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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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5화
155화
좌소천은 그 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진득한 살기가 자신이 서 있는 묘역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리 와라, 혁련호승. 우리의 악연을 여기에서 끝내자.’
문득 고개를 돌려 위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소가 보였다.
‘묘한 일이군.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혁련호승을 만나다니.’
그때였다.
“크아아아!”
괴성과 함께 커다란 덩치의 검은 그림자가 좌측 계곡에서 솟구쳤다. 혁련호승이었다.
그가 묘역에 내려서자 도유관과 능야산을 비롯한 직속호위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포위했다.
광기에 젖은 붉은 눈, 시뻘게진 얼굴. 손가락 굵기로 툭툭 튀어나온 혈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미쳐 버린 수라귀의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뿜어지는 기세에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상대의 강함을 느낀 것이다.
좌소천은 천천히 걸어서 포위망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누군지 알겠나?”
혁련호승이 좌소천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크크크, 네놈은… 네놈……. 크으윽! 머리가 아파. 네놈의 심장을…… 피를 마셔야겠어!”
머리를 쥐어 싼 혁련호승의 눈에서 혈광이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두 눈은 결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는 좌소천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몸을 날렸다.
좌소천을 향해 뻗는 시뻘건 두 손에서 붉은 기운이 너울댔다.
좌소천은 그를 향해 마주 다가가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
콰광!
혁련호승의 몸이 이 장 밖으로 튕겨졌다.
좌소천은 그를 향해 다가가며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좌소천이라는 이름을 모르는가?”
“좌소…… 좌소천…….”
혁련호승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그런 것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다시 달려들었다.
“누구든 상관없어! 심장을 내놔!”
한쪽 팔이 부러져 덜렁거리는데도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가 일 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다.
번쩍!
무진도가 어둠을 길게 가르며 혁련호승의 어깨를 스쳤다.
툭!
혁련호승의 부러진 오른팔이 어깨 부위에서 떨어지고, 어둠을 뚫고 시뻘건 핏줄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좌소천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며 싸늘하게 말했다.
“우리의 악연을 여기서 끝내자, 혁련호승.”
찰나, 혁련호승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팔이 떨어져 나간 것쯤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크아아!”
좌소천은 예상치 못한 혁련호승의 공격에 걸음을 멈추고 좌수를 뻗었다.
우두둑!
그는 혁련호승의 왼손 팔목을 부러뜨리고, 무진도를 사선으로 올려쳤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장내로 날아들며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라!”
목을 향했던 무진도가 방향을 틀더니 혁련호승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좌소천은 무진도의 방향을 바꾸고는 발을 뻗어 혁련호승을 이 장 밖으로 걷어차 냈다.
퍽!
동시에 두 사람 사이로 한 사람이 내려섰다. 혁련호정이었다.
혁련호정은 내려서자마자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혁련호승을 노려보았다.
“호승!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혁련호승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고 혁련호정을 노려보았다.
시뻘건 그의 두 눈이 찰나간 흔들렸다. 좌소천은 알아보지 못했으면서도 혁련호정은 알아본 듯했다.
“크크크, 형? 우흐흐흐, 항상 나를 주눅 들게 한 형인가? 몇 번이나 죽여 버리고 싶었던 그 형이 나를 찾아온 건가? 큭큭! 형……. 나 심장이 필요해. 피를 마셔야 돼. 머리가 아파. 피를 마셔야 나아…….”
웅얼거리며 혁련호정을 노려보는 혁련호승의 눈에서 붉은 빛이 쏟아졌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혁련호정은 어이가 없어 힘이 빠졌다.
동생이 자신을 몇 번이나 죽이려 했다니.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네가 왜 나를 죽이려 했단 말이냐?”
“크크크크, 형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 벌레처럼 구석에 웅크리고 온갖 비웃음이나 받는 내 심정을 잘난 형이 어떻게 아냐고! 내 비참한 마음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
그때다. 혁련호승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다.
“죽어!”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에 혁련호정도 마주 손을 내밀었다.
갈퀴 같은 손가락이 가슴을 찍어오는데도 혁련호정은 그에 아랑곳없이 쫙 펼친 손바닥으로 혁련호승의 가슴을 때렸다.
퍽! 쾅!
“푸헉!”
혁련호승이 피를 뿜으며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한순간, 이를 악문 혁련호정의 눈이 잘게 떨렸다.
혁련호승의 손가락에 찍힌 가슴에서 배어 나오는 피가 옷자락을 타고 길게 흘러내리지만, 그의 눈은 혁련호승을 향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호승아…….”
꿈틀거리며 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동생의 얼굴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온다. 입에서 핏물을 쏟아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원망이 가득하다.
혁련호정은 이제야 혁련호승이 왜 그렇게 편협해졌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질이 뛰어나 남들에게 칭찬만 받던 자신과 비교되며 살아온 동생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교하며 동생을 향해 혀를 차고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다.
결국 동생이 그렇게 된 데에는 형인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말이었다.
‘그랬단 말이지?’
혁련호정의 몸이 잘게 떨렸다.
항상 못난 놈이라 질타만 했다.
바보같이 굴다가 병신이 되었다며 호되게 야단을 쳤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동생의 심장을 자신의 손으로 부숴 버렸다.
가슴이 떨리고 움켜쥔 손이 떨렸다.
혁련호승의 손가락에 찍힌 가슴의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바들바들 떨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동생의 모습이 눈 안에 가득 차 온다.
울컥, 치솟는 감정에 그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안간힘으로 버텨보지만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 한다.
