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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2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120화

 

120화

 

 

 

 

 

 

단 삼 초에 불과한 대결.

 

하지만 경지에 달한 고수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삼 초의 대결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기에 다문 입을 열지도 못하고 장내만 주시했다.

 

어떻게 된 걸까? 누가 이긴 걸까? 

 

그때 좌소천의 무진도가 먼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얼굴이 창백해진 그의 입에서 진심 어린 탄성이 나직이 흘러나왔다.

 

“정말 기막히게 멋진 검이었습니다.”

 

섭궁안의 볼이 씰룩였다. 조금 전의 희열이 아직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솔직히 제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는 노선배보다 강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노선배처럼 멋진 검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섭궁안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런가? 고맙군.”

 

주위에서 서서히 웅성거림이 일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그러다 잠깐 사이 수십 명이 소리치듯이 말했다.

 

웅성웅성!

 

“우리가 이긴 건가? 태상께서 저자를 이긴 거 아냐?”

 

“그런 것 같지? 마지막 일검으로 태상께서 이기신 거 맞지?”

 

“맞아! 우리가 이겼다! 태상 방주께서 이겼다!”

 

그러나 막상 절정에 달한 고수들은 입을 다물고 상황을 더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웩!”

 

섭궁안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하며 허리를 구부렸다.

 

동시에 웅성거림이 갑자기 가라앉고 질식할 듯한 침묵이 장내를 내리눌렀다.

 

섭궁안이 무너진 것은 그 한 사람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광한방이 끝장났다는 말이다.

 

묘한 것은, 피를 토한 섭궁안의 입가에 여전히 웃음이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래, 뭘 원하나?”

 

 

 

 

 

2

 

 

 

 

 

잠시 후.

 

공손양과 도유관이 ‘광한방’이라 쓰인 거대한 현판을 들고 왔다.

 

길이만 이 장에 이르는 현판이었다.

 

어느 순간, 현판을 바라보던 좌소천이 손을 들어서 휘둘렀다.

 

일필휘지. 광한방이라 쓰인 글자 밑에 일곱 자의 글이 더해졌다.

 

“이 현판을 매달 것인지, 아니면 현판을 부술 것인지는 노선배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섭궁안의 노인이 파르르 떨렸다.

 

단순히 현판의 문제만이 아니다.

 

눈앞의 현판을 매단다면, 광한방은 현 상황에서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현판을 부순다면, 광한방이라는 이름도 호남에서 사라지게 된다.

 

둘 중 하나의 선택.

 

너무나 힘든 결정 앞에 섭궁안의 주름진 입술이 한참 동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떨리는 그의 눈이 천천히 현판을 쓸었다.

 

용사비등한 글씨 일곱 개가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구포방 상양 지부]

 

 

 

호남에서 이백 년을 군림해 온 광한방이 일개 방파의 지부가 되어야만 한단 말인가?

 

참담한 자괴감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때 좌소천 곁에 서 있던 공손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현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섭궁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무슨 뜻인가?”

 

“주군께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날, 앞에 있는 글자가 바뀔 겁니다. 그럼 각 지부의 현판들이 모조리 바뀔 수밖에 없지요.”

 

섭궁안이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없었다.

 

좌소천과 직접 겨루어본 그다.

 

천하에 좌소천을 이길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 것 같으냐며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있을지도 모른다. 오제, 육기, 구마 중에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적지 않으니까.

 

그러나 콕 집어 누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자신 앞에 있는 청년이 이미 하늘이라는 것. 그것도 천하를 향해 나아가는 자!

 

섭궁안은 갑자기 광한방이 작게 느껴졌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눈에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보였다.

 

개중에는 자신의 아들들도, 손자들도 있었다. 모두가 분노에 찬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표정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마치 남이 손에 쥐어준 월병을 빼앗긴 철부지들의 표정만 같다.

