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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1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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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1화

은천검제

제1화

 

호북 안평의 비룡방은 검날 위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살벌하고 어수선했다.

손목에 끈으로 연결한 한 자루 도끼를 부리는데 그 모습이 허공을 나는 용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비룡방이요, 강호 전체를 꼽는 것과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비룡방의 방주 등평과 호법 철비완은 호북 30대 고수에 손꼽히는 무인이었다.

덕분에 비룡방은 호북 안평의 주인 행세를 하며 오늘날까지 성세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 무인의 삶에 위기가 없으랴.

등평의 무남독녀 등소옥이 일을 만들었다.

가문의 무공인 도끼를 익힌 등소옥은 어깨가 제법 단단했고, 허리가 잘록해 스물하나의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았다.

거기까지 좋았다.

더 바랄 것 없었다.

최소한 호북의 안평에서는 그랬다.

한 달 전쯤인가.

관리하는 객잔에 들러 저녁을 먹던 등소옥은 세 명의 거친 무인들과 시비가 붙었다.

안평의 아녀자를 희롱하는 모습에 이마의 힘줄이 돋았고, 거친 말이 건너간 뒤에 육두문자가 돌아왔으니 남는 것은 들고 있던 검과 도, 도끼를 꺼내 맞서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놀랍다.

이 싸움에서 등소옥은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달려든 셋 중 둘은 중상, 한 명은 가슴이 푹 팬 모습으로 죽고 말았다.

여기까지도 그럭저럭 넘길 만했다.

희롱당한 아녀자가 나서 증언하고, 셋과 한 명의 대결이라는 것을 객잔에 있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어서 등소옥의 이름이 양평에 짜하게 울렸다.

참 좋았는데.

더 말할 것 없었는데.

죽은 셋이 흑사련 소속인 것이 밝혀지며 비룡방은 물론이고, 객잔에 있던 이들마저 죽음을 앞둔 사람들처럼 침울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흑사련이다. 

하늘이 내린 저주라고 할 정도의 재능을 타고난 마등은 강호 최초로 사파를 통일해 그를 흑사련이라 이름 지었다.

아무렴 구대문파와 싸우기 바쁜 흑사련의 련주 마등이 호북에서 일어난 자잘한 시비까지 개입하겠나.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 흑사련의 호북지부장 추굉이 나서면서부터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알력다툼에서 밀리는 기색에 불안하던 흑사련 서열 9위인 추굉은 이 기회를 이용해 마등의 눈에 들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한 달 뒤에 비룡방을 찾아가 기왓장 하나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일자까지 지정하며 공공연하게 복수를 다짐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것은 비룡방이었다.

정도맹에 서찰을 급히 보내 도움을 요청했고, 주변 문파에 손을 벌렸다.

그러나 정도맹은 마등을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었고, 주변 문파는 자신들의 지역을 지키기에도 급한 데다, 추굉의 눈초리가 무서워 쉬 나서지 못했다.

어쩌랴.

비룡방의 방주 등평은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무인들을 초빙하였다.

호법이 인정하는 무인은 한 달을 버티는 조건으로 은자 열 냥, 방주가 인정하는 실력이면 달에 스무 냥,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비룡방의 존폐가 걸린 일이 아닌가.

호법 철비완이 눈에 불을 켜고 살피며 고만고만한 무인들을 죄 돌려보냈다.

밀려드는 무인들을 보며 방심한 탓이었는데 그렇게 돌려보낸다는 소문이 돌자 한순간 물줄기를 자르듯 찾아오는 이가 끊겼다.

놀란 철비완이 방을 연달아 냈으나 상황을 돌이키기는 어려웠다.

초장에 돌려보낸 무인들을 달에 은자 두 냥 정도로 붙들었다면 숫자라도 채웠으련만, 이미 흘러버린 강물이요, 마셔버린 술과 같아서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오늘도 그렇다.

정문을 활짝 열어놓은 비룡방은 수련장 앞에 책상을 놓았다.

착잡한 표정의 서기는 책상에 놓인 묵과 방문첩, 정문을 번갈아 볼 뿐 할 일이 없었고, 철비완은 뒷짐을 진 채 그 뒤에 서서 머리를 긁어대는 것이 전부였다.

해가 완연하게 기울어진 오후였다.

“큼.”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는지 방주 등평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오셨습니까?”

“오늘은 아예 찾아오는 이도 없든가?”

“송구합니다.”

“사제가 송구할 일이 뭐가 있어. 흑사련이 달려온다면 그에 맞춰 상대해주면 그만일세.”

통쾌하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등평의 얼굴은 심각했다.

