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38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38화
은천검제
제138화
정도맹으로 돌아온 황종관은 머리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의 몰골이었다.
점창과 공동을 봉문시키고 분열되던 정도맹을 바로잡을 기틀을 마련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그 과정을 홀로 해결했다고 할 만큼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진무린 아니던가.
암연의 연락을 받고 바로 떠난 바람에 인사조차 못 하고 헤어졌다. 못내 아쉬워하는 참에 느닷없이 마교의 교주를 지킨다는 보고가 들어오더니 이어 삼보를 지녔다는 소문이 돌며 강호를 온통 혼란에 빠트리고 있었다.
“두이산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윤 단주는 어디에 있지?”
“급변하는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장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윤고상 단주의 처신에 관한 비월단 부단주의 보고는 나무랄 데 없었다.
“두이산에서 교주를 지키는 것은 분명히 확인된 사실인데 이유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른다?”
“그렇습니다, 맹주.”
“새로운 소식이 들리면 때를 가리지 말고 바로 알려주게.”
“알겠습니다.”
비월단 부단주를 내보낸 황종관은 복잡한 머릿속을 쓸어내리는 것처럼 얼굴을 몇 차례 문질렀다.
“마교의 교주를 지키다니. 그것도 삼보를 지녔다는 소문과 함께 말이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보고인데 현실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짐작조차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삼보를 찾아 나서기만 해도 무림공적으로 낙인 찍겠다는 것이 정도맹의 방침이었다.
그것으로도 칠대 문파가 모두 들고 일어날 형국인데 다른 곳도 아닌 마교요, 장로나 원로도 아닌 교주 정동추를 지킨다고 들었다.
“후-.”
황종관은 답답한 속을 한숨에 담으며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화산과 아미에게 마교를 방문하겠노라 약속했던 진무린이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점창과 공동을 봉문한 것에 관해 누구도 항의하기 어려웠을 텐데 진무린은 그 유리한 정황을 한순간에 뒤집어서 더할 수 없는 불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어쩌자는 건가?
황종관이 책상에 손을 짚은 채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맹주!”
조금 전에 나갔던 비월단의 부단주가 급하게 그를 찾았다.
“무당과 종남, 소림, 화산, 그리고 하북의 팽가에서 두이산을 향해 출발했다는 보고입니다.”
보고를 들은 황종관은 비수로 옆구리를 찔린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책상을 짚고 있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뒤에 선 부단주에게 속을 읽힐 뻔했다.
“알았네.”
황종관이 이를 깨물며 낸 대꾸에 부단주가 급히 방을 나섰다.
염려하던 일이 이리 빨리 벌어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정도맹의 맹주 황종관은 두이산으로 출발했다는 문파를 막을 방법과 명분이 없었다.
하기는.
마교와 강호삼보라니, 이토록 정도문파가 나서기 좋은 명분이 또 어디에 있겠나.
강호의 평화를 위한답시고 나섰겠으나 운 좋게 강호삼보를 얻어 최고수가 되겠다는 욕심쯤 모두 가슴에 품었으리라.
그런데 말이다.
혹여 저리 나선 문파들과 팽가의 주요 인물이 다치거나 죽게 되면 악을 바락바락 써대며 진무린을 무림공적으로 지정하자고 주장할 것 또한 불을 본 것처럼 분명한 일이었다.
“긴 밤이 되겠어.”
혼잣말을 뱉어낸 황종관은 책상에 짚고 있던 손을 들고 자세를 바로 세웠다.
“죽을 길이든, 살길이든, 함께 가기로 했으니 이번은 흔들리지 말아야지. 안 그런가, 황종관?”
그는 책상 뒤로 움직여 도를 집었고, 황가의 가신들을 부르는 연통줄을 세차게 당겼다.
**
삼보가 도대체 무엇인데 목숨보다 중할까.
두이산의 아래에는 벌써 이십여 명이 죽어 널브러졌고, 아직도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가장 독보적인 무위를 자랑하는 존재는 귀령화자 목순이었다.
그의 손에 부채를 흔들던 추송완이 죽어 넘어졌고, 금진표는 목이 부러져 널브러졌으며, 불문선자 현소조는 입가에 피를 잔뜩 머금은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싸움은 넷이 했는데 죽은 숫자는 이십여 명을 넘어섰다.
혼전 중에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던 하수들이 목순의 주먹과 현소조의 채찍에 당한 탓이었다.
“이래도 아직 욕심을 부린단 말이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삼보를 손에 쥐었나 싶을 정도로 목순은 득의양양이었다.
“퉤!”
현소조는 먼저 보란 듯이 입에 물었던 피를 뱉어냈다.
