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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48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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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48화

은천검제

제148화

 

모려원이 운진의 곁을 지키고 서서 상등과 홍화루를 막연하게 바라볼 때였다.

소능산의 계단을 통해 진무린이 올라섰다.

‘대사형!’

모려원은 반가워하는 와중에도 눈짓으로 운진을 가리켰다.

그녀가 시선으로 가리킨 사당 앞에서 운진은 가부좌로 앉아 있었다.

진무린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당 앞 절벽으로 걸어가 상등을 내려다보았다.

다가가서 곁에 설까?

아니면 운진이 깨어날 때까지 곁을 지키는 것이 좋을까?

겨울 햇살을 온몸에 받은 진무린의 뒷모습을 보며 모려원이 고민할 때, 천천히 고개를 돌린 진무린이 모려원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대사형?’

저 눈빛의 의미를 모려원은 분명 짐작한다.

모려원만 아니라 종무헌도 알고, 은천문의 제자들 대부분이 짐작하며 저렇게 바라봐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

‘사매. 나를 따라 해볼 테냐?’

진무린의 눈빛과 시선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힘들 테지만, 사매가 분명하게 이루리라 믿는다. 그리고 사매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진무린이 가볍게 웃었다는 점이었다.

진무린은 늘 저랬다.

먼저 얻은 깨달음을 자랑한 적 없었고, 때가 되면 사제들과 사매들에게 나눠주었다.

등룡창천을 깨달은 이후, 감히 뒤따를 생각조차 못 할 만큼 저 멀리 올라선 진무린이었다.

그가 묻고 있었다.

도움을 달라고 청하고 있었다.

‘물론이에요, 대사형. 소매가 부족하지만, 대사형이 알려주신 길을 따를 거예요. 검이 거꾸로 꽂힌 길이든, 창과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산이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모려원이 본인의 각오에 울컥해서 눈시울을 붉혔을 때였다.

진무린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진무린은 검을 꺼냈다.

따라 해보라는 건가?

모려원이 급히 검을 잡으려 할 때, 진무린은 고개를 저었다.

‘문주를 방해하지 않도록 지켜보아라.’

진무린의 뜻은 분명했다.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진무린은 모려원의 앞에서 묵룡검법을 펼쳐 보였다.

이미 모려원이 아는 검법이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아쉬움 가득한 검법이기도 했다.

묵룡심법을 얻지 못해 힘을 싣지 못하는 데다 그에 담긴 오의를 깨닫지 못해 그저 모양새 좋은 칼춤과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자세를 세운 진무린은 오른팔을 부드럽게 뒤로 돌린 뒤에 시선과 몸을 따라 돌렸다.

‘대사형!’

모려원은 하마터면 진무린을 부를 뻔했다.

진무린이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한들, 능히 위기를 넘길 사람이었다.

그렇더라도 보법을 밟는 위치가 소능산의 절벽 끝이라 반걸음만 실수해도 아래로 떨어지기 좋았다.

‘적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펼치는 묵룡검법?’

진무린은 절벽의 끝이 항상 발의 앞코나 뒤꿈치에 닿도록 보법을 밟았다.

맹세컨대 모려원이 아는 묵룡검법과는 확연히 다른 보법이었다. 그런데도 진무린이 펼치는 검은 또 분명 묵룡검법이었다.

‘오의다! 대사형이 깨달은 묵룡검법의 오의가 저 안에 담겼어!’

그때부터 모려원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진무린이 펼치는 검에 시선을 집중했다.

삽시간에 모든 초식이 끝났는데 진무린은 다른 말없이 재차 묵룡검법을 펼쳤다.

바뀌었다.

진무린의 묵룡검법이 바뀌어 있었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검이 번쩍이며 모려원의 눈에 담겼다.

두 번째 묵룡검법이 끝났을 때였다.

진무린은 곧바로 세 번째로 같은 검법을 펼쳤는데 이때는 놀랍게도 중간중간에 은천검법과 섬전검법을 섞었다.

앞의 두 번과 다르게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검이 움직이는데 놀라운 것은 단 한 번도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모려원은 모두 잊었다.

상등에 있다는 사실도, 소능산의 사당 앞에서 운진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진무린의 검에 집중했다.

그리고 진무린이 검을 멈추었을 때, 참았던 호흡을 터트리는 것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모려원의 가슴이 쿵쾅대며 뛰고 있었다.

간질간질해서, 상상에서만 펼치던 묵룡검법이 코앞에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직전에 보았던 진무린의 검이 기억 속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탓이었다.

