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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76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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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176화

 

176화

 

 

 

 

 

 

1장 사랑을 위하여

 

 

 

 

 

1

 

 

 

 

 

“주군, 접니다.”

 

기천승의 목소리다.

 

좌소천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태백산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왔다.

 

임무를 마쳤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내려오십시오, 기 단주.”

 

좌소천의 말에 먼지를 뒤집어쓴 기천승이 천장을 교묘히 가르고 소리없이 내려왔다.

 

바닥에 내려선 기천승을 본 순간 좌소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창백한 얼굴.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몸놀림.

 

어지간하면 표를 내지 않을 기천승이다. 감출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부상이 심하다는 뜻.

 

또한 그러한 몸으로 급히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다급한 일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당장은 기천승의 몸이 먼저였다.

 

“일단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 몸부터 봅시다. 그리 앉아보십시오.”

 

“아닙니다. 그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대체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보다 급한 일이 뭐란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인데……?”

 

“혁련미려 낭자가 천선곡을 탈출했습니다.”

 

좌소천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안으로 가려던 중이지요. 그러니 앉아서 손을 내밀어보십시오.”

 

“제 부상은 그녀를 구하던 중에 생긴 것입니다. 도중에 헤어졌는데 다행히 무사하게 벗어난 것 같군요.”

 

“음? 기 단주가?”

 

의외의 말이었다. 

 

그러나 태백산에서 정보를 모으던 기천승이 아니던가? 그가 혁련미려를 만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좌소천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특히 순우무궁의 이야기가 나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좌소천도 자세를 바로하고 귀를 기울였다.

 

“…결국 그들에게 부상을 입고 상처를 치료하던 중에 혁련호운을 만났습니다.”

 

‘그렇지. 호운도 태백산으로 간다고 했지.’

 

그때다. 왠지 모를 기이한 느낌에 좌소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좌소천의 표정이 굳어진 게 단순히 혁련호운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기천승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는 여자를 구하러 천외천가에 간다고 했습니다. 한데 그의 말로는, 그 여자 역시 자신에 비해 하수가 아니라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하는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순간 좌소천의 터져 나오려는 목소리를 억눌렀다.

 

혁련호운의 무위는 자신이 잘 안다.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서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강한 여인이 몇이나 될 것인가?

 

자신이 아는 한 오직 한 사람뿐.

 

“신… 녀?”

 

좌소천의 잇새로 흘러나오는 한마디가 가늘게 떨린다.

 

기천승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 정도 무위를 지닌 데다 천외천가와 원한을 가질 여자가 천하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좌소천은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나직이 물었다.

 

“그녀를… 봤습니까?”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천외천가에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서두른다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말 그녀가 신녀, 소영령일까?

 

그렇다면 혁련호운이 좋아하는 여인이 소영령이라는 말이 아닌가?

 

사실이라면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운 일이다.

 

두 번, 세 번 우연이 겹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신녀만큼 강한 여인이 또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당장 전하련만 해도 그렇다. 그녀가 신공절학을 얻었다면, 신녀만큼은 아니어도 혁련호운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또 모르는 일. 좌소천은 당장에라도 태백산으로 달려가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수천 명이다. 그들을 놔둔 채 확실치도 않은 일을 좇아 무작정 떠날 수는 없는 일.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은…….’

 

좌소천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화제를 돌렸다.

 

“내가 말한 것은 어느 정도나 알아보았습니까?”

 

“그날 전만 해도 태백산의 지리만 겨우 알아내었는데, 다행히 혁련미려를 만나서 천선곡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과 천선곡의 일부 상황까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기천승이 품속에서 두툼한 책자를 꺼내 내밀었다. 귀퉁이가 피에 젖은 책자를.

 

좌소천은 몇 장 넘겨보기도 전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검붉은 피가 안쪽까지 깊숙이 배어 있었다. 

 

이 책자를 작성하고 자신에게 가져오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쓴 혈투를 벌였을 기천승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기 단주.”

 

“맡은 바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주군.”

 

“내 다시 한번 약속하겠습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내 모든 것을 걸고 귀영문의 재건에 대해 최대한 협조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군.”

 

“이제 쉬도록 하십시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공손양이 들어왔다.

 

“호위를 뽑았습니다, 주군.”

 

그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좌소천의 고개가 들렸다.

 

평소보다 깊게 가라앉은 눈이었다. 그러나 공손양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탁자 위에 시선을 두었다.

 

‘응? 저 책은 뭐지?’

 

공손양의 눈이 탁자 위를 향하자, 좌소천은 책자를 공손양 앞으로 밀었다.

 

“기 단주가 가져온 것이오. 군사가 보관하시오.”

 

기 단주라면 새로 생긴 궁주 직속 무영단의 단주 기천승을 말함이다. 

 

공손양은 그의 임무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왔습니까?”

 

“그렇소. 많은 것을 알아왔으니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오.”

 

좌소천은 책자만 건네주고 더 이상 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기천승이 혁련미려를 구하고, 그녀로부터 천선곡에 대한 것을 들었다는 걸 말하면, 자신이 장안으로 가야 할 이유가 그만큼 없어진다.

 

게다가 신녀에 대한 것은 더더욱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었다. 만에 하나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공손양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좌소천은 직접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그냥 지나가듯이 물어보았다.

