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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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9화
159화
좌소천은 그의 변화를 눈치 채고도 모른 척했다.
제갈진문이 슬쩍 우경 진인의 표정을 살피고는 다시 한번 같은 주장을 폈다.
“우리가 어찌 그걸 모르겠소? 화산파를 지키면서 놈들을 공격하면 되지 않겠소? 우리의 입장도 이해해 주시오, 궁주.”
그러나 좌소천도 고집이라면 한가락 했다.
“그렇게 해서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저희가 왜 마다하겠습니까?”
공손양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들의 목표가 화산이었다면 멈추지 않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상당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지요. 하나 그들의 목표는 화산이 아닌 무림맹입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을 걸 그들도 아는 이상 화산을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공손양의 설명에 우경 진인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그들이 화산을 치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
“아닙니다. 분명 칠 것입니다. 단, 완벽한 자신이 섰을 때의 이야기지요.”
제갈진문이 공손양을 바라보았다.
“남부의 세력이 올라와 합세한 후에 말이오?”
“남부에서 올라오던가, 아니면 태백산에서 지원이 나오던가 하겠지요.”
“그리 자신하는 이유는?”
“수장이 아직 나오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사람이 없지요.”
제갈진문이 이마를 찌푸리더니, 공손양의 말뜻을 알아듣고 곧 표정을 풀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능동적인 작전을 펼치지 못한다는 말이구려.”
“적어도 수백 년간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던 자들입니다. 철저한 상명하복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 갇혀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겠지요. 군사께선 그런 자들이 명도 없이 무리한 작전을 펼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강시처럼 주술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들 역시 각자의 생각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오?”
“사소한 일이라면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나 천하가 걸린 일입니다. 저는, 그들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할 정도로 능동적이라 보지 않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한 사람은 스스로 움직이는데 부담을 느낀다. 심한 사람은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아무 일도 못할 정도다.
그 차이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가부간의 입장 차이가 크지 않으면 그러한 사람은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 맹점을 이용해서 놈들을 상대했으면 하오만.”
좌소천이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듯 제갈진문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도 화산에 대한 대비를 안 할 수는 없지 않겠소?”
“서로가 임무를 나누어 맡으면 그 역시 해결될 문제요.”
제갈진문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궁주가 가진 생각을 알고 싶구려.”
좌소천은 공손양을 바라보았다.
공손양이 우경 진인과 제갈진문을 번갈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일단 놈들의 연결고리를 자를 생각입니다. 꼬리와 몸통이 잘리면 저들의 판단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와중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부딪쳤다.
무림맹을 중심으로 모든 계획을 짜려는 제갈진문과 우경 진인이다.
좌소천과 공손양으로선 번갈아 제갈진문을 공격하며 적절한 합의점을 이끌어내야만 했다.
다행인 점이라면, 무림맹에게는 제천신궁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반면, 제천신궁은 언제든 독단적인 행동을 할 각오를 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두 시진을 끈 회의는 결국 좌소천의 뜻이 상당히 반영된 상태로 결론을 맺었다.
“급히 달려오느라 많은 인원이 오지 못했습니다만, 곧 이차 출정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보다 더 전격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각파의 장로 급 고수들로 구성된 천무단을 소집했소. 천무단이 소집되면 맹주께서 직접 그들을 이끌고 섬서로 가실 것이오. 그때가 되면 천외천가는 자신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오.”
제갈진문은 당장에라도 천외천가와 천해를 끝장낼 수 있다는 투로 자신감 있게 말했다.
하지만 좌소천은 상황을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지만은 않았다.
천해, 바로 그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전력을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무림맹이 과연 자신들을 신뢰하고 완벽하게 보조를 맞춰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 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
맹주의 집무실을 나서자 붉게 물든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을 때보다 많은 구름이 끼어 유난히 짙은 핏빛이었다.
‘섬서의 하늘은 저보다 더 짙은 핏빛이겠군.’
좌소천이 반개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일행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제천신궁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정천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무진!”
고개를 돌리자 저만치서 손을 흔드는 정은이 보였다.
좌소천은 빙그레 웃고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가서 쉬도록 하시오. 나는 잠시 친구와 이야기 좀 하고 가겠소.”
“궁주, 사룡호법이라도…….”
공손양이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좌소천은 공손양의 우려가 무엇 때문인지 알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호법을 데려간다면 무림맹의 사람들이 모두 웃을 것이오.”
그때 황충이 다가왔다.
“쉬실 곳으로 안내하겠소이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좌소천은 일행들이 황충의 안내를 받아 정빈관으로 가는 걸 보고 정은에게 다가갔다.
“잘 있었나?”
좌소천의 인사에 정은이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야 뭐……. 저번에… 제갈세가에 가서 괜찮았나?”
좌소천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네.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군.”
“쳇, 미리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군사도 참…….”
“그랬으면 자네가 나를 제갈세가에 가지 못하게 했을 걸?”
“하긴…….”
“나는 조금도 그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있다네. 그리고 그 덕에 이곳에서 자네를 만나지 않았는가? 그거면 된 거지.”
그제야 정은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 생각한다니 정말 다행이군. 화가 난 건 둘째 치고, 그 일을 알고 나서 어찌나 당황했는지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네.”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표정이며 말투다. 좌소천이 제천신궁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쯤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제갈세가의 일이 잘 풀렸다는 것에 기뻐하는 정은을 보고 좌소천도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 더 넓어진 것 같군.”
좌소천의 뜬금없는 말에 정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뭐가?”
