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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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42화
142화
“궁주께서는 천외천가와 함께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 저를 버리시려 하셨지만, 저는 제천신궁을 지키기 위해서 궁주와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결심을 했지요.”
“흥! 결국 배신을 하겠다는 말이구나!”
“저는 제천신궁을 배신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더냐?”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저는 궁주와 다른 길을 가겠다고 했지, 제천신궁과 적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혁련무천의 수염이 잔떨림을 일으켰다. 동시에 노성이 터져 제천전을 뒤흔들었다.
“이놈! 진위여부도 확실치 않은 서찰 한 장을 들고서, 네가 지금 감히 나와 말장난을 하겠다는 것이더냐?!”
“이미 다른 한 장의 유언장에 대한 것이 밝혀진 만큼 이것 역시 곧 진위가 밝혀질 것입니다.”
“흥! 밝혀지기는 뭐가 밝혀졌다는 말이냐? 너는 유언장에 대한 헛소문을 사실로 믿고 있었단 말이냐?”
코웃음을 친 혁련무천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하지만 좌소천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어리석은 놈! 아무도 보지 못한 유언장을 믿다니.”
“본 사람이 있으니 믿는 겁니다, 궁주.”
혁련무천의 입가에서 조소가 사라지고, 부릅뜬 눈에서 살광이 쏟아졌다.
다른 간부들도 웅성거리며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좌소천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 유언장을 봤습니다. 그리고 사공 단주의 거처에서 도망치듯이 나왔지요. 도망치지 않았으면… 다른 밀천단의 단원들처럼 그 자리에서 궁주에게 죽었을 테니까요.”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분노한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던 혁련무천도 부동심을 잃고 흔들렸다.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날 사공 단주의 시신을 맨 처음에 발견한 호위 네 사람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임무를 위해 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황강산 자락에 묻혀 있지요. 궁주의 명령에 의해 죽임을 당한 채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네, 네놈이 이제 미쳤구나? 내 어찌 죄없는 수하들을 죽이라는 명을 내 입으로 내린단 말이더냐?”
궁의 주인이 직접 수하들을 죽인다면 누가 믿고 따를까?
그러나 궁의 안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막아야 할 때가 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할 간부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그 일을 궁주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했을 경우다.
간부들이 흔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은 제천신궁 최고의 중흥기. 솔직히 혁련무천이 궁의 안위를 위해 호위들을 죽여 입막음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좌소천이 대답했다.
“유언장을 보고 도망쳤던 그 사람은 네 구의 시신이 몰래 들려 나가는 것을 보고, 시신이 묻힌 곳까지 확인을 했지요. 지금이라도 시신을 파내 상흔을 확인하면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궁주.”
무심한 그의 목소리에 거대한 제천전이 짓눌렸다.
간부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상황을 주시했다.
혁련무천은 더 이상 변명을 하지 않고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후회막급이었다. 좌소천이 자신의 명을 거부했을 때 무조건 쳐야 했다. 완벽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끈 것이 악수였다.
‘돌이킬 수 없다면 다시 뒤집는 수밖에.’
혁련무천은 근 반 각 만에 입을 열어 일단 좌소천의 말부터 인정했다.
“좋다. 내 다 말하지.”
숨을 들이쉬었다 길게 내쉰 혁련무천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일은 본 궁의 기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본좌로선 지금도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의 내 고심을 네가 어찌 알 것이더냐.”
“저 역시 그들처럼 죽여 입을 막을 생각이셨습니까?”
“내 어찌 태군사의 아들인 너를 죽이려 한단 말이냐?”
“하면 왜 살수를 보내신 겁니까?”
“그건 내가 아니라 사공은환이 보낸 것…….”
“결국 천외천가와의 연합 때문에 저를 죽이려 했다는 유언장의 내용은 역시 사실이었군요.”
혁련무천은 배신의 죄를 물어야 할 자신이 오히려 좌소천에게 끌려간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유언장의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네가 감히 본 궁을 배신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본좌는 너의 배신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소천!”
