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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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73화
173화
그때 잘려진 팔을 지혈한 마사가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놈! 오늘은 그냥 물러가마. 하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님을 명심해라! 우리도 가세!”
척발조와 유사가 마사를 호위한 채 뒤로 몸을 뺐다.
그들도 괴물 같은 좌소천과 더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구만리 밖으로 달아난 상태였다.
좌소천은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대로 놔두었다.
그라 해서 어찌 그냥 보내고 싶을까.
하지만 오늘은 저들 중 하나의 팔을 잘랐다는 것과 저들의 무위 정도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표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상대를 억지로 붙잡기에는 자신의 내상이 가볍지 않은 것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제 겨우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올랐을 뿐이야.’
아직 적의 수장은 나오지도 않았다.
자신의 내상이 엄중해지면 나중에 부담될 수밖에 없는 일. 그것은 좌소천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절대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묘했다.
좌소천과 오행대가 천외천가와 천해의 후퇴를 방치하자, 조금 전만 해도 덕분에 살았다며 환호하던 무림맹의 군웅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동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자들을 순순히 보내줬다는 것에 불만이 가득한 눈치다.
“충분히 놈들을 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보내다니…….”
“겁이 났나?”
처음에는 사신당의 무사들이 웅성거리는가 싶더니 뒤늦게 달려온 천무단의 장로들마저 오행대를 향해 소리쳤다.
“왜 그들을 그냥 놔두는 거요?!”
“적들을 그냥 보내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오?!”
그러잖아도 둘이 싸우고도 하나를 이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은근히 짜증이 나던 동천옹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무림맹을 돕기 위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거늘, 적을 그냥 놔준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흥! 그러는 네놈들은 왜 이제야 내려온 것이냐?”
“뭐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저 위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소?!”
“우리가 오지 않았으면 더 많이 죽었을 거다.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우리 탓을 해?”
“흥! 그래도 당신들이 조금만 더 막았으면 저자들을 저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팽철이 코웃음 치며 눈을 부라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동천옹이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방방 떴다.
“근데 이놈이 어디다 눈을 부라려! 뭐? 다아앙시이인? 팽사동이 그렇게 가르치더냐!”
무영자도 흑살기를 출렁이며 당장에라도 팽철을 잡아 죽일 듯이 몰아쳤다.
“팽가에서 육기 중 한 사람이 나왔다고 팽사동이 좋아 죽더니, 그게 너였냐? 어디 다시 한번 저 칠삭둥이에게 ‘당신’이라고 해 봐라!”
두 사람의 협공(?)에 팽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팽사동. 부친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른다.
다른 때라면 분노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도를 휘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눈앞의 괴이한 두 노인. 어렴풋이 뇌리 한구석에서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호, 혹시… 동천옹, 무영자… 어르신?”
“흥! 이제야 생각났나 보군. 옛날이나 지금이나 굼뜬 것은 여전하군.”
“도대체가 알 수 없어. 저런 머리로 어떻게 그런 무지막지한 도를 익힌 거지?”
팽철은 입을 꾹 다물고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무영자야 그냥 선배일 뿐이지만, 헌당은 부친이 형님이라 불렀던 사람. 그는 감히 반박할 수조차 없었다.
당연하게도, 천무단의 다른 사람들 역시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동천옹 헌당과 흑살신 무영자.
장로 정도 나이 되는 사람치고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좌소천은 동천옹과 무영자 덕분에 상황이 의외로 빨리 가라앉자 공손양을 불러 명을 내렸다.
“일단 부상자부터 치료하고 전열을 재정비하도록 하시오.”
폭풍처럼 몰아쳐 후미를 휩쓸었다지만, 오행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죽은 자가 이삼십 명에, 부상자는 훨씬 더 많았다.
아마 옷자락에 피가 묻지 않은 사람은 흑살기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무영자뿐일 듯했다.
“예, 주군.”
공손양이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도 천외천가의 장로 하나를 죽이면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사이 우경 진인이 제갈진문, 허운자와 함께 좌소천을 향해 다가왔다.
“원시천존, 좌 궁주 덕에 무사했소이다. 사람들의 말에 너무 마음 쓰지 말구려. 워낙 많은 사람이 죽다 보니 지금 정신들이 없을 것이외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벌써부터 서로 간에 골이 생기면 좋을 일 없지요. 맹도들을 이해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말. 그 말에 우경 진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어, 저들의 주력이 나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외다.”
지독하고도 처절한 싸움이었다.
무림맹의 맹도만 해도 이천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거기에 천외천가와 천해의 사망자가 일천이 넘는다. 단 하루 만에 근 삼천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산의 백색 암반이 붉게 보인다.
비릿한 혈향에 속이 울렁거린다.
그런데 이게 시작이라니…….
“궁주는 저들이 어떻게 나올 거라 보는가?”
우경 진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좌소천은 천외천가의 무리들이 사라진 연화봉 아래쪽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며칠 후면 태백산에서 저들의 수장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이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전에 결정을 내려야겠지요. 전력을 재정비해서 저들을 칠 것인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봐야 할지.”
“으음…….”
우경 진인의 안색이 짙어지는 저녁 어스름만큼이나 어두워졌다.
9장 나를 독하다 욕하지 마라
1
화산파에선 좌소천과 오행대를 화음과 화산의 중간에 있는 영풍산장에 머물도록 했다.
다행히 영풍산장은 천외천가가 물러가면서 혈겁의 소용돌이가 비켜간 상황이었다.
장주는 화산의 속가제자인 화운정이란 자였다.
