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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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50화
은천검제
제50화
현장에 도착한 황종관은 주변을 둘러본 뒤에 횃불을 켠 것처럼 활활 불타는 눈으로 엎드린 무인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시신을 잃을 수가 있단 말이냐!”
“죽여주십시오!”
“죽이는 것은 다음이니 사유를 말해!”
쩌르렁 울리는 황종관의 고함이 울린 뒤였다.
“호북 지부에서 둘만 나왔던 참이라 한 명은 맹주께 보고하기 위해 달렸고, 저는 지원을 요청하러 다녀왔는데 그사이 시신이 없어졌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무인이 급하게 내용을 전했다.
황종관은 참담한 시선으로 화를 억눌렀고, 보우와 무당의 진섭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어나게.”
그런 뒤에 보우는 주변에 모인 무림맹의 무인들을 뒤로 물렸다.
“현장을 살필 참이니 함부로 발을 끌지 말고 조심스럽게 물러나.”
보우의 지시였다.
뒤늦게 달려온 정도맹의 무인들은 다가서지도 못했고, 현장을 지키던 무인은 발걸음조차 조심해서 모여 있는 무인들을 향해 걸었다.
“횃불을 이리 주게.”
보우는 뒤늦게 달려온 무인에게서 횃불을 넘겨받았다.
뜻을 알아챈 황종관과 진섭자가 조심스럽게 그의 뒤로 움직인 다음이었다.
“보시오. 아미십이장의 흔적이오.”
보우는 횃불로 바닥을 밝혔다.
한 번 움직인 뒤에 특정한 자리를 지키고, 다시 움직이는 아미십이장의 특징이 바닥에 찍힌 발자국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흔적으로 보아 조연명 사태가 이곳에 서 있었고.”
화르륵 불길을 휘날리며 보우는 횃불을 옆으로 옮겼다.
“이곳이 조성명 사태의 자리인 모양이오.”
불가에 몸을 담았으나 도가 특유의 무공을 지닌 아미는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정하는 위치가 분명했다.
“여기 제자들이 진법을 형성한 흔적이 있으니.”
보우는 바닥에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맞은편을 향해 움직였다.
“적의 숫자는 대략 스물쯤 되겠소.”
바닥을 비춰 흔적을 살핀 보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은 강호에 흔히 보이는 보법이 아니오. 게다가 아미의 절진을 돌아가며 상대했으니 이미 파훼법까지 익힌 자들이라 보는 게 맞겠소.”
말을 마친 보우는 횃불을 이용해 꽤 오랜 시간 꼼꼼하게 아미파 주변을 살폈다.
“시체를 가져갔다면 반드시 흔적이 남을 텐데, 이토록 깔끔하다면 강호에서 짚이는 이는 한 명밖에 없소.”
상체를 세운 보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는 절대 이유 없는 물건을 탐한 적이 없고, 청부를 받은 적도 없으며, 시체를 손댄 적 또한 없으니 그 부분을 이해하기 어렵소.”
“대사께서는 혹 백면호리를 생각하십니까?”
진섭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보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납이야 익힌 것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맹주와 진인께서 흔적을 발견 못 할 정도라면 백면호리 외에는 없다고 감히 단언하외다.”
상체를 세운 보우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가 시체에 손을 댔다면 석 달 열흘을 뒤져도 찾기 어려울 터, 내일 날이 밝으면 흔적을 좀 더 살피고, 정황이 확실하다면 그를 잡아들여 진상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 보오.”
“대사. 그렇더라도 수색은 해볼 것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오, 맹주. 그것이 또한 아미에 대한 최소한의 예라 할 것이오.”
보우와 이야기를 마친 황종관은 한쪽에서 대기하던 무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찾아라! 호북에 있는 모두를 동원하고, 필요하다면 주변 문파에 협조를 구해 근처를 샅샅이 뒤져!”
그의 음성이 밤을 깨우며 요란하게 울렸다.
“혹여라도 본 사람은 없는지 주변에 묻고 확실한 목격자에게는 은 이십 관을 내릴 것이라 알려라!”
“명을 받았습니다!”
무인들이 급하게 움직여 일부는 산으로 올랐고, 일부는 호북의 상등을 향해 달렸다.
지시를 마친 황종관은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날카롭게 살폈다.
백면호리가 왜?
흉수가 누군지 보다 백면호리가 왜 시신을 가져갔는지 당장은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
진무린은 잠시 뒤에 운기에 들었다.
아미를 살해한 흉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얼른 기운을 차리는 일이고, 다음으로 하후도를 다시 만났을 때 장난감처럼 농락당하지 않는 일이었다.
‘끄응.’
