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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85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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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85화

은천검제

제85화

 

장 노대에게서 소식을 들은 진무린은 닷새 거리를 이틀에 걸쳐 달렸다.

진무린은 걱정할 바가 없었으나 운진이 염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종횡주를 다리에 매단 운진은 뜻밖에도 나무 위를 달리거나 언덕을 뛰어내리는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흥분한 얼굴로 진무린을 따랐다.

“문주. 저 앞의 바위에 내려설 것입니다.”

“알겠소, 진 대협!”

경공을 발휘하는 중간에 휴식을 취할 때면 정확한 곳에 내려앉았고, 종횡주를 그치는 주문을 적시에 외워서 그는 마치 하늘을 나는 신선처럼 자유자재였다.

“연습을 하셨습니까?”

“그럴 틈이 없었지요. 다만, 이전과 달리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고, 또 높이가 무섭지 않으며, 무엇보다 몸에 담기는 기운이 전과 달리 부드러워서 한결 수월하다오.”

“몸에 담기는 기운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주변을 둘러보던 운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이전에는 종횡주의 기운이 마치 급류처럼 거칠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물결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니 자연 조절도 쉬운 게지요.”

말을 마친 운진이 확신처럼 진무린을 보았다.

“진 대협이 주시는 기운이 그만큼 달라졌다는 의미로 보았소. 어쩐지 상등에서 보았을 때 표정이며 눈빛이 다르다 했더니 아마도 그 이유가 아닐까 싶소.”

운진은 흡족한 표정에 묘한 자부심을 담고 있었다.

“진 대협의 발전을 보며 노도가 이리 자부심 넘치니 은천문의 어른들이야 말해 뭐하겠소.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이런 느낌인 모양이오.”

“저는 문주께서 함께해주셔서 더 든든합니다.”

“술사를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노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은근한 자랑을 펼쳤던 운진이 먼저 크게 웃었고, 진무린이 따라 웃었다.

“한 시진 정도 더 달린 뒤에 저녁을 먹을까 합니다. 내일 정오쯤 도착할 테니 혹 피곤하시면 말씀하십시오.”

“지금 같으면 석 달 열흘을 달리라 해도 거침없을 듯하니 진 대협이 알아서 조절하시면 되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잠시 숨을 고른 두 사람은 다시 몸을 날려 풍령관으로 향했다.

적당하게 속도를 조절해도 충분할 거리여서 진무린은 지닌 공력의 절반을 사용했고, 상단전을 깨우쳐 기운을 전한 덕분에 운진은 이전과 달리 여유롭게 따랐다.

 

**

 

칠주야에 걸친 장례를 마친 은혼은 그날부터 검과 무공에 매달렸고, 분위기를 짐작한 화산은 온통 긴장에 휩싸였다.

“장문. 상등에서 전갈입니다.”

“무어냐?”

“진 대협이 풍령관을 향해 출발했다 합니다.”

화산은 고개를 돌리는 곳곳이 절경이었다.

구름을 거느린 뾰족한 봉우리를 바라보며 은혼은 잠시 말이 없었다.

“누가 돕는다 하더냐?”

“모산의 문주와 단둘이 출발한 것으로 전달받았습니다.”

“흠.”

은혼이 이를 깨물었는지 그의 볼이 씰룩였다.

“진 대협이 사부님의 원한을 풀겠노라 움직이는데 정작 화산이 도움 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혼잣말을 뱉어낸 은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풍령관에 달려가 힘을 보탤 것이냐, 아니면 마교로 가는 길에 동행할 것이냐.

“출발이 언제였는지 들었느냐?”

“전달이 늦은 관계로 이미 이틀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은혼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마교를 방문할 적에 부르라 당부했더니 정작 풍령관에 가면서 모산의 문주만 동행할 줄 누가 알았던가.’

청강 진인을 잊지 않은 그의 행보에 감사하고, 풍령관을 향하면서 모산의 문주와 단둘이 움직이는 대범함에 절로 고개가 숙어질 정도였다.

“화산의 매화검수, 일대 제자들은 당장 출발을 준비하라 일러라! 이는 사부님의 원한을 갚는 일로 화산은 절대 외면할 수 없다!”

“예, 장문!”

제자가 급히 뛰어가며, 조용한 화산의 팽팽한 긴장 위로 옅은 흥분이 깔렸다.

 

**

 

정도맹의 맹주 황종관은 숨을 크게 내쉰 뒤에 비월단 단주 윤고상을 바라보았다.

