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25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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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25화 (완결)
225화
구마 중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고수, 구지마종.
순우기정이 바로 그였단 말인가?
상대를 쓰러뜨리고 숨을 고르고 있던 사람들이 경악한 눈으로 순우기정을 바라보았다.
“저자가 신비의 구지마종이라고?”
“맙소사!”
하지만 좌소천은 그가 구지마종이라는 것보다 다른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
“환상마궁의 후예들을 몰살시킨 사람이 그대인가?”
겨우 고개를 돌린 순우기정이 큭큭거리며 입을 열었다.
“큭, 큭, 그것이… 이제 와… 무슨…… 상관…….”
“어느 어르신이 부탁하더군. 반드시 그대를 찾아 목을 베어서 원한에 사무친 넋을 위로해 달라고 말이야.”
저벅, 저벅, 순우기정을 향해 걸어간 좌소천이 묵령천검을 높이 들었다.
“지옥에 가서라도 그분께 엎드려 죄를 빌어라, 순우기정!”
서걱!
순우기정의 반쯤 잘라진 목에서 머리가 툭 처지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소영령의 목소리가 울렸다.
“유사! 네놈 손에 죽어간 정한녀들의 혼을 위로하리라!”
“커억!”
고개를 돌리자 저만치, 하얗게 서리가 낀 채 입을 쩍 벌린 유사가 보였다.
그때였다.
좌소천이 눈살을 찌푸린 채 소영령을 향해 소리쳤다.
“영령, 뒤를 조심해라!”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소영령의 뒤로 접근하고 있었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가려진 그는 반쯤 미친 것처럼 실성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큭큭큭, 킬킬킬, 나는 네가 누군지 알아……. 얼굴을 가렸어도 알아. 킬킬킬…….”
언뜻 봐선 천외천가의 평범한 무사로 보였다.
하지만 그가 지닌 광기는 결코 일반 무사가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영령도 뒤늦게야 뒤에서 접근하는 자의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홱 몸을 돌렸다.
찰나, 미친 듯 보이던 그가 갑자기 몸을 날렸다.
“너는 원래 내 거였어! 누구도 내게서 너를 빼앗아 가지 못해!”
“이놈!”
퉁! 퍽!
소광섭의 탈혼시가 괴인의 오른쪽 가슴을 꿰뚫었다. 한데도 괴인은 멈칫거림 하나 없이 달려들었다.
소영령은 괴인의 기괴한 모습에 아미를 찌푸리고 두 손을 휘둘렀다.
새하얀 소수가 허공에 걸렸다.
쩌저정!
코앞까지 닥친 검이 소수에 부서지고, 백옥보다 더 하얀 손이 상대의 심장에 떨어졌다.
퍽!
달려들던 자는 단 일수에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서너 바퀴 구른 그가 덜덜 떨며 고개를 쳐든 순간, 좌소천의 눈이 커졌다.
잊을 수 없는 얼굴, 썩어 문드러지기 전까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순우무궁! 네놈이구나!”
“저자가 순우무궁이란 말이에요?”
경악한 소영령이 살기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좌소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덜덜 떨고 있는 순우무궁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하얀 서리가 번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더듬거리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너… 내 인형인데…….”
분노가 치민 소영령이 홱 손을 뿌려서 순우무궁의 뇌를 얼려 버렸다.
“네놈만큼은 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놔둘 것이다.”
좌소천은 그런 소영령을 바라보자 가슴이 아려왔다.
‘이제 모든 아픔을 잊어라, 영령. 다 끝났으니까.’
그때였다. 사도철군의 대소가 절부곡을 흔들었다.
“우하하하! 맛이 어떠냐, 순우연!”
심장이 뻥 뚫린 순우연이 눈을 부릅뜬 채 무너져 내린다.
대소를 터뜨리는 사도철군의 어깨에서도 시뻘건 핏물이 흘러내리고,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고 있는 우경 진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다.
순우연은 꾸역꾸역 피를 게워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서서히 그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제 끝났나?’
좌소천은 천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는 시각.
절부곡을 피로 적신 싸움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5
절부곡 대혈전의 결과가 전해질 사이도 없이, 무림맹과 연합세력은 천외천가와 천해의 잔존 세력을 쳤다.
산양에 남아 있던 이백 무사, 종남에 남아 있던 천해와 천외천가의 오백의 무사들은 제대로 된 대항조차 못해보고 대부분이 죽거나 도주했다.
