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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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35화
135화
“본 가에 오래전부터 전해진 비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궁주.”
“성공 가능성은?”
“아주 심하지만 않다면, 십중팔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으음, 함께 온 사람이 치료를 할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지금쯤은 둘째 공자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궁주.”
혁련무천의 눈에 처음으로 온기가 어렸다.
“신경 써줘서 고맙군. 가주께 전해주게. 이 혁련무천이 오늘의 일을 잊지 않겠다고 말이야.”
“별말씀을. 진즉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죄송할 뿐입니다.”
“허허허, 이제 그만 미려에게 가보게나. 떠나기 전에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알면, 가는 길이 그만큼 편해지지 않겠는가?”
“예, 궁주.”
고개를 숙이는 순우무종의 눈빛이 사이하게 번뜩였다.
‘후후후, 혁련호승의 혈맥은 확실하게 이어놓을 것이오. 물론 뒤에 벌어지는 일은 책임질 수 없지만…….’
그런 순우무종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혁련무천의 눈빛에 냉기가 흘렀다.
‘네 말을 전부 믿을 거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나 혁련무천을 잘못 본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너희들의 뜻대로 따라주마.’
4
공손양은 제천신궁의 전서가 도착한 그날, 급전을 띄워서 사람들을 검인보로 모이도록 했다.
급전을 매단 전서구는 구포방, 광한방, 신검장을 비롯해서 각 지부 모든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전마성의 백리도운에게도 서신을 보냈다.
화룡점정(畵龍點睛). 마지막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렇게 각 곳의 사람들을 모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남이 아니라는 것, 모두가 하나의 하늘 아래 뭉쳤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좌소천이 양양을 떠나던 날. 모두 합쳐 일백이십여 명의 고수가 검인보로 모여들었다.
숫자는 적었지만, 모두가 절정에 달하거나 그에 근접한 고수들이었다.
공손양은 그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사실을 벽여령에게만 털어놓았다.
당연히 벽여령은 그 사실을 네 노인에게 알렸다. 우려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걱정 마라, 우리가 가서 무사히 데려오마!”
네 노인은 이구동성으로 벽여령을 안심시켰다.
그러더니 구석에 처박혀 있던 마차를 끌어내 먼지를 털고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엽풍을 불러서 마부석에 앉히고 만월평을 나섰다.
벽여령이 간식으로 드시라며 싸준 음식들을 마차에 가득 싣고.
5
수(隋)나라를 세운 수문제가 아버지 양충의 수국공 작위를 이어받아 다스렸던 곳.
좌소천이 대홍산 동북쪽 수주(隨州)에 도착한 것은 양양을 출발한 그날 날이 저물 무렵이었다.
도유관과 이자광, 전하련, 사인학, 종리명한, 홍려운만이 동행한 상태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보다 한발 먼저 양양을 출발했다. 그들은 좌소천과 달리 동백산을 넘어서 신양의 북문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제천신궁의 눈을 피하기 위해 따로 떨어져서 움직여야 할 상황이었는데, 마침 관추릉과 언자홍이 동백산 일대의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취한 조치였다.
수주에 들어간 좌소천은 일단 객잔부터 찾아보았다.
대홍객잔(大洪客盞).
대로에 들어서자 언뜻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좌소천은 더 찾아볼 것도 없이 대홍객잔의 주렴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날이 저물어가는 시각이라서 그런지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인학이 어깨를 으쓱 추키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주군.”
일행이 일곱이다. 게다가 이 인분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자광마저 끼어 있다. 탁자를 두 개는 차지해야 할 판. 작은 자리도 찾기 어려운데 두 개의 탁자를 차지하기는 어렵게 보였다.
“건너편에도 객잔이 있던데, 그리로 가시지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좌소천 일행이 두리번거리다 말고 나가려 하는데,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어서 옵셔! 아이고, 운도 좋으십니다. 지금 막 큰 자리가 하나 났습지요. 저를 따라오시지요!”
