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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33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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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33화

은천검제

제33화

 

피의 시대가 열릴지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꼽는 태풍의 중심지는 당연 호북의 상등이었다.

다시 태어난 마등이 목이 잘린 채 묶여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상등 어딘가에 천서유기가 있다는 소문과 마교가 등장해서 큰 싸움이 있었다는 말은 어떻게 퍼진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또다시 부맹주가 암중 세력과 손잡아 구금되었다는 소식이 가세하니 가히 강호의 모든 시선이 호북 상등으로 쏠렸다.

한가한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떠오른 진무린에 대한 관심이 그런 것인지, 자경과 철비완의 대결을 보겠다는 이들이 꾸역꾸역 상등으로 몰려들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진무린은 장 노대가 전해준 소식을 황종관과 청강에게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곽가가 이곳에 오기 전에 자네의 사매가 강호에 나섰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유일한 증거라 할 그자가 도주한 마당이니 모 소저를 납치했다는 죄를 추궁하기도 어렵군.”

황종관이 턱을 문지르며 아쉬움을 토했다.

“부맹주는 분명 혈교와 연관이 있어 보이네. 곽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붉은 안개를 보았으니 의심할 바 없지. 그렇다면 부맹주는 혈교와 흑사련에 동시에 줄을 대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데?”

“맹주. 흑사련과 혈교, 부맹주, 그렇게 셋이 한통속일 수도 있지 않겠소?”

“충분히 가능한 말씀입니다.”

청강의 질문에 황종관이 답을 내놓았다.

“다만, 대결에 앞서 분명 점창과 공동이 달려올 테고, 다른 문파에서도 사건을 확인하기 위해 몰려들 텐데 보다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 터라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황이나 심증은 충분한데 그렇더라도 점창 출신의 부맹주를 벌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진무린은 황종관과 청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눈앞에 놓인 돌을 치우는 것이 우선이라 봅니다. 맹주께서는 호법의 무공을 살펴주시고, 진인께서는 부맹주가 허튼짓을 하지는 않는지 점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현명하군.”

“노도 역시 진 대협의 말씀에 따르리다.”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어디에 있을 셈인가?”

“잠시 운기를 할까 합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럼 오후에 보세.”

두 사람과 헤어진 진무린은 소능산을 향해 걸었다.

복잡해 보이는데 들여다보면 간단했다.

죽은 마등은 마교의 폭렬공과 은천문의 검법을 사용했다.

놈이 죽었다 살아난 건 혈교의 도움일 테고, 혹시 마교의 강시술이 붙었을지 모른다.

이렇듯 펼쳐놓고 보면 단순한 연결이었다.

부맹주, 혈교, 마교, 은천문의 배신자는 모두 한 통속이라 보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느 쪽이든 연결고리 하나만 제대로 잡아채도 줄줄이 끌려 나오는 형국이었다.

진무린은 생각을 정리할 겸 느긋하게 소능산의 입구를 걸었다.

인과 연이란 참으로 무서워서 마등만 잡겠다며 나왔던 길에 이리저리 살이 붙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소능산을 오르던 길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진무린은 퍼뜩 떠오른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매 모려원을 풀어준 뒤에 곽가가 이곳에 왔다.

지금은 천으로 덮어두었고, 내일이면 화장을 치르기로 한 마등의 시체를 가지러 오지는 않았을 테고.

정도맹주, 청강, 진무린이 있는 데다 홍화루의 정보력을 익히 알 그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호북의 상등을 찾아왔을까.

소강명 역시 이곳에 무림맹주와 청강마저 있는 마당에 구태여 그를 만날 이유가 있을까.

‘곽가가 바삐 달려올 정도로 급한 일이라…….’

진무린은 지난밤의 상황과 곽가가 뱉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부맹주 소강명의 죄를 입증할 증거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

 

여명이 밝으며 귀혼곡을 울리던 진동은 사라졌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백면호리는 품에 안은 요정을 침상에 눕히고는 붉은 눈으로 이안공자의 근처로 움직였다.

“끝난 거 아냐?”

“아직 돌아가지 않았소.”

“그것을 어떻게 알아?”

백면호리의 질문에 이안공자는 오른손을 들어 길게 늘어진 실을 가리켰다.

좁쌀만 한 구슬을 단 실 수십 개가 동굴의 천장에서 내려와 있는데 그것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이송암관 앞에 누군가 서성이면 바닥이 눌리며 이 줄이 움직이게 되지요.”

눈을 껌벅인 백면호리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이안공자를 보았다.

