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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70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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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70화

은천검제

제70화

 

귀혼곡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암연이 귀혼곡 앞에서 찾을 정도라면 또 그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야 했다.

“나는 바로 귀혼곡을 나서 암연을 만나볼 테니 사매와 사제는 이안공자를 찾아 입구를 열어달라 부탁해다오.”

“예, 대사형.”

지시를 마친 진무린은 훌쩍 몸을 날려 귀혼곡의 입구로 향했다.

이송암관의 진법쯤 마음먹으면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렇게 했다가 진법이 망가지면 이안공자와 귀혼곡의 촌민들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고, 그 정도로 무리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귀혼곡을 나선 진무린은 암연과 주고받는 독특한 기운을 뿜었다.

숨을 두어 번 내쉰 뒤였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숲에서 장 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먼저 확인하는 것처럼 진무린의 왼편 어깨에 시선을 주었다.

“노대.”

“진 대협의 무탈한 모습을 뵈니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귀혼곡에 뛰어난 의술을 지닌 분이 계셔서 도움받았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모 소저와 종 소협은 본문으로 돌아오고, 진 대협께서는 호북의 상등으로 향하라는 문주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상등에 다시 가라고?

진무린의 시선에 답하는 것처럼 장 노대가 입을 열었다.

“진 대협. 죽었다던 아미의 장로 두 분과 제자들이 상등에 나타났습니다.”

진무린은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 천천히 내뱉었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분명 죽었다고 들었던 이들이 또 살아났단다. 이렇게 죽은 자가 뜬금없이 살아난다면 각 문파마다 강시술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진무린은 냉정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미의 일은 정도맹이 해결할 문제이지 진무린이나 은천문이 끼어들 사안이 아니었다.

“노대. 본문은 원래 흑사련의 마등을 상대하기로 했을 뿐입니다. 더구나 맹주와 소림, 무당, 모두 정도맹으로 돌아간 뒤인데 굳이 아미의 일에 관여할 이유가 있습니까?”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아미의 장로가 다시 살아난 것에 혈교가 개입되어 있으리라 짐작하시는 듯하고, 만약 그들이 모 소저의 실종에 관여했다면 그에 따른 응징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보입니다.”

진무린은 시선을 멀리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주 임운령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사부 전도위와 함께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 가지가 계속 걸렸다.

이리되면 모려원은 종무헌과 단둘이 은천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기 참 공교롭다.

귀혼곡에서 은천문으로 돌아가려는 바로 그 순간에 진무린을 붙드는 것처럼 아미의 장로와 제자들이 되살아났다는 것이 말이다.

“진 대협.”

생각에 잠긴 진무린을 장 노대가 나직하게 불렀다.

“모 소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모산의 문주께서 애써주신 덕분에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장 노대가 반가운 기색으로 진무린의 답을 받았다.

어쨌거나 진무린은 은천문의 제자여서 문주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안에 계신 분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반 시진쯤 뒤라고 보시면 적당하겠습니다.”

“그리 말씀 올리겠습니다.”

답을 한 장 노대가 포권으로 인사하고 숲으로 사라지자 진무린은 귀혼곡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바위를 가볍게 두드린 다음이었다.

물결이 이는 것처럼 앞이 흔들렸고 곧바로 모려원, 종무헌, 섭성의 모습이 보였다.

주저할 것 없이 진무린은 귀혼곡 안으로 들어갔다.

섭성이 있었고, 급한 일도 없어서 진무린은 느긋하게 걸어 기인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장 노대의 말을 모려원과 종무헌에게 전해주었다.

“마등이 그렇더니 아미까지. 정말 혈교가 그 정도의 능력을 지녔을까요?”

“확인해봐야지.”

모려원의 질문에 진무린은 무겁게 답했다.

마등과 아미는 그 파급력이 다르다. 무엇보다 정도맹을 구성하는 구대문파가 어떻게 나올지 그것도 걱정되었다.

기인촌에 도착한 진무린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원예가 있어 연락할 테고, 소문이 크게 돌 테니, 아미의 장로가 살아난 것을 굳이 감출 이유도 없었다.

“며칠은 대접할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더니. 일이 중대하여 붙잡지 못하겠소. 그렇더라도 서운한 감정은 어쩔 수 없구려.”

언제고 다시 들러달라는 당부를 전한 것으로 이안공자는 진무린의 이별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운진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그의 경공 실력으로 종횡주를 혼자 사용하기에는 어려웠다.

“사매, 사제와 함께 출발하십시오. 문주를 모산에 모셔드린 후에 본산으로 향하게 하겠습니다.”

진무린이 나직하게 권유한 뒤였다.

