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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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30화
130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던 도세!
‘하늘이 갈라지는 것 같았지.’
털썩!
나뭇가지 떨어지는 소리가 심장을 울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제갈진경의 눈이 좌소천을 향했다.
그때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좌소천의 나직한 목소리가 제갈세가의 사람들 귓전을 파고들었다.
“누구든, 저 나뭇가지를 저렇게 자를 수 있는 사람이 제갈세가에 있다면, 내 오늘 한 말에 대해서 무릎 꿇고 사과하겠소.”
그 말에 누군가가 코웃음 쳤다.
“흥! 나뭇가지 하나 잘랐다고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뭇가지와 사람은 엄연히 다른…….”
얼굴이 벌게져 있던 제갈진오가 버럭 소리쳤다.
“멍청한……! 입 다물어라!”
“숙부님?”
한소리 내지른 제갈진오의 입에서 가래 끓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상, 네가 가서 저 나뭇가지를 가져와라.”
좌소천은 곤혹해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제갈진경을 바라보았다.
“군사께선 어디 계십니까? 설마 밤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제갈진경은 달려가서 잘린 나뭇가지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당장은 눈앞에 벌어진 일부터 마무리 짓고 봐야 했다.
“안에서 기다리시네. 들어가지. 승, 앞장서라.”
제갈진경 뒤에 말없이 서 있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나를 따라오시오.”
무정효 제갈승, 바로 그였다. 곡성에서 만났던 자.
일순간, 돌아서는 그의 눈 깊은 곳에서 끈적끈적하면서도 차가운 눈빛이 일렁였다.
‘그냥 넘어갈 성격이 아닌 것 같군. 하긴 그래서 나쁠 건 없지. 장 형을 위해서라도.’
좌소천의 눈 깊은 곳에서도 싸늘한 한기가 맴돌다 스러졌다.
제갈세가의 장원은 너무 넓어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정성을 다해 꾸며놓은 수십 채의 건물과 곳곳에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정원은 무턱대고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진세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져서, 비상시 진세를 발동시키면 장원 전체가 하나의 진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설계였다.
하지만 그것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나 알아볼 수 있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장원일 뿐이었다.
하기에 뒤따라오는 직속무사들이나 능야산의 형제들은 유유자적, 놀러온 사람들 마냥 태연한 표정이었다.
‘때로는 모르는 게 나은 법이지.’
아마 그걸 알면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해서 이를 드러낸 호랑이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그건 지금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때 앞서 가던 제갈승이 이층으로 된 전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숙부께선 저곳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계시오.”
3
좌소천과 제갈진문,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넓은 방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제갈세가와의 문제 때문에 온 것이 아니기에, 좌소천이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방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것 역시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제갈진문은 왠지 모르게 휘말려드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좌소천의 말이 잘못된 것이 아니니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기다리시지 않았나 모르겠군요.”
좌소천의 담담한 인사말에 제갈진문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본 가는 손님으로 불러들인 사람에게 독을 쓸 정도로 무지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네, 좌 공자.”
“뭔가를 오해하셨군요. 독이나 암습이 무서워 밖에서 식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편치 못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일 뿐이지요.”
“왜? 본 가의 사람들을 죽인 것이 마음에 걸렸나?”
“그거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인데, 마음에 걸리고 말 것이 뭐 있겠습니까?”
제갈진문이 인상을 찌푸렸다.
조카들을, 손자들을 죽여 놓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한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지나친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좌소천의 눈빛도 무저의 심해처럼 가라앉았다.
“지나친 말이라 하셨습니까?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먼저 저의 가슴에 한을 심어놓은 곳이 제갈세가입니다. 그나마 그 정도로 그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갈진문도 그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제갈진우가 무엇 때문에 천외천가를 도왔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천외천가를 도와주었기에 선우궁현이 죽었다는 것이다.
제갈진문의 이마에 가느다란 줄이 그어졌다.
“으음…….”
“그 이야기는 그만 하지요. 저는 제갈세가와 싸우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입술을 두어 번 씰룩이던 제갈진문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찻잔을 잡았다.
“좋네. 그 일에 대해선 그만 이야기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
첫 번째 기세 싸움은 좌소천의 승리였다.
그러나 곧이어 제갈진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먼저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네. 실력을 떠나, 제천신궁의 호북 총지부장이라는 자네가 과연 혁련 궁주의 눈을 속이고 우리와 같은 길을 갈 수 있겠나?”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지요.”
제갈진문이 이때라는 듯 좌소천을 몰아쳤다.
“그런 어정쩡한 대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네. 확실한 답을 해주게나.”
“그렇다고 하면, 무조건 믿으실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제가 이곳까지 놀러 왔다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손을 잡을 것이냐 마느냐가 아니라, 적을 어떤 방식으로 상대할 것이냐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걸 알아야 손을 잡아도 될 상대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을 잡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선택을 하는 건 자신이지 당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말에 제갈진문이 좌소천의 깊이 모를 눈을 빤히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천외천가를 상대하기 위해선 많은 무사들이 필요하네. 혁련 궁주의 허락 없이 많은 무사들을 동원하기 위해선 자네의 결단이 있어야겠지.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네. 혁련 궁주의 허락이 없어도 무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야.”
좌소천은 찻잔을 집어 들었다.
생각대로다. 제갈진문은 자신이 혁련무천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라면 저러한 질문을 던질 리가 없다.
반면에, 제갈진문이 아직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집어 든 찻잔을 입술에 댄 좌소천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반쯤 감았다.