“고수가 왔더라도 이송암관을 지나치지 않을 수 없고, 발아래로 깔린 것이라야 이 실 하나이니 감각을 느끼지 못하오.”

“그럼 저렇게 여러 개가 동시에 움직이는 건?”

“고수 서너 명이 수하들을 이끌고 왔다고 보는 게 적당할 거요.”

“오!”

감탄을 터트린 백면호리가 따지는 것처럼 시선을 돌려 침상을 확인했다.

“동굴에서도 정이의 치료는 얼마든지 가능하니 염려하지 마시오.”

“아침은?”

“노반이 쌀죽과 만두를 준비하니 그 또한 걱정할 것이 아니오.”

“뭐야? 그럼 안심해도 되잖아?”

“백면호리야 경공을 발휘해 도주할 수 있지만, 관문이 뚫리면 이곳의 모든 이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우니 아직 마음을 놓기는 이르지 않겠소?”

이안공자의 대꾸와 표정이 무거워서 백면호리는 그저 “큼큼.”하는 헛기침만 내놓았다.

“금방 돌아가겠지, 뭐.”

“그랬으면 싶소. 통상 하루면 돌아가니 내일 아침까지 지켜보면 되리다.”

“크흠. 그런데 말일세. 아침에 그거는 어떻게 해결하나? 사실 좀 급한데.”

백면호리의 개떡 같은 질문을 이안공자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성이에게 말하면 해결될게요.”

“참, 없는 것이 없어. 준비가 철저해.”

입을 쉬지 않는 백면호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솔직하게 진무린은 아직 내공의 단계가 올랐음을 깨닫지 못했다.

무너진 사당이 ‘내가 증거잖아.’ 라고 외치는 듯했으나 몸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또 어쩌겠나.

우습기도 했다.

황종관과 청강이 알아차리는 것을 정작 당사자인 진무린이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마치 키가 부쩍 큰 아이를 주변 사람은 알아차리는데 본인은 바지가 짧아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진무린은 사당의 뒤로 올라가 적당한 장소에 앉았다.

먼저 운기를 하고 다음으로 곽가가 이곳에 급히 왔을 이유, 소강명이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만나야 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참이었다.

내공이 높아진다고 해서 검이 더 빨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검에 담기는 힘이 강해지고, 그럴수록 허초가 위력을 발휘하는 터라 그만큼의 이득은 분명히 있었다.

검을 뿌리는 힘을 십으로 놓았을 때 오 이하를 담으면 허초요, 오 이상을 담는 것을 실검이라 부른다. 

내공이 강할수록 허초가 실검처럼 보이니 진무린은 실로 엄청난 득을 얻은 셈이었다.

‘소수음공이 분명한데.’

짐작한다. 대강은 알겠다.

그런데 묵룡심법의 내공에 녹은 소수음공이 고약하게도 진무린에게는 감각을 주지 않은 채 위력만 발휘하고 있으니 통제할 방법이 필요했다.

진무린은 먼저 가볍게 일주천을 시작했다.

단전에서 일어난 내공을 몸 안에 돌려 상태를 확인했고, 이어 단전으로 돌려보냈다.

호흡을 세고, 몸을 살피는 동안 이전과는 달리 내공이 좀 더 거세진 느낌이었는데 딱히 짚이는 것은 없었다.

‘욕심낼 것이 있나.’

진무린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모처럼 여유 있게 하는 운기에 집중했다.

얼마나 운기했을까.

단전에서 올라온 기운이 자연스럽게 중단전에 담기기 시작했다.

이는 진무린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은천심법과 묵룡심법, 그 어디에도 중단전에 내공을 담는 운기법은 없었다.

소수음공을 담았던 까닭일까.

몸에 나쁘지 않고, 당장 해가 없는 터라 진무린은 내공의 움직임을 살피며 호흡을 놓치지 않는 데 집중했다.

단전에서 일어난 내공이 몸을 돌아 중단전에 고이고, 다시 그곳에서 출발한 내공이 단전으로 들어간다.

처음 생사현관을 타통해 임맥과 독맥에 내공이 흐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진무린은 이번에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알아채지 못했다.

진무린의 몸에서 피어난 검은 기운이 바닥에 깔리는 연기처럼 천천히 퍼지고 있는 것을 말이다.

중단전에서 일어난 내공이 단전에 들어갈수록 검은 기운은 짙어졌고 진무린을 중심으로 반경을 넓혀갔다.

현상을 알지 못하는 진무린은 이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낙엽, 작은 돌, 잎사귀를 잃어 앙상해진 나뭇가지까지, 그 모든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선명하게 진무린의 뇌리에 그려졌다.