“진 대협.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도 그렇고, 혈교가 개입되어 있다면 필시 술법을 사용하지 않았겠소? 빈도의 능력이 보잘것없으나 함께 가면 작은 도움이라도 될 것 같은데 어떻소?”

운진이 뜻밖의 권유를 내놓았다.

“어려운 일이 많을 것입니다.”

“모산을 나설 때 이미 죽음을 각오했던 빈도요. 진 대협 덕분에 목숨을 구했고, 모산의 파문 제자를 벌해 위기를 넘겼으니 더 바라는 것도 없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혈교의 일을 알아보는 데 사실 운진만큼 힘이 될 사람도 드물지 싶었다.

“그러시다면 문주의 도움을 구하겠습니다.”

“고맙소, 진 대협. 그저 짐이 되지 않도록 애쓰리다.”

반가운 기색을 한 운진이 몸을 돌린 뒤에 종무헌의 손을 잡았다.

함께 오는 동안 정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종 소협. 도와주신 덕분에 파문 제자들을 벌할 수 있었소.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나 부디 무탈하시오.”

“저는 대사형을 따랐을 뿐입니다. 문주께서 이끄실 모산을 기대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백면호리가 진무린에게 슬쩍 상체를 기울였다.

“무공을 가르쳐준다는 약속 잊지 마.”

가볍게 웃은 진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의 일이 해결되기 전에는 귀혼곡에 있으시오.”

“미쳤나? 소림과 무당이 뒤지고 있는 강호에 나서게?”

요정이 모려원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입구까지 따라와 아쉬움을 전하는 이안공자와 기인촌 촌민들을 뒤로하고 진무린과 모려원, 종무헌, 운진은 귀혼곡을 나섰다.

배웅하던 이들이 하나둘 몸을 돌릴 때였다.

“뭐하나? 안 돌아가?”

“잠시 돌아볼 것이 있으니 먼저들 가시오.”

“그래? 그러지 그럼.”

질문을 건넸던 백면호리가 촌민들과 거처로 돌아간 뒤였다.

이안공자는 진무린 일행이 나선 이송암관을 씁쓸하게 지켜보았다.

“예와 인연이 되기를 바랐더니.”

“모 소저를 보니 어렵다 싶은 게지?”

한 마디씩을 주고받은 좌안과 우안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등으로 간다지 않았나? 차라리 우리가 친부가 아니란 사실과 예의 출신을 알려주면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출세나 성공, 자리를 탐하는 인물이 아니야.”

우안의 질문을 좌안이 분명한 어조로 받았다.

“사람의 일을 어찌 알겠나. 우선은 인연을 맺었고, 도움을 청할 한 번의 기회가 있는 것으로 충분해.”

“그건 그렇고, 백 총관은 아직 멀었어.”

“뭐가 말인가?”

“저런 영웅을 몰라보고 근심한 것 말일세.”

“예가 마음을 빼앗기긴 한 게지?”

“백 총관이 염려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겠지. 그나저나 진무린이란 용의 곁에 모려원이란 봉황이 있는 꼴이니 공연히 예의 속만 새카맣게 타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네.”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었다.

아쉬움을 담은 긴 한숨을 내쉰 이안공자는 기인촌을 향해 몸을 돌렸다.

 

**

 

풍령관은 쌍둥이처럼 올라선 두 개의 산허리에 양쪽 끝을 걸쳐 놓아서 건물의 중간이 허공에 떠 있는 구조였다.

관주 구양강은 몸에 있는 화기를 식힌다는 이유로 양쪽 산의 중턱을 널찍하게 파서 인공연못을 조성하였고, 본채까지 굵은 줄과 판자를 이용해 출렁다리로 연결했다.

본채에서 양쪽 산까지 팔(八)자의 형태로 벌어진 다리라 하여 팔관교라 불렀는데, 그 아래로 조성된 연못 덕분에 풍광은 실로 더할 나위 없는 수준이었다.

하후도는 새롭게 차려입은 듯 깔끔한 책사복 차림으로 풍령관 대청의 계단을 올랐다.

“어서 오시오, 회주.”

“풍령관의 풍광은 언제 보아도 호연지기가 가득하니 구 관주의 호탕함이 예서 비롯되었구나 싶소이다.”

“과찬이시오. 이리 앉으시오.”

구양강이 소매를 떨쳐 자리를 권하자 하후도는 사양하지 않고 앞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를 차지했다.

“좋군요! 좋아요! 어느 것이 가산이고, 어디가 진산인지 모를 이 풍광은 언제 보아도 좋아요!”

“풍경에 걸맞는 차를 드시면 느낌이 배가 될 것입니다.”

구양강이 시선을 돌리자 시비가 다가와 뚜껑 덮인 찻잔 두 개를 내려주고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자!”