동시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혁련호정이 여가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 령주님, 뭐 하십니까? 배신자를 잡으시지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여가릉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제천전에 울려 퍼졌다.
“제천무령은 속히 들어와서 배신자 좌소천을 잡아라!”
그 명이 떨어짐과 동시, 제천전의 문이 열리더니 근 삼십 명에 가까운 제천무령이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때였다.
“여 령주! 잠시 멈추게!”
무천단주 이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냉랭히 소리쳤다.
여가릉이 이광을 바라보며 마주 소리쳤다.
“도주할지 모르는 자입니다! 일단 잡아놓고…….”
“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 자네는 지금 우리를 무시하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흑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제무전주 단목연호가 여가릉의 말을 잘랐다.
“좌 단주는 궁을 배신할 생각이 아니라 했네. 아직 말을 더 들어봐야 하니 즉시 수하들을 물리게나. 만일 배신을 하려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들이 나설 것이네.”
“전주님!”
“이곳에는 본 궁의 최고위간부만 열 명이 넘게 있네. 설마 우리에게 그 정도의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냉랭해진 단목연호의 말에 여가릉이 혁련무천의 눈치를 살폈다.
이광과 단목연호는 제천신궁 최강의 무력단체를 이십 년 가까이 거느린 수장으로 궁도들에게 신망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검왕, 봉왕과 함께 제천신궁의 사왕인 천수도왕(千手刀王)과 장왕(掌王)이 바로 그 두 사람인 것이다.
혁련무천은 속으로 이를 갈며 명을 내렸다.
“수하들을 물려라, 가릉.”
제천무령이 물러가자 단목연호가 좌소천에게 물었다.
“말해보게. 궁주는 따르지 않지만, 본 궁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무얼 뜻하는 말인가?”
좌소천은 마침내 때가 왔다는 것을 느끼고 오연한 자세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
“나 좌소천은, 거짓과 불의를 행하고,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수하들을 죽음으로 이끈 데다, 제천신궁의 궁도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궁주를 더 이상 주군으로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흥! 결국 배신하겠다는 말이군!”
혁련호정이 코웃음을 치고, 혁련무천이 노성을 내질렀다.
“이놈! 본좌가 언제 본 궁의 궁도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 했다는 말이냐?!”
“그럼 묻겠습니다. 천외천가의 뒤에 어떠한 자들이 있는지 아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천해를 아십니까? 그들이 천외천가의 뒤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네가 아는 것을 내 어찌 모른단 말이냐?! 천해라고? 천해는 무슨! 허튼소리 하지 마라!”
혁련무천으로선 당장에라도 좌소천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아마 혁련호정이 일수에 밀린 것을 보지만 않았어도 다른 사람의 만류에 아랑곳없이 직접 손을 썼을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손을 쓰고도 좌소천을 제압하지 못하면, 그거야말로 스스로 시궁창에 빠진 꼴이 될지도 모를 일. 혁련무천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좌소천은 그런 혁련무천을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천외천가와 손을 잡은 궁주께서 천해를 모르시다니, 참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흥! 천외천가 뒤에 누가 있다는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단 말이냐?”
“중요하지요. 그들과 엮어진 순간, 제천신궁은 천하 모든 정파들의 공적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들이 전설의 마교라도 된단 말이냐?”
“전설에서 전해지는 마교는 아닐지 몰라도, 무림맹은 그들을 마교와 동격으로 보고 있지요. 그러니 제천신궁이 천외천가와 손을 잡은 것이 확실시되면, 무림맹은 제천신궁이 무림맹의 공적임을 전 강호에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전에 그만 내려오셨으면 합니다.”
“뭐라?!”
“궁도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지 마시고 그만 일선에서 물러나 쉬시지요.”
쾅!
발을 굴러 제천전을 뒤흔든 혁련무천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이제야 좌소천의 진정한 뜻을 깨달은 것이다.
