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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45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은천검제 45화

은천검제

제45화

 

잠시 뜸을 들인 다음이었다.

“진인. 부맹주를 어떻게 처리하시려는 게요?”

보우의 나직한 질문이 있었다.

“노도의 답이 길 듯한데 괜찮겠소?”

“편하게 말씀해 주시구려.”

양해를 구한 청강은 매화검수의 일부터 이후에 벌어진 일을 간결하나 분명하게 보우에게 들려주었다. 이미 들었던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도 보우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청강의 말을 경청했다.

“노도는 부맹주를 정도맹의 지하 뇌옥에 가둘 것을 주장하며,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장문인을 설득해서 반드시 점창을 응징할 것이외다.”

“흐음.”

깊은 한숨을 내쉰 보우가 참담한 음성으로 불호를 외웠다. 그런 뒤에 그는 시선을 들었다.

“진 대협께서는 대결에 새로운 제자를 낼 경우, 노납을 비롯한 세 문파 모두의 목을 자를 것이라 하신 적이 있소?”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일이 돌아간 꼴을 보아 조연명이 살을 너무 붙였음을 파악한 진무린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했다.

조연명을 익히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보우는 놀라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진무린의 말을 받았다.

“진 대협. 한 말씀만 드리고 일어서리다.”

“말씀을 주십시오.”

“사람의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다오. 결과만을 따져 그것을 응징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 피가 흐르겠으나, 원인을 알고 대처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해결이라 할 것이오.”

무슨 소리인가 하는 진무린을 향해 보우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소를 그려냈다.

“노납은 이만 일어나겠소. 대결은 원래대로 진행할 것이고, 새로운 제자를 내는 일도 없을 테니 진 대협은 굳이 검을 들지 않아도 될 것이외다.”

자리에서 일어선 보우는 한 손의 손바닥을 세우는 반장으로 인사하고는 홀연히 걸음을 옮겼다.

‘원인을 알고 대처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해결이라.’

진무린이 문을 나서는 보우를 보며 그의 말을 되새길 때였다.

“진 대협. 맹주께 보우 대사의 일을 알릴 겸, 철 호법을 보러 갈까 하는데 어떻소?”

청강의 제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담장 밖에서 암연이 전하는 독특한 내공이 진무린을 찾았다.

“무슨 일이오?”

“본문의 연락입니다. 잠시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그러시구려. 그럼 노도는 맹주에게 가 있겠소.”

청강과 함께 움직인 진무린은 그 길로 소능산을 향해 움직였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걷는데 눈에 담긴 기대와 흥분으로 보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찌감치 관성변으로 향하는 이들이 분명했다.

저들은 부맹주, 약연이 구금되었다는 사실을 알 뿐, 뒤에 감춰진 두 사람의 비행을 알지 못한다.

오늘의 대결 또한 그저 공동의 무공을 직접 볼 좋은 기회일 테고, 맹주가 가르친 비룡방 호법이 어떻게 맞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에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이었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찾으라 했었지?’

진무린은 지나가는 이들 사이에서 느닷없이 보우의 말을 떠올렸다.

보우는 진무린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을까?

왜 그렇게 말을 돌렸을까?

생각에 잠긴 채 진무린은 무너진 사당 앞에 도착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세우겠다며 약속했던 사당은 아직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얼른 재건해야 할 텐데.

진무린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진 대협.”

사당을 둘러보는 진무린을 장 노대가 불렀다.

그가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다.

먼 곳에 갔던 참이라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장 노대는 평소와 달리 수척한 얼굴이었고, 지친 기색까지 겹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무슨 일입니까?”

“문주께서 저를 이곳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경공에 익숙하다고 믿었는데 문주의 신묘한 경지에 그만 이리되었습니다.”

임운령은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장 노대가 이리될 정도라면 반드시 그에 맞는 이유가 있을 일이었다.

“앉으십시오.”

진무린은 적당한 바위를 권한 뒤에 장 노대가 전할 말을 기다렸다.

“문주께서는 모 소저를 계속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던 참에 본문에서 장로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은천령이 논의된 모양입니다.”

