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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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19화
219화
어차피 순우연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공야황에 비해 크게 뒤지는 자가 아니었다. 사사보다도 한 수 위의 고수가 바로 그였다.
그래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소영령을 놔두고 사도철군을 도왔다면 순우연을 잡을 수 있었을까?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소영령은 완전한 몸이 아니고, 세 명의 회의중년인은 소영령이 정상이라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고수였다.
아마 또다시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는 소영령을 먼저 구하려 할 것이었다.
좌소천은 순우연을 놓친 대신 척발조와 혈암, 적암을 죽인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사실 그들을 죽인 것만도 의외의 수확이었다. 천해와 천외천가가 암암리에 거리를 두지 않았다면, 손발을 맞춰 대항했다면 그조차 어려웠을 터였다.
‘그래, 이제 와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지. 아직 기회가 사라진 건 아니니까.’
아쉬움을 털어낸 좌소천이 모든 감각을 동원해 순우연의 행적을 찾고 있을 때 소영령이 바로 옆에 내려섰다.
“저도 함께 싸우겠어요.”
말리기에는 늦은 상황. 한편으로는 차라리 옆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 옆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라.”
좌소천은 나직이 말하고는, 끓어오른 단전의 기운을 억누르며 사위를 살펴보았다.
난전이 벌어진 상태다 보니 순우연의 행적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어디로 간 것일까? 발목이 잡힐까 봐 그대로 도망쳤나?
그럴지도 몰랐다. 자신이 바로 뒤따라올 거라는 걸 모를 그가 아니다.
게다가 천외천가의 무사들도 방어에 치중하면서 빠져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다. 한두 곳이 아니라 전체가 그런 상황이다.
아무리 열세라 해도,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보일 수 없는 행동.
바로 그 순간,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응? 왜 저러지?’
이상하게도 남쪽과 동쪽 외곽에 있던 사람들이 고함을 치며 안으로 밀려든다.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터, 저들이 밀려들면 도움될 게 없다.
적아가 뒤엉키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판별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할지 모른다.
그걸 알 텐데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 정신없이 밀려든다.
그때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천혈마신이다!”
“천해가 뒤로 쳐들어왔다!”
‘뭐야? 공야황이?’
대경한 좌소천은 즉시 몸을 날려 건너편 전각의 지붕 위로 신형을 날렸다.
순간 남쪽과 동쪽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연무장과 정원. 무림맹과 연합세력의 무사들을 거세게 몰아치는 수백의 검은 인영이 보였다. 천해의 무리들이었다.
그들의 뒤쪽은 시신과 검붉은 선혈로 뒤덮여 있었는데, 언뜻 보이는 것만으로도 수백 명이 당한 듯했다.
이마와 팔에 띠를 두른 사람들. 대부분이 무림맹과 연합세력의 군웅들이었다.
이를 악문 좌소천의 눈이 한곳을 향했다.
그들의 선두에 서서 일수에 대여섯 명의 무림맹 무사를 날려 버리는 가공할 무위를 펼치는 자들!
은사와 유사, 그리고 공야황이다!
좌소천은 그들을 본 즉시 지붕을 박찼다.
“공, 야, 황!”
좌소천의 일갈이 영풍산장을 뒤흔들었다.
절대의 기세로 무림맹의 무사들을 휩쓸던 공야황이 손을 멈췄다.
은사와 유사도 손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창공을 떨어 울리는 사자후와 함께 날아드는 한 사람. 그가 누군지 알기 때문이다.
“으하하하하! 좌소천! 내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어디 한번 결판을 내보자!”
공야황이 득의에 찬 광소를 터뜨리며 혈천마마공을 끌어올렸다.
좌소천은 공야황의 십여 장 앞에 내려서서 냉랭한 코웃음으로 반격했다.
“잘됐다, 공야황! 척발조와 천해의 무리는 대부분 죽였지만 순우연은 수하 몇을 데리고 도망쳤지! 그게 서운했는데 도망친 순우연 대신 그대들이라도 잡아야겠구나!”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리던 공야황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척발조가 죽고 순우연이 도망쳤다고?
