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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32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은천검제 132화

은천검제

제132화

 

먼저 입을 연 것은 원예였다.

“진 공자의 지시를 전해주신다고 들었어요.”

“대사형께서 암중세력을 상대로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실 예정이에요.”

“본녀에게는 벽계라고 표현하셔도 돼요.”

조언 같기도 하고, 지적 같기도 한 원예의 말에 모려원은 변화가 없었다.

“사제를 귀혼곡으로 보냈어요. 그곳에서 이안공자께 도움을 청할 생각이고, 암연과는 별개로 홍화루가 얻는 정보를 이용하고 싶어 하세요.”

“이안공자에 관해 아시나요?”

“뵌 적은 있지요.”

원예가 질문했고, 모려원이 숨 쉴 틈 없이 답했다.

이안공자에게 비밀이 있는데 그걸 아느냐는 질문이었고, 굳이 알아야 하냐는 의미의 당찬 답이었다.

“모 소저는 어디에서 머무실 생각이세요? 괜찮으시면 민가가 하나 있는데 그곳이 어떠실까요?”

“소능산에 사당이 있어 경치가 훌륭한 데다, 운기하기에 적당하다고 들었어요.”

“진 공자께서 알려주시던가요?”

“대사형이시니까요.”

원예가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바쁜 루주에게 실례가 많았습니다.”

“진 공자의 일이라면 언제고 괜찮아요.”

모려원이 일어섰고, 원예가 비슷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시 뵐게요, 모 소저. 설란! 모 소저를 배웅해드려.”

“다시 보죠, 루주.”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모려원은 몸을 돌렸고, 원예는 그 자리에서 꼿꼿하게 서서 배웅했다.

설란의 안내를 받은 모려원은 곧장 일 층을 향해 움직였다.

아래에 백섭광이 모려원을 알아보고 계단 앞에서 움직여 기다렸다가 문 앞까지 함께 걸었다.

“저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적당히 해결했어요. 안내해줘서 고마웠어요.”

“살펴가십시오, 모 소저.”

백섭광은 물론이고, 설란과도 짤막하게 인사를 나눈 모려원이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홍화루의 앞이었다.

“진 공자의 사매 분이 저렇게 미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소매를 늘어트린 설란이 소능산으로 향하는 길을 향해 탄식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

 

겨우 준비된 요리를 섬도곤이 가져오면서 저녁을 해결한 뒤였다.

“오늘은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무린이 현명한 제안을 꺼냈다.

부스스 일어난 녹림도 몇이 기다시피 객잔을 나선 후라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엉망진창인 객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 않은 점도 있었다.

“자네는 원래 그렇게 뒤로 물러나는 성격인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힘없는 자가 아니라 녹림도일세. 애초에 깨끗하게 처리했다면 뒷일을 걱정하지 않았을 텐데 몸을 빼내는 놈들을 살려두라는 건 또 뭔가?”

“굳이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네더러 하라든가? 이놈에게 맡기면 깔끔하다니까.”

답답한 투로 정동추가 말을 냈으나 함께 지내는 며칠 동안 몇 번이나 반복했던 충돌이라 진무린은 아예 화제를 바꾸었다.

“유가장에 들른다고 해서 그들이 천서유기를 순순히 내줄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 부분은 맡겨두게.”

“구정봉이 유은방의 아들이었다면 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도 없습니다. 혹여 협박이나 강제로 탈취할 생각이라면 포기하십시오.”

“그러지.”

워낙 쉽게 답하는 것이 수상했으나 진무린은 다른 말을 내지 않았다.

“자네는 삼보에 담긴 세 가지 내공과 무공을 익혀 구관을 열어주면 되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중 하나에 이놈을 넣어주면 만족하고.”

“그렇게 하면 섬도곤이 교주와 비슷한 무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정도 무림에 일곱 명의 고수가 태어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정동추는 고민조차 없이 진무린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협박이나 강탈이 아닐 것, 강호에 삼보에 관한 소문이 일어나지 않을 것, 그 두 가지 아닌가. 그 점은 맡겨두게.”

확실히 아직 진무린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눈치였다.

교주와 교주 아들보다 섬도곤이 강해질 수 있고, 정도 무림에 엄청난 고수 일곱 명이 새로 생겨나는 것에도 정동추가 상관없다는 이유가 무얼까.