무림맹으로 파견된 덕에 살아남았던 종남의 제자 오십여 명은 종남산을 탈환한 것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한편, 잔존 세력을 소탕하는 사이, 양쪽 세력의 주력 고수 삼백여 명은 태백산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종남파가 종남산을 되찾던 그즈음, 진세를 뚫고 천선곡에 들어갔다.
천선곡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자와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연합세력의 침입에 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투항했다.
양쪽 세력은 천선곡의 사람들을 철저히 조사한 후, 무공을 폐지시키고 전각에 격리시켰다. 그러고는 그들 중 지위가 높은 몇 사람을 앞세운 채 천선곡을 샅샅이 뒤졌다.
이제 곧 탐욕에 젖은 강호의 무사들이 꿀을 본 벌 떼처럼 천선곡으로 몰려들 터. 기보나 무서가 남아 있다면 천선곡이 피로 뒤덮일 것이 뻔했다. 그러한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
물론 핑계일지도 몰랐다. 천외천가의 보물에 대한 욕망이 앞선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져가지 않아도 어차피 남의 것이 될 터, 뭐가 잘못이냐,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천외천가를 뒤지는 동안, 좌소천은 십여 명과 함께 호수를 건너 천해를 찾아갔다.
그런데 호수를 건너 막 지옥의 입구로 들어갔을 때였다.
우르르르릉!
천지가 진동하며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굴이 무너지고 있소! 밖으로 나가시오!”
좌소천이 다급히 소리치자,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천장에서 집채만 한 바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좌소천은 밖으로 나와 동굴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아는 한, 입구는 바로 앞에 있는 동굴, 하나뿐이었다. 하나뿐인 입구가 무너진다는 것은, 안에 있는 자들이 모든 일을 알았다는 말이었다.
자멸(自滅).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건가?
“어떻게 된 건가?”
동천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좌소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동굴 천장이 주저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일단 호수를 벗어나지요. 파도가 커지면 서 있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아무리 등평도수를 펼칠 수 있는 고수들이라 해도 오랫동안 물 위에 서 있는 것은 힘겨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좌소천을 따라 호수를 벗어났다.
그들이 호숫가로 나올 때까지도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울렸다. 아니, 이제는 산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통로만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듯했다.
‘안쪽도 무너지는 것 같군.’
좌소천은 완전히 무너진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묘한 감정이 그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천 년 신비의 대지, 천해가 마침내 종말을 맞이한 것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사실이었다.
다음날 오후.
천선곡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진 무림맹 사람들은 더 이상 뒤질 곳이 없자 전리품만 챙기고서 천선곡을 떠났다.
좌소천은 무림맹에 전리품을 최대한 양보하는 대신, 자신이 천선곡의 뒤처리를 맡기로 했다.
무림맹으로선 아쉬울 것 없었다.
수백 명이 샅샅이 뒤진 상황, 어차피 자신들이 찾지 못한 것이라면,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소유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좌소천이 귀찮은 천선곡의 뒤처리를 해준다는 게 고마울 뿐이었다.
좌소천은 그렇게 무림맹의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순우연의 거처인 천상전으로 들어가서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문의 기관을 움직였다.
‘손자기가 그랬지. 이곳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순우연과 대를 이을 순우무종뿐이라고.’
염불곡의 귀령에 당한 순우무종이 엉터리로 말하지 않았다면, 천상전 지하에 천외천가의 천 년 숨결이 담긴 비고(秘庫)가 있을 것이었다.
‘본 궁 형제들의 희생에 대한 대가는 비고의 물건으로 받겠다, 순우연.’
9장 절대천성(絶對天城)
1
여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제천신궁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스무 번쯤 울렸을 때 제천신궁 안에서 백여 명의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 하나의 거대한 현판이 정문 앞에 길게 놓였다.
“현판을 떼어내라!”
위지승정의 창노한 목소리가 울리고, 정문 위에 백 년간 자리했던 제천신궁의 현판이 내려졌다.
“새로운 현판을 달아라!”
뒤이어 또 다른 현판이 내걸렸다.
[절대천성(絶對天城)]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표정을 지은 채 새로 달린 현판을 바라보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입을 꾹 다물고 뭔가를 참는 표정, 오랜 추억에 잠긴 표정…….
하지만 마음만은 다 같았다.
이제 새로운 하늘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때였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기 오신다!”
모든 사람이 황강산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수백의 군웅이 제천신궁으로 향한 길을 가득 메운 채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궁주님이시다!”