이 상황에서 좌소천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좌소천의 말이 사실일 경우,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도 죽거나 함께 도망쳤다는 말이다.
결국 자신들만의 힘으로 좌소천의 연합세력과 무림맹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
‘이, 이런 멍청한 놈! 잠시도 못 버티고 도망치다니!’
은사와 유사의 얼굴에도 당황이 떠올랐다.
천해의 무리들도 그 말을 들었는지 주춤하며 손길을 늦추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사이 밀리던 연합세력과 무림맹의 군웅들이 숨을 골랐다.
후퇴하던 사람들도 좌소천이 나섰다는 말에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되돌아섰다.
단 한 사람. 단 몇 마디에 상황이 완전히 급변했다.
은사가 상황을 다시 돌리기 위해 냉랭하게 소리쳤다.
“훗! 네놈 혼자 우리를 막겠다는 것이냐? 웃기는 소리!”
좌소천이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
“누가 나 혼자 막겠다고 했느냐?!”
그때다. 소영령이 좌소천의 우측에 내려서서 유사를 검지로 가리켰다.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늙은이! 그대는 내가 상대해 주지!”
유사는 귀에서 불이 날 정도로 노화가 치밀었다.
“건방진 계집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오냐! 원한다면 내가 네년 가랑이를 찢어서 죽여주마! 모두 뭐 하느냐? 놈들을 쳐라!”
주춤했던 마암과 전암, 귀암이 무정귀와 천살영, 지살영을 이끌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 순간 이십여 명이 뒤쪽에서 날아들며 마암, 전암, 귀암의 앞을 가로막았다.
북리환과 헌원신우를 비롯해, 제천신궁의 고수들과 전마성의 고수들, 묵령천의 형제들이었다.
“뒤로 물러서라! 그들은 우리가 상대하겠다!”
“주군!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그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마침내 제일 치열했던 서쪽의 싸움이 끝났다는 말.
게다가 그들의 뒤를 이어 수십 명의 절정고수가 좌우에서 소리치며 달려온다.
개중에는 공손양과 기천승을 비롯해서 화산의 장문인과 장로들로 보이는 노도인도 있었다.
좌소천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솔직히 그들의 싸움이 조금만 길어졌어도 수백의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신 역시 혼자서 공야황과 은사를 상대해야 할 테니 다른 곳을 도울 여유가 없을 터. 소영령조차 위험에 처할지 몰랐다.
어쨌든 그들이 제때에 도착하자 좌소천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공야황! 하늘도 너를 외면하는구나!”
좌소천은 창공을 울리는 일성을 내지르고 무진도를 뽑아 공야황을 가리켰다.
일순간, 좌소천의 신형이 죽 늘어지는가 싶더니, 휘황한 금빛 묵광이 허공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뻗어나갔다.
“어림없다, 좌소천!”
공야황도 시뻘건 눈을 부라리며 쌍장을 휘둘렀다.
찰나 그의 쌍장에서 두 자 크기의 시뻘건 혈구가 어둠을 밝히며 튀어나왔다.
두 기운이 정면으로 얽혀든 순간!
콰르르르릉!
뇌성벽력이 일며 좌소천과 공야황의 반경 삼 장의 대기가 비틀리고 터져 나갔다.
쩌저저적! 콰과과광!!!
충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삼 장의 거리를 둔 채 두 번, 세 번 연이어 부딪쳤다.
가공할 기운의 충돌에 밀려들던 어둠이 출렁였다.
그와 동시 해일처럼 사방으로 밀려가는 충돌의 여파!
장원의 바닥이 들썩이고, 솟구친 청석이 모래처럼 부서진다.
누군가가 대경해 소리쳤다.
“뒤로 물러서라!”
십여 장 근처에 있던 자들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럼에도 십여 명이 여파에 휩쓸려 사방으로 튕겨졌다.
연이어 터지는 비명과 같은 외침!
“휩쓸리면 죽는다!”
