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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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03화
203화
기다렸다는 듯 도유관이 품속에서 도끼를 빼냈다.
능야산은 다급한 마음에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홍려운도 커다란 칼을 빼 들고, 종리명한과 이자광, 전하련 등도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까짓 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제기랄! 주군이나 한 번 더 만나고 죽었으면 했는데…….”
“재수없는 소리 마, 곰탱아! 우리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공손양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걸음을 옮겼다.
“절대 개인행동을 하지 말고, 그간 연습한 대로 함께 손을 쓰도록 해라.”
그때였다!
삐이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멈칫한 홍려운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저들이 물러갑니다, 군사!”
공손양 역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갑작스런 행동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불리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물러선다.
공손양이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소식이 전해진 건가?’
그렇게 바라보는 사이, 어둠이 밀려가듯 적들이 순식간에 백여 장 밖으로 물러갔다. 그러더니 한순간에 구릉을 넘어갔다.
공손양이 급히 명을 내렸다.
“홍 호법, 사람들에게 사상자들을 장원 안으로 옮기라고 하고, 적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전하시오.”
“예, 군사.”
홍려운이 환하게 웃으며 앞으로 달려가자, 공손양은 검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저들로서는 물러가고 싶어도 물러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장원 안으로 진입만 했어도 물러가든, 물러가지 않든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주군의 손을 들어주었어.’
그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번졌다.
2장 그가 돌아왔다
1
천외천가가 물러가자 사상자들이 안으로 옮겨졌다. 그때까지도 적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각가량이 지나자 북리환이 달려와서 천외천가의 무리들이 이십 리 밖으로 완전히 물러갔음을 보고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영풍산장 일대를 정리했다.
적의 피해는 사망자 백오륙십에 부상자들까지 하면 사백에 가까웠다. 반면에 연합세력 무사들의 피해는 사망자가 백여 명에, 부상자가 삼백여 명이었다.
언뜻 계산하면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적의 피해는 대부분 매복과 소광섭의 탈혼궁에 의한 것 등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일각만 더 싸웠어도 피해의 규모가 비슷해졌을 것이고, 한 시진을 더 싸웠다면, 자신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무너졌을지 모른다.
적은 강하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걸 알기에 말없이 움직이며 주위를 정리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주위가 대충 정리되는 데는 한 시진이 걸렸다.
조금 전만 해도 마주 보며 웃었던 사람들이 시신으로 변한 채 장원의 연무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복부가 갈라지고, 팔다리가 잘린 채 살아남은 사람들의 신음이 어둠 속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모두가 침통한 표정으로 부상자를 손보고, 죽은 이의 넋을 위로했다.
이를 악물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장 형!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오! 내 반드시 놈들의 목 열을 베어서 장 형의 영정 앞에 바치리다!”
“씹어 먹을 놈들! 뭐 처먹을 게 있다고 태백산을 나와서 이 지랄이야!”
하지만 절망으로 얼굴이 그늘진 자는 없었다.
무림맹은 연이어 당했는데, 자신들은 한 번의 기습을 성공하고, 적의 전면 공격을 막아내지 않았는가.
침통한 분노와 함께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더욱 커진 것이다.
“어디 다시 한번 와봐라, 이놈들! 모조리 짐승 밥으로 만들어주마!”
“기다릴 필요가 뭐 있어? 쳐들어가서 다 죽여 버리면 되지!”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나자 주요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섯 개의 유등이 켜진 방 안.
고요한 가운데 사도철군의 목소리가 유등불을 흔들었다.
“군사, 저들이 후퇴한 이유가 궁주 때문이라고 보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긴…….”
사도철군은 가슴이 답답했다.
십암 중 둘과 싸워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수장인 순우연이나 척발조와는 아예 싸워보지도 못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제는 결코 같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그들이 물러선 이유가 오직 한 사람,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좌소천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녕 넘을 수 없는 벽인가?’
그때 동천옹이 입을 열었다.
“낙남도 공격받지 않았는지 모르겠군.”
“저들이 쉽게 물러간 것으로 봐서 합동작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인데…….”
반쪽도 제대로 막지 못해 허덕이는 형편에 저들의 힘이 합쳐지면 과연 얼마나 강할 건가.
게다가 천혈마신 공야황, 그가 합류한다면?
‘끄응, 제기랄. 결국 궁주가 와야 뭘 해도 할 수 있다는 말이군.’
그런 속도 모르고 무영자가 한마디 나섰다.
“우리가 또 기습하는 건 어떻겠나? 방심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야.”
동천옹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지금쯤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뭐라? 어디 너 혼자 가서 해봐라. 죽으면 무덤은 내가 만들어주마.”
‘염병, 꼭 나한테만 그래?’
무영자는 입만 오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공손양이 입을 열면서 무영자의 무안함이 무마되었다.
“주군께서 오시면 뭔가 달라질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으십시오. 그리고 각 대주님들은…….”
나직한 말이 고요함을 비집고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비릿한 혈향에 잠긴 어둠이 슬슬 물러갈 즈음 회의가 끝났다.