은천령을 내릴 위기가 있었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진무린은 입을 다물고 장 노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잃기 전의 모 소저가 본문의 위치와 비밀, 또 무공을 유출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척살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진무린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단박에 의도를 깨달았다.

마등은 분명 은천문의 검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기억을 잃은 사매의 잘못인지, 의심 가는 장로 둘의 소행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모려원이 척살 당한다면 그 죄를 온통 뒤집어쓸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 일로 문주께서는 급히 본문으로 향하며 저를 이 근처에 내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매를 지키는 이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마침 종 소협이 당도해 지금 지켜보고 있습니다. 상등의 일이 해결되면 진 대협께서 모 소저를 찾아 판단하라는 문주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결국, 임운령은 진무린을 믿고 은천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함께 있다는 세 사람은 어떻습니까?”

“전중방의 제자들이라면 여전히 함께 있습니다. 그들의 사부가 주화입마에 빠져 위태로운 상황인데 그래서인지 곧장 섬서를 향해 이동하는 중입니다.”

그동안 조사한 내용인지 장 노대는 이전에 듣지 못했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전중방의 제자들이 죽을 고비 끝에 백향초를 구한 모양입니다.”

이것 봐?

진무린은 눈가를 좁히며 승조표국이 운반한다던 백향초를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죽고, 표물은 분실되었다. 그것도 귀혼곡 앞에서.

“진 대협?”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급히 가는 이유가 백향초로 사부를 구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렇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백향초를 찾았다는 소문이 도는 바람에 노리는 자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승조표국, 느닷없이 나타난 모려원, 전중방 사부의 주화입마, 백향초, 누군가 짜놓은 것처럼 앞과 뒤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진 대협.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무리하신 참입니다. 몸을 살피십시오.”

고맙게 미소 지은 장 노대가 몸을 돌리자 진무린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거대하게 똬리를 튼 음모가 주변을 천천히 감아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제 관성변을 살필 적당할 장소를 고를까 할 때였다.

상등으로 시선을 돌린 진무린의 눈에 홍화루 3층 창에 걸린 하얀 천이 들어왔다.

‘공자를 기다립니다.’

언젠가 진무린이 마등을 부를 때 썼던 글귀가 이름만 바꿔 쓰여 있었다. 전각의 위쪽이라 아래에서는 절대 읽을 수 없는 위치였고, 무공이 높지 않다면 알아채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작은 글씨였다. 

 

**

 

정오를 지나며 관성변은 사람의 산이요, 사람의 바다라 할 정도로 빽빽하게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관성변은 하천이 말라서 생긴 넓은 터로, 당연하게 물줄기가 흐르던 중앙이 아래로 내려간 구조였다.

가장 아래쪽에 정도맹의 무인들이 깃발을 세워 공간을 만들었고, 대결장 주변 위쪽으로 구름떼처럼 사람이 몰려서 잠시 뒤에 벌어질 대결을 기다렸다.

가장 먼저 보우를 비롯한 무당과 아미의 장로들이 도착하자 곧바로 함성이 물결처럼 번졌다.

보우는 덤덤했고, 무당은 이런 소란이 마뜩잖은 눈빛이었으며, 아미는 거만한 태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조용하게 처리될 대결을 이토록 요란스럽게 만든 장본인이 약연이라 달리 피할 방도는 없었다.

“온다!”

누군가 소리치자 보우 일행에게 몰려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달려갔다.

“맹주님이시다!”

“화산의 청강 진인 아니신가!”

속 모르는 이들의 환호 속에 정도맹과 맹주의 깃발을 든 무인들이 먼저 나타났고 이어 황종관, 청강이 등장했으며, 다시 뒤편으로 약연과 자경, 철비완, 등평, 등소옥이 따랐다.

일행은 곧장 대결장으로 움직여 먼저 와 기다리던 소림과 무당, 아미의 장로들과 인사를 나눴다.

“진무린 대협은 오시지 않았소?”

“몸담은 문파의 연락을 받고 움직였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보우의 질문에 황종관이 답했다.

“대사. 너무 급한 청이라 죄송하나 오늘 대결을 주관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노납이 말씀이오?”

