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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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95화
195화
3
자시 무렵, 상주의 일이 전해지자 화산이 발칵 뒤집혔다.
산양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급히 정예무사 오백을 상주에 추가로 파견했다. 합한 숫자가 무려 일천백 명이다. 풍성보의 무사들까지 모두 일천육백.
육기에 속한 팽철과 악청백을 비롯해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일곱이고,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가 오십여 명이나 되었다.
적은 일천 정도. 천혈마신이라 불리는 공야황이 직접 나섰다 해도 숫자에서 많이 앞서니 쉽게 패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한 시진을 버티지 못하고, 설상가상 팽철과 악청백을 비롯해서 팔백의 목숨이 스러졌다고 한다.
충격이 화산과 영풍산장을 짓눌렀다.
종남을 떠나 위남까지 다가온 적의 주력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위남의 주력이 화산을 노리는 이상 더 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천혈마신 공야황이!
“일단은 낙남에서 그를 막아야 합니다, 맹주.”
보고를 마친 제갈진문이 침중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제야 우경 진인이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현재 그곳으로 가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오?”
“본 맹의 제자들과 제천신궁의 사람들을 합해 모두 일천 정도입니다. 거기에 상주에서 후퇴한 사람들 중 큰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하면 일천오백 정도 됩니다.”
“그들이 막을 수 있겠소?”
제갈진문이 그늘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불가능합니다. 저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만, 피해 입은 것보다 더 많은 무사들이 합류하고 있다 합니다. 즉시 추가 파견을 해야 합니다.”
우경 진인이라 해서 그걸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위남에 있는 자들의 움직임이었다.
낙남을 사수하기 위해선 적어도 일천의 제자를 더 보내야 한다. 그래도 확실하게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되면 화산에 남는 인원은 화산의 제자들까지 다 합해도 일천오백 정도. 위남의 세력이 화산을 칠 경우 영풍산장이 무너지기라도 하며 화산이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영풍산장에 모인 자들이 단독으로 위남 천외천가의 전력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면서도 우경 진인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영풍산장은 어떻소? 그들이 우리의 도움없이 위남에 있는 자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겠소? 막아줄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오.”
꼭 그랬으면 싶은 말투다.
적을 막고 화산을 지킬 수만 있다면, 영풍산장에 있는 연합세력이 전멸을 당해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바라보는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천하의 안녕을 생각하는 맹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하아…….’
제갈진문은 우경 진인의 뜻을 알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로서도 다른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제가 직접 가서 군사인 공손양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저들도 저희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시가 급한 일이오. 서둘러 주시오.”
“예, 맹주.”
4
영풍산장의 분위기 역시 화산과 다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속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파혼신창 악청백, 그와 일백오십에 달하는 무사들의 죽음이 전해진 것이다.
“악 대주가 목숨 건 대결을 벌이지 않았다면, 더 많은 피해가 있었을 거라 합니다.”
공손양의 말에 사도철군이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
“부상을 입은 육 대협과 전 대협이 살아남은 무사 일백오십을 이끌고 낙남으로 가셨다 합니다.”
“적환과 우시경이 힘 한 번 못써보고 당했다던데?”
“예, 성주.”
총 칠백의 전마성 무사들 중 상주에 투입된 인원은 일백. 그중 두 장로를 비롯한 육십 명의 무사가 상주에서 죽은 것이다.
사도철군은 끓어오른 분노를 삭이며 이를 갈았다.
“으음, 내가 갔어야 했는데…….”
사도진무는 차마 ‘아버님이 가셨어도 공야황을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공손양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하고 원통하지만, 지금은 내일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며칠 전만 해도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던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파 입이 열리지 않을 뿐.
“후우…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한숨으로 분노를 삭인 사도철군이 물었다.
공손양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사도철군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오늘의 승리로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관이 개입하기 전에 여세를 몰아서 쳐들어올 겁니다.”
“으음…….”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
여기저기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때 이광이 콧잔등을 매만지며 나직이 물었다.
“신양에 사람을 더 청하는 것이 어떻겠나?”
공손양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不可)합니다.”
동천옹이 이광을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궁을 들어먹을 일 있냐? 궁주도 없는데, 이곳에서 몽땅 뒈지면 네가 책임질래?”
이광이 제아무리 괄괄한 성격이라 해도 상대 나름이었다.
찔끔한 이광이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게 아니라…….”
공손양이 단호히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저에게는 대의와 명분보다 궁의 안위가 더 중합니다. 적의 힘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 판명된 이상, 만약의 경우 상황이 극한에 처한다면, 저는 군사의 자격으로 후퇴를 명할 것입니다.”
묵묵히 있던 사도철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후퇴한다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상황이 그리되면 어쩔 수 없지. 무림맹의 들러리가 되어서 저놈들과 동귀어진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으니까 말이야.”
둘러앉은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올 때만 해도 단숨에 무너뜨리고 태백산까지 쳐들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 궁주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제는 후퇴를 전제로 한 전쟁을 해야 할 판이다.
