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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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90화
은천검제
제90화
진무린은 깊고 무거운 눈빛으로 구양강을 노려보았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런데 구양강은 유성직하와 천지경단의 초식을 연달아 보였으니 이는 진무린이 전에 사용한 은천문의 검법이었다.
‘백 장로.’
진무린이 이를 뿌드득 갈 때, 임운령은 참담한 얼굴로 입술에 힘을 주었다.
문주가 되어 무공이 유출된 것도 부끄러울 판인데 그것을 보란 듯이 구양강이 구사하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나.
“시간이 더 필요하냐?”
이죽대던 구양강의 눈빛이 번득했다.
그와 동시에 그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쉐에엑! 쉑쉑!
참담한 대결이 이어졌다.
이때 구양강은 은천검법은 물론이고, 섬전검법마저 완벽하게 펼쳐내니 백승이 은천문을 아예 팔아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은혼과 현절은 진무린과 구양강이 구사하는 검법이 같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거기에 틈틈이 구양강은 본인의 도법과 잠력을 폭발시키는 터라 단박에 진무린은 곤경에 빠졌다.
진무린이 등룡창천과 은천수호검을 얻지 못했다면, 필시 낭패를 보았을 테고, 만약 임운령이 구양강을 상대했다면 끔찍한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불리한 대결이었다.
쉑! 카앙! 쉐엑! 쉑쉑쉑! 카가강!
번득이는 도가 눈앞에서 춤을 추는데 구양강은 진무린의 검을 완벽하게 읽은 채로 빈틈을 노렸다.
화아악! 쉐에엑! 쉑쉑쉑쉑!
게다가 진무린이 검을 회수하는 그 찰나를 노리고 잠력을 폭발하니 위태로운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양강 역시 아직 결정적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진무린의 능란한 움직임을 누를 비장의 한 수를 낼 법도 하련만, 그는 인내를 발휘하며 공방을 이었다.
그는 분명 기다리고 있었다.
진무린이 등룡창천의 기운을 펼칠 그 순간을 말이다.
임운령은 실로 참담한 심정으로 진무린과 구양강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비장의 검법 두 가지가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구양강 수준의 적을 상대로 은천문의 무공이 더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현실이었다.
대결을 통해 아무리 눈에 익혔다 해도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위력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검법이요, 초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은천검법과 섬전검법의 검법과 변화가 만천하에 공개된 꼴이니 십 년 안에 삼류무관에서도 은천문의 검법을 수련하게 되지 않겠나.
직전에 상대했던 구양강의 도가 익숙한 듯 빈 곳을 파고든 이유도 이제는 알겠다.
진무린이 없었다면, 지금쯤 임운령은 구양강에게 팔이나 다리를 잃은 채 비통한 숨을 내쉬었을 게 분명했다.
화아아악! 쉐에엑! 쉑쉑!
잠력을 터트린 구양강의 도를 피해 진무린이 빙글 돌았다.
‘어찌할 생각이냐.’
그가 보기에 진무린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 한 수를 위해 이 위험천만한 순간을 감당하며 지루할 정도로 긴 사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등룡창천을 아껴가며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은천문의 미래요, 오늘 혈전을 감당할 유일한 대안인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무엇이 너를 이토록 인내하게 하느냐.
임운령이 입술에 힘을 준 채 바라보는 앞에서 진무린은 여전히 고지식할 만큼 은천검법과 묵룡검법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쉐에엑!
구양강의 도가 아래를 쓸어온 직후였다.
진무린은 보란 듯이 허공에 몸을 띄우며 피했다.
몰리는 대결에서 허공에 몸을 띄웠으니 구양강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자! 구양강! 내놓아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진무린이 던진 도발이었다.
쉑! 쉑쉑!
그러나 구양강은 광가신의도법을 펼칠 뿐, 결정적인 기회를 외면했다.
후아악. 쉐에에엑.
그러면서 그는 잠력을 터트려 진무린을 꼬드겼다.
‘잠력을 펼친 직후가 기회다. 이것도 모른단 말이냐.’
쉑! 카앙! 쉐엑! 쉑! 카강!
다급한 쪽은 진무린이었다.
은천문의 검법이 모두 공개된 마당이었다.
게다가 엉킨 기혈 탓에 대결을 오래 끌수록 내공의 순환이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직 하후도가 멀쩡히 남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아팠다.
쉐에엑! 피윳!
잠시나마 생각이 흩어진 탓일까.
처음으로 구양강의 도가 진무린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퍼럭! 쉑!
뒤로 훌쩍 물러난 구양강이 도를 대각선으로 그은 뒤에 비릿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진무린을 보았다.
‘어떻게 할 참이냐?’
