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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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70화
170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
좌소천은 공효천의 세심한 배려가 진정으로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눈 없는 칼에 찔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풍성보를 떠난 좌소천과 오행대가 낙남을 지나 낙하(落河) 상류를 눈앞에 두었을 때였다. 염불곡의 귀령환을 지니고 위남 쪽에 가 있던 자로부터 급박한 연락이 왔다.
“놈들이 움직였다고 하네.”
염불곡의 짧은 몇 마디에 걸음이 빨라졌다.
위남과 낙남은 거리가 비슷했다. 누가 먼저 도착할지는 가봐야 알았다.
문제는 위남보다 낙남에서 올라가는 길이 훨씬 험하다는 것이었다.
“무림맹은 천무단이 전부 움직였소?”
좌소천의 질문에 공손양이 쓴웃음을 지었다.
“맹주가 일백의 천무단을 이끌고 갔다고 합니다.”
도유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제길, 당장 화산을 지켜야 한다며 난리더니 겨우 백 명만 간 건가?”
“아무래도 전부 모으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해서 급한 대로 가까운 문파의 사람들 먼저 모여서 간 것 같습니다.”
“혹시 아나? 우리의 희생이 커지는 걸 바라는 것인지.”
도유관이 툭 한마디 던졌다.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렇게나 한 말이지만,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가정이었던 것이다.
좌소천은 얼굴이 굳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심히 말했다.
“시작 전부터 불신을 가지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껏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언제 우리가 남의 도움을 바라며 적과 싸웠습니까? 갑시다!”
4
날개 끝이 푸른 매 한 마리가 천선곡으로 날아든 것은 오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전서응의 다리에 달린 붉은 전서통을 떼어낸 천밀당의 요응은 전서통에 든 서신을 꺼내 읽자마자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이런 젠장!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잠시 후. 요응의 예측대로 천선곡이 발칵 뒤집혔다.
“무종이…… 잡혔다고?”
나직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노호(怒虎)의 으르렁거림처럼 들렸다.
“단독으로 상주를 치러갔다가 제천신궁 무사들의 습격을 받았다 합니다, 가주.”
“위남으로 올라갔어야 할 놈이 왜 상주를 치러갔단 말인가?”
“아마도 상주의 풍성보를 먼저 쳐서 섬서 서부를 장악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멍청한 놈! 화산만 무너뜨리면 어차피 섬서가 다 들어올 텐데, 왜 허튼짓을 해!”
좀처럼 분노하지 않는 순우연이 노성을 내지른다.
방 안을 오락가락하며 거친 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 있다.
“둘째만으로도 골치가 아프거늘, 큰놈까지 속을 썩이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놈들이……. 끄응…….”
순우기정은 잠시 입을 닫고 순우연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순우연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면 끓어오른 분노가 차갑게 식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가량이 지나자 순우연이 분노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놈이 무종이를 죽이지 않았단 말이지?”
“그렇다고 합니다, 가주.”
차갑지만 조금 전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다.
그럴수록 순우기정은 더욱 조심해서 입을 열었다.
“얻을 게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요.”
순우연은 이마를 찡그린 채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머리를 털고 화제를 돌렸다.
“그래, 늙은이들이 화산을 치려 한다고?”
“대공자가 그리되었으니 잘되었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순우연의 가늘어진 눈에서 냉기가 흘렀다.
“하는 수 없지. 경 숙부께서 잘 처신해 주시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현재의 전력만으로도 화산은 충분히 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화산이 아니네.”
“하오면……?”
“좌소천이라는 놈. 어린놈이라 무시했는데,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그래 봐야 가주님과 해주께서 나서면 금방 꺼질 들불에 불과합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럴까?’
순우기정의 말대로 기우일지도 모른다. 한데도 순우연은 마음 깊숙이 도사린 기이한 감정이 쉽게 누그러들지 않았다.
감정마저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하는 그로선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묘하다면 묘한 일이었다.
금라천의 후예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두 아들과 악연으로 얽혔다.
그로 인해 순우무궁은 미치고, 순우무종은 사로잡혀서 생사를 모르는 상태다.
거기다 이제는 자신마저 그와 적으로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불안한 것인지도 몰랐다.
‘으음, 어쩌면 해주보다도 그놈이 더 문제일지도 모르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만 돼. 사사가 놈을 죽여주면 좋겠는데…….’
순우연은 내심 마음을 굳히고 이를 악물었다.
“놈들은 분명 화산으로 가고 있을 것이야. 놈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알아봐!”
“예, 가주.”
8장 화산풍운(華山風雲)
1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 화산(華山).
장안 동쪽 삼백 리, 진령 동쪽에 자리 잡은 화산은 높이도 높이지만, 산이 온통 바윗덩이로 이루어져서 보는 이의 기를 질리게 하는 험산이었다.
주봉은 남쪽의 낙안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연화봉, 동쪽의 자양봉, 그리고 양옆의 운대봉, 옥녀봉의 다섯 봉우리였는데, 화산파의 제자들이 수련하는 도관과 동굴은 오봉을 중심으로 산지사방에 퍼져 있었다.
우경 진인이 일백의 천무단을 이끌고 화산파에 도착한 것은 좌소천이 낙하 상류를 건널 무렵이었다.
천무단은 임시로 정해진 연화봉 아래쪽 도관에 머물게 하고 우경 진인만이 화산 제자들과 함께 연화봉 정상의 상궁으로 올라갔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허운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늦지 않게 온 것 같아 다행이네, 장문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숙.”
“상황이 어떤가?”