물론 상대의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서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공손양은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진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지만 그전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혹시 아나? 우리가 놈들을 싹 쓸어버리고 태백산까지 달려갈지.”
사도철군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고 탁자를 탕탕 내려쳤다.
“자, 자! 기운들 냅시다! 놈들이 강하다지만 우리도 약하지 않소이다! 누구 대가리가 단단한지 아직 부딪쳐 보지도 않았잖소? 힘을 내도 모자랄 판에 왜들 그렇게 기운이 없는 거요?”
털털한 그의 말투에 사람들의 어깨가 펴졌다.
그렇다. 미리부터 맥 빠진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자신들이 누군가?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최강 정예가 아닌가!
“거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군.”
무영자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힘만 앞세우는 곰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데?”
동천옹도 씩 웃으며 사도철군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두가 웅성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자 공손양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공손양을 향했다.
공손양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문제가 되는 자들은 적들 중에서도 상위의 고수들입니다. 저희 역시 약하지 않습니다만,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에 사도철군이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천혈마신을 제외하고도, 적들 중 몇 명은 성주님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들입니다. 한데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저희 쪽에는 성주님과 무림맹주인 우경 진인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마를 찌푸린 채 눈을 내리깔았다. 공손양의 말이 뭘 뜻하는지 짐작한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동천옹과 무영자가 강하다 해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둘이 힘을 합해야 겨우 사사 중 하나를 감당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나 무인이 자존심을 버린다는 게 어찌 쉬울까.
공손양도 그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합공을 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둘이 안 되면 셋, 셋이 안 되면 넷이라도. 싸움이 벌어진 후에는 늦습니다. 그전에 미리 상대할 사람을 정해놓고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전마성의 장로 중 한 사람인 유청산이 툭 쏘듯이 말했다.
“너무 지나친 염려가 아닌가? 우리도 결코 약하지 않다네.”
자존심 강한 사도철군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그렇게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
공손양이 사도진무를 바라보았다.
“사도 형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사도진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두 눈으로 공야황의 무공을 지켜본 그로선 합공이 아니라 더한 짓을 한다고 해도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막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한 사람이 전마성의 대공자 사도진무다.
누가 그에게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도철군이 노려보았지만, 사도진무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차마 뭐라 하지는 못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공손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단순히 승부를 가리기 위해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적을 멸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지요. 그 점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동천옹이 콧소리를 내며 공손양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킁. 좋아, 그럼 나와 이 늙은이가 사사, 아니지, 이제 삼사지. 좌우간 그 세 놈 중 한 놈을 맡고, 염가와 대나무귀신에게 하나를 맡기지.”
그러자 헌원신우도 묵령천의 형제들 중 목화인과 기령산과 증모당을 지목했다.
“나와 세 형님이 순우연과 순우경을 맡겠네.”
그들마저 합공을 받아들이자 전마성의 장로들도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공손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합세력의 고수 중 오십여 명을 골라 짝짓기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사도철군이 지목되었다.
“만약 천혈마신 공야황과 싸우게 될 경우, 성주께서 맹주와 함께 그를 맡아주십시오.”
사도철군이 눈을 좁히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누군가. 천하의 철혈마제 사도철군이 아니던가!
그는 공야황과 일대일로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과 오기만으로 일을 처리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 피해가 전체에 미칠 터, 모험을 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아직 우경 진인이 함께할 것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
‘우경 진인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가 합공을 반대하면 그때 가서 한번 붙어봐야겠군.’
결국 그도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까닥였다.
“그렇게 하지.”
공손양은 계속해서 조를 짰다.
공야황과 척발조, 삼사와 구암 등 천해의 고수들을 비롯해, 순우연과 순우경 등 천외천가의 고수들까지, 적들 중 절대지경에 올랐거나 그에 근접한 고수는 모두 이십 명에 가까웠다.
공손양이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늘어놓자, 사람들의 표정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적을 하나하나 해부하듯이 늘어놓고 보니 정말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사도철군이 입술을 씰룩이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더럽게 많군.”
공손양은 그런 사도철군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많은 정도가 아니다.
천외천가와 천해에는 그들 외에도 주의해야 할 고수들이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십삼사령, 천앙동의 괴인들, 삼령의 고수들. 거기에 천해의 독혼대와 빙혼대, 마혼대의 수뇌들 등등…….
어디 그뿐인가? 천외천가가 포섭한 강호의 고수들에 대해선 아직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판이다.
생각만으로도 질릴 정도.
‘주군만 돌아오셔도 이렇게 복잡할 일이 없거늘.’
역시 문제는 좌소천이다.
그만 돌아온다면, 사도철군과 우경 진인이 삼사나 순우연 등을 맡고, 그들을 맡았던 사람들이 그 아랫사람을 상대하면 된다.
지금과는 천양지차의 상황이 될 터. 수백 명의 무사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돌아오시면 단단히 뭐라고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