제158화

 

저녁을 먹은 진무린은 모려원과 함께 소능산에 올랐다.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짐작하면서도 모려원은 왜 소능산에 오르는지를 묻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당 앞에 선 진무린은 상등을 내려다보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어려운 시기다, 사매.”

진무린의 말에 모려원이 시선을 주었다.

“사매가 괜찮다면 공력을 좀 더 넘겨주려 한다.”

“대사형?”

모려원의 첫 번째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공력을 전하는 것의 한계는 분명해서 열을 건네면 둘이나 셋을 받는 것이 보편적인 결과였다.

“대사형. 소매에게 벌써 두 번이나 공력을 주셨어요. 그렇게 소모한 기운을 이미 채우셨단 말씀이세요?”

진무린은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이 방법이 궁극적으로는 사매의 발전을 더디게 하거나, 혹여 무공의 성취를 가볍게 여기게 될까, 염려되나 지금은 다른 선택이 없다고 여긴다.”

무거운 표정으로 진무린은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묵룡검법을 익힐 기본을 다져주었다면 이번에는 춘설난무를 제대로 펼칠 바탕을 만들어주려 한다. 사매는 총명해서 감을 얻는다면 큰 발전이 있으리라 믿는다.”

“대사형의 손실은 어쩌시려고요?”

“다행히 사매와 나의 내공이 같은 결이라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되니 그리 염려할 것 없다.”

진무린의 말대로 어려운 시기이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대사형. 소매가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대체로 공력을 받아 무공이 일취월장하는 것 역시 기연에 속하는지라 더는 시간을 끌기 어려운 모려원은 양손을 맞잡으며 상체를 숙였다.

고개를 끄덕인 진무린은 소능산의 정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위쪽에 적당한 장소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

진무린이 앞서고, 모려원이 뒤따라 두 사람은 엄소동이 발견했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모려원은 신기한 눈으로 그루터기가 듬성듬성 놓인 장소를 둘러보았고, 이어 저 아래로 펼쳐진 상등을 내려다보았다.

낮과 달리 사당의 지붕은 어둠에 휩싸였고, 화려한 불빛을 두른 상등은 홍화루를 품은 채 넓게 펼쳐져 있었다.

진무린은 모려원의 곁에서 그녀가 시간을 보내도록 기다렸다.

묵룡검법을 완성할 공력을 전해주려는 참이었다.

공력을 전하는 진무린만큼 받는 이의 집중이 중요한 일이라 서두르기보다는 이런 식으로라도 안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었다.

또한, 영특한 사매가 그 점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사매는 공력을 받기 전에 마음과 호흡을 고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 지났을까.

상등을 내려다보던 모려원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대사형, 소매는 준비를 마쳤어요.”

실제로 길게 숨을 내쉰 모려원이 말을 전한 뒤에 모려원은 상등이 내려다보이는 방향을 택해 바닥에 앉았다.

수북이 쌓인 낙엽들 덕분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심하지 않은 자리였다.

진무린은 모려원의 뒤편에 가부좌로 앉았다.

“먼저 단전을 살필 것이고, 다음은 생사현관을 타통할 생각이다. 몸에 이상이 느껴진다면 기를 통해 알려다오.”

“예, 대사형.”

답을 한 모려원이 호흡을 골랐고, 서서히 운기에 들었다.

왼손은 모려원의 목덜미 아래, 오른손은 등의 중간에 가져간 진무린은 잠시 모려원과 호흡을 맞추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호흡이 일치했을 때, 진무린은 기운을 풀어냈다.

곧바로 목덜미를 타고 들어간 진무린의 기운은 혈도를 따라 모려원의 단전을 향해 움직였다.

은천심법을 오래 수련한 만큼 모려원의 단전은 틀이 잘 잡혀 있었다.

묵룡심법의 특징은 운기를 통해 응축된 내공을 담는 것이라 진무린은 지니고 있던 묵룡심법의 내공을 천천히 모려원의 단전에 밀어 넣었다.

아무리 같은 심법을 익혔다고 해도 내공은 사람마다 개성을 지닌다.

더구나 진무린은 이미 등룡창천을 깨달았고, 오행신위의 기운을 익힌 후라 단순히 묵룡심법의 내공이라 하기에는 그 경지가 워낙 높았다.

진무린의 내공이 단전에 들어서자 모려원의 몸이 움찔하고 떨었다.

새로운 기운에 놀랐을 테고, 당연하게 당황했으리라.

‘두려워할 것 없다. 조심할 테니 편안하게 받아들여다오.’

모려원을 달래는 것처럼 진무린은 단전을 향하는 기운을 좀 더 섬세하고 느긋하게 조절했다.

