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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27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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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127화

 

127화

 

 

 

 

 

 

목옥 안은 제법 넓었다.

 

능야산이 왔다는 말에 목옥 안으로 이십여 명이 몰려들었다.

 

나이 어린 사람들과 여인들. 그리고 사냥을 위해 나간 사람들과 적들의 동향을 파악하러 나간 사람들을 제외하면, 촌락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이 모여든 것과도 같았다.

 

시끌벅적하니 인사들이 오가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열다섯 명만이 목옥에 남았다.

 

대부분이 촌락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봐야 육순의 노인이 셋, 사십대와 오십대가 일곱, 나머지 다섯은 능야산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어려 보였다.

 

나이 많은 사람이 적은 데는 아픔이 있었다. 쫓기는 와중에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던져 적을 막아야만 했던 것이다.

 

능야산은 그들만이 남고 목옥 안이 조용해지자, 자신이 온 목적을 꺼냈다.

 

하늘을 닮은 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가 자신들의 적인 천외천가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것. 그리고 그 역시 천외천가와 불구대천의 원수이며, 천외천가를 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저는 그분에게, 천외천가를 칠 때 우리를 선봉에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하겠다는 약조를 받았습니다.”

 

능야산이 말을 맺고 입을 다물었다.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강인한 인상의 노인이 반쯤 감은 눈을 들었다.

 

“그가 정말 천외천가와 승부를 겨룰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보느냐?”

 

“이길 수 있다, 없다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 적어도 그들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 수는 있다고 봅니다.”

 

턱이 길쭉한 노인이 눈을 치켜떴다. 좌소천을 주인처럼 대하며 말하는 능야산이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너를 못 믿는 것은 아니다만 이제 이십대의 청년이 그렇게 강하다니, 솔직히 나는 믿기가 힘들구나.”

 

그에 대해선 능야산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까.

 

생각 같아서는 좌소천이 오제 중 한 사람인 철혈마제와 대등한 내력 대결을 벌이고, 구마 중 한 사람인 광한마존 섭궁안을 굴복시켰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일을 말하기 위해선 몇 가지 비밀을 털어놓아야 한다.

 

그 말을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비밀로 정해진 것은 아무리 자신들의 형제라 해도 말해줄 수가 없으니까. 좌소천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것은 형제간의 우의를 떠나 신의의 문제였다.

 

능야산은 구차하니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만을 말하기로 작정했다.

 

“훗날 만나보시면 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아시게 될 것입니다.”

 

“만나면 알 테니 무조건 네 말을 믿으라고?”

 

“형제들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제가 어찌 숙부님께 헛소리를 하겠습니까?”

 

턱이 길쭉한 노인, 증모당이 싸늘한 눈으로 능야산을 직시했다.

 

능야산도 굴하지 않고 그의 눈빛을 맞받았다.

 

“고금을 통틀어 서른도 안 돼 절대의 경지에 오른 자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몇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현재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요.”

 

“흥! 완전히 그에게 넘어갔군.”

 

증모당이 코웃음 치며 고개를 돌린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처음의 노인이 나서서 말을 돌렸다.

 

“야산, 천해에 대해 모르지는 않겠지?”

 

천해. 그 이름이 나오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심지어 증모당조차 짜증나 있던 얼굴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능야산은 마침내 나올 이야기가 나왔다는 걸 알고 신중하니 대답했다.

 

“제가 어찌 그들을 모르겠습니까?”

 

“그럼 천해가 열려도 그가 천외천가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까지 생각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숙부님.”

 

단호한 능야산의 대답에 노인의 눈이 잘게 떨렸다.

 

조금 전, 능야산은 ‘적어도’라고 말했다.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 내포된 말이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이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천해까지 나와도 승부를 자신할 수 없단 말이지?”

 

“제가 본 대로라면, 느낀 대로라면 그렇습니다, 숙부님.”

 

묵묵히 능야산을 바라보던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야산, 혹여 지금보다 더한 두려움을 줄까 봐 말은 안 했다만, 천해는 네가,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그들의 힘은 일파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솔직히 네가 말한 사람이 천해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구나.”

 

능야산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목화인이다. 천외천가의 추적을 따돌리고 형제와 동료들을 지켜낸 사람.

 

그러나 목화인의 말을 수긍하기에는 좌소천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도 컸다.

 

“제가 모시기로 한 분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미 호북의 반이 그분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뿐이 아니다. 비록 비밀이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호남의 동북부가 좌소천의 세력이고, 전마성과도 손을 잡은 상태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목화인의 마음이 조금 전보다 더 크게 흔들렸다.

 

“호북의 반이……?!”

 

주위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능야산을 쳐다보았다.

 

나이가 이십대라 했다. 하기에 능야산의 말을 듣고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정말로 호북의 반을 차지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게 정말인가?”

 

또 다른 노인, 기령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지금껏 형제들을 속인 적이 없습니다, 기 숙부님.”

 

“으음…….”

 

기령산이 침음성을 발하며 눈을 내렸다.

 

그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바위처럼 굴강해 보이는 오십대의 중년인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야산 말이 사실이라면 모험을 해볼 가치가 충분할 듯합니다, 큰형님.”

 

그의 말은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목화인이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리 생각하나?”