운기에 들면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몸 안을 돌아야 할 기운이 입 밖으로 쏟아지게 되면 기혈이 역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까닭이었다.
진무린은 천천히 시간을 들였고, 느긋하게 단전을 다스렸다.
들끓던 단전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내공이 자연스럽게 피어났고, 이어 몸 안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문제는 중단전이었다.
그곳을 내공이 감돌 때마다 매번 판관필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어나서 운기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운기를 하던 진무린의 눈 끝이 꿈틀했다.
이럴 줄은 몰랐다.
‘필사라더니!’
반드시 죽는다는 말뜻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운기 중 언제고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까?
이것은 마치 진무린이 원예의 내공을 넣어두었다가 그녀의 기운을 막은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또한, 소수음공이 중단전에 숨었듯이 이질적인 기운이 틀어박혀서 진무린의 묵룡심법이 당도할 때마다 날카롭게 할퀴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무린은 이질적인 기운을 몰아낼 방법을 찾았다.
등룡창천의 기운이 뿜어지려면 반드시 중단전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질적인 기운이 매번 통증을 유발한다면야 어떻게 마음 놓고 무공을 발휘할 수 있겠나.
바로 곁에 서 있는 청강은 감각으로 또렷하게 느꼈다.
그는 숨소리마저 조심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몹시 놀란 감정이 진무린에게 전달되었다.
호흡을 길게 내쉰 진무린은 서서히 운기를 마쳤다.
눈을 뜬 진무린은 가장 먼저 청강을 찾았다.
그는 전에 없이 놀란 눈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진 대협! 알고 계셨소?”
“무엇을 말입니까?”
“운기하는 진 대협의 몸에서 옅은 묵빛 기운이 나와 주변을 맴돌다가 한순간에 빨려 들어갔소. 이것이 선인의 경지요, 아니면 등룡창천의 묘능이요?”
진무린은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등룡창천이 발휘되면 검은 기운이 나오는 것은 알았지만, 운기 중에 그런 현상이 나오는 줄은 몰랐습니다.”
“기운이 몸으로 빨려 들어갔소. 듣기로 이런 기운이 코로 들어가면 만물과 동화되는 경지요, 머리 위로 꽃을 피우면 천외천의 경지라 하던데 진 대협은 과연 하늘이 내리신 기재요, 무인이 아닌가 싶소.”
청강의 감탄에 진무린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선인의 경지를 얻었고, 등룡창천을 발휘하면 무엇하겠습니까? 오늘 하후도란 자에게 농락당했고, 그가 심어놓은 작은 내공에 운기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운기를 제대로 못 하셨단 말씀이오?”
“중단전에 알지 못하는 기운이 있습니다. 소수음공을 녹여본 저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강렬하고 날카로운 기운입니다.”
“허어!”
“당분간은 검을 낼 때도 조심해야 할 지경이니 선인의 경지란 것도 하후도라는 자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수준인 모양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감은 잡겠으나 실감하지 못하니 도움을 드릴 수 없구려.”
말을 마친 청강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예 들여다보지도 못한 경지라 조언은커녕 이해하기도 벅찬 심정에서 나온 한숨이었다.
“맹주께서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아까 급히 돌아온 이들이 있으니 나가서 물어보면 알게 될 것이오. 일어서실 수 있겠소?”
“그 정도는 충분합니다.”
진무린은 청강과 함께 방을 나서 대청으로 움직였다.
“밖에 있나?”
청강이 불렀고,
“찾으셨습니까?”
정도맹의 무인이 재빠르게 마당으로 들어왔다.
“맹주께서 가신 곳의 소식은 어떤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미파 사태와 제자분들의 시신이 없어져 주변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뭐라? 자네 지금 뭐라 했나?”
“말씀드린 대로 아미파 사태 두 분과 제자분들의 시신이 없어져 주변을 이 잡듯 뒤지고 있습니다. 보우 대사께서는 백면호리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하십니다.”
청강이 진무린을 돌아보았다.
은천문의 검법에 살해당했으면 어쩌나 염려했더니 시체가 모두 사라졌고, 그 범인으로 백면호리를 의심한다는 말을 들었다.
“오늘 밤은 모든 것이 혼란스럽구려.”
청강이 혼잣말을 뱉었을 때였다.
“진인. 부맹주를 지켜주십시오. 가능한 한 그의 곁에 계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약연 장로와 자경을 지켜보겠습니다.”
“흉수가 손을 쓸 수 있다고 보시는 게지요?”
“맹주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일을 대비하고자 합니다.”
“현명한 판단이오, 진 대협. 그 말씀에 따르리다.”