“네놈이 감히!”
“하늘은 하늘다워야 합니다. 궁주께선 스스로 생각할 때 하늘처럼 행동했다 자부하실 수 있습니까?”
“네놈 따위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살아오지 않았다!”
분노의 일갈을 내지른 혁련무천은 옆을 보지도 않고 명을 내렸다.
“여가릉! 더 이상 눈치 볼 것 없다! 놈을 잡아라!”
그러고는 안절부절못하는 간부들을 노려보았다.
“이제부터는 누구도 본좌를 말리지 마라!”
그사이 밖에서 대기하던 제천무령들이 다시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궁주, 솔직히 좌 단주의 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광이 작심한 듯 혁련무천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뭐, 뭐라고? 이 단주! 당신이 어디서……!”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본 전주 역시 같은 생각이오, 궁주. 본 궁이 왜 무림맹과 등을 돌리고 음침한 천외천가를 친구로 생각해야 하는지 의문이외다.”
단목연호에 이어 검혼당주 추자량마저 좌소천을 옹호했다.
“저 역시 궁주의 계획이 무리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쉬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궁주.”
“단목 전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씀이 지나치시외다!”
제천단주인 명화성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절혼당주 우중문도 어쩔 줄 모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궁주께 물러나라 하시다니요?”
웅성거리는 간부들이 어영부영 세 갈래로 갈렸다.
좌소천을 옹호하는 사람이 셋, 혁련무천을 따르는 사람이 일곱, 중도에 서서 상황을 관망하는 사람이 둘이었다.
“그대들이 감히 반역을 하겠다는 건가?!”
혁련무천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설마하니 앉아 있는 자들 중에 좌소천을 지지하며 나설 자가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듯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나름대로 의심이 가는 간부들은 제외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중 셋이 좌소천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가장 비중이 큰 제무전주와 무천단주가.
“본 궁을 제대로 이끌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사유야 어찌 되었든 태군사는 궁주께서 인정하신 일등공신이외다. 한데도 일등공신인 태군사의 부인을 살해한 천외천가는 친구로 받아들이시면서, 정작 태군사의 아들인 좌 단주를 내치려하신 것은 아주 큰 잘못이외다, 궁주.”
“게다가 비밀을 덮기 위해 수하들을 죽이시다니요? 나 이광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소이다. 잘못도 없는 수하를 죽이면서 어떻게 저희더러 따르라 하시는 겁니까?”
혁련무천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전신에서 제천신공이 활화산처럼 뿜어졌다.
제천무제, 그의 몸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이제 보니 함께 배신하기로 작정한 놈들이 하나둘이 아니었구나. 내 그걸 몰랐으니 정녕 궁주의 자격이 없도다!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들만큼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가릉, 모두 잡아들여라! 본 궁주을 따르는 간부들도 모두 제천무령을 도와 저 배신자들을 잡아라!”
혁련무천은 일갈을 내지르고는 기다란 탁자를 발로 내찼다.
콰앙!
다섯 치가량 허공으로 뜬 탁자가 반대편에 서 있던 좌소천을 향해 날아갔다.
좌소천은 날아드는 탁자를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단순한 탁자가 아니다. 족히 삼백 근이 넘는 무게도 무게지만, 탁자에는 혁련무천의 제천신공이 실려 있는 것이다.
콰광!
굉음이 일며, 두 사람의 기운을 이기지 못한 탁자가 허공에 뜬 채 쩍쩍 갈라졌다.
순간, 무기를 뽑아 든 제천무령이 신속하게 두 무리로 나누어졌다.
그들 중 이십여 명은 좌소천을 겹겹이 감싸고, 열 명 정도는 탁자의 좌우에 서 있던 간부들과 함께 이광과 단목연호와 추자량을 포위했다.
혁련무천은 불쏘시개가 되어 바닥에 떨어지는 탁자의 건너편을 노려보았다.
좌소천이 한 손을 칼에 얹은 채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네놈은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