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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9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190화

 

190화

 

 

 

 

 

 

그는 파리를 쫓듯 바닥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순간 가벼운 손짓에 잡초가 가득 자란 땅이 한 자 두께로 쓱 밀려나고, 눈앞에 가로세로 여섯 자 크기의 판판한 대리석이 드러났다.

 

그는 석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몸을 구부리고 석문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덜컹!

 

대리석 석판이 위로 들리며 시커먼 구멍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 기다렸다가, 냄새가 약해지자 미리 준비한 횃불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잠시 후.

 

일백여덟 개의 계단을 내려간 그는, 손에 들린 횃불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횃불이 불꽃을 피운 순간, 어둠이 밀려가고 고요히 숨을 죽인 지하 광장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르르르르…….

 

지하 광장의 한쪽 바위 벽이 힘겹게 신음을 토하며 밀려나기 시작했다.

 

벽처럼 보이던 바위는 단순한 벽이 아니라 석문이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닫혀 있었는지, 석문에서 떨어져 내리는 먼지가 수북이 동산을 이루었다.

 

석문이 반쯤 열렸을 즈음, 감회에 젖은 눈으로 석문을 바라보던 진 노인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십 년 만에 돌아왔다. 나 담대위겸이…….”

 

그랬다. 그의 성은 ‘진’이 아니라 ‘담대’였다. 태백산에 눌러 살기 위해 평범한 성씨인 진씨 성을 썼을 뿐.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이상, 그의 성은 더 이상 ‘진’이 아니었다.

 

진 노인, 담대위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석문이 다 열리자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한 발, 두 발…….

 

그가 횃불을 들고 가며 벽에 걸린 유등의 심지에 불을 붙이자 불꽃이 하나둘 피어났다.

 

오십 년이 넘었는데도 열여덟 개의 유등 중 아홉 개가 불꽃을 피운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통로에는 온갖 동물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불빛이 비치자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뚜벅, 뚜벅…….

 

그가 그렇게 이십여 장의 통로를 걸어가자 또다시 커다란 석문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높이 서른 자. 가로가 스무 자.

 

두 번째 석문은 앞쪽의 석문과 많이 달랐다.

 

앞쪽의 석문이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한 바위처럼 생긴 것이었다면, 두 번째 석문에는 보는 이의 입에서 경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담대위겸은 우뚝 서서 석문을 쳐다보았다.

 

석문에는 웅혼한 필체로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환상천부(幻想天府)]

 

 

 

석문을 바라보는 담대위겸의 눈에 뿌연 안개가 어렸다.

 

“마침내 이곳을 열 수 있게 된 건가?”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당연했다. 천부의 문이 닫히고 무려 구백여 년이 지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감격의 눈빛으로 석문을 바라보던 담대위겸은 업고 있던 좌소천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예상대로 닷새가 걸렸다. 

 

좌소천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심장박동과 숨소리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담대위겸은 좌소천의 상태를 살펴보고 두 손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이제 깨워야 할 때가 되었다. 

 

깨어나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그도 모른다. 

 

하루가 될지, 아니면 일 년이 될지.

 

하지만 들어야 할 말이 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늘이여, 묵령의 혼을 외면하지 마소서.”

 

담대위겸은 나직이 뇌까리며 공력이 집중된 손을 좌소천의 명문혈에 얹었다.

 

 

 

지독한 통증이 느껴진다.

 

좌소천은 아득한 정신 속에서도 그 통증이 반가웠다.

 

통증!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말이다.

 

“으음…….”

 

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신이 드는가?”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

 

‘맞아, 정신을 잃기 전에 들었지.’

 

“정신이 들었으면 운기를 해서 혈천마마공의 마기를 누르도록 하게.”

 

혈천마마공의 마기?

 

공야황의 기운을 말하는 것인가?

 

어떻게 이자는 공야황의 무공을 알아본 것일까?

 

좌소천은 의아한 가운데에서도 금라천황공을 끌어올렸다.

 

또다시 심장을 찢어발기는 통증이 밀려왔다.

 

‘크윽!’

 

하지만 좌소천은 통증을 꾹 참고 악착같이 금라천황공을 일으켰다. 그 기운만이 공야황의 마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을 벌리고 비명이라도 내지르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명을 내지르면 기운이 빠져나갈 터. 그럼 끝장이었다.

 

좌소천은 이가 부서져라 턱에 힘을 주고 혼신을 다해서 금라천황공을 운용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실낱같은 기운이 단전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고통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때다. 좌소천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력을 격발시켰으니 단전에 남은 공력이 없어야 했다. 되살리기 위해선 적어도 몇 달은 고생을 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약하긴 해도 분명 단전에 기운이 모여 있다.

 

자신을 도와준 자가 넣어준 공력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가 금라천황공을 익히고 있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때 또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에게 천년매령을 복용시켰네. 그 기운이 남아 있을 거야. 남아 있는 기운을 최대한 끌어 모으게.”

 

좌소천은 천년매령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목소리의 주인이 말하는 걸로 봐서 범상치 않은 영약일 거라 짐작만 할 뿐.

 

어쨌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날벌레의 기운이라도 얻어야 할 판. 좌소천은 실낱같은 기운을 악착같이 이끌고 온몸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지나자 기운이 제법 굵어졌다.

 

그래 봐야 예전에 비하면 삼 푼도 되지 않았지만, 좌소천은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금라천황공이 사이한 기운을 억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 * *

 

 

 

 

 

좌소천이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뜬 것은 정신을 차린 지 세 시진이 지나서였다.