“본 파의 제자만 모두 일천이 넘는데다가 무림맹에서 백호와 청룡이 오고, 외곽은 현무와 주작이 지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본 파와 힘을 합치기 위해 온 강호의 동도들이 오백에 달합니다. 제아무리 천외천가가 강하다 해도 화산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탈속한 선인과도 같은 모습의 도인. 그가 바로 화산의 장문인 허운자였다.
그의 목소리에 깃든 자부심은 곧 화산의 자부심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당금의 화산파는 소림과 무당을 누르고 구파 제일이다.
거기다 화산은 다른 곳과 달리 험준한 산이 또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태백산이 험하다 하지만 어찌 화산에 비할 수 있으랴.
적들은 화산에 들어오면 산세의 험준함에 먼저 기가 질릴 것이다.
하지만 우경 진인은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제자들과 무림맹 맹도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면 더한 조치라도 해야만 했다.
“제천신궁의 무사들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네. 그들이 도착하면 놈들에 대한 공세를 펼칠 것이네. 그전까지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사숙.”
“그래, 선거(仙居)에 들었던 사제들과 사형들은 나왔는가?”
“진악궁에 계십니다.”
“음…….”
우경 진인이 가만히 눈을 감자 허운자가 물었다.
“진정 그들이 그리도 두려운 자들입니까?”
“종남이 하루아침에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네. 아무리 본 파가 종남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 하나 안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닫는 허운자다.
우경 진인은 허운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적을 경시하는 것은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좋지 않다네. 우를 범하지 말게나, 장문인.”
제천신궁의 오백 무사가 천외천가의 일천 무사를 쳤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였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화산 역시 적들과 정면대결을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있었다.
심하게 말하는 자들은 웅크리고 있는 허운자를 뒤에서 비난했다.
종남이 당했는데 화산이 보고만 있다면서.
하지만 그것은 좌소천과 그 일행들의 강함을 생각지 못한 단순한 계산일뿐이었다.
“참으면 몇 사람에게 뒷소리 듣는 것으로 끝날 일이거늘, 한 번의 판단 잘못으로 수백의 목숨을 잃으면, 나중에 아무리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점 명심하게.”
허운자는 우경 진인의 질책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원시천존, 참는다는 것이 이렇듯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종남의 도우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악도들을 저 앞에 두고 바라봐야만 하다니…….”
“보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함이네. 도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함이네. 세 번의 무량수불에 삼백의 도우가 목숨을 건졌을 터, 장문인의 기다림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네.”
눈을 내리깐 허운자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송원 도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사숙.”
그때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제자 현승이 장문인께 아룁니다!”
“무슨 일이냐?”
“위남에 있던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전갈이옵니다!”
위남에서 화산까지라고 해봐야 백오십 리 길이다. 소식이 전해진 시간까지 감안하면 적들이 지척에 이르렀다는 말이었다.
허운자가 우경 진인을 바라보았다.
축 늘어졌던 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숙.”
“가세. 생각보다 일찍 움직인 것이 아무래도 놈들 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 같네.”
2
귀령환을 지니고 있던 자로부터 두 번째 연락이 왔다.
염불곡이 귀령이 전한 말을 좌소천에게 보고했다.
“궁주, 천해가 공격을 시작했다고 하네.”
예상보다 빠른 공격.
좌소천과 제천신궁 무사들을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로부터 이각 후. 이마에 무사건을 둘러맨 좌소천 일행이 이름 모를 야산의 능선에 올라섰다.
저만치 화산의 기봉 절경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칼날처럼 솟은 하얀 바위가 즐비하게 늘어선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마치 눈덩이를 깎아서 만든 산에 솔잎을 꽂아놓은 듯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화산의 절경에 취할 정신이 없었다.
서쪽의 연화봉까지는 아직도 삼십 리 길. 길의 험난함은 지금까지 온 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싸움이 벌어진 곳까지 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아무래도 일부가 먼저 가야 할 것 같소.”
좌소천의 말에 공손양이 즉시 뒤를 향해 소리쳤다.
“경공에 자신있는 분들만 먼저 따라오되, 나머지 분들은 흐트러지지 않게 각 대별로 움직여 주시오!”
오행대에서 백여 명이 앞으로 나왔다.
나머지도 억지로 따라가면 따라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큰 시간 차이가 나지 않을 터. 미리부터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좌소천은 앞으로 나온 백여 명의 무사와 함께 연화봉을 향해 달렸다.
3
“으아아악!”
“크어억?!”
비명이 절벽에 튕겨져 메아리치며 울린다.
피가 튀고, 처절한 신음이 흘러나오고, 광기에 젖은 악다구니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섞여 터져 나온다.
차창! 떠덩! 콰과광!
“놈들을 막아라!”
“한 놈도 화산으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해!”
백호당 오백 무사가 천외천가의 무사들과 맨 먼저 부딪쳤다.
곧이어 청룡당과 화산에 모인 섬서의 무인들이 천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이각이 되기도 전, 지옥이 펼쳐졌다.
천외천가를 막아선 백호당은 그래도 조금 나았다.
구파오가의 중견무사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천외천가에 밀리긴 해도 그럭저럭 버티며 상대의 전진을 막아냈다.
하지만 천해의 무사들을 막아선 청룡당과 섬서의 무인들은 그러지를 못했다.
섬서의 무인들 덕분에 오히려 백호당보다 앞서는 전력인데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형편없이 뒤로 밀렸다.
마치 수라귀와 싸우는 것만 같았다.
유사와 마사, 십암 중 넷, 일백의 무정귀(無情鬼), 천지인(天地人) 삼살영(三殺靈)의 무사 이백은 강하면서도 무자비했다.
그중에서도 이사와 사암은 무림맹의 군웅들이 기가 질릴 정도로 강했다.
심지어 청룡당주 화경자마저 마사의 삼초를 막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일백의 무정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