“더 멀리 물러나!”
하지만 좌소천과 공야황은 삼 장의 거리를 둔 채 서로를 마주 보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좌소천은 내원에서 격전을 치렀고, 공야황은 아직 격전다운 격전을 치르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대등한 결과다.
공야황은 그 사실이 무얼 뜻하는지 알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저놈이 나보다 강하단 말인가?’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좌소천이 그에겐 괴물처럼 보였다.
그때 은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해주! 일단 물러서야 할 것 같습니다!”
상주에 이어서 또다시 후퇴를 해야 한다고?
공야황으로서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뒤통수를 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얼마간 성공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순우연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치명적인 타격을 줬을 게 분명했거늘. 어쩌면 오늘의 싸움으로 섬서를 완전히 장악하고 하남으로 내처 달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거늘.
그가 도망침으로써 모든 것이 공염불이 되었다.
‘빌어먹을 놈! 그래서 네놈들은 어쩔 수 없는 하인인 거다!’
분노가 치밀어 머리꼭대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상황은 그에게 분노를 터뜨릴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
좌소천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금빛 묵광이 짙어지고 있었다.
괴이하게도 자신의 마공이 통하지 않는 기운.
어쩌면 그 점이 더 공야황의 투지를 짓눌렀다.
“은사! 후퇴시켜라!”
짜증내듯이 버럭 소리친 공야황은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쳤다.
은사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모두 후퇴해!”
좌소천은 공야황과 은사가 후퇴를 명하는데도 막지 않았다.
막기는커녕 도주하는 그들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척발조와 이암은 물론 무정귀 사십에 천가호장 셋 중 둘을 혼자서 죽였다. 그것도 십여 초 만에.
그리고 공야황과 전력을 다한 삼 초를 겨루었다.
그가 천신이 아닌 이상 멀쩡하면 그게 이상했다.
아마 도망가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공격했다면 자신도 목숨을 걸어야할지 몰랐다.
‘훗, 순우연이 도망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군.’
속으로 쓴웃음을 흘린 좌소천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금빛 묵광은 더욱 짙어지고, 둥실 허공으로 떠오른 공야황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세상에 어찌 저런 놈이 있단 말인가!’
한편, 소영령과 싸우던 유사는 뒤로 훌쩍 물러나서 눈을 부릅떴다.
단 두 번의 격돌로 소영령이 누군지 알아본 것이다.
“너, 너는?”
“내가 누군지 알았다면, 네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겠구나, 유사.”
“시, 신녀, 네가 어떻게……?”
“네놈 손에 죽어간 여인들이 얼마더냐? 한을 풀 때까지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나란 걸 몰랐단 말이냐?”
유사는 소영령을 바라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소영령은 그가 물러서자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그녀의 두 손에서 세상을 얼릴 것 같은 한기가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좌소천의 전음이 소영령의 귀청을 울렸다.
<령 매, 놈들이 물러가려 한다. 나중을 기약해라.>
이를 악문 소영령의 눈이 잘게 떨렸다. 좌소천이 왜 그러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직 완전치 않은 몸. 유사와 정식으로 싸우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최후의 방법까지 생각했다.
아무래도 좌소천이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눈치챈 것 같다.
‘오빠…….’
그랬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유사를 죽일 생각이었다.
자신을 위해 죽어간 정한녀들을 위해서!
눈앞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간 한령파파를 위해서!
그런데 좌소천의 목소리를 듣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장 달려들어 유사를 죽여야 하거늘. 유사의 죽음으로 정한녀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거늘.
소영령은 행복을 위해 원한 갚는 것을 미루어야 하는 자신이 한없이 밉기만 했다.
‘미안해요, 파파!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정말 미안해요…….’
그녀가 잠시 멈칫한 사이, 유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로 몸을 날렸다.
소영령은 그런 유사를 노려보며 가슴으로 소리쳤다.
‘기다려라, 늙은이! 오늘은 그냥 보내지만, 힘을 완전히 찾고 나면 네놈의 심장을 얼려서 부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