이때 어둠 속에서 묵빛 기운이 피어나 두 사람을 감싸기 시작했는데, 진무린과 모려원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소능산을 차지했던 겨울의 냉기가 묵빛 기운 밖으로 밀려났고, 진무린과 모려원을 향해 다가서던 서리가 두 사람 주변에 원을 그린 채 기회를 넘봤다.

진무린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대사형. 주저하지 마세요.’

편하게 하라는 의미처럼 모려원의 호흡이 좀 더 길어졌다.

이미 공력을 전해주기로 한 마당이고, 각오까지 세웠으니 지금은 주저할 때가 아니었다.

진무린은 연결된 단전으로 좀 더 강한 기운을 밀어 넣었다.

움찔.

비록 몸을 떨었으나 모려원은 호흡에 집중하며 잘 견뎠다.

한 시진쯤 시간이 흘렀다.

꾸준하고 일정하게 진무린의 기운이 흘러든 덕분에 모려원의 단전에는 응축된 묵룡심법의 내공이 가득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일각쯤 모려원의 단전에 담긴 기운을 살피던 진무린은 응축된 내공을 끌어내 혈도를 따라 이끌었다.

처음 느끼는 내공이 몸을 헤집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진무린의 기운을 거부하지 않으려 애썼는데 그 직후, 모려원의 몸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열기를 피워냈다.

은천심법과 묵룡심법은 내공이 다르고 다음으로 지나는 혈도의 순서와 방향에 차이가 있다.

응축된 내공을 처음 받아들이는 모려원의 혈도가 연속해서 놀란 반응을 내었으나 진무린은 지루할 정도로 시간을 들여 다독여가며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또다시 한 시진쯤이 지나서 마침내 진무린은 모려원의 혈도를 모두 매만지고 다시 단전에 도착했다.

이미 혈도를 다독인 참이었다.

진무린은 다시 단전에서 묵룡심법의 내공을 끌어올려 이전보다 빠르게 모려원의 혈도에 끌어올렸다.

몸이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열기라 할 정도로 모려원의 몸이 다시 뜨거워졌는데, 이때 외부에서는 그만큼 진무린의 몸에서 피어난 묵빛 기운이 진하게 두 사람을 덮었다.

두 번이나 모려원의 몸 전체에 기운을 돌린 진무린은 멈추지 않고 세 번째로 그녀의 단전에서 기운을 끌어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단숨에 모려원의 몸을 돈 기운이 단전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그러나 긴무린은 이끌던 기운을 세차게 밀어 단전을 지나 그 아래로 향했다.

움찔!

이번에는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모려원의 몸이 튀었다.

생사현관의 타통은 사람마다 다른데 대개는 의식을 잃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 모려원은 생사현관을 연결하지 못했다.

고통이 끔찍하겠지만, 이곳에서 멈추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얻을지 모를 일이었다.

진무린은 우직하게 막혀있는 모려원의 혈도로 기운을 몰아넣었다.

모려원의 등이 움찔한 뒤에 몸 전체가 경직되었고, 가부좌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뒤틀렸다.

진무린은 밀어 넣었던 기운을 물린 뒤에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처럼 모려원의 몸이 느슨해지는 순간이었다.

진무린은 물리던 기운을 더할 수 없이 강하고 빠르게 밀어 넣었다.

한순간, 모려원의 등이 길게 펴졌고,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파르르 떨었다.

놀라운 일도 있었다.

고통이 끔찍할 텐데도 모려원은 의식을 놓지 않으려 버티며 생사현관 타통 이후의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은천문에 새로운 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의식을 놓치지 않은 대신, 모려원은 울고 있었다.

진무린은 새롭게 열린 혈도를 잊지 않도록 세 번이나 기운을 돌렸고, 마침내 묵룡심법을 완벽하게 모려원의 몸에 심어주었다.

 

**

 

수련을 마친 표충량은 오래 떨어져 있던 아비를 만나는 아이처럼 달려와 사부 은혼에게 몸을 숙였다.

마음 같으면 보듬어 안고 그동안의 수련을 묻고 싶은 것이 은혼의 심정이요, 할 수만 있다면 대뜸 품으로 달려들어 언제 오셨냐고 묻고 싶은 것이 표충량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청강 진인이라면 몰라도, 장문인이자 사부인 은혼이 어찌 반가운 기색을 함부로 내랴.

그것도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 제자를 앞에 두었음에랴.

몇 마디 말보다 월등히 깊은 눈빛으로 제자를 살핀 은혼은 운기를 핑계로 표충량에게 물러갈 것을 지시했다.

“사부님. 제자도 마침 운기를 할 참이었는데 허락하시면 사부님의 곁에서 하고 싶습니다.”

저 마음을 왜 모르겠나.