 

섭궁안은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보아라! 너희들이 조상들께서 이루어놓은 것을 누리며 만족하고 있을 때, 눈앞의 이 사람은 천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의 잠든 꿈을 깨우기 위해서, 오늘 모든 것을 내던질 생각이니라.’

 

그의 눈이 좌소천을 향했다.

 

“현판을… 달겠네. 앞으로 광한방은 그대를 따를 것이네.”

 

 

 

 

 

3

 

 

 

 

 

신녀는 오연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십여 명의 정한녀를 골짜기에 남겨놓고 떠났는데도 하루 만에 다시 꼬리를 잡혔다.

 

자신들을 둘러싼 채 다가오는 천외천가의 추적대는 모두 이백여 명 정도. 문제는 그들이 모두 고수들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을 이끄는 자가 바로 천해의 유사와 십암 중 셋이었다.

 

다행이라면 사방이 터진 넓은 산등성이에서 마주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오늘의 위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터.

 

신녀는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빌어보았다.

 

‘하늘이여, 한 많은 여인들을 도와주소서!’

 

한편 신녀를 중심으로 뭉친 백여 명의 여인은 죽음을 각오한 표정으로 각자의 무기를 꼬나들었다.

 

그녀들은 안다. 자신들이 아니라면, 신녀 혼자라면 얼마든지 적들의 추적을 뿌리칠 수 있다는 걸.

 

하기에 죽음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이곳은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먼저 떠나시옵소서, 신녀!”

 

십이정한녀를 이끄는 일한녀의 비감에 찬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산을 울렸다.

 

한령파파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는 천천히 신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신녀, 그러시구려. 이 늙은이도 이곳에서 저놈들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소이다.”

 

“파파! 그건 안 될 말이에요!”

 

신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령파파는 담담한 눈으로 신녀를 바라보며 전음을 보냈다. 죽기 전, 천외천가의 놈들과 싸움을 하기 전 한 가지 사실만은 알려줘야 했다.

 

<신녀, 혹시라도 중원으로 가거든 좌소천이라는 이름을 지닌 청년을 찾아보시구려.>

 

갑자기 신녀의 면사가 파르르 떨렸다.

 

그 이름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다. 모르는 이름인데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떨림이 전해진 것이다.

 

<그, 그게 누군가요? 누군데 제 가슴이 이렇게 아픈 거죠?>

 

그날의 일이 생각나는지, 한령파파의 눈에 잔잔한 웃음이 떠올랐다.

 

<천외천가의 애송이가 신녀를 한탄곡에 던졌는데, 그때 죽음을 무릅쓰고 몸을 날려서, 신녀를 단애의 튀어나온 곳에 던지고 한탄곡에 빠진 청년이라오.>

 

천외천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분노에 찼던 이유가 그래서였던가?

 

신녀는 얼어붙은 듯 몸이 굳었다.

 

한령파파는 신녀의 내심을 짐작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찌 알랴. 무당에서 마주친 청년이 좌소천이었다는 걸.

 

그 사실을 모르는 그녀가 신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아는 것조차 자세히 말해줄 여유도 없었다.

 

<살았을지는 나도 모른다오. 하나, 그를 찾다 보면 신녀의 신세 내력도…….>

 

바로 그때였다.

 

천외천가의 추적대 중에서 백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흑의노인, 유사가 흐느적거리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켈켈켈켈, 죽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군.”

 

그는 거리가 십여 장으로 가까워지자, 걸음을 멈추고 신녀를 노려보았다. 

 

사이한 광망이 그의 눈에서 하늘거리며 흘러나왔다.

 

“정말 대단한 계집이야. 노부로 하여금 긴장을 느끼게 하다니. 하나, 그것도 오늘로서 끝이다, 계집!”

 

유사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천하에 적수가 없을 거라 생각한 그다. 그런 자신이 어린 계집 하나를 죽이지 못해서 며칠간이나 잠도 못 자고 추적을 하다니!