호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추굉을 상대할 고수가 비룡방에는 없었다.

“지금껏 모인 숫자가 일곱이지?”

“예, 방주.”

질문에 답한 서기가 쭈뼛대는 시선으로 철비완의 눈치를 살폈다.

등평은 그 정도를 못 알아챌 인물이 아니다.

‘무슨 일인가?’

등평이 답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철비완을 보았다.

“객청에 있는 일곱 명으로부터 오늘 오전에 칼받이라도 숫자를 늘려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철비완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방법이 없어 그렇다.

이미 돌려보낸 무인들을 찾아다닐 것도 아니고, 그러기에 이틀밖에 남지 않은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허허허.”

기껏 모은 일곱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등평은 나직하게 웃음을 흘렸다.

직전과는 달리 지금은 아예 편안한 느낌이었다.

“사제와 내가 함께한 지 벌써 사십 년이네.”

해는 기울어져 연무장에 그림자를 길게 그리고, 비룡방의 기와지붕들이 옅은 주황색을 덮은 시간이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 그런데 한 번도 불의에 고개 숙여본 적은 없어.”

도끼를 부리는 무인답게 등평은 덩치가 제법 있었는데 철비완은 또 꼬장꼬장한 느낌으로 마른 체형이었다.

“그동안 내 도끼가 너무 얌전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제는 어떤가?”

“소제의 도끼 역시 지루하던 참이었습니다.”

“흐하하하!”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방주와 내년에 오십이 되는 호법이 존폐의 기로를 앞두고 함께 웃었다.

“가세! 이리 보내기엔 시간이 아까우니 오늘은 초빙한 무인들과 좋은 술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내일 도끼의 날을 날카롭게 세우세.”

“예, 사형.”

두 사람이 각오를 바짝 세운 뒤였다.

“저기 누군가 옵니다.”

문 쪽을 바라보았던 서기가 얼른 반가운 보고를 알렸다.

걸음걸이, 체형, 자세를 보면 실력을 얼추 가늠한다.

호북의 30대 고수에 드는 두 사람, 등평과 철비완은 얼른 시선을 돌려 다가오는 이를 살폈다.

이건 이상한데?

등평이 고개를 갸웃했고, 철비완은 눈가를 좁혔다.

등에 검을 메고 보따리를 든 무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한 점 없으니 당최 가늠이 안 가는 거라.

등평과 철비완이 기운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수가 아니냐고?

호북의 30대 고수인 두 사람을 능가하는 무인이라면 이곳 안평의 주인 행세를 할 실력이라는 의미다.

그런 고수가 달에 은자 스무 냥을 얻겠다고 목숨을 건다면 그게 미친 소리가 된다.

어디 얼굴을 보자.

“흠.”

등평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생긴 것은 미남형인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다부진 느낌에 절로 나온 숨이었다.

다가온 무인은 곧바로 열린 비룡방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방을 보고 오셨습니까?”

서기의 질문에 젊은 무인은 양손을 마주 잡았다.

“진무린이라 합니다. 방주를 뵙고 싶습니다.”

“내가 방주 등평이오. 이쪽은 내 사제이자 호법인 철비완이라 하오.”

가볍게 손을 마주 잡아 인사한 등평과 철비완은 시선을 마주쳤다.

진무린이라 자신을 소개한 무인이 든 보자기 때문이었다.

아래쪽이 시커멓게 물들었는데 두 사람이 보기에 피가 굳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 소협은 어떤 검법을 익히셨나?”

“검법보다는 우선 이것을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등평의 질문을 받은 진무린이 탁자에 보자기를 올려놓았다.

다들 오늘은 이렇게 끝나나 하고 갑갑하던 참이다.

바깥을 살피던 소가주 등소옥이 모습을 드러냈고, 객청에 있던 일곱 명의 무인들이 궁금한 얼굴로 연무장으로 통하는 서쪽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언가?”

“방주의 고민을 풀어줄 해결책입니다.”

보자기를 잠시 지켜보던 등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십 년을 함께한 철비완이 고갯짓의 의미를 모를 리 없어 그는 보자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위에 매듭진 고리를 당기는 순간,

“흐억!”

심약한 서기가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의자와 뒤엉켜 넘어지고 말았다.

등소옥이 바삐 다가왔고, 멀리서 보던 일곱 명의 무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진무린의 주변을 둘러쌌다.

풀린 보자기 위에 놓인 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이마와 볼, 코, 턱에 칼자국이 또렷한 머리는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크흠.”

반듯하게 잘려나간 목 부위를 살폈던 등평이 따지듯 눈을 치켜떴다.

