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8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9화
“그들이 빼돌렸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우문각의 말투는 담담했다. 하지만 정유는 결코 담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장로 용평을 데려와라.”
“예, 총사.”
양호와 곽채응은 장로 용평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가 관여되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으니까.
정유도 그들이 말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용평을 데려오는 것. 그것이 계획의 두 번째 단계였다.
“그를 데려오면 움직이는 놈들이 있을 거다. 위곤과 비령위에게 놓치지 말라고 해. 특히 독고태에게서는 한시도 눈을 떼어선 안 될 것이야.”
***
“용 장로를 데려갔다고?”
“예, 사형.”
“양호와 곽채응이 용 장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단 말이냐?”
“그 점이 의문입니다. 그 두 사람은 용 장로가 우리 쪽 사람이라는 걸 모릅니다. 우리 쪽 사람은커녕 오히려 성주 쪽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럼 그들이 왜 갑자기 용 장로를 데려간 거지? 혹시 또 다른 누가 입을 연 건 아니냐?”
“그 점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몰래 잡혀갔다는 말은 아직 들어온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급해져서 이곳저곳 마구 쑤시는 것은 아닐지…….”
“우문각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장로를 잡아갈 정도로 무모한 사람이 아니야.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다. 뭔가가…….”
이마를 찌푸리며 나직이 되뇌던 공손백의 두 눈에서 순간적으로 섬광이 번뜩였다.
“그래,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군.”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말한 미끼. 어쩌면 실제 미끼는 양호와 곽채응이 아닐 수도 있어.”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백리호의 눈이 커졌다.
“아! 이중미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번 싸움은 우문각이 졌다.”
공손백의 입가로 차디찬 냉소가 짙게 번졌다.
“오늘 밤 그에게 내 마지막 선물을 주라고 해.”
***
대운사에 머문 지 사흘째.
장천운은 사마경이 잠잘 때, 자신이나 그녀가 뒷간을 갈 때 등 특별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그녀 곁에서 삼 장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잠잘 때도 하루 세 시진을 제외하고는 방문 밖에 서있거나 거처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천성에서 온 최고의 정예무사들이 수백 명이나 되지만, 가장 가까이서 사마경을 보호하는 사람은 그였다.
석양이 지던 그때도 그녀의 방안에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래도 불안해.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아.’
이마를 잔뜩 찌푸린 장천운은 조금 전에 먹은 식사를 소화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방문 근처를 오갔다.
사마경이 그 모습을 보고는 툭 쏘아붙였다.
“천운, 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해? 어지럽잖아.”
걸음을 멈춘 장천운이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탁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던 그녀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슴이 이상할 정도로 답답해서 그럽니다.”
“가슴이 왜?”
“왜 전에도 말씀드렸잖습니까? 제 육감이 좀 예민하다고요.”
“그랬지.”
“그 육감이 아우성치면 가끔 이렇게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뭐라고 아우성치는데?”
“저도 그걸 모르겠습니다. 좋은 일 같지는 않은데…….”
“우리를 습격한 자들 때문에 그러는 것 아냐? 그들이 또 공격해올지 몰라서 걱정이 된다든가, 뭐 그런 거.”
“꼭 그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마경은 장천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육감이 맞을 때가 열 번에 몇 번 정도지?”
“십중팔구는 맞습니다. 그래서 더 고민인 거죠.”
“굶어죽지는 않겠네. 점쟁이도 그 정도는 못 맞출 텐데.”
장천운도 사마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 때문이 아니라, 바로 너 때문에 그러는 거야.’
문득 면사 위로 보이는 두 눈이 전처럼 차갑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눈 하나는 진짜 예쁘네.’
사마경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기는커녕 농담을 던졌다.
“왜 그렇게 봐? 관상도 볼 줄 알아?”
“걱정 되어서 그럽니다.”
사마경으로 인한 불안감이다.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나면 그녀가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거든?’
장천운이 속으로 불퉁거리고 있는데, 사마경이 불쑥 물었다.
“고아라고 했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대답은 꼬박꼬박 했다.
소성주니까.
“열 살이 되는 생일을 열흘 남겨놓았을 때 혼자가 되었죠.”
“아버지가 검화문 호위무사였다며?”
“그 말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내 목숨을 보호해줄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두어야 하지 않겠어? 속이 새카만 사람을 옆에 둘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군요. 예, 검화문 호위무사였죠. 그런데 소문주를 구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정말로 그때부터 혼자 산 거야?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소문주를 목숨으로 지켰다면 혼자 놔두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몇 달은 그랬죠. 하지만 시일이 흐르니까 결국은 혼자가 되더군요.”
“서운했겠네.”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아버지의 그림자는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나름대로 제법 그럴 듯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사마경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혼자 살았는데, 다행히 머리가 잘 돌아가서 굶어죽지는 않았죠. 가끔 두들겨 맞기는 했지만.”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큰 그림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 세상을 내 눈으로 둘러볼 수 있을 때부터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가끔 나타나서 나를 안아주긴 했지만, 낯선 어른일 뿐이었지.”
문득 사마경이 왜 차갑고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아버지가 있을 때가 좋은 때죠.”