멍한 눈으로 서 있는 모려원을 향해 진무린이 다가왔다.

“보았지?”

“예, 대사형.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소매는 아직 묵룡심법을 깨우치지 못했어요.”

미안해서 한 대답이었다.

진무린은 대꾸 대신 오른팔을 들어 모려원의 목과 어깨의 경계에 얹었다.

모려원은 몰랐다.

그녀의 뒤에 있던 운진이 눈을 뜨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동굴에서 이미 공력을 주었었다. 다시 한 번 더 공력을 전해주마. 눈을 감고 공력을 받아들이되, 내가 펼쳤던 검법을 처음부터 되새겨라.”

“예, 대사형.”

소능산에서 모려원은 눈을 감았다.

곧바로 뜨겁고 웅혼한 진무린의 기운이 목을 통해 모려원의 몸으로 들어섰다.

모려원은 직전에 보았던 묵룡검법을 떠올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기억하는 진무린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목을 통해 들어온 공력이 필요한 혈도를 통해 솟구치고 있었다.

움찔.

모려원의 어깨가 경련처럼 튀었고, 이어 팔이, 또 때론 다리가 그렇게 움직였다.

진무린의 기운은 일각에 걸쳐 모려원의 혈도를 타고 온몸을 돌았다.

세 번의 검을 모두 되새기고 났을 때였다.

진무린에게서 넘어오던 공력이 여운을 남기며 끊겼다.

천천히 눈을 뜬 모려원의 앞에 진무린이 있었다.

‘대사형.’

모려원의 맑고 투명한 눈을 향해 진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늘 가슴에 담았던 진무린이었다.

최근 그 감정이 더 강해졌고, 원예를 본 뒤에는 이상하리만치 조절하기 어려웠다.

설레고, 뭉클하고, 고맙고, 감사한 감정에 휩싸인 모려원이 진무린의 가슴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왜 교주가 공력을 나눠준 것을 보며 애정행각이라 했는지 노도는 이제야 알 것 같소.”

운진의 나직한 감탄이 그녀를 붙들었다.

“공력을 나눠준다는 것이 참으로 애틋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일이구려.”

모려원의 감정을 잘못 이해한 운진의 감탄이 또다시 사당 앞을 메웠다.

 

**

 

새로운 검법을 보였던 전도위는 깨끗한 모습과 새 의복을 갖추고 임운령을 찾았다.

그는 먼저 문주 임운령에게서 진무린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끝에서 진무린이 은천검법과 섬전검법을 이은 검술을 선보였음을 들었다.

“허허허.”

전도위의 첫 번째 반응은 자부심 넘치는 웃음이었다.

“서운하지 않으십니까?”

“이토록 뿌듯한 감정이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인데 어찌 서운할 수 있겠소? 드디어 본문에서 내 뒤를 이을 대사부가 나왔으니 이제 나는 물러나도 되겠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녀석을 따르지 않는 제자가 없으며, 등룡창천을 깨달은 유일한 본문의 사람이오. 나이를 따질 이유는 없으리라 보오.”

“뭔가 오해하신 모양입니다.”

임운령은 넉넉한 표정으로 전도위를 대했다.

“이미 문주 자리를 넘겨주겠노라 했습니다. 그러니 대사부는 다른 제자 중에 기대하셔야 합니다.”

“으하하하.”

오랜만에 문주의 집무실에서 웃음이 있었다.

“그것을 잊고 있었소! 그렇다면 본문 최초로 문주와 사부를 겸한 자가 나오게 되겠구려!”

고개를 갸웃했던 임운령이 재미있다는 투로 전도위의 의견을 받았다. 이어 임운령은 점창과 공동의 일에서부터 두이산에서 벌어진 일들을 전도위에게 전했다.

“지금은 어디에 있소?”

“상등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벽계를 정면으로 상대할 모양입니다. 전 사부께서는 어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검을 전해주십시오.”

“그리하겠소. 내 녀석에게 반드시 힘이 되도록 애쓰리다.”

전도위가 다부진 각오를 냈고, 임운령이 그에 걸맞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정동추를 처음 경험하는 이안공자는 사람들이 왜 저들을 마교라 부르는지를 제대로 이해한 심정이었다.

“그러지 말고 저놈 몸의 상처를 모두 인두로 지지면 어떻겠나?”