그는 제천신궁이 아니었으면 영풍산장이 온전치 못했을 거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싸움에서 무림맹이 천외천가에 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그의 가족도, 무사도 모두 죽었을지 모르는 것이다.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히 쉬도록 하십시오, 궁주.”
그는 무림맹의 다른 무사들과 달리 좌소천 일행에 대한 대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좌소천과 제천신궁 간부들도 그의 마음이 진심임을 알고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그날 밤.
좌소천은 동이 틀 때까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대주천을 다섯 번이나 행했다.
내상이 완벽하게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구성 정도는 회복이 되었다.
만일 그들과 계속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좌소천의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하다못해 십여 초만 더 싸웠어도 커다란 내상을 입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적들도 그 이상의 손해를 입었을 테지만, 지금은 적 열 명의 몸보다 자신의 몸이 더 중요한 때였다.
‘해주라는 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그게 문제군.’
사사의 능력은 자신의 예상대로 오제나 신녀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그들을 거느리고 있는 해주라는 자의 무위였다.
‘그자의 무위는 적어도 사사보다 위라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자신 역시 그를 일대일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순우연도 사사보다 강하다고 봐야 한다.
얼마 전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천외천가의 대장로인 순우경을 보고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싸워서는 승산이 없어. 뭔가 방법을 찾아내야 해.’
좌소천의 눈빛이 한없이 깊어졌다.
2
혁련미려와 헤어진 다음날. 소영령은 석양이 질 무렵에서야 안개가 자욱한 천선곡의 입구를 찾아냈다.
거산준봉에 둘러싸인 천선곡은 진정 아름답고 신비스럽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러한 천선곡도 자신이 죽여야 할 자들이 머무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진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
혁련미려는 그렇게 말하며 우려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밖으로 나간 상황. 진입로의 진식을 바꾸면 들락거리는 사람이 혼란을 겪을지 몰랐다.
더구나 자신들의 힘에 자부심을 느끼는 천외천가가 아닌가.
외부의 침입이 무서워서 하루아침에 진입로의 진식을 바꾸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파파, 조금만 기다려요. 곧 파파의 한을 풀어드릴게요.’
그녀는 안개로 뒤덮인 천선곡을 바라보며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천선곡의 입구가 보이는 나무 위에서 머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쏟아지는 달빛에 안개가 신비한 빛을 품은 채 흘러간다.
자시가 넘은 것 같다.
소영령은 은신해 있던 곳에서 나와 부유하는 구름처럼 유유히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입구의 경비가 전보다 더 강화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그녀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었다.
‘모두 열셋.’
이 장 간격으로 계곡 입구의 좌우를 지키고 있는 자들은 뛰어난 은신법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스스스스…….
검은 그림자가 안개 속을 유영할 때마다 새하얀 소수가 경비무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경비무사들은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전신이 얼어버린 채 고혼이 되었다.
반의반 각이 되기도 전, 천선곡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무사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풀벌레 소리조차 잦아든 계곡 입구.
소영령은 열셋의 경비를 모두 제거한 뒤에야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섰다.
눈앞에는 경비무사보다 더 거추장스러운 진세가 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있을까?
소영령은 가만히 안개를 바라보며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온 그녀지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오빠…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에게는 미안하기만 했다.
‘호운, 당신에겐 미안해요.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자신의 앞에서 장난꾸러기같이 굴던 혁련호운에게 좌소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파고들 공간이 없는 줄 모르고 마음을 쏟던 그가 아니던가.
어린아이처럼 깨끗한 그의 마음에 상처가 될지 몰랐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는 길, 맑은 그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소영령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이제 두 사람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떨치고 한을 풀기 위해 살기를 키워야 할 때였다.
‘파파, 이제 시작이에요.’
그녀는 한령파파와 정한녀들을 떠올리며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소영령은 혁련미려의 말을 되새기며 안개 속을 걷다 말고 눈을 감았다.
때로는 눈보다 감각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어차피 안개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눈은 거의 소용이 없는 상황. 절대지경에 오른 그녀조차 삼 장 앞을 보기가 힘든 판이었다.
대신 그녀의 감각은 전방 십여 장 내의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반 각.
소영령은 멀리서 기척이 느껴지자 눈을 떴다.
자신의 예상대로 진은 혁련미려가 알려준 그대로였다.
어느새 안개는 희미해지고,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의 기척을 살폈다.
밤이 늦고, 입구 쪽이어서인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간간이 보이거나 느껴지는 무사는 대부분이 평범한 일반 무사들이었다.
‘고위급 간부들은 더 안쪽에 살고 있다고 했지?’
그녀는 혁련미려의 말을 떠올리며 안개를 빠져나갔다.
대여섯 채의 전각을 빙 돌아가자 담장이 나왔다. 혁련미려가 말한 고위급 간부들이 살고 있다는 곳.
소영령은 담장 안쪽의 인기척을 살펴보고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밤새처럼 담장을 넘어갔다.
겉보기로는 안쪽과 바깥쪽이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매화나무 뒤에 몸을 숨긴 소영령은 숨소리조차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외천가의 중심부가 지척인 것이다.
‘일단 저곳부터.’
전면에 세 채의 전각이 보였다. 고풍스런 전각 주위에는 허리 굵은 정원수들이 자태를 뽐내며 심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사람의 손에 가꾸어진 진 듯했다.
전각의 주인이 상당한 위치에 있는 자라는 말.
소영령은 세 채의 전각 중 가운데 전각의 주인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았다.
그곳의 주인이 누구든 소영령에게는 단순히 하나의 목표가 기거하는 곳에 불과했다.
잠시 후, 소영령은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유령처럼 방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