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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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82화
182화
천해의 여자 이백여 명 중 절세미인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은 여인이 수십 명은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여인을 합쳐도 신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공야황은 난생처음 여인이라는 존재에 흥미가 동했다.
혈천마마공은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무공. 하기에 수십 년 동안 금욕적인 생활을 해왔다.
그럼에도 눈앞에 누워 있는 신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욕망이 저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철벽보다 더 단단한 껍질을 깨고 기어나오려고 한다.
자신의 의지를 배반하고 쿵쿵 뛰는 심장의 박동.
붉게 물든 공야황의 눈빛이 출렁였다.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난 유혹이 한 번쯤 여인을 취해도 되지 않겠느냐며 속삭인다.
―그냥 취해. 까짓 거 공력 좀 손해 보면 어때? 남자로 태어나서 저런 여인을 놔두는 게 병신이지.
자신도 그러고 싶다. 그러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문제는 조금 손해 보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한 번 욕망을 풀고 말 것이라면 몰라도, 눈앞의 여인을 취하면 절대 한 번으로 그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아는 것이다.
결국 신녀를 취하기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
공야황은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크크크, 나의 마음이 흔들리다니. 태백산의 만년설보다 더 차갑게 얼어붙은 내 심장을 이렇듯 뛰게 만들다니. 아주 신선한 느낌이야.”
보고 있으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공야황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몸을 돌렸다.
“천하를 취하고 난 후 너를 갖겠다, 신녀.”
5
쿠르르르…….
밤하늘을 울리며 절벽 위에서 굵은 물줄기가 떨어져 내린다.
좌소천은 용추폭을 보고 융중산의 초려에서 본 족자의 구절 중 일부를 떠올렸다.
천년 피어난 안개를 뚫고 들어가니,
그곳이 바로 신선들이 산다는 무릉도원이 아니던가.
세상에 다시없을 기화이초(奇花異草) 만발하고,
하늘과 맞닿은 절벽은 병풍이 되어 끝도 없구나.
내 갈 곳 어디인가. 우자(愚者)는 세월도 잊고 걸었도다.
그렇게 용추(龍湫)를 넘어 무저(無低)의 바다를 건너니,
그곳에 세상 저곳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더라.
우자여, 그대는 아는가.
그곳이 바로 지옥의 입구라는 것을…….
그는 그 구절이 천해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역시나 자신의 짐작대로였다.
그렇다면 다른 구절 역시 천해에 관련된 것일 터.
소영령을 구할 확률이 그만큼 커졌다는 말이다.
‘제갈진우, 오늘 영령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대와의 모든 원한을 한 점 티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잊을 것이다.’
희망을 품은 좌소천은 용추폭(龍湫瀑)의 폭포 소리를 뛰어넘어서 절곡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묵빛 호수가 눈앞에 드러났다.
호숫가로 간 좌소천은 호수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직경이 칠십 장은 되어 보이는 호수 건너편은 높이를 알 수 없는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그런데 천선곡 안이라는 것 때문인가, 아니면 누가 들어와도 상관없다는 자신감 때문인가. 어디에서고 경비무사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불길하게 느껴지는 사이한 기운이 전신에 스멀거리며 스며들었다.
<호수를 건너갈 거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천해의 요처라 할 수 있소. 각자 조심하시길 바라겠소.>
귀청을 울리는 전음에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던 금룡과 적룡, 청룡의 얼굴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그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건너편에서 전해지는 사이한 기운의 불길함을.
하지만 이제와 물러설 수는 없는 일.
그들은 좌소천이 호수를 향해 신형을 날리자 뒤를 따라서 호수로 뛰어들었다. 마치 지옥을 향하는 심정으로.
좌소천과 삼룡은 섬뜩하리만치 물결 한 점 없는 수면을,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듯이 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물 위에서 걸음을 멈춘 그들은 앞을 바라보며 숨을 멈췄다.
절벽과 호수가 맞닿은 부분. 그곳에서 커다란 동굴이 아가리를 벌리고 세상을 빨아들일 듯이 숨을 쉰다.
쉬이이이……. 후우우우웅…….
사자(死者)의 혼령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이러할까.
숨구멍으로 스미는 괴이한 기운에 오싹하니 소름이 돋는다.
지옥의 입구가 정말로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었다.
‘제갈진우가 그렇게 느낀 것도 당연하군.’
그러나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좌소천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과연 영령이 이 안에 있을까?
아직도 살아 있을까?
그럴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영령! 내가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동굴 안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안쪽 깊은 곳에서 비치는 미약한 빛이 동굴 벽과 수면에 반사되어 그럭저럭 사물을 분간할 정도는 되었다.
완벽한 어둠이 존재할지 모른다 생각했는데, 그 정도면 좌소천 같은 절대고수에겐 대낮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동굴 안으로 이어진 호수의 물은 삼십여 장을 더 들어간 후에야 끝이 났다.
좌소천과 삼룡은 물 위를 벗어나 바위에 올라서자마자 동굴 벽의 음영 속에 몸을 감추고 안쪽을 살폈다.
인기척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괴이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좌소천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벌레의 움직임까지 신경을 썼다.
‘제갈진우가 남긴 글대로라면, 이곳의 입구 역시 기문진과 기관으로 막았다 했다.’
제갈진우와 천외천가 사이에 얽힌 사연을 알지는 못한다. 과거에 입었다는 은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천외천가를 위해 몇 가지 일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런데 왜 족자에다가 천해의 비밀을 적어놓은 것일까?
