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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22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0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220화

 

220화

 

 

 

 

 

 

천해의 무리는 나타날 때만큼이나 빠르게 후퇴했다.

 

동료와 사형제들의 죽음을 본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마음뿐이었다. 실제 앞으로 나선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들 역시 천해의 무리가 담장을 넘어가자 더 이상 쫓지 않았다.

 

허탈감과 공포가 뒤범벅된 사람들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수는 없는 일.

 

벌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나타난 동천옹이 빽 소리쳤다.

 

“뭐 해? 사망자들을 정리하고, 각자 상처를 치료해! 언제 적이 또 올지 모르는데 넋만 놓고 있을 거야!”

 

그제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흐를 즈음.

 

화산에 남아 있던 어린 제자들이 도착하고, 뒤이어 상주를 떠나온 무림맹의 군웅 삼백이 헐떡거리며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사망자를 정리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들을 반겼다.

 

“후우, 이제 일꾼들이 왔으니 나도 상처 좀 손봐야겠군.”

 

 

 

 

 

 

 

7장 태청보검(太淸寶劍)

 

 

 

 

 

1

 

 

 

 

 

자시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혈풍과 혈우가 휩쓴 영풍산장을 정리하는 데 꼬박 밤을 새야 했다. 그러고도 그저 시신을 정리하고 부상자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정도에 그쳤다.

 

사람들은 밤새 내린 비로 축축이 몸이 젖었지만 누구도 힘들다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하늘에 감사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비가 제법 많이 내린 때문인지, 영풍산장을 붉게 물들였던 피는 내부를 제외하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깊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사망자만 칠백에 가깝고, 부상자는 그 배가 넘었다. 살아난 사람 거의 모두가 부상을 입었다는 말이다.

 

그중 반 이상이 나중에 나타난 천해에 의해서였다.

 

그들이 조금 일찍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순우연과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조금만 더 오래 버텼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으음, 너무 무리한 작전이 아니었나 싶소.”

 

화산의 제자 백여 명을 잃은 허운자가 볼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그 먼 거리를 한나절 만에 왕복한다는 것부터가 문제였지요.”

 

그러자 백호당주 남궁학과 현무당주 당처문이 맞장구를 쳤다.

 

“힘이 빠져서 놈들을 단숨에 치고 싶어도 칠 수가 있어야지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걸 보고는, 어깨가 붉게 물든 종환 진인이 이마를 찡그리고 넌지시 한마디 했다.

 

“천혈마신이 뒤쫓아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너무 앞으로 달리는 것만 신경 쓰는 바람에……. 그나마 이 정도도 다행이외다. 허허허, 내 화산의 성세를 의심한 적은 없지만, 설마 그런 제자들을 감춰두었을 줄은 미처 몰랐소이다, 장문인.”

 

“별말씀을…….”

 

좌소천은 입을 열지 않고 무림맹의 불만을 듣기만 했다.

 

하지만 사도철군은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내상이 아직 심한데도 도저히 입을 닫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귀가 먹었소? 아니면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소? 왜 바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뜸을 들이고 들어온 것이오?”

 

종환 진인이 정색하고 되물었다.

 

“무슨 말이오, 사도 성주?”

 

사도철군이 눈을 부라렸다.

 

“정말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러시오?”

 

종환 진인은 슬며시 눈을 돌리며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모르니까 묻는 것 아니오? 싸우는 소리가 난 후에 공격하라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이오?”

 

“소리가 나면 즉시 들어오라고 했는데, 반 각가량 지체하지 않았소?!”

 

“허어, 시간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즉시’인지, ‘반 각’ 후인지 어찌 안단 말이오?”

 

좌소천은 묵묵히 딴청을 피우는 종환 진인을 바라보고는 사고철군을 말렸다.

 

“참으시지요, 성주.”

 

종환 진인을 바라보며 몇 번 입을 달싹이던 사도철군이 홱 고개를 돌렸다.

 

“끄응…….”

 

좌소천은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 한 번으로 죽지 않아도 될 사람 수십, 수백 명이 더 죽었소. 내 분명히 말하지만, 그러한 명을 내린 사람은 평생 두 발 뻗고 잠잘 수 없을 것이오.”

 

종환 진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좌소천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어제의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것이오. 하나, 만약 다음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 이름을 걸고 그 일을 파헤칠 것이오. 그리고 그 사람 개인은 물론, 그 문파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오. 아주… 철저하게.”

 

마지막 말이 떨어진 순간,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냉기가 등줄기를 따라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그때 좌소천이 공손양을 불렀다.

 

“군사.”

 

공손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화산에 한 통의 서찰이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공손양의 눈이 허운자를 향했다. 

 

허운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나중에야 알았네. 말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공격이 시작되어서 행여 혼란을 줄까 봐 말하지 않았네.”

 

“뭐라 쓰여 있었습니까?”

 

허운자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뗐다.

 

“험, 그게… 수상하게 보이는 자들 오륙백이 북상하고 있다더군.”

 

“수상하게 보이는 자입니까, 아니면 천해입니까?”

 

거듭된 추궁에 허운자가 머뭇거리더니 이마를 찌푸리고 대답했다.

 

“정확히는… ‘천해의 무리로 보이는 수상한 자들’이라고 적혀 있었네.”

 

“왜 저희에게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한 정체가 밝혀진 것도 아니고, 목적지 역시 확실치 않았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혼란을 줄까 봐 말하지 않았다네.”

 

공손양은 더 이상 허운자에게 묻지 않고 방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여보내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무림맹의 간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황보석이 들어왔다.

