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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78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178화

 

178화

 

 

 

 

 

 

마음 같아서는 만년설이 있는 정상까지 가고 싶었다. 만년설의 한기라면 흔들린 한천빙백소수공을 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입구에 진을 펼쳐 놓은 자들이 뒤쪽이라 해서 그냥 놓아두었을 리 없었다.

 

‘공기가 차가운 동굴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조급해진 그녀가 안개를 헤치고 삼백여 장 정도 들어갔을 즈음, 멀리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폭포?’

 

여름인데도 대기가 서늘하다. 이러한 곳의 물이라면 상당히 차가울 게 분명하다. 

 

‘어쩌면 태백산 정상의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물일 가능성도 있어.’

 

차가운 기운이 서린 물이라면 내력을 회복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터. 소영령은 물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백여 장이나 갔을까.

 

콰르르르…….

 

한 줄기 굵은 물줄기가 바위를 가르고 칠 장 높이에서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 앞에 펼쳐진 드넓은 백색 암반.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한 채의 정자. 

 

용추폭, 천평암, 천평정이었다.

 

그야말로 보는 이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만큼 운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소영령은 그런 운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폭포가 보이자 곧바로 천평정을 지나 용추폭으로 다가갔다.

 

맑은 물소리만큼이나 시원한 한기가 느껴진다. 폭포 위의 절벽으로 올라가 물줄기를 따라가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있을 것도 같다.

 

‘한기가 강한 곳이면 더 좋겠는데.’

 

용추폭 아래에 도착한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폭포 위에서 나직하면서도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오, 계집의 몸으로 대단한 기운을 지녔구나.”

 

번쩍 고개를 쳐든 소영령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이 올라가고자 하는 절벽 위에 서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없었는데 언제 나타났을까?

 

붉은 머리, 선이 굵어 강인하게 느껴지는 인상. 전신에서 정신을 억누르는 패도무쌍의 기운이 흘러나온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은 중압감이 느껴지는 자.

 

천해의 해주 공야황이었다.

 

 

 

‘강하다!’

 

혁련호운은 바위 뒤에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목나무에서 내려온 후 무사 하나를 때려눕히고 옷을 바꿔 입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천외천가 무사들의 뒤를 따라와서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천제각 앞에서 벌어진 싸움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결국 그는 ‘령’이 가공할 소수공을 펼치며 괴인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몸을 빼낸 후에야 겨우 그녀의 뒤를 따라붙을 수 있었다.

 

그때 그가 보였다.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중년인이.

 

그를 본 순간, 혁련호운은 솜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맥동쳤다. 

 

짜릿한 긴장감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치달렸다.

 

머릿속에 번개가 떨어진 듯 경고가 울렸다.

 

―저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끝내 그는 이십여 장의 거리를 남긴 채 걸음을 멈추고 바위 뒤에 몸을 숨겨야만 했다.

 

‘누굴까? 누군데 저리도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걸까?’

 

그가 부릅뜬 눈으로 쳐다보는 사이 붉은 머리의 중년인이 절벽 위에서 몸을 날렸다.

 

 

 

소영령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깃털처럼 내려서는 공야황과의 거리를 십여 장으로 벌렸다.

 

그때 뒤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집! 네년의 운도 여기가 끝이구나!”

 

천제각에서 마주친 괴인의 목소리였다. 밀려드는 기운으로 봐서 다섯이 모두 온 듯했다.

 

이제 곧 천외천가의 무사들도 몰려올 터. 소영령은 입술을 깨물고 전면만 바라보았다.

 

뒤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앞으로 뚫고 가는 수밖에. 

 

상대가 비록 자신보다 강한 자라 해도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심을 굳힌 소영령은 곧바로 몸을 날려 공야황을 공격했다.

 

“비켜라!”

 

용추폭을 그대로 얼려 버릴 것 같은 극음의 백옥빛 소수!

 

그녀의 공격에 바윗덩이 같던 공야황의 입술가로 가느다란 웃음이 떠올랐다.

