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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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25화
125화
“받아들여도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하긴 미려의 일도 그렇고, 언제까지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지. 좋다, 서신을 보내서 뜻을 고맙게 받아들이겠다고 전하라. 그리고 답례로 순우무종을 보낼 때, 그쪽 어른들께 인사를 시킬 겸 미려를 딸려 보내겠다고 해라.”
“너무 빠르지 않겠습니까?”
“놈들을 위해서가 아니야. 소천이를 제거하는 데 방해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지.”
“하긴…….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너는 당하의 무사들에게 전령을 보내서 방성까지 접수하라고 해라.”
혁련호정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제야 뭔가가 제대로 되는 듯했다.
‘그래, 본 궁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감히 소천이 같은 놈이 욕심낼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날 저녁, 사경의 북소리가 울릴 무렵이었다.
황강산 서쪽을 흐르는 강가의 절벽 중간이 무너져 내리더니 석 자가량의 구멍이 뻥 뚫렸다.
와르르르…….
먼지가 가라앉았을 즈음, 사람 머리 하나가 구멍에서 쑥 나왔다.
“후와! 겨우 다 왔네.”
달빛에 비친 얼굴은 잘 봐줘도 이십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입술을 말아 올리며 거칠게 웃었다.
“크크크. 그건 그렇고, 나중에 내가 없어진 걸 알면 아버지하고 형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
허락을 받지 않고 금역을 벗어난 터. 심하게 꾸중을 할지도 몰랐다. 마음대로 기관을 부수었다고 혼을 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바깥세상으로 나왔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나중 일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일단 나가볼까?”
그는 좁은 구멍을 넓히기 위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퍼벅!
가볍게 휘둘러지는 손에 바위가 모래처럼 부서지며 구멍이 넓혀졌다.
잠시 후 구멍을 넓힌 그는 천천히 구멍에서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하늘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삼 년 만에 보는 달이군.”
그가 지내던 곳에도 햇빛은 들어왔었다. 하지만 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빛인지라 해도, 달도, 별도 볼 수가 없었다.
직접 달과 별을 본 것은 삼 년 만이었다.
정말 밝았다. 그리고 정겨웠다.
한참 동안 별과 달을 바라보던 그는 옷을 탈탈 털고는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아예 하지 않았다.
몰래 빠져나온 이유가 뭔데, 집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풍운 강호가 눈앞에 있거늘!
“강호여, 내가 간다! 음하하하하!”
5
은은한 다향을 음미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공손양이 찾아왔다.
그가 자리에 앉자 벽여령이 찻잔을 준비하고 차를 따랐다.
“저는 나가볼게요. 즐거운 이야기들 나누세요.”
생긋 웃은 벽여령이 밖으로 나가자, 좌소천이 입에 대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지금쯤 궁주가 보고를 들었겠군요.”
“그럴 것입니다, 주군.”
며칠 전 천이당과 밀천단의 밀정이 만월평에 들어왔다.
그들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만월평에 들어오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정문을 통해서 들어오든지, 아니면 절벽을 기어올라 들어오든지.
공손양은 그들이 올 거라 생각되는 이틀 동안 정문의 경계를 느슨하게 해두었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정문을 놔두고 힘들게 절벽을 기어오를 바보가 누가 있을까. 들키면 적으로 간주되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생각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정문을 통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미행이 따른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결국 그들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정체가 드러났고, 그때부터 연극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공손양으로부터 미리 해줄 이야기를 듣고 접근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어지간한 사람은 어차피 상황 자체를 모르니 상관할 것도 없었다.
“궁주가 어떤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하시오?”
“분노해서 당장 무사들을 소집하든지, 아니면 좀 더 확실한 상황을 알기 위해 좀 더 철저하게 조사를 하든지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없소?”
공손양이 좌소천을 직시했다.
“있습니다.”
입을 여는 공손양의 표정에 염려가 가득했다.