 

“군사, 만약의 경우, 목숨을 던져서라도 구하고 싶었던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면 군사는 어떻게 하겠소?”

 

공손양은 뜬금없는 좌소천의 질문을 받고 책에서 눈을 뗐다.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요.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군사는 그를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갈 수 있겠소?”

 

공손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라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말을 흐린 그는 몇 번 미간을 찡그렸다 펴는 행동을 반복하더니, 쓰디쓴 웃음을 베어 물었다.

 

“그런 문제를 계산적으로 따지려는 제가 우습군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만일 제 부모형제가 그런 위기에 처해 있다면, 만사 제쳐 놓고 달려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이라면 어떻겠소?”

 

“그게… 에…….”

 

공손양이 말을 더듬으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좌소천은 묘한 눈으로 공손양을 바라보았다.

 

슬며시 눈을 돌린 공손양이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직 그런 여인이 없어서…….”

 

나이 스물여덟,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이고, 이화산장의 셋째 공자다.

 

어디 그뿐인가?

 

얼굴도 잘생겼다. 상사병에 걸린 만월평의 아가씨들이 수십 명은 될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런 사람이 사랑 한 번 못해봤단다.

 

좌소천은 그런 공손양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아직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말입니다.”

 

공손양의 너스레에 좌소천이 다시 물었다.

 

“만일 목숨을 걸만큼 사랑하는 여인이 생긴다면, 그 여인이 위험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공손양이 어깨를 한번 추켜올리더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구하러 가야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러 가는데 망설일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고개를 모로 꼬고 좌소천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별것 아니오.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 군사라면 어떻게 할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오.”

 

정말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다.

 

조금 이상했지만 공손양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이 아니라도 당장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 판이었다.

 

그때 좌소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발할 준비는 되었소?”

 

“예, 주군.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공손양은 좌소천의 방을 나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단순한 궁금증 때문에 물었을까?

 

갑작스런 질문에 당시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혁련미려는 장안에 있으니 그녀 때문에 물어본 것은 아닐 것이고……. 끄응, 대체 왜 물어보신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물어본 것은 아닌 듯했다.

 

자신이 아는 한 그렇게 싱거운 좌소천이 아니었다.

 

‘이상해. 분명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그때 방문 옆에 서 있던 종리명한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 왜 그런 표정이시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시비 거는 표정. 왜 그리 똥마려운 표정이냐? 그런 말투였다.

 

하지만 공손양은 그것이 평소 종리명한의 말투라는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눈을 빛내며 손짓을 해서 종리명한을 불렀다.

 

“명한, 너 나 좀 보자.”

 

움찔한 종리명한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한판 붙어보자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이다. 그러나 공손양은 그 표정의 의미를 당사자만큼이나 잘 알았다.

 

“불안해할 것 없다. 뭐 좀 부탁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그제야 표정이 풀어진 종리명한이 공손양을 따라왔다.

 

“뭔데 그럽니까?”

 

공손양은 종리명한을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사람의 눈이 뜸한 곳에 가서야 나직이 입을 열었다.

 

“주군과 함께 장안으로 가거든,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즉시 나에게 알려야 한다.”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만일 주군께서 아무에게 알리지 말라고 해도, 나에게만은 말해야 한다.”

 

“예? 형님, 그건…….”

 

당황하며 대답을 머뭇거리는 종리명한이다.

 

공손양이 그런 종리명한을 윽박지르며 벽으로 밀어붙였다.

 

“주군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냐? 응? 책임질 수 있어?”

 

“그건 아니지만…….”

 

“그럼 하라는 대로 해. 다 주군의 안전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내가 쓸데없는 말이나 하는 사람 같아 보이면 안 해도 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차마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일. 종리명한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알겠습니다, 형님.”

 

그제야 공손양은 씩 웃으며 돌아섰다.

 

“가자, 주군께서 바로 출발하신다고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2

 

 

 

 

 

천외천가의 역대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천제각(天祭閣)은 그 규모가 여느 대전각 못지않게 컸다.

 

이층으로 된 건물은 아래층의 평수만도 이백 평에 달했다.

 

일층과 이층에 빽빽이 들어선 위패들은 그 수만도 수천. 가히 천외천가의 역사가 그곳에 그대로 잠들어 있는 듯했다.

 

소영령이 그곳에 은신한 것은, 새벽 어스름이 밀려올 무렵 열다섯 번째 살행을 성공한 후였다.

 

좀 더 많은 자들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싶었지만, 새벽 공기를 가르며 터져 나온 시비의 비명에 일단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곳이 천외천가의 신성 구역인 천제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천외천가의 무사들조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곳이 그저 다른 곳보다 조용하고, 분위기가 엄숙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을 것 같아 택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천제각의 이층 천장은 온갖 목상(木像)들로 꾸며져 있어서 몸을 숨기기에도 적합했다.

 

 

 

소영령이 몸을 숨기고 진기를 다스린 지 일각이 지나자 천외천가 무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무사들이 수색에 합류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곳은 모두 철저히 조사하면서도 그녀가 숨은 전각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전각의 호위무사로 보이는 자들만이 안을 잠깐 살펴보고 나갔을 뿐.

 

다행이라 생각한 그녀는 천장의 목상 뒤에 숨어서 운공조식을 취하며 조용해지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진가량 지났을 때였다.

 

덜컹!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누군가가 제각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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