 

“후후후, 굉장해. 정말 멋진 무공이야!”

 

대기를 얼리며 다가오는 소수를 보고도 그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양손을 연달아 내질렀다.

 

순간 그의 양손에서 구름처럼 흘러나온 핏빛의 붉은 기운이 소수를 감싸고 휘돌았다.

 

우르르릉!

 

천평암이 뒤흔드는 우렛소리!

 

“으음…….”

 

주르륵, 뒤로 밀린 소영령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공야황도 두 걸음 물러서더니, 소영령을 바라보며 뜻밖이라는 듯 탄성을 터뜨렸다.

 

“호오! 생각보다 더 지독한 음한공이군. 본좌를 두 걸음이나 물러서게 하다니 말이야!”

 

바로 그때, 한쪽에 지켜보던 천앙동의 괴인들이 소영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계집은 우리 것이다!”

 

“너는 꺼져!”

 

공야황의 두 눈이 좁혀지고 이마에 주름이 졌다.

 

그는 분노한 눈으로 천앙동의 괴인들을 바라보고는, 손가락을 갈퀴처럼 구부리고 허공을 찍었다.

 

“어디서 감히!”

 

순간 시뻘건 빛줄기가 일직선으로 뻗쳤다.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 

 

빛줄기가 몸에 닿기도 전에 만 근의 압력이 전신을 짓누른다.

 

맨 앞에서 달려들던 창백한 얼굴의 백면괴는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허억! 이런!”

 

하지만 공야황의 혈성마조(血星魔爪)는 그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쩌정! 쾅!

 

“크억!”

 

백면괴는 창백한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채 뒤로 튕겨져 나갔다.

 

네 명의 괴인 역시 혈성마조의 여력에 급급히 몸을 세우고 뒤로 물러섰다.

 

공야황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감히 본좌의 흥취를 방해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구나!”

 

심혼을 뒤흔드는 은은한 노성.

 

걸음걸음에 거대한 기운이 밀려든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천앙동 괴인들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소영령에 이어 자존심이 또 한 번 뭉개졌다. 그것도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과 함께.

 

그때 멀리서 순우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고 저지른 죄, 용서해 주시지요, 해주!”

 

공야황이 걸음을 멈추고 계곡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을 조이며 바라보고 있던 혁련호운이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령! 지금이야! 오른쪽 절벽을 넘어가!>

 

소영령의 면사가 흔들렸다.

 

뜻밖의 장소에서 들려온 뜻밖의 목소리.

 

‘혁련호운!’

 

하지만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붉은 머리가 천외천가의 무리에게 신경 쓰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날지 몰랐다.

 

그녀는 남은 내력을 모조리 끌어올리고는 우측 절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간 고개를 돌린 공야황의 몸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딜 가려고?”

 

단숨에 소영령의 뒤를 따라잡은 그가 우수를 뻗고 빠르게 휘저었다.

 

일순간 대기가 뒤틀리며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때였다.

 

모습을 숨기며 접근한 혁련호운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두 번의 기회는 아예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 단 한 번에 상대를 모든 것을 결정지어야 한다.

 

혁련호운은 전력을 다해서 천강무령수를 펼쳤다.

 

콰과광!

 

양강의 두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하자 굉음이 고막을 울렸다.

 

동시에 혁련호운의 신형이 부딪친 반탄력을 이용해서 하늘 높이 솟구쳤다.

 

‘크윽! 엄청나군!’

 

가슴이 턱 막힌 혁련호운은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았다.

 

“쥐새끼가 제법이로구나!”

 

어쩔 수 없이 땅에 내려선 공야황이 노성을 내질렀다.

 

그사이 소영령에 이어 혁련호운의 신형도 절벽을 넘어갔다.

 

그런데 기이했다.

 

공야황도, 막 천평암에 도착한 순우연도 그리 급하지 않은 표정이다.

 

“천하를 향한 출정을 앞두고 번거로운 일이 생겨 죄송합니다, 해주.”