그가 오히려 요구하고 있었다.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진무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구 관주. 원하는 것을 보여주지.”
“흥! 등룡창천을 말하는 것이라면 어림없다. 내가 용의 목을 자르고 열린 하늘을 닫아주마.”
기다리는 순간을 맞아 흥분한 기색이었다. 구양강은.
진무린이 등룡창천의 초식을 사용하는 이 순간에 말이다.
최후의 한 수를 앞둔 팽팽한 긴장이 풍령관을 휩쓰는 순간이었다.
“등선하신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 있다.”
잔잔한 은혼의 말이 주변에 울려 나왔다.
“본파와 은천문의 검이라면 이미 검법의 고하를 넘어선 경지이다. 그 뒤는 누가 더 몸에 익혔는가의 대결이다. 익히 아는 한 수를 내는데 절대 피할 수 없으니 그것을 우리는 성명절기라 부른다.”
다른 사람 아닌 은혼의 말이었다.
저것이 혹 화산의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인가 하는 눈으로 구양강마저 은혼에게 집중했다.
“이제 진 대협의 성명절기를 보게 될 것이다. 마교의 내공을 줍고, 은천문의 검법을 흉내 낸 구 관주는 절대 상대하지 못하는 터라 반드시 목을 잃는다. 너희는 그 장면을 눈에 새겨 앞으로 공부에 목표로 삼도록 해라.”
“예, 장문인.”
기껏 집중했더니 구양강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다.
“이익!”
구양강이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관주는 하찮은 도사의 도발에 평정을 잃지 마시오.”
하후도의 조언이 나직하게 나왔다.
그 직후였다.
“은혼 장문인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본파는 마교에 빌붙은 관주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기뻐할 것이며, 발 빠른 무랍의 목마저 잘라준다면 감사의 의미로 진 대협의 앞길에서 세 번 양보하겠습니다.”
아미의 장문인 현절의 말이 있었다.
시비가 생길 때, 진무린의 의견을 무조건 세 번 수용한다는 내용도 놀라웠지만, 구양강과 기회를 틈타 몸을 빼낸 무랍을 이죽거리는 느낌을 확실하게 담았다.
목이 잘린다는 확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현절의 이죽거림 탓이었을까.
얼굴이 붉게 물든 구양강의 몸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운이 거세게 일어났다.
‘마기!’
우우우우우우웅!
진무린은 묵룡심법을 검에 세차게 불어넣었다.
“크하하하하하!”
풍령관 전체가 울릴 정도로 광대한 웃음을 터트린 구양강의 얼굴이 완벽하게 변했다.
눈은 피가 고인 듯 붉어졌고, 입 끝은 귀에 닿을 정도로 찢어졌으며, 흐트러진 머리칼이 하늘로 뻗쳤다.
그가 뿜어내는 기운이 얼마나 강대한지 소매마저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었다.
아직이다.
상단전을 여는 것은.
진무린은 먼저 묵빛 기운을 뿜어냈다.
구양강은 아수라와 같이 섬뜩한 모습으로 마기를 뿜어내고, 진무린은 묵빛 기운으로 그에 맞서는 터라 흡사 악귀와 천신의 대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등룡창천 따위!”
검을 늘어트린 진무린을 향해 구양강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와아악!”
쉐에에에에엑!
광기에 사로잡힌 고함과 함께 구양강이 달려들었고,
후우우욱!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진무린이 마주쳐나갔다.
카아앙! 카가강!
귀를 찢을 것처럼 엄청난 충돌음이 터졌고, 진무린의 내공과 구양강의 마기가 충돌하는 순간에 바닥의 흙이 둥글게 퍼져 나왔다.
쉐엑! 쉑! 쉐에엑! 쉑!
파고드는 검을 피해 구양강이 상체를 젖혔고, 도가 벼락처럼 내리꽂힐 때면 진무린이 몸을 뒤틀었다.
임운령은 이제야 구양강이 감췄던 한 수를 짐작했다.
무시무시하게 변해버린 인상, 등룡창천을 펼쳤음에도 뒤지지 않는 도의 움직임, 그리고 진득하게 풍기는 마기, 더 설명하지 않아도 그는 마교의 대표적인 심법 대천마라공을 운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마교의 장로급 이상이 되어야 익힌다는 대천마라공이었다.
풍령관이 마교의 분타였던가?
임운령, 은혼, 현절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악!”
아수라의 현신처럼 흉측하게 얼굴로 도를 휘두르던 구양강이 괴물처럼 고함을 질렀고,
후아아아악!
대천마라공을 운용한 상태에서 구양강이 재차 잠력을 터트렸다.
흙먼지가 일행을 향해 훅, 달려드는 순간에 번득, 구양강의 도가 진무린을 파고들었다.
