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88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88화
188화
손발이 어지러워진 은사는 이를 악문 채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돌렸다.
하지만 그가 막기에는 작심하고 펼친 좌소천의 공격이 너무 강했다.
옷이 검강에 스쳐 찢겨지고 살이 쩍쩍 벌어졌다.
“크으읍!”
은사의 악다문 입에서 흘러나오는 격한 신음!
뒤늦게 공야황이 좌소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교활한 놈! 내상을 입은 척 속였구나!”
두어 번 좌소천의 행동에 속은 그다. 그의 눈에는 좌소천의 모든 행동이 자신을 속이는 것처럼 보였다.
좌소천은 은사를 향해 암절단광의 일초를 펼치고, 무진도의 도강이 은사의 가슴을 스치는 걸 보며 공야황을 향해 신형을 돌렸다.
찰나, 공야황의 두 손에서 붉은 구가 튀어나오더니 삼 장 허공에서 좌소천의 머리 위를 찍어눌렀다.
혈천마마공의 결정, 혈천마혼구(血天魔魂球)였다!
“죽여 버리겠다, 천소!”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공야황!“
동시에 무진도의 도강이 어둠을 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때부터였다.
경천동지의 격전이 태백산의 밤을 깨웠다.
동물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고, 벌레들도 숨을 죽이고 세상이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막상막하!
그렇게 이십여 초가 지날 무렵이었다.
콰과광!
천둥소리가 태백산을 뒤흔들며 두 사람이 뒤로 튕겨졌다.
겨우 몸을 세운 좌소천은 무진도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착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격발시킨 잠력이 서서히 고갈되어 가고 내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자신만 내상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공야황도 내상이 심한지 더욱 많은 피가 그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은사 역시 깊게 베인 가슴을 한 손으로 틀어막은 채 질렸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고.
“오늘 나를 이긴다 해도 너는 자랑스럽지 못할 것이다, 공야황.”
공야황의 분노에 찬 눈이 파르르 떨렸다.
천하에 적수가 없다는 그가 은사와 협공으로 좌소천을 공격했다. 그러고도 완벽한 승리를 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좌소천이 어떻게 해서 전과 다름없는 공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 알고 있다.
자존심이 상하는 한편으로 좌소천의 끈질김에 이가 갈렸다.
“잠력을 격발시키다니, 지독한 놈!”
좌소천은 그 말을 들으며 뒤로 한 걸음 내딛었다.
“쫓아오려면 쫓아와 봐라. 아직 십여 초는 더 견딜 수 있으니까. 대신 그대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죽더라도 그대의 사지 하나쯤은 가지고 갈 생각이니까.”
무심한 표정으로 말하며 물러서는 좌소천이다.
공야황은 이를 악물고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좌소천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그도, 은사도 안다.
하기에 좌소천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데도 두 사람은 그를 막지 못했다.
‘흥! 어디 얼마나 가나 보자.’
내력을 쏟아내지 않는다 해도 격발시킨 잠력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한두 시진, 그 즈음이면 스스로 무너질 터.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스스로 무너진 그의 목숨을 거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무리하다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것보다는 나았다.
‘네놈의 머리를 잘라서 내 발밑에 두고 지낼 것이다!’
그사이 좌소천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사실 그는 자신이 말한 것보다도 상태가 더욱 나빴다.
공야황의 공격을 사오 초나 견딜 수 있을까?
공야황의 사지 중 하나를 잘라낸다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한 시진 안에 저들을 떨쳐야 해.’
5장 인연(因緣), 그리고 필연(必然)
1
태백산 일대에서 약초꾼으로 잘 알려진 진 노인은 밤하늘을 진동시키며 들려온 굉음에 놀라 급히 목옥을 나왔다.
하나 그가 나온 것은 꼭 굉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희미한 기운 때문이었다.
사실 진 노인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성이 진짜 진씨도 아니고, 약초만 캐며 사는 순수한 약초꾼도 아니었다.
그가 태백산에 들어온 지 어언 오십 년. 약초를 캐는 것은 그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신분을 가리기 위한 것일 뿐,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렇기에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이런 엄청난 기운이……?’
그가 그 기운의 강함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느껴지는 기운은 미약했지만, 소리는 저 멀리 산을 몇 개나 넘어가야 하는 곳에서 들려왔다.
그토록 먼 곳에서 뿜어진 기운이 느껴질 정도라면 절대의 경지에 오른 자들의 싸움이라고 봐야 했다.
‘도대체 누가 싸우고 있단 말인가?’
진 노인은 잠시 망설였다.
저들의 싸움에 끼어들면 자칫 자신의 오십 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만일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는 죽어서도 후회하며 통곡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을 자기에는 소리가 들려온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천선곡과 지척인 곳이었으니까.
‘천선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결국 그는 거처를 떠나서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2
좌소천은 무너지려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격발시킨 잠력이 소진되자 금라천황공조차 사이한 기운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끄응, 지독하군.’
좌소천은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는 몸을 바위틈에 기댔다.
어느덧 도주를 시작한 지 한 시진째. 도중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깊은 동굴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동굴이 보이지 않자 진을 펼치고 그 안에 숨어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진으로는 공야황의 기세를 이겨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벼운 진세 몇 개를 펼쳐 놓았다.
공야황이 힘으로 진세를 부수는 동안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것으로 공야황을 완벽히 속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공야황이 추적을 포기하기만 바랄 뿐.
그도, 은사도 부상이 심한 상태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바람일 뿐, 가능성은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후우우…….’