“원래는 청강 진인께서 맡기로 하셨는데 대사께서 이번 대결을 공평하게 지켜보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해서 이리 당부드립니다.”

오전에 보우는 황종관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에서 그는 진무린과 청강에게 다른 제자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답을 전했다.

“맹주는 노납을 믿으시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여 편파적인 판정을 내리지 않을지 염려하지 않으시냐는 말씀이외다.”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저리 길게 나누는지 목을 빼며 기웃거리는 상황이었다.

“대사. 공동의 자경이 비룡방의 방주 얼굴을 상하게 해서 벌어진 대결입니다. 대사께서도 이 대결이 구대문파와 비구대문파의 대결이라 보십니까?”

황종관의 답을 들은 보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린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둔한 질문에 참으로 현명한 답을 주셨소. 맹주께서 미욱한 노납을 깨우쳐주셨으니 보답하는 뜻으로 대결을 주관토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대사.”

대화를 마친 황종관이 가장 앞쪽 중앙의 맹주석에 앉았고, 청강이 그 오른쪽에 자리했다.

그 사이 보우는 대결장의 중앙으로 걸어가 주변을 둘러본 뒤에 반장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노납은 숭산에서 내려온 보우라 하오.”

그가 내공을 실어 말을 전하자 은은한 음성이 널따랗게 퍼져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멈칫하는 정적이 있었고,

“우와-아!”

이어 관성변을 휘몰아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호에 고수가 있어 하늘을 날고, 일검에 땅을 가른다는 말이야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듣는다. 

그러나 평생을 살며 소림, 무당, 아미, 공동의 제자들을 본 사람이 실제로는 몇 되지 않고, 또 그들이 무공을 발휘하는 모습을 직접 본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정도맹의 맹주를 비롯한 고수들이 등장했고, 거기에 보우가 내공 담긴 음성을 들려주자 지켜보던 이들의 놀라움과 기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황종관은 슬며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맹주께서는 혹시 진 대협을 찾고 계시오?”

그때 청강의 나직한 질문이 황종관에게 건너왔다.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진 대협이라면 또 높은 곳에 있을게요. 혹여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마음도 있을 테고,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 그런다고 이해하시면 될게요.”

그렇구나.

진무린을 떠올린 황종관은 슬쩍 주변의 건물을 살폈다.

 

**

 

진무린은 관성변이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대결에 앞서 정도 강호를 수호하는 정도맹의 맹주 사월분광 황종관 대협을 소개해드리겠소.”

“우와아-아!”

보우가 황종관을 소개하며 또다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굉장하네요.”

옆에 앉은 원예의 감탄을 들은 진무린은 기가 막힌 심정으로 웃었다. 

“기껏 사람을 불러서 한다는 말이 조용한 곳에서 대결을 지켜보게 해달라는 것일 줄 몰랐고, 또 루주가 이런 대결에 관심 있는 줄도 몰랐다.”

“관심은 있지요. 그러나 소녀가 무당과 소림, 아미의 틈에 앉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만한 자리를 요구하기도 어렵고, 어쩌겠어요? 힘 있는 분께 매달려야죠.”

전에 당했던 수모를 어느 정도 털어낸 것처럼 원예는 억지로 쥐고 있던 냉정함을 풀어낸 표정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흑사련을 완전히 궤멸하였소!”

“우와아-!”

그사이 진행된 황종관의 말을 따라 엄청난 함성이 또다시 관성변을 흔들었다.

“소녀의 청을 왜 들어주셨나요?”

“부탁했으니까.”

“공자께서는 누가 부탁하든 모두 들어주세요?”

원예가 답을 요구하는 모양으로 시선을 들었다.

“앞으로도 우리 정도맹은 강호의 정의를 위해 애쓸 것입니다! 동도분들의 성원과 협력을 당부드립니다!”

“와아아!”

뭔가를 담은 눈빛이었다.

부탁할 것이 또 있나?

진무린의 눈빛을 확인한 원예가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대결이 끝나면 드릴 것이 있어요.”

그런 뒤에 그녀는 혼잣말처럼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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