 

“아주 재미있는 계집이야. 무공도 굉장하고. 몸만 성했으면 사사도 장담하지 못하겠는 걸?”

 

“그 계집이 바로 신녀입니다.”

 

“신녀?”

 

공야황도 신녀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유사가 혼자서 이기지 못하자 흑암과 함께 손을 썼다고 했던가?

 

그리고 한 번 보면 넋을 잃을 정도의 신비한 미모를 지녔다고도 했다.

 

“예, 해주. 오늘 그 계집에게 수십 명이 당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삼 일 정도 출정을 늦춰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우연의 말에도 공야황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듯.

 

“흠, 신녀란 말이지?”

 

절벽 너머를 바라보는 공야황의 얼굴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생긴 것 같은 표정.

 

순우연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두 숙부를 비롯해서 사십여 명이 신녀에게 죽임을 당했다. 게다가 신녀로 인해 천앙동의 괴인들마저 해주에게 들키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뒤쫓아가서 처참하게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절벽을 넘어간 이상 더는 자신이 관여할 수 없게 되었다.

 

절벽 너머는 천해의 대지. 자신조차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금지인 것이다.

 

‘아쉽게 되었군. 신녀를 해주의 노리개로 넘겨주고 말다니…….’

 

 

 

한편, 절벽을 넘어간 혁련호운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파래서 오싹한 기분이 드는 호수가 절곡 끝에 펼쳐져 있었다.

 

호수를 둘러싼 깎아지른 절벽, 그 중간에 걸쳐진 회색빛 안개. 

 

보이는 모든 것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제기랄! 누가 신비지처 아니라고 할까 봐!’

 

그는 속으로 투덜대며 앞으로 달려갔다.

 

붉은 머리가 쫓아오기 전에 내상을 입은 ‘령’을 찾아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호수 쪽으로 다가가는데 나직한 전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여기예요. 왼쪽 위로 올라오면 바위틈이 있어요.>

 

혁련호운은 방향을 바꿔서 좌측 절벽 위로 몸을 날렸다.

 

십 장쯤 올라가자 아래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바위 틈바구니가 드러났다.

 

그녀는 그 안쪽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혁련호운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괜찮소?”

 

소영령은 고개를 젓고 전음으로 말했다.

 

<아직은 견딜 만해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혁련호운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일단 운기부터 하시오. 내가 호법을 서줄 테니까.>

 

<내 걱정 말고 당신도 내상을 돌봐요. 호법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니까.>

 

혁련호운의 얼굴이 속을 들킨 아이처럼 붉어졌다.

 

단 한 번의 격돌로 단전이 흔들렸다. 당장 내상을 치료하지 않으면 나중에 상당한 고생을 할 듯했다. 

 

물론 그것도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갔을 때의 이야기지만.

 

<알겠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소영령이 운기를 마치고 눈을 떴다.

 

내력은 그럭저럭 팔성 정도 회복된 상태. 완전하진 않지만 당장은 그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붉은 머리의 그자가 언제 자신들을 찾을지 모르는 것이다.

 

마침 혁련호운도 운기를 마친 듯 보였다.

 

소영령은 전음을 보내고 몸을 일으켰다.

 

<그자가 찾아내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요.>

 

<그럽시다.>

 

두 사람은 바위틈을 나가서 절벽 아래로 고개를 내밀었다.

 

동시에 공야황의 웃음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하하하하! 이제 나오는가?”

 

소영령과 혁련호운은 이를 악물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기랄!”

 

혁련호운의 입에서 쌍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붉은 머리의 중년인이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도 기다린 듯했다.

 

가히 하늘을 비웃을 정도의 오만한 행동.

 

문제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자라는 것이다.

 

혁련호운은 이를 악물고 소영령을 바라보았다.

 

<절벽을 올라가면 어떻겠소?>

 

그의 전음에 소영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절벽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이 천 년간 신비에 싸여 있지 않았을 거예요.>

 

옳은 말이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혁련호운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내가 저자를 막을 테니 소저 먼저 나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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