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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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14화
214화
“어디 자세히 말해보게. 힘들게 달려온 것 같은데 내가 전해주겠네.”
오 리 정도만 더 가면 된다.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몸이 식자, 오 리가 지나온 거리보다도 멀게 느껴진다.
더구나 정수의 성격을 생각하면, 말해주지 않을 경우 시달림을 당할 게 분명한 터. 조항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조항의 말을 다 들은 정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흠, 그래? 알았네. 내가 직접 가서 말씀드릴 테니, 걱정 말고 천천히 오게나. 식사라도 하고 가야지?”
정수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신음이 듣기 싫었다.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내력을 써야 한다는 것이 짜증났다.
결국 그는 순찰을 돈다는 핑계를 대고 풍성보를 나왔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조항을 만났다.
그에게 들은 소식은 언뜻 보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오백여 명이라 했다. 적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았다.
풍성보를 공격하기 위해 오는 것도 아니었고, 뚜렷한 목적지를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오백여 명의 적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몰래 북상할 이유가 뭘까?
뒷골이 짜릿했다. 남보다 유난히 예민한 감각이 소리친다.
‘생각보다 큰 건이야!’
정수는 자신의 느낌을 믿고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을 즈음, 처마가 불길에 그슬려 시커멓게 변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군사인 제갈진문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군사의 호위대인 호정단 제이대가 그의 앞을 막았다.
정수는 목에 힘을 주고 안에서 들으라는 듯 말했다.
“정첩당의 오향주 임사당에게서 전령이 왔소. 전령의 말을 군사께 전하기 위함이니 속히 보고를 해주시오.”
“전령은 어디 가고 도장이 온 것입니까?”
“순찰 도중에 만났는데, 조항은 워낙 지쳐서 쉬라고 했소.”
그때 안에서 제갈진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여보내게.”
정수는 거보라는 듯 어깨를 펴고 거만하게 호정단원을 흘겨보았다.
호정단 이 대주 송문각은 정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군사의 명이 떨어진 이상 할 수 없었다.
그는 옆으로 비켜서며 고개를 슬쩍 까딱거렸다.
“들어가시지요.”
정수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방진 놈들.’
“북상하는 자들이 있다고?”
“예, 군사. 워낙 거리가 멀고 황사 때문에 뿌옇게 보여서 어떤 자들인지는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다 합니다.”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오륙십 정도라 했습니다.”
굳었던 제갈진문의 표정이 펴졌다.
산속에서 움직이는 정체도 명확치 않은 자들 오륙십이라면, 단순히 산적 무리일 가능성도 다분했다.
최근 무림맹과 천외천가와의 전쟁으로 인해 인근의 산적들 다수가 산채를 버리고 이동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니까.
설령 그들이 천해와 천외천가의 무리라 해도 그 정도 숫자는 그리 염려할 것이 없어 보였다.
“알겠네. 가서 쉬도록 하게.”
“예, 군사.”
“빌어먹을 인간.”
네 시진의 호위를 마치고 들어온 송문각이 짜증을 낸다.
평소 무뚝뚝한 그답지 않게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투. 황보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무당의 오소리 도장 있잖은가?”
황보석은 송문각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수 도장 말인가?”
아랫사람을 함부로 다루고 도사답지 않게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정수다. 게다가 격전이 벌어지면 눈치를 봐서 위험하지 않은 곳만 골라 다녔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가 자네에게 뭐라 하던가?”
“그게 아니라…….”
송문각은 짧게 반 시진 전의 일을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피식거리던 황보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첩당의 전령이 가져온 소식을 그가 전했단 말인가?”
“그렇다네. 자기 말로는 전령이 워낙 지쳐서 대신 왔다더군. 흥! 웃기지 않은가? 그가 남의 일을 대신해 주다니. 비가 오려고 그런 것인지…….”
굳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황보석은 반도 더 남은 차를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는가?”
송문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황보석은 당장 말해줄 만한 사안이 아니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별거 아니네. 뭐 좀 알아봐야 할 것이 있어서 그러네.”
그러고는 곧장 방을 나와 동료들의 상처를 돌보고 있는 하복양을 찾아갔다.
하복양은 오전의 싸움에서 어깨에 제법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은밀하게 알아보려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데, 워낙 중상자가 많아서 당장 맡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남궁호는 허벅지를 깊게 베이고, 팽교는 옆구리가 뚫려 걷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복양, 잠시 나 좀 보세.”
“무슨 일입니까, 대주?”
하복양이 밖으로 나오자 황보석이 나직이 말했다.
“정첩당의 조항이 아직도 장원에 있는지 알아보게.”
“흑저 조항 말입니까?”
“그래. 나는 저쪽으로 가볼 테니, 자넨 임시 천막으로 가봐. 찾으면 즉시 이곳으로 데려오고.”
“알겠습니다, 대주.”
“단, 정수 도장의 눈에 안 뜨이게 데려오게.”
정수 도장이 이름이 나오고서야, 단순한 일이 아님을 알고 하복양의 표정도 무거워졌다.
하복양이 임시로 쳐놓은 천막에 찾아갔지만 조항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항이 보이지 않자 친분이 있는 청성의 제자 진영에게 물었다.
“혹시 조항을 보지 못했나? 이곳에 왔을 텐데?”
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조항? 아! 정첩당의 흑저? 조금 전에 나갔는데. 아마 임지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 같지?”
“그래?”
하복양은 즉시 천막을 나서 정문으로 달려갔다. 조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제길, 벌써 떠났나?’