구양강의 선택은 분명했다.
카각! 카가가각! 카가강!
대천마라공을 이용해 내공의 우위를 차지하고, 그것이 부족하다면 잠력을 폭발시켜서라도 진무린을 누르겠다는 의지였다.
놀라운 것은 진무린의 대응이었다.
카가가가각! 카가가각!
구양강이 잠력을 터트린 이후에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확연하게 바뀌었다.
‘그렇지!’
임운령이 고개를 끄덕였고, 하후도는 아쉬운 듯 입술에 힘을 주었다.
강력한 구양강의 내공에 맞설 필요가 무에 있겠나.
지금처럼 비켜서 밀쳐내며 그 힘을 흩어놓으면 될 일이다.
검의 운용은 진무린이 앞섰고, 대천마라공을 운용하는 와중에 수시로 잠력을 터트리는 구양강이 내공의 우위를 차지한 대결이었다.
‘이것이었더냐.’
임운령은 불쑥 올라오는 대견함과 감동을 감추려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섣불리 등룡창천을 사용했다면 대천마라공에 더해 잠력마저 터트린 구양강의 내공을 정면으로 감당해야 한다.
내상을 입는 것은 당연하고, 혹여 피라도 뱉어낸다면 어찌 지금의 저 무시무시한 기운을 감당했겠나.
은혼의 말과 현절의 비아냥에 구양강이 흥분한 것도 있지만, 진무린은 등룡창천을 펼친 순간에도 인내의 끈을 놓지 않는 비범함을 보였다.
카가가각! 카가각!
소리는 요란하나 승부는 이미 난 것과 다름없었다.
“우아아-악!”
구양강이 연달아 토해내는 고함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구양강이 비록 은천검법과 섬전검법을 알고, 변화를 짐작한다 해도, 초식의 운용 면에선 은천문 내에서도 감당할 자가 없는 진무린이 아니던가.
구양강은 엄청난 내공을 이용해 그 아쉬움을 메우려 했던 모양인데 진무린이 저렇게 흩어버린 탓에 원하는 이득을 얻지 못했다.
쉐엑! 쉐에에엑! 쉑!
게다가 진무린은 수시로 검을 내밀어 구양강을 자극하고 있었다.
더 없어? 이게 전부야?
“이노-옴!”
후아아악! 쉐에에엑!
분통이 터진 구양강이 재차 잠력을 터트린 순간이었다.
평생 한 번 볼까 싶은 대결에 지켜보는 이들이 넋을 잃고 바라볼 때, 도를 피하는 진무린의 몸에서 폭발하듯 묵빛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광기에 사로잡혔던 구양강이 놀라 몸을 빼냈고,
“이런!”
하후도가 안타까운 심정을 뱉어냈으며,
“이크!”
무랍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 때,
후아아악!
진무린은 한 길 높이에 솟구쳐 있었다.
쉐에에에에에엑!
세상 전부를 가를 것처럼 강렬하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카아아아아앙!
언제 내밀었는지 하후도의 판관필에서 불꽃이 커다랗게 튀었고,
휘리리리리리릭!
동시에 공간과 세상을 갈라버리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먼저 울려 나왔다.
카가각! 카가가각!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거북하게 귀를 파고든 뒤에 뒷걸음질 친 구양강이 바닥에 찍은 도에 의지해 쓰러지려는 몸을 버텼다.
“커흑! 끄윽!”
비명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어느 틈에 몸을 날렸던지 발목 두 개가 모두 잘린 무랍이 바닥을 뒹굴며 쏟아낸 비명이었다.
곽가가 그러더니 무랍마저 발목을 버려 목숨을 건졌다.
이 정도면 발목을 잘라 절체절명의 위기를 피하는 수법이 혈교에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강호일통의 주역으로…. 풍령관의 깃발을 휘둘러야 할 내가….”
구양강의 몰골은 처참하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얼굴과 가슴이 온통 피로 물들었고, 특히나 두 번이나 갈라진 왼쪽 눈에서 눈알이 반쯤 튀어나와서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임이 분명했다.
진무린은 구양강을 향해 움직였다.
반쯤 튀어나온 눈알과 피가 고인 반대편 눈알이 꿈틀하면서 진무린을 보았는데 지금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은 확실한 공포였다.
“청강 진인을 뵙거든, 죄를 깊이 사죄드리고, 그 뒤에 잊지 말고 아미의 어른들께 지은 죄 역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구양강의 눈알이 하후도를 향해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쉐엑! 카아앙!
하후도가 급히 판관필을 내었으나, 임운령의 검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임운령이 한 자 가까이 뒤로 밀리는 것과 동시에,
쉐에에엑!
진무린의 검이 구양강을 향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