창밖으로 어스름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자네도 쉬게나.”
동천옹과 무영자에 이어 마지막으로 사도철군이 나가고 나서야 생각에 잠겼던 공손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력을 쏟아 쓰러질 것처럼 피곤했지만,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았다.
‘소 낭자를 만나야겠어.’
이제 그녀에게도 말해주어야 한다. 소광섭도 모르고 있으니 아직 좌소천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공손양은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자신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공손양이 거처를 나서자, 전하련과 함께 호법을 서던 이자광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디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형님? 좀 쉬시지요.”
눈이 붉게 충혈된 공손양이다. 그만큼 심력을 쏟았다는 뜻이다.
마침 적도 물러간 상황. 공손양이 당연히 쉴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다시 거처를 나서니 이자광으로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소 낭자를 만나려고 그런다.”
이자광의 걱정하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주군에 대한 일을 알려주려고 그러십니까?”
“음.”
“아침에 알려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원망을 들을 것 같아서 말이야.”
“설마,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겠지요?”
공손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자광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런 생각도 없지 않지. 그래도 너처럼 몰래 가서 보지는 않는다.”
“제, 제가 언제요?”
흠칫한 이자광이 전하련의 눈치를 보며 급히 변명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뒤통수에 전하련의 도끼눈이 박힌 후였다.
“하여간……. 쯔쯔쯔…….”
공손양은 속으로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다녀오마.”
“형님, 호법도 없이 어딜 가신단 말입니까? 하련, 뭐 해? 군사를 모셔야지?”
2
공손양은 신녀 소영령을 태백산에서 데려온 일을 극비로 처리하고, 그 일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단단히 주지시켰다.
그녀는 천외천가는 물론이고, 무림맹에서조차 적으로 생각하는 여인. 자칫하면 엉뚱한 불씨가 번질지 몰랐다.
천만다행히도 그녀에 대한 말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무림맹에서도 그녀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천외천가는 알지도…….’
도유관과 사도진무 등이 천선곡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럼 그들의 정체를 알아냈을 게 분명했다.
안다면 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까? 정말 알긴 아는 걸까?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좌소천이 돌아오고 있으니까.
공손양이 소영령의 방에 도착했을 때는, 소영령이 막 운기에서 깨어나던 때였다.
항상 그녀의 곁에 있던 소광섭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부상자들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공손양은 소영령의 긴 날숨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 낭자, 공손양입니다. 잠시 뵈었으면 합니다만.”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침상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아 있는 소영령이 보였다.
소영령은 백의를 입고 눈 밑을 면사로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면사 위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손양은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후우, 벌써 몇 번째 봤는데도 적응이 안 되는군.’
문득 지난가을, 신양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렀던 혁련미려가 떠올랐다.
비록 소영령만큼은 아니어도 그녀 역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서 한참 대화를 나누어도 아무 부담이 없었다.
‘어쩌면 나에겐 그런 여인이 더 맞을지도……. 헛, 내가 무슨 생각을…….’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아니, 그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살아서 돌아가면 볼 수 있겠지?’
그때 소영령이 미안한 듯 말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공손양은 후닥닥 혁련미려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생각보다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부상자들을 돌봐준 낭자의 마음만으로도 모두가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거야 장원의 가솔들도 할 수 있는 일이죠.”
싸움이 끝나자, 소영령은 방을 나와 남들 눈에 안 띄게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지혈시켜 주고 상처를 감싸주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 공식적으로 그녀는 장원에 없는 여인이니까.
하지만 소영령은 여전히 미안하기만 했다. 자신 때문에 비천사룡 중 셋이 죽고, 좌소천이 실종되지 않았던가.
그녀는 항상 그 생각에 미안한 감정을 품고 지내왔다. 하기에 모든 무사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걸 보고도 도와주지 못한 것이 죄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지난 칠 개월간의 노력으로 공력을 삼 성가량 회복했지만, 몸속에 존재하는 마기로 인해서 공력을 외부로 표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소영령은 새벽에 갑자기 찾아온 공손양을 보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단순히 자신이 걱정되어서 찾아온 것이 아닌 듯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전할 소식이 있어서 왔습니다.”
전할 소식이 뭐가 있을까?
소영령이 생각할 때, 공손양이 자신에게 전할 소식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었다.
“혹시 혁련 공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닙니다.”
혁련호운은 제천신궁으로 이송했다.
동천옹과 무영자마저 그의 몸에 깃든 마기를 손댈 수 없었다. 그래서 황연송이라면 그의 몸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절망스런 소식만 들려왔다.
숨만 붙어 있을 뿐이지, 당장 숨이 끊어져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공손양은 보름 간격으로 제천신궁과 연락을 취하기에, 연락이 올 때마다 혁련호운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곤 했었다.
소영령은 오늘도 그에 대한 소식일 거라 생각한 듯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지에 뛰어든 사람이니 걱정이 되겠지.’
그러나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안 좋은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