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검제 6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은천검제 6화
은천검제
제6화
‘은천검법’으로 우중객을 상대하던 진무린은 실제로 검법을 바꾸었다.
무엇보다 매화를 그려낸 청강이 하왕하칠살을 상대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다음으로 우중객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쉐엑! 쉑쉑!
무공의 고하를 어떻게 한마디 말로 표현하겠나.
그렇더라도 굳이 표현하자면 우중객의 검은 청강의 반수 아래였다.
문제는 실전에서 익힌 우중객의 임기응변이 워낙 뛰어나다는 데 있었다.
쉑! 카앙! 카아앙!
몸을 뒤튼 우중객의 겨드랑이 아래에서 검이 불쑥 나온다든가, 느닷없이 훌쩍 달려드는 동작은 검법이 아니라 강호를 돌고 돌며 겨룬 실전에서 터득한 방법이 분명했다.
상황을 파악한 진무린은 이때부터 ‘섬전검법’을 펼쳤다.
섬전이란 것이 본디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번갯불을 의미하지 않던가.
청강이 화산의 검보다 빠르고 화려하며 날카롭다 탄식했을 정도로 섬전검법은 속도와 변화에 치중한 검법이었다.
“이이익!”
이를 악문 우중객이 또다시 의지를 토해냈다.
임기응변으로 대항하기에 한계를 느낀 것처럼 보였다.
카아앙! 카각!
진무린은 날아드는 우중객의 검을 감다시피 휘몰아 한쪽으로 밀었다.
카가가강!
그리고는 단박에 그의 목과 명치, 다시 옆구리를 노렸다.
우중객은 진무린의 검을 모두 막았다.
그러나 지켜보는 이는 몰라도 진무린과 우중객, 두 사람만은 분명하게 알았다.
우중객의 검이 어지럽게 흔들린다는 것을 말이다.
쉐엑! 쉑쉑쉑쉑!
여유를 얻기 위해서인지 우중객은 보법을 이용해 진무린의 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쉑! 쉐에에엑! 쉐엑!
그러나 벗어나기는커녕 집요하게 따라붙는 진무린의 검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카앙! 카가각!
궁지에 몰린 우중객이 급하게 내민 검을 진무린은 또다시 감아 뿌리쳤다.
그 직후였다.
휘청.
우중객의 보법이 흔들렸고, 한순간 그의 몸이 왼편으로 쏠렸다.
번득.
우중객의 눈이 진무린을 파고들 듯 날카롭게 빛났다.
임기응변이리라.
저렇게 독한 눈을 마주한 진무린이 찰나의 순간만큼이라도 움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치켜뜬 게 분명했다.
먹혔다면 우중객은 위기를 벗어났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진무린은 그런 눈빛에 기죽을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가라.’
쉐에엑! 쉐에에에에엑!
검을 뻗은 진무린은 섬전검법이 지닌 최고의 변화를 허공에 그렸다.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이 떼 지어 흘렀으며, 햇살은 눈부셨다.
하왕하칠살이 지르는 “하! 하!” 하는 기합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진무린이 뿌린 검광이 봄날에 내리는 폭설처럼 우중객을 휩쓸었다.
“우아아아악!”
카가가가가강!
우중객은 지닌 모든 것을 쏟아내듯 검을 휘둘렀다.
휘릭! 휘리리리릭!
멈추지 않는 진무린의 검을 향해 악귀처럼 인상을 찌푸린 우중객이 지닌 모든 것을 토해냈다.
실제 눈발이었다면 모두 막아냈을지 모른다.
섬전검법이 아니라 화산의 매화 송이였다면 어렵지 않게 막았을 수도 있었다.
카가가가가강!
요란한 충돌음이 터져 나오는 위로 또다시 폭설처럼 자욱한 검광이 우중객을 뒤덮었다.
“커흑.”
그리고 그 끝에서 우중객은 무려 다섯 걸음을 뒤로 밀려났다. 그는 놀란 눈으로 진무린을 보았고, 이어 천천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쉬익!
갈고리를 커다랗게 휘두른 묘일이 물러나며 남은 여섯이 줄줄이 무기를 거두었다.
청강 역시 훌쩍 뒤로 날아 거리를 두어서 비룡방 앞은 지독한 침묵에 휩싸였다.
투둑. 피시시시시.
우중객의 몸 곳곳이 벌어지며 한 뼘 높이로 피가 튀어 올랐다.