혁련호정은 이를 악물고 좌소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승이 시신을… 내가 처리해도 되겠나?”
좌소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호정은 겨우 입을 열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혁련호승의 모습이 보이자 끝내 눈가에 안개가 끼었다.
“……고맙다, 소천.”
3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순우연이 순우기정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 혁련미려가 곡을 빠져나갔다니? 그게 사실인가?”
“예, 가주.”
“호곡무사들은 모두 눈 뜬 장님이었단 말인가?”
“그게… 십여 명이 혁련미려를 쫓았사온데…….”
보고를 하는 순우기정이 답을 망설이자 순우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쫓았는데? 설마 모두 혁련미려에게 죽었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들 대부분이 둘째 공자에게 죽었습니다.”
“뭐야?”
“두 명이 살아서 돌아왔는데, 그들 말에 의하면, 모두 심장이 뽑혀서 죽었다고 합니다, 가주.”
순우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럼 설마, 천해에서 무궁이에게 혈령마기를 심기라도 했단 말인가?”
“지금으로선 그런 추측밖에는…….”
“이놈들이!”
“다행히 성취가 높아서 자주 피를 섭취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만, 아무래도 밖에 내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감히 내 아들에게 그런 사법을 펼치다니. 노야, 이 늙은이가 어디서 잔꾀를…….”
순우연의 두 눈에서 붉고 푸른 광채가 넘실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순우기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무궁이는 어디 있느냐?”
“아직 곡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지금도 혁련미려를 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궁이를 잡아올 사람을 보내라. 태백산 밖으로 나가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이미 만사령주가 직접 나섰습니다, 가주.”
“혈령마기가 심어져 있다면 만사령주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 천앙동에 말해서 사람을 지원받아. 그들에게 무궁이를 잡아오라 이르고, 만사령주에게는 혁련미려를 처리하라고 해.”
순우기정의 눈이 커졌다.
천앙동(天仰洞)은 천외천가의 마지막 힘이라 할 수도 있는 곳이다.
비록 인원은 열 명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사사와 십암을 상대하기 위해 비밀리에 키워진 자들. 하기에 이번 섬서정벌에서도 내보내지 않고 철저히 숨겨두었다.
그들에게 지원을 받으라는 말은, 그만큼 순우무궁이 강하다는 말.
순우무궁의 능력을 알고 있다 생각했던 순우기정으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입니까?”
“혈령마기는 몸의 잠력을 극대화시키는 사법이다. 적어도 전에 비해서 서너 배는 강해져 있을 것이야.”
그 정도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 정도 강한 무위.
그렇다면 순우연 말대로 만사령주만으로는 잡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알겠습니다, 가주.”
그때 순우연이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공야황이 마공을 완성했을까?”
흠칫한 순우기정이 고개를 들었다.
“완성되었다면 왜 시간을 끌고 있겠습니까? 아직 미진한 것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까?”
순우연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는 자다. 그런 자가 단지 상황이 급해졌다는 말에 천해를 열었다? 왠지 이상해.”
“하면 가주께선 그가 마공을 완성했다 여기시는 것입니까?”
“확실치는 않아. 하지만 그렇다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야. 어차피 며칠 후면 천선곡을 나가야 할 터.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계획을 짜도록.”
“알겠습니다, 가주.”
4
말없이 내미는 손에 이름 모를 과일이 들려 있다.
“고마워요.”
혁련미려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과일을 받아 들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런지 과일을 보자 침이 고였다.
그런데 한 입을 다 삼키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흘러나왔다.
암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기천승이 눈을 뜨고는 나직이 말했다.
“신양까지 가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것이다.”
순간 혁련미려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기천승을 보며 앉은자리에서 살짝 뒤로 물러났다.
“어, 어떻게……?”
“놀랄 것 없다. 그 괴인이 너를 혁련미려라고 불러서 아는 것뿐이니까.”
그래도 불안한지 혁련미려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기천승이 멈칫하더니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기천승이라고 한다.”
좌소천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도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이름을 숨기며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혁련미려는 기천승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귀영천살의 본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천하를 다 뒤져도 많지 않았으니까.
혁련미려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왜 저를 도와주신 거죠?”
“아직 자세한 이유를 알려줄 수는 없다만, 일단 너의 적이 아니란 것만 알고 있어라.”
혁련미려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자신을 순우무궁의 손에서 구해준 사람이다. 의심을 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일 뿐이다.
아무리 험한 일이 닥친다 해도 순우무궁의 손에 걸린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녀는 슬며시 손에 들린 과일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기천승이 물었다.
“그 괴인이 누군지 알고 있느냐?”
멈칫한 혁련미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자는… 순우무궁이란 자예요.”
그 말에 기천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순우무궁? 천외천가 가주의 둘째 아들이라는 자 말이냐?”
“예.”
“그자의 무공은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만.”
“저도 확실한 것은 몰라요. 얼마 전까지 어딘가에 갇혀서 벌을 받고 있었다는데, 며칠 전에 풀려났어요.”
‘어딘가?’
그 말에 기천승의 눈이 반짝였다.
“천해 말이냐?”
혁련미려가 의아한 눈으로 기천승을 바라보았다.
기천승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 그녀가 천해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것 말고도 혁련미려가 도움이 될 것은 얼마든지 있었다.
“천외천가의 내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과일을 삼킨 혁련미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입구의 진세는?”
“나오는 것은 겨우 알았는데, 들어가는 것은 확실히 자신할 수가 없어요.”
기천승에게는 그것조차 커다란 정보였다.
“천외천가에 대한 것과 나오는 방법을 말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