 

“네가 어쩐 일이냐?”

 

무림맹의 장로 황보인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황보석은 굳은 표정으로 인사부터 올렸다.

 

“숙부님과 여러 어르신들을 뵙습니다.”

 

“허어, 인사는 그만두고 네가 온 이유부터 말해보거라.”

 

“맹주님과 군사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맹주와 군사의 명으로 왔다는데 뭘 더 물을 것인가.

 

황보인성이 입을 다물자 공손양이 물었다.

 

“황보 대주께선 무림맹 호정단의 일대주시지요?”

 

“예, 공손 군사.”

 

“무림맹에 천해의 진로가 알려진 게 한 시진 정도 늦어졌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것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잠깐!”

 

청성의 청운자가 벌떡 일어나 황보석의 대답을 막았다.

 

“저 사람은 본 맹 호정단의 대주요. 그러한 질문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고, 황보 대주 역시 대답할 의무가 없는 것이외다. 하니, 그만 하는 게 좋겠소.”

 

무림맹의 간부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너무 지나치게 월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오, 공손 군사?”

 

“제천신궁이 무림맹의 대주를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있던가?”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군.”

 

그때 황보석의 입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그걸 말하는 것이, 맹주께서 제게 내리신 명령입니다. 자칫 오해해서 협력 관계가 깨지면 안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

 

무림맹의 간부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훗, 나중에라도 밝혀질지 모른다 생각했겠지. 제갈 군사가 고민 좀 했겠군.’

 

속으로 가볍게 코웃음을 친 공손양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이제 말해보시오.”

 

“예.”

 

황보석은 숨을 천천히 들이켜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첩당의 오향주 임사당이 천해의 무리를 발견하고 수하를 보냈는데, 도중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데 도중에 만난 사람이 그 소식을 자신이 전하겠다며 정첩당의 무사에게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황보석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결국 천해로 보이는 무리 오륙백이라는 것이, 수상한 자들 오륙십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정체도 확실치 않고 숫자도 많지 않은지라, 군사께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시고 좀 더 확실한 보고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한데…….”

 

황보석의 이야기가 끝나자 공손양이 물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처음에 정보를 가지고 온 조항을 찾아서 물어봤습니다.”

 

“그가 말을 확실하게 전하기는 전했다고 합니까?”

 

“조항의 목소리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가는귀 먹은 노인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또렷합니다.”

 

“그럼 고의로 엉터리 소식을 전한 것일 수도 있겠군요.”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니라 하지만 고의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담긴 대답이다.

 

공손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황보 대주는 어떻게 그 내용을 의심하고 조항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을 하셨습니까?”

 

황보석의 굳은 표정이 잘게 흔들렸다.

 

이미 명령을 받은 말은 다 한 상황. 공손양의 질문은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 그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좌소천을 향했다.

 

순간 좌소천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과 마주쳤다.

 

“그건…….”

 

그가 입을 달싹거리며 망설이는데, 좌소천이 물었다.

 

“조항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제갈 군사에게 전한 사람이 누구요?”

 

황보석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좌소천의 깊디깊은 눈은 거짓을 허용하지 않는 눈이었다.

 

절대자의 눈!

 

황보석은 입을 열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좌소천이 먼저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정수 도장이오?”

 

황보석은 허탈한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궁주.”

 

 

 

 

 

2

 

 

 

 

 

정수는 남들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부상자를 돌보고 있는 동안 한쪽 구석에 숨어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이 그곳에서 자는 것을 모를 거라 생각했다. 

 

설령 안다 해도 전날 싸운 사람 정도로 알 것이었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몸에 피까지 여기저기 묻혔으니까.

 

하지만 그는 상주를 출발하면서부터 감시의 눈길이 자신을 한시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하기에 체포 명령이 떨어지고, 잠자고 있는 그를 세 명의 호정단이 깨웠을 때도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이게 무슨 짓인가?!”

 

“우리와 함께 가주어야겠소.”

 

“어딜?”

 

“그놈 말도 많군. 확 다리를 부러뜨려서 끌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궁주의 명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움찔한 정수가 남궁호의 어깨너머를 바라보았다.

 

밖에 대여섯 명이 죽 서 있었다.

 

누가 말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왜 자신을 잡아가려고 하는 걸까?

 

자신이 교묘하게 장난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친 일은 하나둘이 아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문인 무당에서 벌인 일일 뿐, 이렇게 체포 형태로 잡혀갈 만한 일은 두어 가지에 불과했다.

 

‘혹시 그때 일이 들통 난 건가?’

 

정수는 불안감에 눈을 굴려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거요?”

 

또다시 좀 전에 말한 자가 으름장을 놓았다.

 

“가보면 알아! 어때? 다리를 부러뜨려서 끌고 갈까, 아니면 네가 그냥 걸어갈래?”

 

부리부리한 인상. 북리환이었다.

 

북리환의 살벌한 기세에 정수는 꼬리를 말고 구석에서 나왔다.

 

“비겁한 새끼.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고 있는데, 네놈은 잠이 오냐?!”

 

버럭 소리를 지른 북리환이 정수의 뒤통수를 갈겼다.

 

퍽!

 

그때 막 달려온 정은이 정수를 향해 소리쳤다.

 

“사형! 대체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그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정수가 정은을 노려보았다.

 

“재수 없는 새끼.”

 

북리환의 주먹이 또 허공을 갈랐다.

 

퍽!

 

“나는 네가 더 재수 없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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