 

“어차피 언제까지 숨어 살 수만은 없는 일, 그렇다고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들을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잡아서 나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목화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 아우가 그리 생각했다면, 손을 들어 결정을 하기로 하지.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게.”

 

오십대의 중년인. 신농가에 은신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헌원신우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뒤이어 기령산이 손을 들고, 삼십대의 장한들이 눈빛을 빛내며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사오십대의 중년인들이 신중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찬성을 표했다.

 

맨 마지막으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증모당마저 가세하자, 손을 든 자는 열넷 중 열둘이다.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은 단둘.

 

사람들의 눈이 손을 들지 않은 두 사람을 향했다.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들이 손을 들지 않은 이유를 말했다.

 

“야산 아우의 말을 믿기는 합니다만, 서두르는 것은 반대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생각입니다. 모두가 나가면, 최악의 경우 자칫 대가 끊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야산이 말한 ‘그’가 정말 그 정도의 힘이 있는지도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좀 더 알아보고 나서 움직였으며 좋겠습니다, 숙부님.”

 

어쩌면 당연한 걱정이고, 이유였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능야산이 그 점에 대해 말하며 대책까지 내놓았다.

 

“섬서의 상황에 대해 들으셨겠지만, 언제 어느 때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전에 우리가 선봉에 설 힘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나중에 나가서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어차피 전부가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 분 숙부님과 젊은 아이들과 여인들을 비롯해 이곳을 지킬 사람들 일부는 남겼으면 합니다.”

 

그 말에 반대를 했던 두 사람도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닫았다.

 

대충 상황이 마무리되자 목화인이 결정을 내렸다.

 

“일단 헌원 아우가 서른 명을 데리고 가도록 하게.”

 

헌원신우까지 서른한 명이란 말이다.

 

일류 급 이상의 무예를 익힌 사람 중 반이 넘는 숫자. 그중 절정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반은 된다. 그리고 상황이 무르익으면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나올 것이다.

 

‘후우, 다행이군.’

 

능야산은 내심 안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있었다.

 

이십여 년 동안 신경을 곤두세운 채 힘들게 살아온 형제들이다. 게다가 좌소천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이 들어도 허무맹랑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아마 자신을 믿지 않았다면, 그만큼 천외천가에 대한 증오가 깊고 그들을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다면, 이리 쉽게 사람을 내보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때 헌원신우가 말했다.

 

“야산, 이것만 알아라. 우리가 너의 말을 믿고 나가기는 하지만, 나가면 그가 정말 그 정도의 사람인지 우리 나름대로 알아볼 것이다.”

 

그 말이 마치 좌소천을 시험해 보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능야산으로서도 그것까지는 말릴 수 없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했다.

 

‘볼만하겠군.’

 

 

 

 

 

4

 

 

 

 

 

정은은 하루를 만월평에서 보내고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하하하, 아쉽지만 소식을 전해야 하니 먼저 가겠네. 제갈세가에서 보세!”

 

그렇게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신양에서 소환 명령이 떨어진 것은, 그렇게 정은이 떠난 지 팔 일이 지나서였다.

 

 

 

[호북총지부장 좌소천은 이 명령서를 받는 즉시 환궁하여, 최근 떠도는 괴이한 소문에 대해서 직접 소명토록 하라.]

 

 

 

명령서가 도착했을 때, 좌소천은 만월평에 있지 않았다.

 

호연금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소환 명령이 떨어질 거라는 알았기에 미리 자리를 비운 것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전마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한수 일대를 돌아보기 위해 떠난 것으로 했다.

 

명령서를 받은 사람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남겨놓은 공손양이었다. 

 

그는 서신 하나를 제천신궁으로 보냈다.

 

 

 

[총지부장께서는 전마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고 서쪽의 지부를 살펴보러 가셨습니다. 이삼일 후에 돌아올 것이니, 늦어도 닷새 후에는 신양으로 가실 것입니다.]

 

 

 

물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좌소천도 알고 있었다. 미리 작성해 놓은 서신에 날짜만 비워놓았었으니까.

 

 

 

 

 

* * *

 

 

 

 

 

만월평에서 한 마리 전서구가 하늘 높이 날아오를 때. 좌소천은 종상의 강가에 서서 물끄러미 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바람에 쓸리고 강물에 쓸린 갈대가 힘겹게 버티며 흔들린다.

 

오 년 전, 소영령을 구하기 위해 왔던 곳.

 

오늘도 여전히 강물은 흐르고 있다.

 

‘미안하다, 영령아. 내 발길로 천하를 뒤져서라도 너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구나.’

 

바람결에 갈대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속삭임처럼 들려온다.

 

‘나 여기 있어, 오빠. 왜 찾으러 오지 않는 거야. 이제 나를 잊은 거야?’

 

좌소천의 고개가 하늘을 향해 쳐들렸다.

 

‘아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잊는단 말이냐? 찾을 거다. 꼭 찾을 거다.’

 

그때 뒤에서 도유관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능 형이 돌아왔습니다.”

 

좌소천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렸다.

 

“함께 왔소?”

 

“다섯이 왔습니다. 총 서른한 명이라는데, 다른 사람들은 외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데… 그들은 주군을 만난 후에 결정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십수 년을 쫓기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만큼 조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좌소천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어머니도 십수 년간 이름을 바꾸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능력을 알고 싶겠지. 천외천가와 싸울 힘이 있는지.’

 

어차피 말로만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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