좌소천이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나중에서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듯했다. 어쩌면 천해를 본 후 천외천가가 결코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현재의 좌소천에게 제갈진우가 남긴 글은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좌소천은 그 빛줄기를 따라 움직였다.
동굴 벽에 사오 장 간격으로 박힌 야광옥을 따라서 사십여 장을 들어가자 수라상이 새겨진 거대한 석문이 보였다.
좌소천과 삼룡은 그 석문의 오 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에서 대기하시오. 내가 석문을 열겠소.”
좌소천이 먼저 전음을 보내고 곧장 석문으로 다가갔다.
[수라의 입에 손을 넣고 세 번째 이를 잡아당기니 지옥세상이 열리도다.]
섬뜩한 그 문구 역시 초려의 족자에 쓰여 있던 것이었다.
좌소천은 그 문구대로 움푹 들어간 수라의 입에 손을 넣었다.
순간 뭔가가 만져졌다. 수라의 이였다. 모두 여섯 개.
그는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를 붙잡고 천천히 잡아당겼다.
쿠르르…….
미미한 진동이 일며 석문이 천천히 움직였다.
좌소천과 삼룡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옆으로 밀려나는 석문을 바라보았다.
석문은 다섯 자가량 옆으로 밀려나다 멈추었다.
좌소천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삼룡도 다급히 그 뒤를 따라 석문을 통과했다.
석문 안쪽은 자연 동굴을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통로였다.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 좌소천과 삼룡은 벽에 바짝 붙어 빠르게 이동했다.
참으로 기이하다. 삼십여 장을 가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곳이 정말 천해가 맞는지 의문이 들 지경.
하지만 그도 잠시, 갑자기 걸음을 멈춘 좌소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바짝 뒤따르던 삼룡 역시 좌소천의 뒤에 멈춰 서서 입을 쩍 벌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마, 맙소사!”
눈앞에 직경이 백 장 정도 되는 거대한 광장이 펼쳐져 있다.
사면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까마득히 높은 천장에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그 구멍으로 보이는 별빛이 유난히 찬란하다.
실로 엄청난 광경!
밑동이 직경 백 장이나 되는 거대한 호리병과 같은 지형이었다.
태백산 안에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으랴!
‘천 년의 세월 동안 아무도 몰랐던 것이 당연하군.’
그러나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
좌소천은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면을 살펴보았다.
깎아지른 절벽 밑에 벌집처럼 뚫린 수십 개의 동굴. 그곳에서 사이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영령이 만일 이 안에 있다면, 저 많은 동굴 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저 많은 동굴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기 전에 적에게 발각되어서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 벌어질 테니까.
이를 지그시 악문 좌소천은 동굴 중에서도 유난히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을 찾아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좌소천이 고개를 돌려 삼룡을 바라보았다.
“이곳부터는 나 혼자 들어갈 것이오. 그대들은 여기에서 기다리다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움직이시오.”
“궁주, 괜찮겠습니까?”
“저 안에선 혼자 움직이는 것이 차라리 낫소.”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네 사람이 동시에 안으로 들어간다면, 적에게 들킬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금룡도 그 사실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만류하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하나 소란이 일면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좌소천은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는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유난히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 중 하나를 택해서.
물론 그곳에 소영령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고위 인물이라면 소영령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 것이 분명했다.
좌소천이 택한 동굴은 왼쪽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일곱 개의 동굴 중 하나였다.
자신이 택한 동굴로 유령처럼 스며들어 간 좌소천은 무진도를 소리없이 뽑아 들었다.
간간이 야광옥이 박힌 동굴은 생각보다 깊었다.
인위적으로 파낸 동굴로 보였는데, 단순히 기거하기 위해 만든 동굴인 듯했다.
그렇게 십여 장가량 안으로 들어갔을 즈음, 동굴이 꺾어지는 곳에서 첫 번째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동굴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좌소천은 동굴이 꺾어지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인기척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이 불쑥 나오더니 좌소천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삼십대로 보이는 장한이었다.
“누구……?”
장한의 눈이 커진 순간!
서걱!
좌소천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무진도를 휘둘렀다.
삼십대의 장한은 눈만 크게 뜬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좌소천은 무너져 내리는 삼십대 장한을 재빨리 끌어당겨서 한쪽에 처박아놓고, 다시 걸음을 옮겨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장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동굴 끝에 있는 석실 안에서였다.
그곳까지 남은 거리는 십여 장 정도. 그는 그 거리를 가는 동안 좌우 석실에서 나오는 자 셋을 더 베었다.
그렇게 동굴 끝에 있는 석실 앞에 멈춰 섰을 때였다.
“누가 감이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온 것이냐?”
석실 안에서 나직한 책망과 함께 끈적끈적한 기운이 밀려왔다.
좌소천은 대답 대신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던 중년인이 말없이 들어선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군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좌소천이 한 발 앞으로 내딛는가 싶더니 무진도를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번개가 중년인을 향해 쭉 뻗었다.
전력을 다한 절공참의 일도!
“헛!”
중년인은 급살 맞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몸을 튕겼다.
시뻘건 피가 그의 어깨에서 뿜어지며 팔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동시에 좌소천의 좌수가 중년인을 덮쳤다.
입을 떡 벌린 중년인은 남은 우수를 뻗어 좌소천의 좌수에 맞섰다.
퍽!
“커억!”
벽으로 처박힌 중년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좌소천은 그제야 손을 멈추고는 무심한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묻겠다. 오늘 신녀가 천해에 들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