사람이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몸을 중심으로 바깥의 모든 것이 일시에 느껴지는데 생소한 감각이 워낙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다른 건 모른다.

다만, 이것이 중단전에 내공이 담긴 이후에 생긴 감각이라는 것만 알았다.

생사현관의 타통 이후의 경지를 흔히 신선의 경지라 일컫는데 혹시 그 덕분이 아닌가 하는 기대도 있었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몸이 정화되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운기하던 도중이었다.

벽을 향해 앉은 도사처럼 평온하던 진무린의 눈 끝이 꿈틀했다. 

‘곽가?’

진무린의 감각에 곽가가 들어왔다.

어딘가에 웅크린 그는 호흡마저 감춰서 마치 죽은 두더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랬구나!’

진무린은 단박에 곽가의 처지를 이해했다.

붉은 안개로 몸을 감추기는 했으나 발목이 잘려 누군가 도움을 주기를 기다리며 귀식대법으로 몸을 숨긴 것이 분명했다.

진무린은 곽가의 위치를 가늠했다.

사방이 한 번에 느껴지는 터라 방향과 거리를 제대로 알려면 아직 몇 번의 운기가 더 필요해 보였다.

앞인지, 뒤인지, 가늠이 어려웠고, 심지어 지금 진무린이 머리를 아래로 둔 자세인지 허공에 옆으로 떠 있는 것인지조차 모호한 상태이기도 했다.

진무린은 곽가에 집중했다.

그가 몸을 숨긴 주변의 모습을 보았고, 다시 반경을 천천히 넓혔다.

찾았다. 그리고 느꼈다.

감각을 통해 쓰러진 사당을 확인한 진무린은 그곳에서 다시 곽가가 있는 곳을 천천히 되짚었다.

사당을 바라보며 오른편 위로 올라가 다섯 그루의 나무가 뒤엉킨 사이, 바닥에서 두 자 아래.

위치를 확인한 진무린은 마지막 호흡을 들이마시며 운기를 마쳤다.

눈을 뜨기 전에 넓게 퍼졌던 검은 기운이 삽시간에 몸으로 흡수되었는데 이 현상마저도 진무린은 확인하지 못했다.

진무린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사당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몸을 돌려 사당을 등진 뒤에 주변을 둘러본 결과, 감각으로 느낀 것과 한 점 차이가 없었다.

“두더지.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할까?”

실제로도 고민이었다.

귀식대법은 누군가 찾아올 것을 믿고 부리는 일종의 은신술이었다.

그렇다면 진무린 역시 몸을 숨긴 채 도움을 주러 오는 자가 도착할 때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우선 곽가를 잡아놓고 볼 것인지.

잠시 생각했던 진무린은 곽가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눈앞에 두고도 붉은 안개에 놓치는 판국인데 곽가보다 강한 혈교의 인물이 나타나 술법을 부리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감각은 무서웠다.

운기하며 느낀 그대로 나무와 돌,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은 진중한 진무린마저 속으로 감탄사를 뱉을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진무린은 곽가가 숨었으리라 짐작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붉은 안개를 피워낸다면 무릎과 팔꿈치를 잘라주마.”

진심이었다.

곽가가 듣지 못했을 경고를 내뱉은 진무린은 근처의 나뭇가지를 잘라 짐작하는 곳의 흙을 위로 떠냈다.

내공을 담은 나뭇가지가 흙을 커다랗게 파헤쳤고, 그렇게 서너 번 움직이자 흙 사이에서 검은 승복이 드러났다.

고민할 게 없는 일이었다.

진무린은 팔을 뻗어 승복을 잡아 끌어올렸다.

털썩.

구덩이 근처에 던진 곽가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귀식대법은 이렇다.

진무린은 검을 꺼내 곽가의 이마를 찍었고, 가볍게 내공을 흘려 넣었다.

“끄으.”

검을 집어넣은 진무린의 시선 아래에서 정신을 차린 곽가가 고개를 들었다.

“뭘 그렇게 놀라?”

“어떻게……?”

“왼쪽 손목이 아직 하나 남았으니 일단 자르고…….”

말을 하던 진무린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빠르게 날아온 두 사람은 벌써 앞쪽의 나무 위에 있었다.

퍼러럭. 퍼러러럭.

그 직후에 거칠게 내려앉은 주인공은 반노쌍복이었다.

중년 양가의가 곽가를 확인하고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양보해 주겠나?”

“그렇게는 못 합니다.”

“후우.”

진무린의 태도를 확인한 양가의가 답답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휘리릭.

그런 뒤에 그는 허리에 감았던 연검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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