바위에 등을 기댄 좌소천은 속으로 깊은숨을 몰아쉬며 간당거리는 금라천황공의 기운을 어떻게든 일으켜 보려고 했다.
그러나 혈천마마공의 기운에 막힌 기운은 쉽게 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크윽!’
좌소천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음을 씹어 삼켰다.
눈앞이 환해지며 몸이 붕 뜬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소영령이 무사히 벗어난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영령,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그때였다. 바람 소리인 듯 공명이 울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요?”
진 노인은 바위틈에 끼어 있는 좌소천을 꺼내서 바닥에 눕히고는 맥문을 잡았다.
순간, 그의 눈이 부릅떠지고 이가 악 다물렸다.
“이, 이 기운은?”
그는 급히 좌소천의 장포를 젖히고 가슴 부위를 드러냈다.
“역시……!”
왼쪽 가슴 부위가 불꽃 문양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자신이 아는 한 사람 몸에 그러한 문양을 남기는 무공은 오직 하나다.
고금제일의 마공, 혈천마마공!
진 노인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맙소사! 마침내 천해에서 그 악마의 마공이 완성되었단 말인가?”
천 년(千年)의 전설(傳說).
만들어진 이래 지난 천 년간 아무도 익히지 못했다는 미완의 마공이 혈천마마공이다.
아수라로부터 전해졌다는 이단의 마공.
인간은 익힐 수 없다는 악마의 능력!
그런데 그것이 완성된 것 같다. 아니라면 이토록 불꽃 문양이 뚜렷할 수가 없다.
고개를 쳐든 진 노인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하늘을 원망했다.
“하늘이시여, 정녕 세상이 피로 물들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그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젊은이가 누구이기에 악마의 능력이라는 혈천마마공에 당한 것일까?
얼마나 강하기에, 천해의 인물이 혈천마마공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눈앞의 젊은이가 혈천마마공을 익힌 자에 비해 그리 약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 그자와 싸우고도 이렇듯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 노인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급히 좌소천의 맥문에 진기를 흘려 넣었다.
그런 젊은이라면 살려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 노인은 제발 눈앞의 젊은이 몸에 큰 이상이 없기만을 바랐다. 천해에 위협이 될 고수를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언뜻 젖혀진 장포 사이로 좌소천의 허리에 꽂힌 묵령기환보가 보였다.
‘응?’
조금 전만 해도 건성으로 보았다. 그런데 다시 보자 괴이한 느낌이 스멀거리며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꼭 어디선가 본 듯한, 아니, 언젠가 들어본 듯한 뭉툭한 곤.
진 노인은 오른손으로 좌소천의 맥문을 짚은 채 왼손을 뻗어서 묵령기환보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진 노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서, 설마… 이게 아버님께 들었던 묵령시(墨靈匙)……?”
진 노인은 홱 고개를 돌려 눈앞의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눈이 감긴 채 가늘게 숨을 쉰다.
창백한 얼굴, 새파래진 입술. 금방이라도 숨소리가 끊어질 것처럼 가늘다.
그러나 진 노인에게는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참으로 하늘의 뜻은 알 수가 없구나. 인연의 고리를 이토록 복잡하게 얽어놓다니…….”
그는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좌소천을 안아 들었다. 그러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산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 * *
진 노인이 떠난 지 일각쯤 지났을 때, 공야황이 바람처럼 날아와서 그 자리에 내려섰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교활하기가 백 마리 백여우보다 더 한 놈. 그런 수작을 부려놓고 도망가다니!”
처음에 그는 느긋한 마음으로 좌소천을 추적했다. 그러다 오 리 지점에서 진이 펼쳐진 곳을 발견했다.
그걸 본 순간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좌소천이 진을 펼치고 그 안에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후후후, 이 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봤던가?’
그는 단숨에 진세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지나가다가 길을 잃은 토끼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그 후 반 시진, 그는 세 개의 진을 부수고 이를 갈았다.
‘이 백여우 같은 놈이!’
그러다 다섯 번째 진을 부수고, 그 안에 있는 바위에서 간단한 글귀를 발견했을 때는 하마터면 노기가 끓어올라 내력이 꼬일 뻔했다.
[그냥 돌아가라. 우리에서 자란 곰은 결코 산야의 대호를 잡을 수 없는 법. 부상이 심할 텐데, 더 무리하면 순우연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 될 것이다.]
‘너는 우리에서 자란 곰에 불과하다’ 그 말이 아닌가 말이다.
노기가 끓어오른 공야황은 그 일대를 모조리 부숨으로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고 나서야 좌소천이 남긴 말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순우연에 대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는 역천의 상을 지닌 자. 언제라도 등에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자가 순우연인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 당장은 좌소천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무소불위, 천하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을 안겨준 자. 그게 바로 좌소천이 아니던가!
결국 그는 그곳에서 일각을 소비한 뒤에야 좌소천을 다시 추적했다.
좌소천은 힘이 거의 다 빠진 상태.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제까짓 게 도망가 봐야 어디까지 가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이각.
좌소천의 몸에 스며든 기운을 따라와 마침내 놈이 머물었을 법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런데… 또 사라지고 없다.
문제는 혼자서 사라진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주위의 발자국. 어둠 속에 희미하게 난 흔적은 좌소천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곳에 나타났다. 그것도 상당한 무공을 지닌 자가.
공야황은 이를 뿌드득 갈며 진 노인이 사라진 남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