왼손으로 소맷귀를 붙든 구양강이 오른손을 뻗어 권하자 하후도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잔을 들었다.

“오!”

뚜껑으로 찻잎을 밀쳐냈던 하후도가 한 모금을 마신 뒤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맛은 더할 나위 없으나 강호에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여 불허일미라 부르는 차가 아니오?”

“크하하!”

하후도의 평가에 구양강이 만족한 듯 웃었다.

“그렇소이다. 이 차가 바로 마교의 수뇌부들이 즐긴다 하여 정파에서는 금한다는 바로 그 차외다.”

두 사람은 천하에 없는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투로 잠시 떠들었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뒤였다.

“알고 계시지만, 지난 며칠간 우리에게 일이 많았소.”

표정을 바꾼 구양강이 하후도의 말에 집중했다.

“은천문의 두 장로는 우리와 손을 잡은 사실이 어느 정도 드러났고, 무랍 존자의 제자 곽가는 정도맹에 구금되었으며, 관주의 수하 또한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소이다.”

“흐음.”

“본인이 진무린이란 아이의 중단전을 막아두기는 했으나 놈이 어찌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는지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라오.”

“회주께서 놈을 해결하실 것을 그랬습니다.”

구양강의 말에 하후도는 고개를 먼저 저었다.

“그리하면 구주의 늙은이들이 나설 명분이 생기는 터라 한계가 있었소. 그래서 이 몸이 몇 가지 수를 준비하고 관주를 찾지 않았겠소?”

“회주의 계획이라니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

넉넉하게 웃은 하후도가 입을 열었다.

“먼저 무랍 존자가 수고하셔서 아미의 장로들을 모두 상등으로 돌려보냈소.”

“오!”

“또한, 모려원이란 아이를 되찾기 무섭게 은천문은 그 아이를 소환하여 죄를 추궁할 것이오.”

구양강은 눈만 껌벅였다.

“아시다시피 백승과 원고성, 두 장로가 은천문을 손에 넣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이오.”

슬쩍 구양강을 살핀 하후도가 뜸을 들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죽었다던 이들이 돌아간 게요. 정도맹은 반드시 움직이게 되어 있소. 그 상황에서 아미의 장로들이 진무린이란 아이를 물고 늘어지면 효과가 배가 되지요. 일이 이 정도 되었으니 관주께서는 섬전검법과 폭렬공을 익힌 제자 셋을 보내주시오.”

구양강이 눈가를 좁힌 직후였다.

“당장 구대문파에서 눈엣가시처럼 구는 화산을 누르려 하오.”

“혹시?”

“청강을 잠재우면 조용해지지 않겠소? 아미의 장로들이 진무린이란 아이를 물고 늘어지는 와중에 화산의 검이라는 청강이 섬전검법에 죽는 게요. 백 장로와 원 장로의 음성에 힘이 실리게 되지요.”

“흐음.”

“게다가 구 관주는 은천문의 두 장로에게 커다란 덕을 베푸는 일이니 주저할 것이 무엇이 있겠소?”

구양강은 아직 결심이 서지 않은 얼굴이었다.

“진무린이란 아이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안심해도 되오. 그는 반드시 상등으로 향할 테고, 아미에 붙들려 움직이기 곤란할 테니 말이오. 또 있소.”

하후도는 여유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중단전이 막힌 터라 함부로 무공을 발휘했다가는 피를 토하고 쓰러질게요. 이 기회에 관주께서 강호를 일통하시오. 그리한 뒤에 구대문파와 은천문을 손에 쥐고 우리와 함께 나서십시다.”

하후도의 음성은 은근했다.

“마교에 자제분이 있으니 명실상부, 정마사를 모두 일통한 최초의 영웅이 되시는 게요.”

욕심을 감추지 못해 볼을 씰룩이는 구양강을 보며 하후도는 넉넉한 미소를 그렸다.

“은천문의 두 장로 때문이라면 염려 마시오.”

“그 또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나는 원래 배신자를 좋아하지 않는다오. 한번 배신했던 자들은 두 번 하는 법이라 그렇소.”

멈칫했던 구양강이 비릿한 미소를 그려낸 다음이었다.

“구대문파에 들어간 막대한 자금 덕에 그들은 반기를 들기 어렵소. 또한, 구 관주가 구해준 약을 섭취한 이들도 하나둘이 아니고. 가장 걸림돌이던 진무린이란 아이는 중단전이 막혔고.”

“더할 나위 없는 기회로군요.”

“어떻소?”

“청강의 목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허허. 늙은이의 머리를 내가 무엇에 쓰겠소? 불쌍하니 머리는 그냥 붙여두시구려.”

“크하하하하!”

별것 아닌 농담이었는데 구양강은 참으로 통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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