 

설령 신녀가 한천빙백소수공을 익히고 있다 해도 그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러나 세 번의 대결에서 조금의 우세도 보이지 못하자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존심을 접고 신녀를 자신과 동등하게 여기기로 했다. 하기에 이제 더는 혼자서 신녀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흑암으로 하여금 자신을 돕도록 말해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 반드시 신녀를 죽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말에도 신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눈살을 찌푸리며 짧게 입을 열었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신녀의 입에서 광기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오호호호호호! 내 하늘에 맹세하노니, 천외천가의 씨를 말려 버릴 것이다!”

 

 

 

 

 

 

 

8장 선택(選擇)

 

 

 

 

 

1

 

 

 

―광한방이 악양의 구포방에게 무너졌다!

 

―광한방주 섭정산이 구포방의 무사에게 한 팔을 잃고 패배한 것은 물론, 구마 중 한 사람인 광한마존 섭궁안이 무공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졌다.

 

―광한방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구포방의 상선을 탈취하고 구포방의 무사들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 일 때문인지 갑자기 산을 내려온 형산파의 제자들조차 그 소식을 듣고 장사에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지진이라도 난 듯 호남이 뒤흔들렸다.

 

와중에도 사람들은 그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사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뭐? 광한방이 구포방에게 무너져? 구포방이 뭐 하는 곳인데?”

 

“낄낄낄, 농담도 가려가며 해야지. 그러다 광한방의 무사들 귀에 들어가면 치도곤을 당해, 이놈들아!”

 

“차라리 동정호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해, 그럼 믿어줄 테니까! 사람 웃기지 말고 술이나 퍼마셔!”

 

하지만 그 일이 형산파에 의해 사실인 것으로 알려지자, 한여름인데도 호남의 강호문파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잔뜩 긴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포방의 공격에 광한방의 무사 육백이 죽었다고 한다.

 

천정산에서 흐른 피가 상강을 붉게 물들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상양 인근의 아낙네들이 천정산에서 흘러내린 냇가에서는 사흘간 빨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비무에서 패한 섭궁안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광한방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구포방!

 

우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호남을 강타한 태풍의 눈은 너무 강력했다.

 

그에 비하면 사흘간 이어진 비바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광한방의 현판 아래에 일곱 글자가 추가된 지 열흘. 호남 일대 삼십여 문파의 사자가 악양을 찾았다.

 

새로운 강자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보름이 지나자, 강서성의 북서부 쪽에 위치한 문파들조차 악양으로 사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광한방이 무너진 것은 단순히 호남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악양에서 강서성의 북서부는 하루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언제 구포방의 무사들이 강서로 몰려올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 강서성 제일의 세력이자 천하사패 중 하나인 사천련은 행여나 구포방이 강서성으로 넘어올까 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악양을 주시했다.

 

그렇게 그해 칠월은 유난히 뜨겁고도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 일도 결국은 천하를 뒤집어 놓을 태풍의 전조일 뿐이었다.

 

 

 

2

 

 

 

태양이 이글거리는 칠월 말.

 

좌소천은 폭풍을 가슴에 안고 이십칠 일 만에 만월평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옴과 동시 십이 개 지부의 지부장들도 일제히 만월평으로 모였다. 좌소천이 악양을 떠나기 전, 사람을 보내 그들을 소집한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제 내부 정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때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좌소천은 앉아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장만학과 관악, 엽풍 등 총지부의 간부들은 물론이고, 긴급히 불러들인 각 지부의 지부장들이 각각의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었다.

 

개중에는 황창안이나 악청백, 벽수양처럼 좌소천이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아는 사람도 있었고, 장만학이나 엽풍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소집 명령에 따라 들어온 자들도 있었다.

 

끼이익.

 

거친 소음을 내며 진월각의 문이 닫히고, 좌소천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눈이 좌소천을 향했다.

 

좌소천은 그들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한마디, 한마디에 만 근의 무게를 담아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여러분들을 모두 불러들인 것은, 이제 여러분도 알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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