“자. 그렇다면 삼보를 얻는 일에는 동의한 것이라고 봐도 되겠지?”

정동추의 질문에 진무린은 답을 하지 못했다.

정도 무림이 금하는 삼보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걸렸고, 다음으로 과연 정동추의 계획대로 벽계를 상대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암연을 통해 문주에게 의논해볼까?

아무리 빨라도 이틀 이상 걸리는 터라, 그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내일 아침에 결정하겠습니다.”

“절차가 복잡하군.”

못마땅한 기색이었으나 정동추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귀혼곡에 종무헌과 운진이 도착했을 때, 가장 반기는 인물은 백면호리였다.

“누추한 곳에 어쩐 일이시오?”

그는 이안공자와 기인촌 촌민들이 사는 곳을 말 한마디로 누추하게 만들며 두 사람을 반겼다.

“대사형께서 전하라는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전해야지! 전해야지!”

사람 구경을 못 해 미치기 직전인 것처럼 백면호리는 호들갑을 떨었다.

운진과 종무헌은 먼저 이안공자의 거처로 움직여 그와 조용하게 마주 앉았다.

“들었던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종무헌은 공동에서 나와 진무린에게 들었던 내용들을 이안공자에게 전해주었다.

“루주께서 구주에 관한 이야기를 귀혼곡에서만 나눌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대사형께서는 벽계를 상대하고자 하시는데 먼저 구주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는지, 다음으로 이안공자께서 힘을 보태주실 것인지에 관해 여쭈라 하셨습니다.”

종무헌의 말이 끝난 뒤였다.

“노도도 한 말씀 드리겠소. 진 대협께서는 노도가 혈교를 상대하려는 것 역시 이안공자와 의논하여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빠른 일이라 하셨는데 혹 도움을 주실 수 있겠소?”

운진이 품었던 청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지금 홍화루에 모 소저가 계시오?”

“그렇습니다.”

이안공자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홍화루의 역할은 정보를 얻는 것과 귀혼곡의 운용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오. 정보야 암연이 있을 테고, 진 대협께서 자금이 아쉽지 않을 테니 모 소저를 홍화루에 보낸 것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라는 뜻이라고 보았소.”

이안공자는 먼저 진무린의 의도를 풀어냈다.

“그렇다면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도 그렇다고 보십니까?”

“진법이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어서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오. 진 대협께서 의지하는 곳 중에서 홍화루와 이곳 귀혼곡만이 무력을 갖추지 못해서 그렇다오.”

“그렇다면 노도의 경우는 어떤 이유라고 보시오?”

“혈교를 상대하신다는 것의 의미를 먼저 들려주시면 답하겠습니다.”

운진은 납타이를 끝으로 강호에서 사악한 술법을 없애려 한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납타이를 끌어낼 필요가 있군요.”

“그리해준다면 노도가 어떤 수를 쓰든 해결하겠소.”

대화는 짧지 않았다.

이안공자의 거처에 등불과 초를 켜놓고 시간을 보냈는데 그 추운 날에 백면호리는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처럼 자꾸만 안을 기웃거렸다.

“저리 급할까?”

“무슨 이유로 저러는지 아십니까?”

종무헌의 질문에 이안공자는 대화 후 처음으로 가벼운 웃음을 보였다.

“요정이 소수음공을 익혔는데 그 성장이 놀랍소. 아마도 종 소협이 급히 귀혼곡을 떠날 것인지 궁금하고,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공을 봐달라기 위해 저럴 것이오.”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나 저는 무공을 봐줄 수가 없습니다.”

설명을 들은 종무헌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궁금해하는 이안공자와 운진을 향해 종무헌이 말을 이었다.

“본문은 제자들이 강호에서 함부로 무공을 전하거나 조언하지 못하도록 정해놓았습니다.”

“종 소협. 트집을 잡자는 것이 아니라 진 대협께서는 요정의 무공을 이미 수차례 보아주셨는데 그 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소?”

“언제 있었던 일입니까?”

이안공자는 민가에서 요정이 가르침을 받았던 일을 종무헌에게 들려주었다.

“당시에 제가 있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필시 풍령관이든, 다른 곳에서 문주께 허락을 받았을 것이라 여깁니다. 참고로 본문은…….”

답을 하던 종무헌이 퍼뜩, 떠오른 것이 있는지 빙그레 웃고는 뒷말을 삼켰다.

