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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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13화
은천검제
제13화
홍화루는 점심 따위 팔지 않는다.
문을 열 시간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1층의 중앙에 앉은 진무린은 소박한 식사를 사치스럽게 받았다.
세 가지 요리와 밥이 전부여서 소박하다 했고, 그를 준비하는 이들이 총관과 두 명의 부루주이니 사치스럽다고 표현할 만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진무린은 요리와 밥을 입에 넣었고, 그 모습을 설란과 은향, 백섭광이 묵묵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총관 백섭광에게 몇 가지 물어보고 일어서려 했다.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으리라 예상했으니 기대하는 바도 없었다.
그저 밥 한 끼 먹으며 장 노대가 다가올 시간을 만들 겸, 백섭광의 반응쯤 보고 싶었다.
운이 좋아 원예를 만나 그녀의 반응을 살피면 더 좋고.
그런데 홍화루를 찾은 진무린은 예상하지 못했던 기운을 느꼈고 그 직후에 마음이 바뀌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기운이라 놀랐다.
이어 그 기운이 강한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소수음공이라 부르고, 소수마공이라고도 부른다.
살을 파고드는 듯한 냉기와 비슷하나 소수음공은 그 끝에 독과 같은 짜릿한 느낌이 따르기 때문에 감추기는 어렵다.
- 이른 시간에 근처에서 기운을 느껴 뒤지던 길에…….
중년인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 진무린은 그 기운이 소수음공이라 확신했다.
물론 원예와 두 명의 남자가 해결할 문제였다.
한 가지만 설명된다면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진무린은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설란이 고개를 돌리자 시비가 다가왔다.
쟁반을 넘겨받은 설란이 조용하게 움직여 진무린 앞에 차를 놓아주었다.
“총관.”
“예, 공자.”
“나는 조용히 돌아가도 되는데.”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비가 필요하시면 보태드릴 수도 있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나온 대꾸에 진무린은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내가 하는 질문에 답을 주면 바로 본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후 다시는 홍화루를 찾지 않을 텐데, 어때?”
질문을 기다리는 백섭광의 얼굴에 불편함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오늘 오전에 만났던 노소 두 명은 앞으로 하루가 지나기 전에 루주를 찾는다. 총관과 홍화루의 부루주, 호위, 그리고 2층에 있는 살수가 그녀를 지킬 수 있나?”
정말이지 짧은 순간, 백섭광의 눈빛이 흔들렸다.
거기에 더해 부루주 둘은 표정과 눈빛을 감추려는 것처럼 고개를 떨어트렸다.
“소수음공은 일정 수준이 되면 벽을 만나지. 발전이 더뎌지면서부터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특징이 있고.”
딱딱하게 굳은 채 서 있는 세 사람을 돌아본 진무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벽을 만난 사람의 특징을 하나 더 말해줄까? 화가 났든, 분노했든, 한 번 내공을 일으키면 며칠 동안은 완벽하게 잠재우지 못해. 그렇지 않나, 총관?”
진무린의 질문이 떨어진 뒤였다.
더는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백섭광이 나직하게 숨을 토해냈다.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줄까? 어쩐 일인지 홍화루에 소수음공의 기운이 가득해. 나도 느끼는 것을 그 두 사람이 모를까.”
“확신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 소수음공의 이름을 내놓을 수 있겠나.”
“루주의 손을 보시고 짐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픽 웃은 진무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수음공의 다른 이름도 알려줄까?”
굳게 다물며 감추려 했으나 백섭광의 입술 끝이 잘게 떨렸다.
“소수마공이라고도 하지. 마교가 그 무공을 발전시켰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마등은 마교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어. 폭렬공.”
“모르는 일입니다.”
“소수음공을 모른다는 거냐, 아니면 내가 본 두 사람을 모른다는 거냐, 그것도 아니면 마등이 폭렬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거냐?”
백섭광이 무언가를 결심한 눈빛으로 진무린을 노려보았다.
“내공을 드러내지 마라. 이건 내가 밥을 얻어먹은 것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다.”
진무린은 백섭광의 빛나는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공연히 중년인과 노인을 오게 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오늘은 더 이상 피를 보고 싶지 않다. 피곤하기도 하고.”
“공자. 루주는 마교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제 목을 걸고 드린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만 일어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 질문에 대한 답, 노소 두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면 루주를 지킬 수 있나?”