점소이의 말에 돌아서려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탁자가 두 개는 있어야 하네.”
“물론입죠!”
점소이는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좌소천 일행을 창가로 안내했다.
그들이 다가가는 사이 창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곳에는 좌소천 일행이 모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다. 점소이가 장담할 만도 했다.
바로 그때였다.
탁자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좌소천은 기이한 기분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객잔의 구석진 곳에서 한 사람이 등을 돌린 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펑퍼짐한 흑의를 입은 자. 그는 차양이 넓고, 차양 끝에 검은 면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를 벗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이 조금 묘하게 보였지만, 좌소천의 관심을 끈 것은 모자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무런 느낌조차 없는 가운데 은은히 흐르는 남이 범접할 수 없는 냉기.
그 기운은 너무 미약해서 자신조차 그냥 스칠 뻔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결코 흑의인이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약하기는커녕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출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자였다.
‘세상은 역시 넓군.’
좌소천이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점소이가 탁자를 쓱쓱 닦아내고 소리쳤다.
“자, 이리 앉으시지요, 공자님!”
그러더니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둘러본다.
뭔가를 바라는 눈치. 사인학이 눈치 빠르게 품에서 반 냥이 조금 못 되는 은두 하나를 휙 던져 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뭘 드시겠습니까!”
입이 쫙 찢어진 점소이는 공자의 말을 경청하는 서생처럼 귀를 열고 주문을 받았다.
그렇게 점소이가 주문을 받고 자리를 떠나자, 좌소천은 자연스럽게 눈을 돌려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식사를 마쳤는지 흑의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돌렸다.
그리 크지 않은 키. 모자의 차양에 달린 면사 외에, 더욱 두터운 면사로 가려진 얼굴. 게다가 풍성한 흑의로 인해 그의 몸 전체 윤곽도 확실하지가 않다.
좌소천은 그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한데 언뜻, 그가 자신들 쪽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는 다른 곳을 향해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좌소천이 한번 말을 걸어볼까 하는 사이, 흑의인은 태연한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객잔을 나선 흑의인은 객잔이 보이지 않는 곳이 이르자 천천히 몸을 돌렸다.
‘분명 그때 그자야.’
촉산을 벗어나자마자 남자의 옷을 사 입었다. 차양에 면사가 달린 모자도 사고, 본래 쓰던 천잠사로 만든 하얀 면사는 물을 들여 검게 변색시켰다.
그러고는 자신의 내력을 완벽히 제어하고, 본신에서 저절로 흐르던 냉기마저도 사흘간의 노력 끝에 잠재웠다.
그녀는 그렇게 모든 것을 바꾸고 호북으로 들어왔다. 좌소천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첫 번째로 한 일은, 개방의 제자를 찾는 것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그녀는 보강에 들어가자마자 개방의 삼결제자를 만났다.
개방의 제자는 ‘좌소천이라는 이름을 들어봤나요?’라는 그녀의 질문에 대뜸 코웃음을 쳤다. 자신을 놀리냐면서.
그러더니 그녀가 다섯 냥의 은자를 내밀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제천신궁의 호북 총지부장 이름이 바로 좌소천이오.”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살아 있었다. 그것도 천하제일패라는 제천신궁의 호북 총지부장이 되어서.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고, 물어물어 황파를 향해 길을 걸었다.
급히 서둘지는 않았다. 마음은 서두르고 싶은데 몸이 따라가지 않았다.
혹시 모르는 척하면 어떡하지? 설마 그러기야 할까?
만나면 뭐라고 하지? 뭘 물어보지?
그를 만나면 정말 내 신세 내력을 알 수 있을까? 모르면 또 어디 가서 나에 대한 것을 알아보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자신의 냉철한 사고가 한순간 멈춘 것만 같았다.
최소한 그때만큼은 신녀도, 뭣도 아닌, 그저 기억을 잃은 외로운 여인일 뿐이었다.