“아마 주군을 소환하려 할지 모릅니다.”
좌소천이 조용히 웃었다.
“어차피 가려 했는데, 잘되었군요.”
공손양은 쓴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입술이 타 들어가는 듯했다.
제천신궁에 소환되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좌소천이다.
그런데도 천하태평이니 원.
찻잔을 내려놓은 공손양이 물기 있는 입술을 떼었다.
“아마 심하게 몰아칠 것입니다.”
“그럴 것이오. 어쩌면 죽이려 할지도 모르지요.”
공손양은 탁자를 쾅, 내려치고 왜 그렇게 태평하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도대체가 이 사람은…….’
그때 좌소천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궁주는 나를 죽일 수도, 억압할 수도 없을 거요. 나는 궁주에게 당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명분을 얻기 위해서 가는 것이니까.”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자랑 같아서 말하기가 좀 뭐한데… 궁주는 나를 이길 수 없소.”
제천무제가 자신을 이길 수 없단다. 그 말을 하고 쑥스러운지 차를 홀짝인다.
공손양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풀썩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니었다.
“제천신궁에는 궁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주군. 주군께서 궁주보다 강하다 해도 혼자 몸으로는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을 데려갈 것이다.
그러나 내궁, 그것도 제천전에 들어가는 사람은 결국 좌소천 혼자다.
공손양으로선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궁주를 향해 칼을 겨누지 않았소. 그럼에도 궁주가 나를 억압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요. 확실한 명분만 선다면 궁지에 몰리는 건 결국 궁주가 될 것이오. 모든 사실이 밝혀지면, 결국 제천신궁의 무사들은 궁주가 먼저 신의를 어겼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될 테니까.”
좌소천에게는 비장의 패가 있다. 제천신궁 간부들의 마음을 돌릴 패가.
그것이 드러나면,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제천신궁 간부들의 검 중 적어도 반은 내려질 것이다.
물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제천전, 그곳을 벗어나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된다.
좌소천은 공손양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제천신궁을 통째로 얻기 위해서 가는 거요. 그 정도 모험도 하지 않고 제천신궁을 얻으려 하면, 사람들이 나를 날도둑놈이라고 하지 않겠소?”
공손양은 좌소천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천하에서 제일 간 큰 도둑이 바로 주군일 거요.’
어쨌든 좌소천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로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수들로만 추려서 주군의 뒤를 받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만큼은 거부하지 마십시오, 주군.”
공손양은 미리부터 못을 박고 말했다.
좌소천도 그것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너무 많은 인원을 동원하지는 마시오. 자칫 엉뚱하게 비칠 수도 있으니까.”
“그리하겠습니다, 주군.”
일단 허락은 떨어졌다.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할 일.
공손양은 내심 한 가지 결심을 굳히고 눈을 빛냈다.
‘위험한 만큼 완벽한 기회가 될 수도…….’
6
오랜만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던 날, 무림맹에서 한 사람이 만월평으로 찾아왔다.
“흠, 여기가 그 유명한 만월평이란 말이지?”
청의 무복을 입은 그는 이십대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는 만월평에 들어선 거대한 건축물들을 바라보더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정문으로 다가갔다.
“정지!”
위사 하나가 나서더니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로 오셨소?”
깨끗한 청의, 등에 매달린 한 자루 검. 귀공자처럼 깨끗한 얼굴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웃음.
위사는 그를 아무렇게나 대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년은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마냥 환하게 웃음 지으며 위사를 향해 다가갔다.
“잘되었소이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좀 알려주시구려.”
일반적인 무사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그의 말투에 위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어디 산속에서 도 닦다 왔나?’
일반적인 무복을 입은 걸로 봐서 도인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한낱 위사에게 정중히 말하는 청년의 태도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별것도 아니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어디 한두 번 봐왔던가?
“험, 내가 그래도 이곳에 사는 사람은 거의 다 아오만, 누굴 찾으시오?”