마음 가는 대로 다독였다가 혹여 버릇이라도 나빠질까를 염려했던 은혼은 표충량의 똘망똘망한 눈빛과 앙증맞은 청에 그만 마음이 스르륵 녹고 말았다.

“그렇다면 공부도 점검할 겸, 오늘은 함께 운기를 하자꾸나.”

그렇게 사부 은혼과 제자 표충량은 함께 마주 앉아 운기에 들었다.

잘 지냈느냐, 뵙고 싶었습니다, 따위의 말은 없었다.

제자 표충량은 사부의 끊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깊은 호흡에 무탈함을 알았고, 은혼은 또 서서히 일어나는 제자의 기운을 보며 나태하지 않았음과 발전을 느꼈다.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운 탓에 흥분했을까.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에 표충량의 기운이 무섭게 치솟는 것을 느낀 은혼은 급히 호흡을 갈무리한 뒤에 눈을 떴다.

‘량아?’

은혼의 눈앞에서 표충량은 열에 들뜬 것처럼 낯빛이 붉게 물들었고, 이마와 볼이 온통 땀에 젖었으며, 심지어 고개와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주화입마에 들었단 말인가!

은혼은 급히 몸을 일으켜 소리 내지 않은 채 표충량의 뒤로 움직였다.

그리고 기운을 한껏 올린 뒤에 표충량의 등에 손을 얹었다.

‘윽!’

하마터면 은혼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짜릿한 기운이 손을 타고 넘어오는데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탓이었다.

표충량의 기운이 은혼의 손길을 거부한다는 증거였다.

어쩔까. 어떻게 해야 하나.

무리해서라도 제자의 기운을 다스려야 할까, 아니면 지켜보아야 하나.

어느 쪽이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 표충량은 주화입마에 들 테고,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정도로 망가지고 만다.

워낙 빠르게 발전하더니!

은혼은 어쩔 줄 모르는 심정으로 표충량을 지켜보며 등선한 청강 진인을 떠올렸다.

‘사부님! 이리 지켜볼 수만은 없어 량아의 기운을 받아들일 참입니다. 주화입마를 받아야 한다면 제자에게 주시고 이 아이를 살펴주십시오!’

각오를 마친 은혼은 호흡을 길게 정리한 뒤에 눈빛을 빛냈다.

사부가 제자를 위해 아낄 것이 무엇이랴.

오냐. 주화입마를 당해야 한다면 사부인 내가 받겠다!

기운을 한껏 끌어올린 은혼이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움찔!

그 모습을 보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표충량의 몸이 움찔했고, 이어 퍼뜩, 퍼뜩, 튀었다.

늦었나? 늦었는가?

놀란 눈으로 표충량을 바라보던 은혼은,

“오오-!”

그만 기다란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이럴 수도 있는가.

어찌 어린아이가 이런 경지를 얻는단 말인가.

땀을 비처럼 흘리는 표충량의 몸에서 자색 기운이 은은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사부님! 보십니까? 보고 계십니까? 드디어 화산에 진실한 매화가 피는 모양입니다!’

은혼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청강 진인을 찾았다.

실제로 표충량에게 자하신공을 전한 은혼도 이 정도의 경지를 이루지 못했으니 화산이 명맥을 유지하는 한, 오래도록 기억될 기사라 할 만했다.

그러니 지금 은혼이 느끼는 감동과 감격한 심정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었다.

“대사형. 사제 문혼입니다.”

사제의 근심스러운 음성이 문밖에서 들렸다.

은혼이 터트린 탄성을 듣고 근심돼 다가온 모양이었다.

은혼은 산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문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문을 살짝 열고 검지를 입에 가져갔다.

‘사제는 조용히 하라.’

급한 데다 흥분했고, 엄한 눈빛에 들뜬 감정이 뒤섞인 은혼을 문혼은 처음 보았다.

그가 “예, 사형.” 하는 답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조용히!’

매처럼 냉정하고 매서운 눈으로 은혼이 재차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문혼은 아차,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기에 이러십니까?’

사제의 눈빛을 본 은혼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안을 가리켰다.

고개를 빼꼼히 집어넣었던 문혼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오!’

사제 문혼의 눈이 그렇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가부좌로 앉아 양손을 다리에 앉은 표충량은 여전히 자색 기운을 내비치는데 아까보다 더 짙고 선명했다.

오성을 이루면 운기 중에 자색 빛을 보인다 했었다.

말로만 듣던 자하신공의 현상 중 하나였다.

‘사형! 본산이 드디어! 드디어 이름을 빛낼 모양입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사제의 눈을 보며 은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사형과 사제는 등선한 사부 청강 진인을 동시에 떠올렸고,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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