“늙은 것이 뭘 처먹고 그리 팔팔한지는 몰라도 본녀의 채찍에는 아직 펼치지 못한 것이 있다!”
“계집이라고 봐줬더니?”
“늙은것이라 사정을 둔 것은 모르는 모양이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현소조를 향해 목순은 이를 뿌드득 악물고 단박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는 특이한 궤도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불쑥 기묘하게 틀어질 때면 속도나 위력이 대단해서 현소조도 당장 함부로 맞서지 못했다.
목순이 연달아 휘두른 주먹을 피해 연신 상체를 숙이거나 뒤로 젖히며 위기를 벗어나던 현소조가 돌연 채찍을 뿌렸다.
쉬이이익! 파앙!
그러면 또 이때만큼은 목순도 급하게 몸을 빼곤 했다.
단숨에 죽일 것도 같은데 위기 때마다 달려드는 채찍에 뜻을 이루지 못한 목순이 재차 이를 갈아댈 때였다.
“흐하하하하하!”
어두운 밤하늘을 울린 웃음이 두이산을 뒤덮었다.
목순과 현소조, 그리고 몸을 숨긴 백여 명의 사파 인물들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퍼러러러럭!
요란한 옷자락 소리와 함께 마른 나뭇가지를 밟은 중년 남자가 목순과 현소조 사이에 내려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젠장.’
목순은 올라온 욕지기를 꿀꺽 삼켰다.
광연살왕 표음환을 상대로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목순조차 삶을 장담하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표음환은 뒷짐을 진 자세로 주변을 오만하게 둘러보았다.
“여우 두 마리가 왕 노릇을 하느라 분주했던 모양이구나?”
“누가 여우일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 아니겠어요?”
말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현소조가 표음환에게 대꾸한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커흑!”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표음환이 현소조의 목을 움켜쥐었다.
“네년이 여우인 것은 이제 알았겠지?”
심지어 표음환은 현소조의 목을 움켜쥐었는데도 아직 왼손을 뒤에 두고 있었다.
어쩔까? 이 기회를 노릴까?
목순이 눈알을 굴리며 표음환의 등을 노려볼 때였다.
콰드드득.
현소조의 목이 기괴하게 꺾이며,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자, 다음은 늙고 가진 것 없는 불쌍한 여우 차례인가?”
표음환은 다시 뒷짐을 진 자세로 목순을 향해 몸을 돌렸다.
**
내내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직전에는 거대한 웃음이 두이산을 뒤덮었다.
“별것 아닌 놈이 참 요란하게도 등장하는군.”
표음환이 들었다면 당장 목을 부러트리겠다고 달려들 정도로 정동추의 평가는 야박했다.
누군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동추는 웃음에 담긴 내공을 읽은 모양이었다.
그때 진무린은 일호살과 이호살, 삼호살, 그리고 수라항천대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달려들 모양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었다.
아래쪽에서 벌어진 싸움이야 그렇다 쳐도 동굴을 둘러싼 정상교 무리가 길을 트기 좋게 자리를 잡는 모습이 그랬다.
“꼴을 봐하니 자네가 달려 나가기를 바라는 모양일세.”
“밑에서 소란을 피우는 무리를 이쪽으로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야 내가 상대해도 충분한 수준 아닌가. 웃음에 담긴 기운을 보면 정도라기보다 사파에 속한 인물 같던데?”
정도무인이 아니라 죽이기에도 마음 편하다는 투로 정동추가 말을 뱉어낸 다음이었다.
진무린은 일호살과, 이호살, 삼호살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셋이 넓게 벌렸고, 그 사이에 수라항천대의 대주와 대원들이 끼어든 형태였다.
밑에서 소란을 피우는 무인들을 보내도 좋고, 아니면 진무린이 틈을 이용해 동굴을 떠나도 나쁘지 않고.
진무린은 다시금 정상교 무리를 쭉 둘러보았다.
힘을 분산했는데 범위는 또 넓게 벌려 섰다.
춘설난무를 펼쳐라.
정상교 무리가 원하는 바는 분명했다.
수라항천대가 진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방어를 용이하게 서 있는 모습이나, 정상교가 뒤로 살짝 빠져있는 모양새만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파훼법을 알았든가, 아니면 춘설난무를 통해 원하는 바가 있든가.
**
광연살왕 표음환이 목순을 비릿하게 바라볼 때였다.
“보시오.”
칠호살이 아래로 내려와 두 사람을 불렀다.
몸을 숨긴 백여 명의 사파인들이 귀를 쫑긋하게 세운 채 칠호살에게 집중한 다음이었다.
잠시 여유를 가진 그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본교는 삼보를 소유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소.”
“그걸 믿으라는 거요?”
“흠흐흐흐.”
표음환의 대꾸에 칠호살은 먼저 웃음을 먼저 흘렸다.