“소협이 이 물건을 가져온 이유를 알고자 하네.”

“얼굴을 모르셨습니까? 이자가 흑사련의 호북지부장 추굉입니다.”

숨이 턱 막혔으나 등평은 초인적인 의지로 표시 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자가 흑사련의 호북지부장……?”

“추굉입니다.”

진무린이 재차 확인해준 직후에 비룡방은 침묵에 휩싸였다.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이것을 확인하면 아실 것입니다. 또한, 호북지부에서 본인 입으로 떠든 바도 있습니다.”

진무린은 심지어 품에서 추굉이라 적힌 위로 잘린 머리와 똑같이 생긴 그림마저 꺼내 등평에게 내밀었다.

추굉만 해도 상대할 자가 없어 전전긍긍인 비룡방이다.

그런데 이렇게 흑사련 서열 9위인 그의 머리가 왔으니 당장 흑사련의 모든 시선이 이곳에 쏠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허허.”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웃음이 나온다.

이제 비룡방은 구대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흑사련의 주세력과 다투게 되었다.

구대문파는 견디기라도 하지.

흑사련이 작정하면 비룡방은 정말 기왓장 하나, 키우던 개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벌써 두 걸음쯤 뒤로 물러난 무인도 있었다.

여차하면 오늘 밤 사라질 계획인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근심을 놓으셔도 됩니다.”

정말 몰라서 저러나?

그런데도 영특하게 생긴 진무린은 등평의 속을 모른 것처럼 태평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추굉을 어디에서 기다렸나?”

등평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진무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흑사련 호북지부에 직접 들어갔었습니다.”

“혼자 말인가?”

“그렇습니다.”

“다른 이들은 없었나?”

“칠십여 명쯤 있었습니다.”

질문을 더 잇지 못하고 등평은 눈만 껌벅였다.

“그래서 그들은 어찌 되었나?”

눈치 빠른 호법 철비완이 대신 질문을 냈다.

“칠십 명이라면 모두 죽었습니다.”

“허!”

홀로 들어가 70명을 죽이고 호북의 10대 고수 추굉의 목을 베었다는 진무린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이쯤 되면 오히려 믿는 게 이상한 일이 되겠다.

두 걸음을 물러났던 무인마저 의아한 얼굴로 다시 다가와 진무린과 추굉의 머리, 등평을 번갈아 볼 정도였다.

“사문이 어찌 되시나?”

“은천문이라 합니다.”

이 또한 처음 듣는 문파였다.

“정도맹에 도움을 요청하신 것으로 압니다. 화산의 청강 진인께서 본문에 청을 넣으셔서 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도맹과 화산, 그리고 화산의 검이라 불리는 청강 진인마저 등장했다.

거짓말이라면 수습 못 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이고, 진실이라면 비룡방은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배분의 고수와 마주한 꼴이었다.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비룡방 방주 등평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갑갑한 얼굴이었다.

“진 소협이라 하셨소?”

“그렇습니다.”

“나는 비룡방에 몸을 의탁한 마세호라 하오. 동도들이 격호분삼이라는 과한 별호로 불러준다오.”

“마 대협이셨군요. 진무린입니다.”

함부로 평가하자면 돈에 팔려 다니는 하급 무사이련만, 진무린은 마세호에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진 소협의 말씀을 들었고, 추굉의 머리를 보았으나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소.”

일곱 명의 무인 중 그나마 실력이 가장 뛰어난 마세호가 등평의 침묵 앞에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먼저 추굉이 호북의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고수인 데다, 그 외에도 흑사련 소속 칠십여 명을 상대했다는데 소협의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으니 그것이 의심스럽고.”

마세호의 말을 이해했다는 것처럼 진무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화산의 검이라 불리는 청강 진인이 청을 넣을 정도인데 우리는 은천문의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도 없으며.”

진무린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이리되면 좋든 싫든 흑사련의 주세력이 이곳 비룡방을 노리게 되오. 그 점에 대한 대비도 없이 이리하셨단 것을 이해하기 어렵소.”

마세호의 말이 끝나며 모두가 진무린을 바라볼 때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하왕하칠살이 이곳 비룡방을 향해 오고 있어서 아마 내일쯤 도착할 것입니다.”

“컥.”

진무린이 덤덤하게 대꾸를 내는 순간, 누군가 제대로 사레들린 것처럼 거북한 소리를 토해냈다.

흑사련의 서열 5위, 하왕의 일곱 제자라는 하왕하칠살이란다.

진무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은 아무리 도망쳐도 죽고, 온전하게 시신이 남기를 바라기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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