그때였다. 돌아서는 그의 눈에 저만치, 막 식당의 문을 나서는 사람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넓은 등, 구부정한 어깨. 조항이 분명해 보였다.
이를 쑤시며 쩝쩝대는 것이 식사를 하고 나오는 것 같았다.
하복양은 그가 삼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어이, 조 형!”
하복양이 조항을 데려오자, 황보석은 하복양에게 밖을 지키라 하고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있는 조항에게 물었다.
“정수 도장에게 전한 소식을 다시 말해보게.”
조항이 의아한 표정으로 황보석을 바라보더니 순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야기 도중에 황보석이 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잠깐! 방금 뭐라고 했나? 오백이 넘는다고?”
“예, 대주. 왜 그러십니까?”
“분명 오백이라 했나?”
“그렇다니까요?”
송문각은 오륙십이라고 했다. 밖에서 들었다지만, 잘못 듣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열 배의 차이. 그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컸다.
단순히 숫자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그 정도의 숫자라면 적들 중 온전한 자는 모두 움직였다는 말. 그렇다면 그도 움직였을 가능성이 컸다.
천혈마신 공야황이!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겠나?”
“예? 예. 그러죠 뭐.”
황보석은 급히 뛰어서 제갈진문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오?”
호위를 맡고 있던 오대주 당석종이 앞을 가로막았다. 황보석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소리치듯 말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네. 군사를 즉시 뵈어야 하니 비켜주게.”
당석종은 당가에서도 손꼽히는 기재로 송문각과 달리 황보석과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보다 무위에서 떨어지는 황보석이 일대주라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러던 차에 황보석이 명령조로 말하자, 그는 딱딱하게 굳은 황보석의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급하다 해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소, 황보 대주?”
“급한 일이라 하지 않았는가?”
“글쎄, 무슨 일인지 알아야 군사께 아뢰던가 하지 않겠소?”
말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은 일을 밖에서 떠벌리면 정수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 그것은 현명한 처신이 아니었다.
황보석은 정색하고 당석종을 노려보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내가 할 일 없어 달려온 줄 아나?”
마침 안에서 제갈진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소란인가?”
황보석이 급히 안을 향해 말했다.
“군사, 황보석입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들어오게나.”
황보석은 넌지시 고개를 돌리는 당석종을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고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갈진문은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래, 말해보게. 무슨 일인데 그리 급하게 찾아온 건가?”
황보석은 탁자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까 정수 도장이 들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랬지. 정첩당의 전령이 가져온 소식을 대신 전하기 위해 왔더군.”
“한데 그가 혹시…….”
황보석의 말이 이어지자 제갈진문이 찻잔을 내려놓고 황보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야? 오륙십이 아니라 오륙백이라고? 그게 정말인가?”
“조항이 제 거처에 있습니다. 확인을 원하신다면 그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럼 정수가 조항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단 말인가?”
단순히 잘못 알아듣고 그리 보고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추측만으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정수의 사문인 무당을 모욕하는 것처럼 비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저도 그건 모르겠습니다.”
“으음, 좌우간 그게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군.”
어영부영 조항이 도착한 지 한 시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가 달려온 시간까지 합하면 두 시진. 그 시간이면 적은 이미 화산의 지척까지 갔을 터였다.
이미 상당수의 무사들을 좌소천과 함께 보낸 상황. 하지만 이대로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천해와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거의 확실했다.
‘그 숫자라면 주력이 움직였다는 뜻. 큰일이군!’
제갈진문의 생각에 황보석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공야황이 직접 움직였을지도 모릅니다, 군사.”
제갈진문의 생각도 황보석과 다르지 않았다.
공야황! 그 이름만으로도 제갈진문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자네가 수고 좀 해야겠네. 급히 전서구를 날려서 화산에 소식을 전하고, 맹주님께 급히 장로와 간부들을 소집해야 한다고 전해주게나.”
“예, 군사!”
6장 미안하다, 무진
1
어둠이 지려면 한 시진 정도는 더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회색빛으로 물든 하늘 때문인지 생각보다 빨리 어스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즈음, 좌소천을 비롯한 일천의 군웅들은 영풍산장 남쪽 십 리 떨어진 송림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휴식을 취할 겸 공격에 대한 마지막 작전을 짜기 위해서였다.
“저와 사도 성주가 이쪽을 칠 것입니다.”
좌소천이 막대기 하나로 땅에 장원의 모습을 그리고 한곳을 가리켰다.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곳을 향했다.
건물들이 늘어선 곳. 장원의 서쪽이었다.
좌소천이 막대기의 방향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소란이 일면서 주력이 저희 쪽으로 달려가면, 그 즉시 여러분들은 이곳을 공격하십시오.”
장원의 남쪽. 그곳은 객당과 주방 등 서너 채의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원과 연무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력이 서쪽으로 몰려가면 적을 상대하기에 훨씬 부담이 적을 듯했다.
무림맹의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막대기가 나머지 두 곳을 가리켰다.
“화산에 있던 사람들이 동쪽과 북쪽을 칠 것입니다.”
그걸 끝으로 막대기를 거둔 좌소천이 늘어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잊지 마십시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피해를 줘야 합니다. 적은 상주를 쳤던 자들에 비해 약하지 않습니다. 적이 혼란을 겪을 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만큼 우리 쪽의 피해가 커집니다.”
모두가 주먹을 움켜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결의에 찬 차갑고도 무거운 눈빛!
그때 문득, 무림맹의 군웅을 이끄는 천무단의 제이부단주 종환 진인의 눈빛이 찰나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