“살성이 떨어진 곳만 그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붙어가는 상처에 불을 대면 오히려 염증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있으니 전혀 치료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상식과 이치에도 맞는 일이라 화낼 것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섬도곤을 노려보는 정동추의 눈매가 어찌나 사납던지 저러다가 당장 손을 날려 머리를 부수는 것은 아닌가 염려될 정도였다.

“그까짓 상처에 며칠을 누워 있을 셈이냐!”

“일어나겠습니다.”

“그리하면 겨우 붙은 상처는 어찌하려고? 네놈이 혹시 일부러 그러는 게냐? 오래 누워 있고 싶어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미치지 않을까 싶은 정동추의 독촉이었는데 섬도곤은 또 일상인 것처럼 그 성화를 받아내서 이안공자의 고개를 젓게 했다.

“에이, 천하에 쓸모없는 놈.”

거친 평가를 낸 정동추가 또 소매에서 구환단을 하나 꺼내 섬도곤의 침상에 툭 던졌다.

“예의 따위 차리지 말고 얼른 처먹어! 오늘로 세 개째다. 내일도 또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면…….”

이안공자가 보기에는 ‘네놈의 몸뚱이를 아예 갈기갈기 찢어주마.’ 하는 뒷말을 삼킨 것처럼 보였다.

성난 호랑이가 노려보는 앞에서 섬도곤은 고개를 숙인 뒤에 묵묵하게 환약을 먹었다.

매섭게 노려보던 정동추는 그제야 방을 나섰다.

아무리 마천강기를 익혔다 하나 정동추의 몸에서는 이따금 진득한 마기가 풍긴다.

마기를 처음 경험한 이안공자가 거대한 갓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구환단을 먹었으니 아까 교주님의 말씀대로 상처를 모두 지져도 되지 않겠습니까?”

섬도곤이 뻔뻔한 질문을 건넸다.

이안공자는 맥이 축 빠질 정도로 지치는 심정이었다.

“말씀드렸듯이 오히려 회복을 더디게 할 뿐이오.”

“내일도 못 일어나면 구환단을 하나 더 먹어야 할 텐데 그것이 걱정입니다.”

“구환단이 제법 있는 환약이오? 내가 알기로는 극히 귀하다 들었소만.”

“본교에 모두 열 개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귀한 환약을 개 주듯 던져줬고, 그걸 또 뻔뻔하게 이틀 연속 받아먹었다고?

“그렇다면 대라구환단은 몇 개나 있소?”

“오직 교주께서 두 개 지니셨습니다.”

그토록 귀한 환약이라면, 주는 정동추나 받는 섬도곤이나 좀 더 배려하고,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안공자는 아예 말문이 막혔다.

 

**

 

사당 앞에서 몸을 일으킨 운진은 못내 서운한 얼굴이었다.

“납타이에게 술법을 담아두어서 어느 정도는 득이 있을 줄 기대했는데 전혀 얻은 것이 없소.”

“근처에 없다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소, 진 대협.”

운진은 말을 내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 있다면 옅은 기운으로 잡혀야 할 텐데, 아예 흔적을 느낄 수 없으니 필시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오.”

술법을 모르는 진무린과 모려원은 그런 건가, 하는 투로 시선만 마주할 뿐 다른 말을 내지 못했다.

“전에 다점에서의 일도 있고 해서 납타이가 극도로 조심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어차피 혈교를 찾아갈 참이니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리합시다.”

이제는 내려갈 시간이었다.

아예 안 볼 거라면 몰라도 가뜩이나 갑갑해 하는 호랑이가 홀로 두었다고 날뛰기 전에 가는 것이 좋았다.

“대사형. 저는 검을 잠시 되새기고 내려갈게요.”

“저녁 전에는 내려오는 것이 좋다. 벽계가 근처에 있을지 모르니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면 바로 달려오고.”

“예, 대사형.”

모려원의 뜻을 받은 진무린과 운진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언제쯤 원남으로 향하실 생각이오?”

“그렇지 않아도 내려가는 대로 교주와 의논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산을 내려가는 계단에서 운진이 물었고, 진무린이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수법을 사용했기에 기운을 자를 수 있을꼬.”

그 뒤에 운진은 궁금한 점을 혼잣말로 쏟아냈다.

“문주께서는 그리하실 수 없습니까?”

“피의 술법은 사람의 힘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노도가 사제였던 양묘와의 술법을 끊지 못한 것과 같다오. 매개체가 있다면 그를 죽이는 것으로 없앤다고 하나, 납타이에게 행한 술법은 노도가 그에게 직접 행한 것이라오.”

대꾸한 운진은 확인처럼 아직 천을 감은 검지와 중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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