 

‘어디지?’

 

주위가 어둡다. 한쪽에 꽂힌 횃불이 없었다면 더욱 어두웠을 것이다.

 

밤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방이 온갖 동물들의 문양이 새겨진 석벽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정면의 석벽을 바라보던 좌소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굴이 아니라 지하?’

 

“이제 좀 견딜 만한가?”

 

또다시 들리는 목소리.

 

고개를 돌린 좌소천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이 보였다.

 

거친 수염, 주름진 얼굴. 나이를 짐작키가 힘든 노인이었다.

 

“어르신께서 저를 구하셨나 보군요. 고맙습니다, 어르신.”

 

“굳이 따진다면 그렇다고 해야겠지. 하나 누가 구했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네.”

 

좌소천은 조용히 그의 말이 이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일단 자네에 대한 것을 알고 싶군. 왜 천해의 해주와 싸웠는가?”

 

자신이 천해의 해주와 싸운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의문이 일었지만 좌소천은 상대의 질문에 먼저 대답했다.

 

“천해에 사람을 구하러 몰래 들어갔다가 해주인 공야황을 만났습니다. 그 바람에 싸우게 되었지요.”

 

간단명료한 좌소천의 말에 담대위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자네가… 천해에 들어갔었단 말인가?”

 

“예, 어르신.”

 

“그렇다면 해주만이 아니라 사사나 십암도 만났을 텐데……?”

 

‘사사나 십암을 아는 걸 보니 천해를 잘 아는 것 같군.’

 

천해를 잘 아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을 구한 사람. 

 

그렇다면 적은 아니란 말이다.

 

이 노인은 자신이 그들 손에서 어떻게 살아났는지 궁금한가 보다.

 

좌소천은 간단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만났습니다. 그 바람에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지요.”

 

사사와 십암을 만나고도 빠져나왔다는 말에 담대위겸의 눈이 홉떠진 채 굳어졌다.

 

좌소천의 강함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천해의 주요 고수들 손에서 살아 나왔다는 대답은 예상 밖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좌소천의 몸에 혈천마마공의 마기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으리라.

 

사사와 십암이 어떤 자들이던가!

 

아니 그들은 차치하고 천해의 해주인 공야황과도 싸웠다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허풍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대답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좌소천이 조소가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사사를 삼사로 만들었고, 십암을 구암이 되게 했으니 손해는 아니지요.”

 

둘을 제거했다는 말.

 

담대위겸은 잠시 말을 잊고 좌소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사와 십암이 어떤 자들인데!

 

그런 자들을 둘이나 제거했다고?

 

정말일까?

 

문득 의혹이 일며 좌소천의 정체가 진실로 궁금해졌다.

 

“자넨… 누군가?”

 

좌소천의 창백한 얼굴에 쓴웃음이 맺혔다.

 

“제천신궁을 맡고 있는 좌소천이라고 합니다.”

 

경악한 담대위겸의 엉덩이가 세 치쯤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자네가 제천신궁의 주인이라고? 그럼 자네가 혁련무천을 밀어냈다는 그 절대공자란 말인가?”

 

 

 

담대위겸의 굳은 입이 벌어진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는 한 가지 계획을 지니고 이곳에 왔다. 모험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천해의 해주와 겨룰 정도의 강한 청년. 그의 몸에 깃든 혈천마마공의 마기. 허리에 끼워져 있던 묵령시까지!

 

모든 게 하늘이 맺어준 인연 같았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제천신궁은 당금 천하제일의 세력이다. 그런 제천신궁의 주인이 자신의 뜻을 따라줄까?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지 않던가?’

 

이제는 자신이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담대위겸은 결심을 굳히고 보따리 속에서 묵령기환보를 꺼내 들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는가?”

 

좌소천의 눈빛이 잔잔해졌다.

 

어머니와 이어진 단 하나의 물건이기에 어딜 가나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묵령기환보다.

 

그걸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묵령기환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담대위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이걸 어떻게 얻었는가?”

 

그때까지도 좌소천은 담대위겸이 왜 묻는지 알지 못했다.

 

“십 년 전 제천비고에서 얻었습니다.”

 

그 말이 담대위겸의 귀에는 단순히 운이 좋아 얻었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짓고 묵령기환보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그랬던 건가?’

 

좌소천도 묵령기환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 가문과 관계된 물건이어서, 전 궁주께 어머니가 부탁해서 얻었지요.”

 

담대위겸의 눈이 살짝 쳐들렸다.

 

“어머니의 가문이라고?”

 

“어머니께선 제가 익힌 금라천황공과 연관된 물건일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담대위겸이 번쩍 고개를 쳐들고 좌소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금라… 천황공?”

 

“정확한 이름은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금판의 무공을 해석하시면서 어머니 가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니까요.”

 

끝내 담대위겸의 노안이 부들부들 떨렸다.

 

“금라…… 금판…… 설마……?”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좌소천이 묵령기환보에서 눈을 떼고 담대위겸에게 물었다.

 

“금라천에 대해 아십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담대위겸의 잇새로 신음에 가까운 광소가 새어 나왔다.

 

“크, 크크크. 금라천을 아냐고? 지금 나에게 금라천을 아느냐고 물었는가?”

 

“어르신……?”

 

비감에 찬 웃음을 터뜨리던 담대위겸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늘이여! 그토록 커다란 시련을 주고도 모자라더이까? 어찌, 어찌 이런 상황에서 동방가의 자손을 제 앞에 보내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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