“그것이 어떻게 공자가 걸음을 돌리는 이유가 됩니까?”
팽팽한 긴장 속에서 오간 대화였다.
그러나 진무린의 경고에 눌려서인지 백섭광은 어느 정도 기가 꺾인 모습이었다.
“답을 하기 어려우면 질문을 바꿔주지. 루주는 소수마공을 익혔다. 마등은 폭렬공을 익혔고. 중년과 노인, 두 사람이 목이 잘린 마등을 확인하고는 루주를 찾아 나섰고.”
진무린이 말하는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백섭광은 눈가를 좁혔다.
“내가 진짜 알고 싶은 것은 마등이 얻은 폭렬공이 마교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그 두 사람이 속한 곳에서 나온 건지, 그것 하나다.”
“말씀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
“루주의 이름을 걸면 믿어주지.”
떨리는 것을 넘어서서 백섭광의 입술이 흔들릴 때였다.
“총관은 물러나세요.”
2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밟으며 원예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녀 둘을 뒤에 세운 원예는 꼿꼿한 자태에 지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무릎을 굽히지 않는 도도한 걸음이었고, 빠르지도 않았다.
또 하나, 걷는 내내 진무린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방향을 틀기 위해 몸을 돌린 원예가 살포시 고개를 돌려 진무린을 보았는데 나풀거리는 치마는 여전히 앞을 향해 움직였다.
“루주.”
“물러나세요.”
총관 백섭광이 고개를 조아리고는 두 걸음을 뒤로 움직였다.
“공자. 소녀는 마교와 관련 없어요. 또한, 마등이 어떻게 폭렬공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소녀의 이름을 걸 것 없이 이렇게 직접 말씀드렸으니 이제 답을 얻으셨나요?”
감추지 못하는 냉기가 그녀의 몸에서 풍겼다.
서 있는 원예는 내려다보고, 앉은 진무린은 고개를 살짝 들었는데 두 사람 모두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다.
지금 원예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나중에 돌아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될 일이다.
백섭광과 두 명의 부루주가 긴장한 눈으로 두 사람을 살피는 앞이었다.
일어서려던 진무린은 설핏 느껴지는 다른 기운에 시선을 빠르게 뒤로 돌렸다.
무슨 일인가 싶은 원예와 두 명의 부루주, 그리고 백섭광이 진무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루주. 잠시 힘겨울 텐데 설명은 나중에 하지.”
원예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진무린은 묵룡심법을 운용해 내공을 쏟아냈다.
삽시간에 앞에 있던 네 명의 낯빛이 바뀌었는데 모두 진심으로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었다.
‘내공을 일으키지 마.’
진무린은 원예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러죠?’
그녀의 눈이 또렷하게 질문을 건넬 때 진무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개 루주가 너무 건방지지 않으냐.”
말을 건넨 진무린은 내공을 몰아 원예를 감쌌다.
“흐윽.”
고통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은천심법도 아니고, 묵룡심법으로 짓눌렀으니.
그것도 원예 한 사람에 집중한 터라 견디기 어려울 수준이었다.
가슴을 움켜쥔 원예가 놀라 시선을 들었을 때 진무린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우우우우웅.
등에 매단 검이 울음을 토해낸 직후였다.
“무슨 짓이요, 공자!”
백섭광이 더는 참지 못한다는 투로 내공을 일으켰고, 설란과 은향은 반걸음을 물러난 채 양손을 들어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흥! 루주가 저 모양인데 총관과 부루주 정도야!”
우우우웅.
진무린이 내공을 더 거세게 뿜어내자 묵룡검이 세차게 울었고, 고통을 이기지 못한 원예는 마침내 무릎을 구부리며 앞으로 무너졌다.
“루주를 놓아라!”
백섭광이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설란과 은향이 동시에 팔을 뻗었다.
터억. 터더덕.
진무린은 왼손을 뻗어 총관의 오른손을 잡아챘고, 오른팔을 내밀어 설란과 은향을 한 번에 밀쳐냈다.
설란과 은향이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나는 순간에 진무린은 왼손 손바닥을 펼쳐 백섭광의 가슴을 밀었다.
퍼억. 콰다다당!
탁자와 함께 바닥을 구르는 백섭광을 보며 두 명의 부루주는 확실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공자!’
고통을 이기기 위해 얼굴을 찌푸린 상태에서도 원예는 항의하듯 시선을 들었다.