그렇게 걸어 이제 황파가 이틀 거리. 아니, 경공을 시전한다면 하루도 안 돼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지척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원수나 다름없는 자를 만난 것이다.
다행히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잠시 자신에게 눈을 두기는 했어도, 정체를 알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신녀는 이를 지그시 악물고 객잔을 바라보았다.
‘파파의 혼령이 나를 도와주는구나. 저자를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의 손에 죽은 정한녀가 일곱이다.
정한녀들을 죽인 자!
지금은 그것만이 진실이었다.
자신은 유사와 싸우며 한계를 경험한 이후 전보다 강해진 상태. 지금이라면 단신으로라도 죽일 수 있을 듯했다.
‘강호에서 유명한 자겠지. 그러나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 너는… 오늘 내 손에 죽는다.’
언젠가 본 것 같은 그의 도가 마음에 걸리지만, 그러한 것 때문에 한 맺힌 정한녀들의 원한을 갚는 일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4장 악몽에서 깨어나고
1
식사를 하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온 지 두 시진.
좌소천은 세 차례에 걸친 대주천을 마치고 눈을 떴다.
“후우…….”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침상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갔다.
객잔의 창문을 통해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걷힌 하늘에는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좌소천이 바라보는 사이, 커다란 별똥별 하나가 긴 꼬리를 늘어뜨린 채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
‘며칠 후면 그대의 가면이 벗겨질 것이다, 혁련무천.’
이번 만남으로 제천신궁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혁련무천과 자신이 완전히 갈라서게 될 거라는 것.
좌소천은 물끄러미 하늘의 중심에서 반짝이는 북신(北辰), 북극성을 직시했다.
하늘에 북신은 하나다. 현재 강호에서의 북신은 혁련무천이다.
그러나 이제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내가 하늘의 중심, 북신이 될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기이한 기운이 어디선가 밀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부르는 듯했다.
언젠가 느껴본 것 같은 그런 기운.
‘나를 부르는 것인가, 기운의 주인이여?’
좌소천은 묵묵히 서서 금라천황공을 흘렸다.
동시에 밀려오던 기운도 더욱 강해지더니, 갑자기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마치 자신더러 빨리 나오라는 것만 같았다.
좌소천은 그 기운의 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멀리서 외줄기 기운이 자신을 향해 뻗어왔다. 마치 자신에게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처럼.
찰나였다. 좌소천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강가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객잔에서 봤던 흑의인이다.
‘그래서 언젠가 느꼈던 기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걸 어떻게 느꼈느냐가 아니었다.
상대는 자신에게 좋지 않은 뜻을 품고 있고, 또한 자신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대가 나를 불렀소? 무엇 때문에 부른 것이오?”
흑의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꼿꼿이 선 채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의 입이 열린 것은 거리가 삼 장가량으로 가까워졌을 때였다.
“맞아, 내가 불렀지. 너를 죽이기 위해서.”
갑작스런 여인의 음성에 좌소천의 눈이 커졌다.
들어본 목소리다. 게다가 흑의인, 그녀에게서 피어나는 기운 역시 일전에 부딪쳐 본 기운.
“설마, 신녀?”
좌소천이 부르짖듯 소리쳤다. 하늘이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얼굴에 경악이 물결쳤다.
그제야 왜 자신을 이끌던 기운이 낯설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
비록 신녀가 그녀 특유의 한기를 억누르긴 했지만, 그 본질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본 궁의 정한녀들을 죽인 너의 피로, 한에 사무친 정한녀들의 넋을 위로할 것이다!”
미처 좌소천이 입을 열 틈도 없었다.
그를 향해 쇄도하는 신녀의 전신에서 한여름의 대기를 얼리며 뿌연 안개가 피어난다.
동시에 검은 소맷자락에서 튀어나오는 백옥처럼 하얀 손!
좌소천은 급박하게 뒤로 물러나면서 쌍권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