“최근에 내가 조사해보란 내용은 그 결과가 부실하고, 상등에서 진 대협이 풍령관을 향해 출발했다는 정보마저 이틀이 넘어서야 도착하다니. 비월이 이토록 뒤처지는 이유가 뭔가?”

“모두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황종관의 매서운 눈길에 윤고상은 고개를 떨궜다.

“그래서 대책은?”

“조직을 정비하고, 좀 더 과감하게 투자해 과거의 능력을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종관은 뜨거운 김을 쏟아낸 뒤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암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홍화루라는 일개 조직에 뒤처진다면 비월이 존재할 가치가 있나?”

“정도맹의 정보조직은 원래 마교를 감시하는 데 특화되어 있어서 최근 행보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흑사련의 일부터 이번 풍령관의 일까지 보고가 늦었다?”

“죄송합니다, 맹주.”

황종관의 번득이는 눈빛을 본 윤고상이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이전에 이토록 추궁한 적이 없어서 확실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단주. 이번은 넘어가겠지만, 이후에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그만두겠다는 말로 끝나지 않을 테니 그 점을 명심해 두는 것이 좋아.”

“명심하겠습니다.”

“다음 보고를 기대하지.”

벼르는 황종관의 눈빛에 놀란 것처럼 윤고상이 집무실을 나선 뒤였다.

황종관은 커다란 몸을 일으켜 창가를 향해 움직였다.

“정도맹이나 구대문파의 도움 따위 바라지 않는다? 체면이나 형식에 얽매일 테면 나서지 마라. 참으로 매서운 꾸짖음이군.”

무거운 눈빛을 한 황종관의 볼이 씰룩였다.

청강이 흉수에게 당한 것과 아미의 장로들이 강시로 되살아난 일은 그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혼자 맞서더라도 결단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게지.”

구대문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백면호리의 억울함을 외면했던 황종관은 낯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부끄럽다, 황종관. 무슨 낯으로 그를 볼 것이며, 나중에 청강 진인을 뵙고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이를 부드득 간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거기 있느냐?”

“예, 맹주!”

답은 천장에서 있었다.

“본가에 내 뜻을 전해라. 황가의 모든 무력을 동원하겠다.”

“맹주의 명을 받았습니다.”

지시를 내린 황종관은 그나마 감정을 다스린 얼굴이었다.

“풍령관에서 끝나지 않을 일. 오냐. 네 뜻대로 강호를 벌컥 뒤집어 보자. 그래도 명색이 맹주인데 뒤에 있을 수만은 없잖으냐.”

앞에 진무린이 있다는 투로 말을 뱉어낸 황종관이 커다랗게 숨을 내뱉었다.

 

**

 

아미의 현절 역시 소식을 들었다.

“누구와 함께했다더냐?”

“모산의 문주와 동행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단둘이?”

“그렇습니다, 장문.”

현절은 독 오른 살쾡이처럼 눈을 파랗게 빛냈다.

“모산의 문주가 동행했다면 술법을 부리는 자를 상대한다는 의미다.”

억지에 가까운 주장이었으나 조연명과 조성명을 잃어 독기가 파랗게 빛나는 현절에게 반기를 드는 제자들은 없었다.

오히려 분노를 폭발하지 못해 독이 잔뜩 오른 아미는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꼴이어서 입가에 냉소마저 그려질 지경이었다.

“아미의 장문인으로 명한다! 아미는 모산을 제외한 그 어떤 문파도 술법을 사용하는 한, 본파의 철천지원수로 대할 참이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현절이 내공을 담아 터트리는 음성이 주변으로 널리 퍼졌다.

“또한, 진 대협과 모산의 문주는 본파의 명예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을 준 분들로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아미산에 울리는 현절의 음성에 제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본파는 이에 풍령관으로 향한 진 대협과 모산의 문주를 돕고, 억울하게 가시면서도 마지막까지 본파의 명예를 지켰던 어른들의 복수를 시행하겠다! 제자들은 나서라!”

현절의 지시가 떨어진 직후였다.

“장문인의 명을 받습니다!”

아미산 곳곳에서 제자들의 대답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

 

정도맹과 화산, 아미의 움직임을 알 길 없는 진무린은 이틀을 꼬박 달려 풍령관의 앞쪽 위고산에 도착했다.

“문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진무린이 양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뒤였다.