“내 몰골을 보시오. 본교의 상위 자리인 내가 이 꼴이 되었다면 그것이 말하는 바가 무엇이겠소?”
표음환은 칠호살의 의중을 알아채지 못한 눈빛이었다.
“진무린이란 자가 벌써 보물의 무공을 일부 얻은 모양이오. 잠시 뒤에 우리가 먼저 그를 공격할 텐데 그때면 증명될게요.”
칠호살이 넉넉하게 제안하자 주변이 술렁였다.
“눈부신 빛줄기가 그의 검에서 쏟아지는데 그것이 모두 검기요. 이것이 진정 사람의 무공이라 할 수 있겠소?”
“검기를 빛줄기처럼 쏟아낸다 하셨소?”
이때는 표음환도 놀라 칠호살의 설명을 붙들며 반문했다.
“검기가 뒤덮는 반경을 보면 본교조차 고개를 저을 지경이오. 놀라운 것은 고작 반나절 조금 넘게 보물을 소지한 것만으로 그런 힘을 얻었다는 것이오. 만약 사흘을 지니면 강호에서 그를 대적할 집단은 없으리라 감히 장담하오.”
목순이 삼킨 마른침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표음환이 눈을 부라린 다음이었다.
“일각 뒤에 우리가 먼저 달려들 테니 뒤에서 준비하다가 그가 튀어나오면 상대하시오.”
“튀어나오지 않으면 어쩌시려오?”
“길을 열어드리리다. 그리고 뒤를 돕겠소. 이리하면 본교가 보물에 욕심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표음환은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하나만 물읍시다. 그렇다면 왜 교주가 진무린이란 자와 함께 있소?”
“과연 날카로우시구려.”
과장된 반응을 보인 칠호살이 말을 이었다.
“본교의 교주께서는 진무린이란 자가 다른 보물을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신 모양이오. 소교주에 오르실 분이 만류하는데도 천륜마저 거부하며 저렇게 버티니 부끄럽고 참담하지만, 힘으로라도 교주를 모셔갈 참이오.”
“그렇다면 혼전 중에 교주가 나설 수 있는 일 아니오? 혹시 본인이 교주를 공격하는 일이 생기면 어찌 되오?”
“본교는 보물을 얻을 마음이 없는 데다 오히려 교주를 말리기 위해 나선 것이니 전혀 개의치 마시오.”
칠호살은 막힘이 없었다.
“보장을 원한다면 소교주에 오르실 자제분께 직접 들으시구려.”
“흐음.”
신음처럼 숨을 뱉어낸 표음환이 마침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뜻에 따를 테니 앞장서시오.”
“다시 말하지만 진무린이란 자가 펼치는 검기가 워낙 강하고 범위 또한 넓소. 그러니 증인으로 삼을 겸해서 숨어 있는 분들도 함께 갑시다.”
힘없는 놈들을 끌고 가서 검기에 죽게 하자.
그러면 위력도 증명되고 진무린이 보물을 지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게 아니냐.
표음환의 눈을 들여다보며 비릿하게 말을 건네는 칠호살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소.”
표음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칠호살이 몸을 돌렸고, 숨어 있던 무리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
정동추 역시 수상하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저놈들이 노리는 게 자네인 것은 분명해 보이네.”
“춘설난무를 펼치라고 꼬드기는 모양새입니다. 또한, 저 틈을 뚫고 나가도 괜찮다는 태도입니다.”
뒷짐을 지고 있던 정동추가 손을 내렸다.
분위기로 봐서 달려들기 직전이라 한바탕 혈전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그 직후였다.
“저놈은 표음환 아닌가?”
아래에서 표음환을 비롯한 한 떼의 무리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구경꾼까지 데려온 것을 보면 더 말할 필요 없겠습니다.”
“어쩔 텐가?”
“싸움을 피할 방법이 있습니까?”
“없지.”
정동추의 답은 단호했다.
“저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동굴 말이지?”
진무린의 의도하는 바를 정동추는 바로 알아들었다.
포위를 당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섬도곤이 위험하지 않다면 춘설난무를 펼치지 않아도 저들을 막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만 더 묻지. 왜 이렇게까지 하나?”
“궁도를 함께 상대하자고 했던 분이 누군지 기억하십시오.”
“본교를 내놓으란 말처럼 들리는군.”
짧은 대화의 끝에서 새롭게 올라온 무리가 정상교의 뒤편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족히 백 명이 넘는 숫자였다.
“자네가 검기를 안 보이면 많이 실망할 텐데?”
“대신 좀 더 처절한 싸움이 될 겁니다.”
“그야 내가 바라는 바지.”
내내 침묵하던 호랑이가 마침내 분노한 것처럼 정동추의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