“나는 아직 모르겠어. 정말 좋은 것인지.”
사마경은 나직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하고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때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녀의 눈빛이 전처럼 차가워졌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녀의 눈빛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예리한 감각은 이런 때도 효과를 발휘했다.
‘맞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미운 아버지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걸.’
장천운은 밖이 어두워졌을 때 사마경의 방을 나왔다.
하늘에 구름이 짙게 끼어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도 제법 세게 불었다. 바람에 휘말린 낙엽 몇 장이 요란법석을 구석으로 떨며 굴러갔다.
그는 승방 앞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수혼대원 몇 명이 그를 주시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가슴이 여전히 답답했다.
왜 이런 불안감이 드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구천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투 때문에 그런가?
“왜 그러고 있어?”
뒤에서 연송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간식거리로 건과가 든 쟁반을 든 연송하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 오빠가 좀 고민이 있어서.”
“피이.”
연송하는 입술을 틀며 실소를 지었다.
그녀는 사실 장천운과 자신이 ‘오빠동생’으로 불리는 걸 바라지 않았다.
‘오빠동생’은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천리보다 더 멀 수도 있는 사이다.
자신을 여자로서는 좋아하지 않는 것 아닐까?
오죽하면 그런 마음마저 들었다.
하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장천운이 자신을 여자로서 대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쳇.’
연송하가 시무룩해 있는데 장천운이 번개처럼 손을 뻗어서 건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흠, 이거 맛있게 생겼는데?”
연송하가 깜짝 놀라서 눈을 흘겼다.
“뭐하는 거야?”
“뭐 하긴? 열심히 일했으니까 나도 하나 먹는 거지. 왜, 오빠가 먹으면 안 돼?”
“흥.”
그놈의 오빠는!
나직이 코웃음 친 연송하는 장천운을 다시 한 번 흘겨보고 몸을 돌렸다.
아마 장천운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면, 아무리 쟁반에 가려져 있다 해도 발밑에 돌이 튀어나와 있는 것을 못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걸으면서도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바보 멍청이. 누가 동생이라고 하면 좋아할 줄 알아? 쳇.’
툭.
발끝이 돌에 걸렸다.
막 앞으로 나아가려던 참이었던 데다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던 터라 중심을 잡을 틈도 없었다.
“어머!”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쟁반과 접시부터 챙겼다.
그러나 접시는 붙잡았는데, 접시에 담겨 있던 간식이 허공으로 붕 떴다.
무공이 일류고수인 그녀도 갑작스런 그 상황에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돼!’
그때였다.
일 장 거리를 거짓말처럼 순간적으로 이동한 장천운이 좌수를 뻗어서 넘어지는 그녀를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우수로 금나수(擒拿手)를 펼쳐서 허공에 뜬 건과를 회수했다.
그 손짓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두꺼비가 날파리 떼를 한꺼번에 낚아채는 듯했다.
가까스로 건과 대부분을 회수한 장천운이 코앞에 있는 연송하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쯔쯔쯔, 조심 좀 하지. 오빠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
장천운에게 안기다시피 한 연송하는 정신이 반쯤 달아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장천운만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가까이라기보다 딱 붙어 있었지만.
짓눌린 가슴을 통해서 장천운의 심장박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장천운도 뒤늦게 자신이 연송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이 왕방울 만해졌다.
“응? 헛!”
황급히 연송하를 놓고 뒤로 물러선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오려나…….”
“고, 고마워.”
연송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장천운도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고, 고맙긴……. 뭐, 급하다 보니 안은 거니까, 네가 이해해.”
시간이 지나면서 연송하의 마음도 안정되었다.
그런데 참 묘했다.
왜 이리 아쉬운 거지?
아쉬운 것은 장천운도 마찬가지였다.
엉덩이만 류화보다 예쁜 줄 알았더니 가슴도 훨씬 나았다.
그때 자신을 향한 눈길이 느껴졌다.
한두 줄기가 아니었다.
방문 앞의 수혼대원 뿐만이 아니라,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사마경도 쳐다보고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빛으로.
***
턱.
약사발을 내려놓은 사마중천은 이마를 찌푸렸다.
‘약이 점점 더 써지는군.’
쓴 약이 몸에 좋다고 했던가?
그러나 너무나 쓰면 그것도 괴로움이었다.
그는 시비가 약사발이 놓인 쟁반을 들고 방을 나가자 의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자신이 보고 결정을 내려야할 사안의 서류가 한 뼘쯤 놓여 있었다.
더구나 딸의 일에 대해서는 직접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터라 자신에게 가져온 보고서가 평소보다 배는 더 많았다.
그나마도 총사 우문각이 중간에서 처리해주지 않았다면 서류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자닜을까, 보고서를 열 장쯤 훑어보던 그의 얼굴이 살짝 이지러졌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친 것처럼 고통의 창날이 뇌리를 찔렀다.
‘경아와 관계된 서류만 보고 쉬어야겠군.’
하지만 그는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서류를 절반 정도 남겨놓은 채 침상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일찍 잠을 청해야 할 것 같았다.
‘나머지 서류는 새벽에 일어나서 봐야겠어.’
설마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