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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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21화
121화
왠지 모를 무거운 분위기에 사람들은 침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는 듯했다.
좌소천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마 여러분들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오. 얼마 전부터 본인과 궁주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소. 그리고 어떤 연유로든, 본인은 몇 차례의 암살 기도에 노출되어 하마터면 죽을 뻔하기도 했소. 삼화의 사건은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니 굳이 더 말하지 않겠소.”
사공은환의 죽음 이후 수많은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좌소천과 혁련무천이 완전히 갈라서서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는 소문조차 돌고 있던 터였다. 물론 공손양의 지시에 따라 패천단의 수하들이 퍼뜨린 소문이었지만.
어쨌든 좌소천이 황파를 떠나 있는 사이, 그러한 소문은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서 기정사실처럼 변질되어 있었다.
하기에 사람들은 누구도 놀라지 않고 좌소천의 입만 주시했다.
긴장과 초조, 기대감이 뒤섞인 눈빛.
좌소천은 그러한 눈빛을 쓸어보며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본인은 천외천가와 불구대천의 원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궁의 사정을 생각해서 개인의 원한에 사사로이 궁의 무력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소. 강호인으로서 신의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 본인은 그 약속을 지켜왔소! 한데… 사공은환과 천외천가는 사람을 보내 나를 죽이려 했고, 궁주는 그러한 천외천가와 손잡고 무림맹과 맞서며 북벌을 계획하고 있는 판이오. 신의를 궁주가 먼저 깨뜨린 이상! 나는 더는 궁의 위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오!”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표정들이다.
알고 있던 자들도, 모르고 있던 자들도 한결같이 눈을 부릅뜨고 표정을 굳혔다.
“하면, 소문대로 정말 새로운 세력이라도 만드시겠다는 말씀이오?”
장만학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못할 게 또 뭐 있겠나?”
벽수양이 놀랄 것 없다는 듯 되물었다.
엽풍이 이를 악물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건 배신하겠다는 말이 아니외까?!”
“배신? 배신이란 말뜻이 무엇인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던가? 하면 누가 신의를 저버렸는가? 복수에 궁의 무력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총지부장인가, 아니면 그런 총지부장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암살하려 한 궁인가?”
“그거야…….”
“나는 솔직히 지금까지 참아온 총지부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천하의 모든 강호인들에게 물어보게.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를 보던 간부들은 입을 닫고, 열한 명의 지부장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돌아가는 상황만 주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창안과 악청백 등 서부 쪽 지부장들은 이미 좌소천의 사람이었고, 동부 쪽 지부인 홍안, 마성, 영산, 희수 지부장은 처음부터 제천신궁의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동부 쪽 지부는 한때 신월맹의 지부였으나, 신월맹이 망하자 제천신궁의 지부로 현판만 바꿔 단 곳이었다.
그들은 검인보주 벽수양이 좌소천의 편에 서자 자연스럽게 좌소천 쪽으로 기울었다.
장내가 다시 조용해지자, 좌소천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본인이 여러분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의 동의를 얻고자 함이 아니오. 이미 본인의 마음은 굳어졌소. 본인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돌아설 것인지, 여러분은 그것만 결정하면 되오.”
관악이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궁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책은 있습니까?”
“혁련 궁주는 결코 우리를 어찌할 수 없소. 그것만큼은 나 좌소천이 장담하겠소!”
좌소천은 강하게 말을 맺고 옆을 바라보았다.
옆에 서 있던 공손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제가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여러분으로부터 다짐을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분간은 오늘의 일이 알려져서는 안 되는 만큼, 문밖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오늘 일에 대해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사의 명예를 걸고.”
여기저기서 몇 사람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만큼 공손양의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니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 벽수양이 먼저 맹세하겠소.”
“본인 역시 총지부장의 명이 있기 전에는 절대 입을 열지 않겠소.”
벽수양에 이어 악청백과 황창안이 맹세를 한다.
곧이어 지부장들이 일제히 맹세를 했다. 그리고 단청호와 관악도 무거운 표정으로 맹세를 했다.
남은 사람은 장만학과 엽풍뿐.
그러나 맹세를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닥칠 거라는 걸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 장만학, 무사의 명예를 걸고 오늘의 일에 대해 입을 닫겠소.”
“나 역시…….”
장만학과 엽풍마저 입술을 씹으며 맹세를 하자, 공손양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총지부장께서 궁주의 공격에 대해 걱정하시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공손양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 광한방을 복속시킨 구포방을 아실 겁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구포방으로 인해 호남 일대는 태풍이라도 몰아친 듯 난리가 났지요.”
그 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십 년 전 신월맹 멸망 이후 강호 최대의 사건이거늘.
장만학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오늘 일과 무슨 상관이라고……?”
공손양이 조용히 웃었다.
“상관이 있습니다. 구포방 역시 총지부장님을 따르고 있는데, 어찌 상관이 없는 일이겠습니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엽풍이 말을 더듬으며 눈매를 가늘게 떨었다.
“서, 설마… 구포방이 총지부장께서 거느린 세력이라는 말이오?”
공손양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구마 중 일인인 광한마존 섭궁안을 물리칠 고수가 강호에 흔한 것은 아니지요.”
“마, 맙소사!”
정말 ‘맙소사!’라는 말이 나올 일이었다.