그 행동이 제갈진문의 눈에는 망설이는 것처럼 보인 듯했다. 그가 냉랭한 말투로 좌소천을 몰아쳤다.
“그 정도도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찻잔을 내려놓은 좌소천이 눈을 들어 제갈진문을 직시했다.
“가지고 계신 계획이나 말씀해 보시지요.”
그런 것쯤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 표정.
너무 자신에 찬 좌소천의 말에 좀 더 강하게 몰아치려던 제갈진문의 입이 꾹 닫혔다.
“무림맹에선 어느 정도의 세력을 동원하실 생각입니까?”
거꾸로 좌소천이 나직이 입을 열어 제갈진문을 압박했다.
제갈진문은 갑자기 욱한 마음에 한 소리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사람을 부리는 무림맹의 군사답게 숨을 한 번 쉬는 사이 평정심을 유지했다.
“무림맹은 자네가 생각한 것보다 거대하지. 적이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적절히 인원을 동원할 거네.”
“적도 군사께서 생각하는 것보다 강합니다. 그들에 대한 판단을 한 번 잘못하면 무사들의 피가 강이 되어 흐를 겁니다.”
끝내 제길진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넨 무림맹의 힘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군.”
“그만큼 적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무림맹조차 조심해서 상대해야 할 정도로.”
“천해 때문에 말인가?”
“천해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자세히는 몰라도 알 만큼은 아네.”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자넨 많이 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말씀을 들어보니, 적어도 제가 군사보다는 많이 아는 거 같군요.”
좌소천은 천해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말해주었다.
그들의 강함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신녀의 무위에 대한 것부터 설명했다.
그러자 제갈진문이 코웃음 치며 믿지 못한다는 투로 말했다.
“신녀가 강하다는 말은 들었네. 그러나 그녀의 무위가 오제와 버금간다는 것은 믿을 수 없군.”
“제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오늘의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지요.”
좌소천은 더 이야기할 것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뜻밖이었는지 제갈진문이 엉겁결에 손을 내밀며 변명하듯이 말했다.
“나뿐 아니라, 강호의 어느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네.”
“그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말을 믿지요. 나는, 나를 믿지 않는 사람과는 손을 잡지 않습니다.”
무를 칼로 자르듯 말을 맺고 돌아서는 좌소천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
제갈진문은 멍하니 좌소천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좌소천이 망설임없이 걸음을 떼자 쓴웃음을 지으며 나직이 말했다.
“일단 앉게.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가면 어떡하나?”
그 말에 걸음을 멈춘 좌소천이 등을 보인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럼 돌아서는 조건으로 한 가지 협상을 더 하도록 하지요.”
“협상을 한 가지 더 하자?”
“그렇습니다.”
돌아서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무림맹의 군사인 자신의 앞에서 조건 운운한다.
그런데도 제갈진문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우둔한 사람이 아니다. 한때는 제갈세가의 지낭이었으며, 현재 무림맹의 군사가 바로 그다.
그런 제갈진문이기에, 좌소천의 말속에 자신이 미처 예상치 못한 뭔가가 있다는 것을 감으로 느낀 것이다.
“어디 말해보게. 들어보고 결정하지.”
좌소천이 천천히 돌아서며 나직이 말했다.
“제천신궁에 대한 것입니다.”
제갈진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천신궁?”
“정확히는, 궁주인 혁련무천에 대한 것이라 해야겠지요.”
제갈진문은 자신도 모르게 탁자 위에 놓인 손을 거머쥐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떨림이 일었다.
묘한 기분.
‘오랜만에 이런 기분이 드는군.’
본능이 말하고 있다.
좌소천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가 결코 천외천가의 일 못지않은 중요한 것이라는 걸.
그제야 제갈진문은 좌소천이 왜 자신을 만나러 이곳까지 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일단 앉게.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세.”
4
좌소천이 돌아선 그 시각.
제갈세가 깊은 곳의 전각 안에선 십여 명이 탁자 위에 놓인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모두가 오십이 넘은 제갈세가의 장로와 칠십이 넘은 원로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강호에 나가지 않은 지 이십 년이 넘은 사람도 있었고, 아예 강호 활동을 하지 않아서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조차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좌소천처럼 탁자 위에 놓인 나뭇가지를 자를 수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침묵이 버거운지 손에 턱을 괴고 있던 육순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오래전, 맹주이신 우경 진인의 검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검제 우경 진인. 현 무림맹의 맹주.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사람들은 모두 입을 연 노인을 바라보며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제갈세가에서 무(武)에 관한한 제일인이며, 지닌바 무예가 육기와 비등할 거라 여겨지는 존재. 지검자(智劍者) 제갈진유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이십 년 전이었지요. 당시 오십 초반이었던 그분께서 천천히 바위를 내려치는데, 검이 닿기도 전에 바위가 소리없이 갈라졌습니다. 한데 잘린 면이 거울처럼 매끄럽더군요.”
이십 년 전이라면 우경 진인이 오십대 초반일 때다.
당시 우경 진인의 무위는 절대의 경지 초입에 이르렀는데, 그때부터 강호인들이 그를 검제라 부르기 시작했다.
만일 좌소천이 자른 나뭇가지와 우경 진인이 자른 바위의 흔적이 같은 경지를 보이는 것일 경우, 그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좌소천의 무위가 절대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
다만 두 흔적이 같은 경지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제갈진유조차 확신을 하지 못했다.
하나 그 정도만으로도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경악하며 고개를 저었다.
“허어,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가…….”
“으음…….”
여기저기서 탄식과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작은 키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