“정은, 자네의 가슴이 넓어졌다는 말이네.”
단순히 몸이 커졌다는 말이 아니다. 정신적인 수양이, 몸 안에 깃든 기운이 커졌다는 뜻이다.
정은도 곧 말뜻을 깨닫고 쑥스러움이 깃든 웃음을 지었다.
“하, 하.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군.”
“사실을 말했을 뿐이네.”
“어쨌든 정말 기분 좋군. 사부께선 매일 핀잔만 주거든. 사백조께 배우고도 여전하다고 말이야. 하여간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나이 드시더니 잔소리만 심해지고…….”
정은은 뭐가 못마땅한지 한참 동안 툴툴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씩 웃고는 손짓을 했다.
“가세. 내가 소개시켜 줄 사람들이 있네.”
“소개?”
“무림맹에 와서 사귄 친구들인데, 사람들이 괜찮아.”
좌소천은 멈칫했지만, 곧 고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알겠네, 가세.”
제천신궁의 주인이 된 이상 행동에 조심을 해야 된다.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궁에 속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친구와 서먹해야 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가려야 한다면, 남의 눈을 생각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지위가 곧 족쇄가 될 뿐이다.
절대자의 숙명(宿命)!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당연한 것으로 알고 당연하게 따른다.
그러나 좌소천은 그러한 이유로 가식적인 행동을 하기가 싫었다.
‘절대의 길을 가더라도 자유로움만은 버리지 않겠다.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 나는 나만의 길을 가겠다.’
좌소천은 걸음을 옮기며 가슴속에 자신의 길을 새로이 냈다.
문득, 앞서가는 정은의 등을 바라보는 좌소천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피어났다.
‘정은, 너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구나.’
정은이 좌소천을 데리고 간 곳은, 오룡산 기슭의 현무당 거처 옆에 있는 작은 정자였다.
정자 안에는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승인, 도인, 속인. 그들은 모두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행색이 각양각색인 가운데 그나마도 속인 중 하나는 여자였다.
정은이 좌소천과 함께 들어가자, 속인 중 남자가 투덜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이봐, 정은. 대체 무슨 일인데 식사도 못하게 하고 무작정 기다리라고 한 건가?”
그는 턱선이 굵은 자였는데, 거무스름한 얼굴 때문인지 상당히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하하하. 너무 뭐라 하지 말게, 철 도우. 내 친구를 소개시켜 주려고 그랬으니까.”
“친구?”
그들은 소집령으로 바빴던 데다가, 그 일이 끝나고도 정자에서 시간을 보낸 터라 정천전 앞에 가보지 못했다.
당연히 좌소천 역시 보지 못했다.
여인이 고개를 들어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누구예요?”
정은이 싱글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무진이라고, 무당에서 함께 몇 년을 지낸 친굽니다.”
“아! 전에 말했던 그 친구?”
여인은 동그란 눈을 들어 좌소천을 바라보더니, 서슴없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는 황보소청이라고 해요. 정은 도장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무뚝뚝해서 무당의 바위들도 짜증을 냈다는 그분이시군요.”
“하, 하, 하. 무진, 황보 여도우의 말을 믿지 말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네.”
철 도우라 불린 자가 퉁퉁거리며 황보소청의 말을 정정했다.
“분명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 바위가 고개를 돌릴 정도라고 했을 뿐.”
정은이 씩 웃으며 좌소천을 돌아다보았다.
“그렇게는 말했지. 자네가 원래 그렇잖아?”
좌소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당의 수많은 바위 중 나 때문에 고개를 돌린 바위는 하나도 없는 걸로 알고 있네만.”
“하, 하. 그거야 뭐…….”
정은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충 얼버무리고는 네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저기 땡중처럼 보이는 도우는 소림의 공오라네.”
공오라는 청년승이 반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미타불, 공오라 하오.”
“그리고 저쪽에…….”
정은이 엉뚱한 말을 하기 전에 도복을 입은 젊은 도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했다.
“청성의 진현이라 하오.”
“나는 철군영이라 하오.”
철가 성을 가진 자마저 미리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정은이 재빨리 보충 설명을 했다.
“산동 제남 철검보의 말썽꾸러기 둘째 공자시지.”
철군영이 정은을 힐끔거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좌소천은 네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고 눈빛을 빛냈다.
네 사람 다 정은에 비하면 한 수 아래로 보였다.
그러나 정은이 영허 진인에게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그 마음이 비어 있지 않았다면 앞서갈 수 없었을지 모를 정도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공오와 철군영은 정은과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다.
잠룡의 대지.
‘과연 무림맹이라는 건가?’
그때였다.
“소집령이 떨어진 걸 모르고 있나? 왜 여기 모여서 잡담이나 나누고 있는 것이지?”
냉랭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우측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입이 조금 튀어나온 얼굴에 눈초리가 날카롭게 올라가서 제법 성깔이 있어 보이는 자였다.
나이는 정자에 모인 사람들과 엇비슷해 보였는데, 그들과 그리 친하지 않은 듯 입가에 냉소가 걸려 있었다.
“명을 듣지 못한 건가?”
빈정대는 말투에 철군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탁조민,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 자네들이 조원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내가 그만큼 고생해야 하잖아?”
“걱정 말게. 우리 할 일은 우리가 다 알아서 하니까.”
탁조민이라 불린 자는 정자에 들어오려다 멈칫하더니 좌소천을 힐끔 쳐다보고 고갯짓으로 물었다.
“저자는 누구지? 처음 보는 자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