붉디붉은 그의 피가 검에 이슬처럼 맺혔고, 바닥에 떨어져 비처럼 흙에 스며들었다.
우중객의 턱과 검을 쥔 오른손에도 피는 튀었다.
“이것이 무슨 검법이냐?”
“본문의 섬전검법이다.”
답을 들은 우중객이 이를 악물며 무언가를 삼켰다.
기혈이 역류해 울컥 올라온 피를 억지로 삼키는 눈치였다.
“처음에 보았던 검법은?”
죽어가면서 그것이 그리 궁금할 일인가.
나직하게 숨을 내쉰 진무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죽인 이들도 궁금한 것이 많았을 거다. 억울했을 테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마라. 이 정도도 너에게는 과분하다.”
희한한 소리를 내며 웃은 우중객이 몸을 내려다본 뒤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쉐에에엑!
그리고는 예비 동작조차 없이 진무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각! 쉑! 쉐엑!
검이 휘말렸고, 이어 휘두른 진무린의 검을 우중객은 막아내지 못했다.
우중객의 목에 검면을 새긴 것처럼 분명하게 붉은 줄이 올라와 있었다.
“너는 련주의 무서움을 모른다.”
우중객의 목에서 거칠게 뿜어나오는 피가 진무린의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가라.”
진무린의 대꾸가 떨어진 직후였다.
뻣뻣하게 표정이 굳은 우중객이 짚단처럼 뒤로 넘어갔다.
털썩.
마등의 왼팔이자 흑사련 서열 3위인 우중객의 허무한 최후였다.
뒤로 넘어져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우중객은 여전히 검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지독한 침묵 속에서 진무린은 그를 잠시 지켜보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돼지. 오래 기다렸다.”
저오능이 ‘끄응’하는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는데 감히 대꾸를 내놓지는 못했다.
이왕 섬전검법을 보인 참이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하왕하칠살을 잡는 데 시간을 끈다면 오늘 장사는 손해 보는 꼴이 된다.
“진인. 제가 거들까 합니다.”
“진 대협이 나서준다면 노도의 아쉬움이 단박에 사라질게요.”
진무린의 요청을 청강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왕하칠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중객을 상처 하나 없이 잡을 고수가 비룡방에 있으리라 어찌 짐작이나 했겠나.
처음 들었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문파 출신에, 심지어 스물 후반의 나이이니 하왕하칠살의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함정에 빠진 꼴과 다르지 않았다.
“돼지는 따로 벌할 생각입니다.”
“진 대협의 뜻은 알겠소.”
대화를 마친 진무린은 묘일을 향해 곧바로 걸었다.
“어딜!”
휘릭! 촤아악!
창기의 채찍이 거칠게 일어나 바닥을 때린 뒤에 꿈틀거리며 진무린을 향해 날았다.
휘리릭!
진무린은 청강에게 잘린 채찍의 끝을 검으로 감았다.
그리고는 세차게 잡아당겼다.
“사매!”
묘일과 학사, 의원이 급히 갈고리, 판관필, 쌍검을 들고 달려들었는데 진무린의 검이 빨랐다.
“놔! 놓아!”
채찍의 자루를 놓으라는 묘일의 외침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쉐에엑!
진무린의 검이 번득 허공을 갈랐고,
“끄윽! 꺽!”
목을 움켜쥔 창기가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발악처럼 몸을 비틀었다.
“사매!”
“끄으! 끄으으!”
버둥대던 창기의 몸이 축 늘어진 뒤였다.
“네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다시는 갈고리를 들지 않겠다!”
쉬이이익!
묘일을 시작으로 남은 다섯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청강은 섬서에서 세 번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다.
세 명의 순위를 매기기 어려워 그렇게 부르는 것이니 하왕하칠살이 그를 앞에 두고 함부로 방심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쉐엑! 카앙! 카가강!
청강은 단박에 진무린의 뒤로 자리를 옮겨서는 사냥꾼과 승려, 돼지를 밀쳐내 주었다.
쉬익! 쉭! 쉬이익!
묘일이 악에 받쳐 뻗어내는 갈고리에는 제법 날카로운 수가 담겼다.
그러나 그건 일곱이 “하! 하!” 하는 기합과 함께 합공할 때, 그리고 청강 정도의 고수를 가둬두고 몰아칠 때나 효과를 볼 수법이지 진무린을 상대로는 어려웠다.