장내의 사람들 중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벽수양과 악청백, 황창안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린 채 좌소천을 주시했다.
그때 표정을 굳힌 공손양이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곧 천하제일의 세력이 탄생할 겁니다. 천하에서 가장 큰 배를 함께 타고 갈 것이냐, 아니면 신의를 저버린 혁련 궁주의 명령을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하나, 이것만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한 번 신의를 저버린 사람은 두 번도 저버릴 수 있다는 걸.”
만근 무게가 머리를 짓누른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혼신을 다해 목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괴물 같은 놈.”
동천옹이 힐끔거리며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좌소천을 사람이 아닌 이상한 괴물을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입도 크지. 순찰 간다더니 그사이에 광한방을 꿀꺽하고 와? 저게 어디 사람이야?”
무영자도 질렸다는 듯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구포방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기에 소문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다만 순찰을 간다고 해서, 좌소천과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이 광한방에 직접 갔단다. 가서 항복을 받아내고, 광한방의 현판에 직접 ‘구포방 상양 지부’라는 글자를 써주고 왔단다.
단 며칠 만에, 산구석의 작은 중소 문파도 아니고 광한방을, 그것도 자신들보다 눈곱만큼 강한 것으로 알려진 섭궁안을 누르고 깨끗이 집어삼킨 것이다.
동천옹과 무영자가 좌소천을 사람처럼 보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때 위지승정이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광한방을 쳤을 때는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거라 본다만. 혹시 그 일 때문에 간부들과 지부장들을 불러모은 것이더냐?”
그제야 뭔가를 눈치 챘는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좌소천을 향했다.
좌소천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간부들과 지부장들에게는 제 뜻을 밝혔습니다. 이제 궁주를 만나 담판을 짓는 일만 남았습니다, 스승님.”
쿵!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그 말이 좌소천의 입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심지어 항상 밝은 표정이던 동천옹조차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이제 제천신궁과 완전히 갈라서는 것이냐?”
“갈라서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될 겁니다.”
“설마… 제천신궁을 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약속을 했다. 하기에 다른 방법을 취할 것이다.
피는 적게 흘리고, 좀 더 완벽한 하늘이 될 방법을.
좌소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제천신궁을 치지는 않을 거라 하자 네 노인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이러나저러나 그들 역시 제천신궁의 그늘에서 수십 년을 보낸 사람들이 아니던가.
비록 지금은 좌소천이 좋아 그 곁에 있기로 했지만, 제천신궁을 치는 것이 반가울 리는 없었다.
“네 마음이 그렇다니, 그건 다행이구나. 마음에 걸렸었는데…….”
“뭐, 약간의 다툼은 피할 수 없겠지. 하지만 전면적인 싸움은 서로에게 해가 될 뿐이다. 잘 생각했다.”
위지승정과 등소패는 내심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가라앉은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날 때였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동천옹이 좌소천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뭐, 그거야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래, 벽가 아이는 어떻게 할 것이냐?”
난데없는 물음에 담담하던 좌소천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예? 뭘… 말입니까?”
“어차피 같이 살 거면 올해를 넘기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만.”
“저… 그게…….”
“그럼 내년쯤 아이가 생길 텐데……. 아이야 우리가 잘 키워주마.”
불도 안 땠는데, 밥부터 푸는 동천옹이다.
다른 세 노인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쳐다본다. 광한방에 대한 것, 혁련무천과의 갈등에 대한 것은 까마득히 잊었다는 듯.
자신이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나눈 걸까?
덜컹.
좌소천이 입도 뻥긋 못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벽여령이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그녀가 차를 따라 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나누고 계세요?”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럼요. 중요하고 말고요.”
“내년이면 늦을 것 같은데 말이죠.”
“쌍둥이를 낳으면 더 좋을 텐데…….”
듣다 못한 좌소천이 다급히 말했다.
“별일 아니오. 어르신들께서 그냥 농담을 좀…….”
그런데 벽여령이 홍조 띤 얼굴로 밝은 웃음을 지었다.
“어머, 저도 쌍둥이를 낳고 싶은데. 굉장히 귀여울 거예요. 그렇죠, 조부님?”
동천옹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역시 우리 령아 생각은 이 할아비와 똑같구나.”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벽여령이 동천옹을 조부라고 부른 걸까?
조개로 만든 노리개를 벽여령에게 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조손으로 부르며 지내지는 않았었다.
‘하긴 한 달이나 지났는데…….’
그때 벽여령이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의미 모를 묘한 눈빛을 지은 채.
“저는 나가 있을게요.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나누세요.”
그 말이 꼭 ‘좌 공자를 더 강하게 압박해 주세요’ 하는 말처럼 들렸는가 보다.
네 노인은 그 후로도 반 시진 동안 합공해서 좌소천을 빈사 지경까지 몰고 갔다.
그러다 좌소천이 쉽게 무너지지 않자 다음을 약속하고 일단 방을 나갔다.
“쉬어라.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꾸나.”
한쪽 눈까지 깜박이는 등소패의 말에 좌소천은 차마 안 하겠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근 한 시진 만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결사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지켜낸 좌소천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후우, 절대고수 네 사람의 합공을 받는 것보다 더 힘든 시간이었어.’
그때 문득 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어르신들 말대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