“성주님이시다!”
“절대천성의 주인이신 절대천왕께서 오신다!”
와아아아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한데 통일된 함성이 울렸다.
“천하제일 제천신궁!”
“천하제일 절대천성!”
“천하제일 절대천왕!”
와아아아아아!
천지를 울리는 함성에 황강산이 들썩이는 가운데 좌소천 일행이 정문으로 다가왔다.
떠난 지 팔 개월 십오 일 만이었다.
2
귀궁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좌소천과 소영령이 손을 잡아준 상태에서 혁련호운이 숨을 멈췄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인데도 뭘 느꼈는지 표정만은 밝았다.
소영령은 눈물을 흘리며 혁련호운의 눈을 감겨주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절대천성의 현판이 달린 지 닷새, 구포봉과 광한방의 태상 섭궁안과 신검장주 설학진이 절대천성에 도착했다.
구포봉은 좌소천을 만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참에 현판을 바꿔야겠네. 솔직히 구포방은 좀 그렇거든?”
그리고 보름째 되던 날, 사도철군이 백리도운과 사도진무를 비롯한 전마성의 원로들과 함께 절대천성을 찾아왔다.
“자네가 언제 찾아올지 불안해서 못살겠네! 아주 확실하게 매듭을 짓지. 어떤가? 절대천성의 호북 서부를 우리에게 맡기는 것이!”
그러더니 한 달이 다되어갈 무렵에는 서북쪽의 문파들조차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보내왔다.
그 바람에 북벌마저 취소되었다.
북벌 책임자로 지명되었던 이광이 볼멘소리를 하며 투덜거렸지만, 섬서에서 하도 고생을 하고 와서인지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그렇게 그해 여름, 천하가 절대천성을 주시하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은 절대천성의 향방보다도 다른 것에 더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보름달이 천공에 둥실 떠올라 방실거리던 어느 날 밤.
좌소천은 차를 마시며 한곳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벽여령의 불룩 튀어나온 배가 신기하기만 했다.
저 안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데 사실일까?
좌소천은 벽여령의 불룩한 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언제 나온다고 하오?”
벽여령은 여보라는 듯 배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아직 보름은 더 있어야 한데요.”
“오래 남았군.”
벽여령이 슬쩍 눈을 치켜떴다.
“그렇게 궁금한 분이 왜 한 번도 연락을 안 했어요?”
“그게……. 미안하오.”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그 말을 한다.
물론 이어지는 말도 한 달째 듣고 있는 중이다.
“걱정 말아요. 상공의 마음 충분히 이해하니까요. 령 동생을 구하겠다고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천해로 쳐들어간 것도요.”
치켜뜬 벽여령의 두 눈이 칼날처럼 가늘어진다.
왠지 가슴이 서늘해지고, 바늘에 심장이 콕콕 찔린 기분이 든다.
사실 벽여령이 화낼 만도 했다.
하마터면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불안했을 것인가.
듣기로는 며칠간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얼마나 바쁘셨으면 소식 한 번도 전할 수가 없었겠어요? 저야 뭐 이곳에서 편하게 있었으니…….”
눈치를 보니 벽여령의 추궁이 이어질 것 같다.
한 달째 같은 말을 하면서도 질리지 않는가 보다.
좌소천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에, 그건 그렇고, 령 매.”
“예, 왜요?”
“예? 저 부르셨어요?”
벽여령과 소영령이 동시에 대답했다.
“끄응, 영령이 말고 여령, 당신 말이오.”
웃음을 겨우 참은 벽여령이 툭 쏘듯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의원이 정말 쌍… 둥이라고 했소?”
“왜요, 싫어요?”
“싫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다만… 둘을 한 번에 키우려면 당신이 힘들 것 같아서 그렇지.”
“걱정 말아요. 여기 동생도 있고, 조부님께서도 봐주신다고 했으니까요.”
“동천옹 어르신이 말이오?”
“예, 다른 어르신들도 함께 봐주신다고 했어요.”
좌소천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그분들이 아이들을 잘 볼 수 있을까?
기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을까?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끄응,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름은 뭐라고 짓지? 하나는 아들이고, 하나는 딸이면 좋겠는데…….’
그렇게 미래 쌍둥이 아빠의 고민은 이래저래 커져만 가는데, 천공에 둥실 뜬 보름달은 난 모르겠다는 듯 절대천성을 비추며 유유히 흘러갔다.
-끝.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