몸을 돌보라는 말을 남긴 청강이 부맹주 소강명에게로 향하자 진무린은 약연과 자경이 구금된 장소로 움직였다.
저들이 원하는 것이 무얼까.
진짜 백면호리가 시체를 가져갔을까.
왜? 무엇을 위해?
진무린은 먼저 홍화루가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혹시 춘설난무에 당한 것을 감추려 원예가 백면호리에게 일을 부탁했을까.
진무린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홍화루가 정보를 다루고, 상등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린다 해도 아미파의 시신을 감추는 것은 원예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혹시?
걸음을 멈춘 진무린은 마등이 묶여 있던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아미파의 사태 둘과 장로를 되살려서 그들이 얻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이미 한 편일지 모르는데.
게다가 마등은 진무린이 죽였지만, 아미파는 흉수조차 아직 밝히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걸음을 옮긴 진무린은 약연과 자경이 구금된 곳에 도착해 안을 살폈다.
두 사람은 무탈했다.
심지어 진무린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것으로 건강하다는 증명하기까지 했다.
“의자를 하나 준비해 주시오.”
진무린의 요청에 정도맹의 무인이 재빨리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
원예의 집무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부루주 설란과 은향이 엎드려 있었는데 원예는 장식으로 만든 인형인 양 거대한 의자의 중앙에 꼿꼿이 앉아있었다.
“루주. 총관입니다.”
백섭광이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범위를 넓혀가며 주변을 뒤지고 있으나 아미파의 시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흉수는 밝혀지지 않았고, 지금은 주변 무관에서 달려온 이들이 합류하여 수색을 돕고 있습니다.”
원예는 대꾸조차 없이 백섭광을 바라보았다.
“진 공자께서는 소능산에서 혈투를 벌여 부상이 심각한데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약연 장로와 자경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백섭광의 보고에 원예는 그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루주께 한 말씀 여쭐 것이 있습니다.”
시선을 든 원예를 향해 백섭광이 입을 열었다.
“혹여 백면호리에게 시신을 감추라 지시하셨습니까?”
“무슨 의미인가요?”
“진 공자께 누가 될까 루주께서 청을 하신 것은 아닌지 여쭙는 것입니다.”
말을 마친 백섭광이 엎드린 은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백면호리와의 연락을 도맡았고, 조건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추궁 같은 시선이었다.
“그럴 이유가 있나요?”
“천서유기의 행방을 알리신 것이 그 이유라 보았습니다.”
“그런 일 없으니 총관은 이만 내려가세요.”
“루주. 아미파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 중 하나입니다. 밤이 지나면 늦습니다. 혹시라도 지시하셨다면 당장 공자에게 연락하셔서 시신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십시오.”
백섭광의 어투는 강경했다.
“총관.”
“예, 루주.”
원예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불렀고, 백섭광은 다부지게 답했다.
“아니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부루주가 보는 앞에서 나를 추궁할 정도로 총관의 권위가 대단한 줄은 몰랐군요.”
대꾸를 듣던 백섭광은 뒤늦게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총관을 숙부처럼 대해 의견을 듣기는 했으나 위치를 망각하고 루주의 권위를 우습게 안다면 여기까지입니다. 총관은 귀혼곡으로 돌아가든가, 아니면 강호에서 원하는 삶을 사세요.”
화들짝 놀란 백섭광이 급히 상체를 숙였다.
“루주. 저의 불찰을 용서하십시오.”
용서를 구하는 백섭광을 외면한 채 원예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은향은 백면호리에게 연락해서 일이 돌아가는 것을 알리고 서둘러 필요한 약재를 구해 귀혼곡으로 돌아가라 일러. 혹여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약재는 우리가 구할 테니 몸을 먼저 감추라 전하고.”
“루주의 명을 받았습니다.”
“설란은 호북지부를 살피고 반 시진마다 상황을 알려줘.”
“명을 받았습니다.”
은향과 설란이 뒷걸음질로 문을 나섰다.
“총관은 아직 거기 계셨나요?”
“루주! 용서하십시오!”
“반기를 드는 총관은 필요 없다 말씀드렸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매섭게 백섭광을 노려보던 원예가 몇 번이고 차가운 숨을 내쉬도록 말은 없었다.
긴장이 방 안을 한 바퀴쯤 돌고 난 뒤였다.
“아미를 상하게 한 흉수들은요?”
“아직 그와 관련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올라오는 대로 바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리해주세요.”
지시를 들은 백섭광이 조심스럽게 물러났고, 방 안에는 원예만 남았다.
“오늘 밤은 피 냄새가 역해.”
꼿꼿하게 앉은 원예는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눈이었다.
“언제까지 침묵하실 건가요?”
그런 뒤에 혼잣말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