의문, 원망, 분노, 서운함, 그리고 알지 못할 또 하나의 감정이 담긴 원예의 눈이 진무린을 노려볼 때였다.
홍화루의 문으로 두 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또 자네로군.”
백섭광은 확실히 당황했고, 두 명의 부루주는 퍼뜩 놀란 얼굴이었다.
진무린은 내공을 줄이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참견하는 것은 미안하네만, 무슨 일인지 묻겠네. 왜 이러는 건가?”
“흑사련의 마등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돌아온 길입니다.”
“그렇지!”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대꾸를 꺼냈던 노인이 중년의 눈빛을 받고는 두꺼비처럼 표정을 감추었다.
“누구보다 득을 얻을 홍화루에 한 끼 식사를 청했더니 고작 요리 세 가지에 밥 하나를 내미는 터라 버릇을 고치던 참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진무린은 갑자기 화가 더 치밀었다는 투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흐으-윽.”
내막을 모르는 검은 더욱 세찬 울음을 토해냈고, 그와 동시에 가슴을 움켜쥔 원예가 몸을 구부리며 앞으로 무너졌다.
그녀의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방울방울 홍화루의 바닥에 떨어졌다.
투욱. 툭.
호수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또렷하게 모양을 그려낸 핏방울이 고였는데 바닥을 향해 몸을 구부린 원예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실로 괴로운 몸짓이었다.
“이만 용서해주면 어떻겠나?”
“정도문파의 수고로움을 가벼이 여기고, 흑사련에 의지했던 것들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교훈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진무린을 만류했던 중년인이 괴로워하는 원예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녀의 하얀 손을 잠시 바라보았다.
진무린이 펼친 내공 위로 중년인의 기운이 파고들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상황을 짐작한 백섭광과 두 명의 부루주가 마른침을 삼키며 중년인의 판단을 기다릴 때였다.
“홍화루의 루주가 대단하다더니 정작 무공은 허술하군.”
중년인의 말이 떨어진 직후에 원예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며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거참. 이곳도 아니면 어디란 말인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찾는 기운 말일세.”
진무린은 슬쩍 원예를 돌아보았다.
“어떤 기운을 찾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곳은 아니라 봅니다.”
시선을 다시 돌린 앞에서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만 돌아가겠네.”
“불편한 모습을 보여드려 부끄럽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보세!”
입을 참지 못한 노인은 차갑디차가운 중년의 눈빛에 고개를 움츠리고는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이 나간 뒤였다.
진무린은 두 명의 부루주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이것들을 치우고 새로 요리를 가져와.”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요구는 두 명의 부루주를 향해 건넸는데 답은 백섭광이 내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미련처럼 끊어내지 않았던 두 명의 기운이 사라졌다.
진무린은 서둘러 몸을 숙였고, 설란이 안다시피 상체를 받친 원예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루주는 괜찮겠습니까?”
나직한 음성으로 백섭광이 빠르게 건넨 말이었다.
“기운을 넣었으니 일각 정도면 정신을 차릴 거다. 내공을 이용해 루주의 소수음공을 눌러두었으니 앞으로 보름 정도는 기운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전해줘.”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아까 두 사람은 내가 내공을 누른 뒤에 살폈기 때문에 그냥 돌아간 거지. 그 정도도 짐작하지 못하면서 달려들었나?”
백섭광은 시선을 원예에게 떨어트렸다.
“루주와 총관의 말을 믿고 돌아간다. 밥을 얻어먹은 값은 무공을 감춰준 것으로 대신하지. 한 냥 이상의 값어치는 될 것 같으니까.”
몸을 일으키는 진무린은 주저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공자.”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백섭광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진무린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상태에서 팔만 들어 보였다.
그만하자는 의미였다.
잘 있으라는 뜻이었고.
곧장 홍화루를 나선 진무린은 주저하지 않는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왜 도와주었지?
누군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미모가 뛰어나서는 아니고, 불쌍하고 가련한 것은 더더욱 아니며, 그렇다고 크게 신세 진 것도 없다.
정말 밥 얻어먹은 값을 했다는 생각에 웃던 진무린은 소능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 노대의 기운이었다.
그가 진무린을 부르고 있었다.
은천문의 삶과 달리 강호는 참 어렵고 복잡하게 살아간다.
얽히고 설켜서.
장 노대를 만나기 위해 진무린은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