“좌소천이라고, 이곳 총지부장이라 하던데…….”
위사는 한껏 커진 눈으로 청년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최근 내려온 명령도 있고, 청년의 정중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눈살을 찌푸리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내비쳤다.
“그분을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요?”
청년이 또다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뒤로 넘어져 뒤통수가 깨져도 웃을 것 같군.’
위사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두 사람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곰처럼 커다란 덩치, 우렁우렁한 목소리. 이자광이었다.
전하련과 함께 돌아다니다 교대를 하기 위해 진월각으로 가는데, 갑자기 좌소천이라는 말이 들리자 다가온 것이다.
이자광은 청년을 빤히 쳐다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나조차 크기를 잴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어. 누구지?’
전하련도 눈을 가늘게 뜨고 이자광의 옆에 나란히 서서 청년을 지켜보았다.
조금은 긴장한 듯, 호기심을 가진 눈빛. 순하게 보이는 청년이었다.
“누구신데, 무슨 일로 총지부장님을 찾으시는 거요?”
이자광의 굵은 목소리가 나직하니 깔렸다.
청년은 이자광과 전하련을 바라보더니, 옆집 친구를 만나러 온 것처럼 말했다.
“그건 아직 말할 수 없소이다. 워낙 중요한 일이어서. 다만 나쁜 일로 온 것은 아니니 만날 수 있게 해주시구려.”
그때 전하련이 청년에게 전음을 보냈다.
<우리는 총지부장님의 직속 호위무사예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다면 그분을 만날 수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청년의 맑은 눈이 두 사람을 향했다.
상당한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맑고 흔들림 없는 눈으로 봐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가 빙긋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무림맹에서 왔소이다.”
공손양을 통해 보고를 받은 좌소천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무림맹에서?”
“군사의 전언을 가지고 왔다 합니다, 주군. 자세한 것에 대해선 웃기만 할 뿐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무림맹과는 무당에서 마주친 기억밖에 없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 관계로 끝났다.
그런데 무슨 일로 자신에게 사람을 보낸 걸까?
그것도 군사라면 제갈세가의 제갈진문이다. 그가 자신과 제갈세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모르진 않을 터.
“무림맹이 무엇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사람을 보냈다 생각하시오?”
“혁련 궁주와의 갈등을 알고 보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무림맹의 정보망은 천하 곳곳에 뻗어 있다. 당장 개방의 제자들만 해도 강남북에 수만이 있지 않던가?
그들이라면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에 대해 눈치를 챘을지도 몰랐다.
더구나 그걸 모른다면 자신에게 사람을 보낼 일도 없을 것이었다. 제천신궁은 무림맹과 이미 금이 간 사이니까.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주군. 이 기회에 무림맹과의 관계를 정립해 놓으면 나중에 뜻밖의 원군을 얻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나직이 말하는 공손양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변한다.
좌소천도 그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손양이 미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전에 공손 형이 먼저 알아야 할 일이 있소.”
좌소천은 공손양에게 제갈세가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공손양의 눈이 커지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정말 이상하군요. 무림맹의 군사가 아무리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 해도 제갈세가의 처지를 외면할 수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둘 중 하나겠지요. 잠시 원한을 접어놓아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든지, 아니면 정말로 대의를 위해 원한을 접었든지.”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원한을 잊지 않고 뭔가 수작을 부리기 위함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공손양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있을 터. 자신이 말해봐야 걱정이 태산인 사람들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만 안길 뿐이었다.
좌우지간 만나보면 알겠지.
“들어오라고 하시지요.”
“예, 주군.”
공손양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청의를 입은 청년이 웃음을 지으며 공손양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를 본 순간, 좌소천은 눈을 크게 뜨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게 누구야?’
“잘 있었나?”
청년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치 며칠 전에 헤어진 친구처럼.
좌소천이 풀썩 웃으며 일어섰다.
“자네가 이곳까지 웬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