“무공을 알려줄 수는 없으나 비무를 하는 것은 괜찮으니 그 선에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소, 종 소협.”

대강 대화가 끝났다.

거처로 안내하려는 이안공자와 종무헌, 운진이 밖으로 나섰을 때 백면호리가 바싹 다가섰다.

“당분간 여기 계신다니 할 말이 있거든 내일 오전에 합시다.”

“그래? 그렇다면야 뭐.”

반은 반갑고, 반은 서운한 얼굴로 백면호리가 함께 걸었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성장이 워낙 빨라. 지금은 나 잡아봐라, 하면서 달리는 수련을 하는데 글쎄 벌써 내가 몇 번이나 위기를 맞았지 뭔가?”

거처로 향할 때까지 백면호리의 입은 쉬지 않았다.

“진 대협이 봐준 이후로 나날이 발전을 보이는데 글쎄.”

“자, 그럼 문주와 종 소협께서는 우선 여독을 푸십시오.”

끝이 없을 것 같은 백면호리의 입을 이안공자가 능숙하게 막았다.

 

**

 

모려원은 소능산의 사당 앞에서 상등을 바라보았다.

즐비하게 늘어선 기와지붕의 저 끝에서 화려한 등으로 치장한 홍화루가 원예의 태도를 흉내 내는 양 꼿꼿하게 서 있었다.

모려원이 본 원예는 고혹적인 느낌과 냉정한 바탕에 품격과 위엄을 지닌 여인이었다.

삼 층 전각의 창을 보며 모려원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진무린의 의도는 홍화루를 들른 이후에 분명하게 알았다.

‘협조를 구하고, 그 길에서 상등을 지켜다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귀혼곡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너무하네.”

원예가 미인이라서 모려원에게 피해 끼친 것 없다.

그냥 대사형인 진무린이 모려원의 가슴에 자리한 것뿐이다.

진무린은 짐작조차 못 할 감정을 누르느라 모려원은 재차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잡생각을 떨쳐야 운기라도 할 텐데, 홍화루의 3층 전각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

 

불빛이 은은한 가운데 원예는 창가에 서서 소능산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귀혼곡에서 전하는 말을 들었지만, 모려원의 미모가 저 정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총명한 눈, 강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무공, 진무린과 이십 년 넘게 수련한 세월까지, 모려원은 원예가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갖춘 여인이었다.

그림 속에 있던 여인이 세상에 나온 것처럼 총명함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뿍 담은 모려원이 원예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진무린이 사매를 말하며 미모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더니 그것이 진실일 줄은 정말 몰랐다.

“잘된 거야.”

원예는 나직하게 혼잣말을 뱉었다.

어쩌면 진무린이 모려원을 보낸 이유에 잠시나마 기울었던 마음을 바로잡으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지켜주마.

대신 너의 모습을 돌아봐라.

진무린의 음성이 들리는 듯해서 소능산을 바라보던 원예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산에서 밤을 보내겠다는 진무린을 따라 결국 정동추와 섬도곤도 움직였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모처럼 운기에 들어 시간을 보냈다.

밤은 길었으나 새벽은 정해진 것처럼 다가왔다.

운기라고 하나 소주천을 몇 차례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다.

진무린과 정동추 모두 혹시라도 무의식중에 기운을 뿜어낼까 깊은 운기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사위가 뿌옇게 변하고, 모닥불이 하얀 연기를 피워낼 때, 내내 진득한 마기를 뿜어내던 섬도곤이 특별한 기운을 선보였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섬도곤의 몸 안에 오행신위가 숨어서 다섯 가닥의 기운을 풀어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섬도곤이 오행신위의 기운 다섯 가지를 모두 쏟아낼 수 있지?

섬도곤을 돌아보기 위해 눈을 뜬 진무린과 고개를 돌리던 정동추의 시선이 마주쳤다.

‘멍청한 놈.’

며칠 함께 지낸 덕분에 그의 눈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게 알았다.

‘저놈이 깨어나면 설명해줌세.’

그는 또 진무린을 향해 지쳤다는 표정으로 뜻을 전했다.

무공 실력과 별개로 마교의 구렁이를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문주 임운령쯤 달려와 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까지다.

궁도의 이름을 팔아 따라오기는 했으나 마교의 교주와 삼보를 찾는 것은 지금 함께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진무린이 모닥불에서 피어나는 하얀 연기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 직후에 정동추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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