산에서 새가 날아드는 것처럼 검은 점이 튀어 내리더니 나무를 박차고 올랐다가 진무린 앞에 떨어져 내렸다.

“제자 진무린이 문주를 뵙습니다.”

“고얀 놈.”

운진이 서둘러 살폈으나 거친 말을 뱉은 임운령의 입가에는 보기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보기 싫다. 얼른 몸을 세워.”

투박한 말로 진무린을 일으킨 임운령이 운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미욱한 제자 탓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은천문을 책임진 임운령이라 합니다.”

상상이나 했었나.

구대문파를 우습게 본다는 은천문이요,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바로 그 문파의 문주가 먼저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는 장면을 말이다.

“모산의 문주 운진이라 하외다. 문주께서는 얼른 몸을 일으키셔서 노도를 편케 하십시오.”

사람의 감정은 눈을 통해 전달된다.

중후한 인상의 임운령이 운진을 존중하고, 모산의 문주는 은천문의 주인을 어렵게 대하니, 두 사람은 훈훈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마쳤다.

“문주께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네놈이 모산의 문주만 초빙해서 풍령관을 노릴 줄 몰랐다. 누가 잘못한 일이냐?”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알기는 하는 모양이다?”

투박한 문답이 오간 뒤였다.

진무린을 살피던 임운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풍령관은 여기에서 십 리 걸음에 있다. 언제로 할 테냐?”

“이곳에서 쉬었다가 내일 오전에 방문할까 합니다.”

“그렇다면 모산의 문주를 모시고, 위에 준비한 곳으로 가자.”

“예, 문주.”

임운령이 몸을 돌리자 진무린은 운진에게 눈빛을 건넸다.

세 사람이 동시에 솟구쳐 산의 중턱으로 경공을 펼쳤는데 운진은 전혀 뒤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제자가 모두 이십여 명이었다.

산의 중턱에 제법 편평한 곳에 자리했는데 제자들 모두 진무린을 어렵게 대했다.

진무린이 일행에게 운진을 소개했고, 적당한 나무에 둘러앉자 차를 가져다주었다.

“노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지친 심신을 다스릴까 하오. 두 분은 편히 말씀을 나누십시오.”

눈치껏 운진이 자리를 피하자 제자 둘이 그를 따르며 호위했다.

“풍령관이 이미 너의 행보를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도 알지 모르고. 정말 모산의 문주와 둘이 상대할 생각이었더냐?”

“그렇습니다.”

“흠! 무모한 건지, 계산이 치밀한 건지, 당최 모르겠구나.”

임운령이 탄식을 내뱉은 뒤였다.

“문주께서 은천령을 내리셨다 들었습니다.”

“부족한 증거를 모두 손에 넣었다. 풍령관의 구양강과 내통한 일자와 시간도 알게 되었고. 그러니 본문은 구양강을 벌하고, 그 뒤에 내부를 정리할 생각이다.”

진무린의 질문에 답을 한 임운령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얻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상단전을 깨달았습니다.”

“혼자 말이냐?”

“청강 진인께서 남긴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얻었습니다.”

“나도 그러리라 짐작했었다. 그렇다면 장 노대에게 선택하라 권유한 이유는?”

“이 길의 끝에서 본문으로 향할 생각이었습니다.”

“문주인 나를 두고 네놈 마음대로 정할 생각이었어?”

“은천령을 내리실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진무린을 바라보던 임운령이 기가 막힌 웃음을 쏟아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문주. 은천령을 내리시면…….”

“이 자리가 지겨웠던 참이다. 본문을 바로 세우는 일을 앞두고 내가 자리에 연연할 사람으로 보이더냐?”

진무린의 말을 임운령이 단박에 잘랐다.

“하후도라는 인물과 무랍 존자가 풍령관에 있다. 하후도는 네가 소능산에서 마주쳤던 인물이고, 무랍 존자는 혈교의 최고수라 일컫는다.”

운진이 움직인 방향을 돌아본 임운령이 시선을 가져왔다.

“무랍이야 당연히 술법을 펼칠 테니 모산의 문주가 크게 도움되겠다만, 하후도는 어찌 상대할 셈이냐? 소능산에서 꼼짝도 못 하고 피를 토했다면서?”

“제법 자신이 생겼습니다.”

진무린의 눈을 들여다본 임운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풍령관주와 수하들만 상대해 주면 되느냐?”

“가주께서 그리해주신다면 내일 풍령관은 강호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진무린의 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임운령이 단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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