쉬익! 캉! 쉬이익! 카앙!
진무린은 단박에 묘일의 갈고리를 때려냈고, 이어 학사의 판관필마저 한쪽으로 밀쳐냈다.
“사제!”
묘일의 고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쉐에에엑!
“큭!”
판관필이 밀어낸 진무린의 검이 학사의 목을 갈랐다.
굳이 죽는 꼴을 지켜볼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휘리리릭!
진무린의 검이 화려하게 움직인 직후에 검광에 갇혔던 의원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주춤대며 물러났다.
“이 악적! 어찌 우리 형제에게 그리 잔인하냐!”
기가 막힌 고함을 지른 묘일이 목숨을 버리다시피 진무린에게 달려들었다.
쉬이익! 가각! 쉬익! 가가각!
진무린은 그가 든 두 개의 갈고리를 감아서 뿌렸다.
쉑!
그리고는 섬전처럼 검을 내밀었고, 곧바로 회수했다.
묘일의 목젖 바로 아래 검면 길이의 상처가 붉게 피어났다.
“꺽! 꺼윽!”
숨통이 잘린 묘일이 눈을 부릅뜬 채 버둥대다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승기란 이렇다.
쉐에에에에엑!
묘일이 쓰러진 틈을 이용해 청강은 매화 송이를 피워냈다.
“끄으!”
“커흑.”
화려한 매화를 품었던 사냥꾼과 승려는 가슴이 온통 갈라지고 벌어진 채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침묵 속에서 진무린은 몸을 틀었다.
하왕하칠살 일곱 중 유일하게 서 있는 저오능을 향해서였다.
“왜 그랬는지 묻겠다.”
“뭣을 말이냐?”
주변을 둘러본 저오능이 마지막까지 지기 싫다는 투로 내뱉은 질문이었다.
“젖 먹이는 여인을 꼭 그렇게 해야 했나?”
진무린은 검을 바라보았던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그 직후에 저오능의 볼이 부르르 떨렸다.
워낙 매서운 진무린의 눈빛을 마주한 탓이었다.
“네놈에게 끌려가면서 동전 두 개를 던졌던 여인은 기억하나?”
저오능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 동전이 여자가 가진 전부였다는 것을 잊지 마라. 마지막 순간에도 아이에게 동전을 전하려 했던 어미의 마음을 너는 절대 잊어선 안 되고.”
“나도 기억 못 하는 일을 네가 어떻게…….”
“암연.”
저오능을 보았던 진무린이 픽 웃었다.
“그런 게 있어.”
쉬이이익!
죽음을 직감한 저오능이 쇠스랑을 거칠게 휘둘렀다.
카앙.
진무린은 정말이지 가볍게 쇠스랑을 쳐내고는 한 걸음을 다가섰다.
쉬이익! 카앙!
몸을 띄운 뒤에 내리친 쇠스랑도 마찬가지로 옆으로 튀었다.
쉭쉭쉭쉭!
저오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찔러대는 쇠스랑이 어지럽게 흔들리는데 진무린은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으로 피했다.
쉐에에엑!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검을 휘둘렀는데 검광이 번쩍인 직후에 쇠스랑의 중간이 싹둑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쉑!
“크흑!”
왼쪽 어깨를 움켜쥔 저오능이 당황한 눈으로 뒷걸음질 쳤다.
쉐에엑!
이번엔 오른쪽 어깨가 크게 갈라졌고, 이어 왼쪽 어깨를 감쌌던 저오능의 오른팔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돼지.”
혹시 마지막에 살 기회를 주려나 싶을 정도로 진무린의 음성은 덤덤했고, 나직했다.
“억울하게 죽어간 여인들을 대신해 너의 죄를 묻겠다. 음행에 대한 벌은.”
쉐에에엑!
“참수다.”
진무린의 냉정한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크륵!”
목을 뒤로 젖혔던 저오능의 머리가 스르륵 밀려나 바닥에 떨어졌고, 버둥대던 몸뚱이가 무너지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끝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른 시간에 흑사련의 서열 3위와 5위를 차지한 악명 높은 여덟 명이 비룡방의 앞에 널브러졌다.
“고생했소, 진 대협.”
진무린이 보기 좋은 미소로 청강을 마주했는데 비룡방 앞에 서 있던 이들은 마치 주인을 만난 종복처럼 상체를 기울이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